Manhae Prize for Literature

역대 수상자 및 수상작
- 1974년 제 1회
- 신경림 시집『농무』
- 1975년 제 2회
- 천승세 단편 「황구의 비명」 「폭염」
- 1988년 제 3회
- 고은 시집 『만인보』 1, 2, 3
- 1989년 제 4회
- 황석영 장편 『무기의 그늘』
- 1990년 제 5회
- 현기영 장편 『바람 타는 섬』
- 1991년 제 6회
- 민영 시집 『바람 부는 날』
- 1992년 제 7회
- 김명수(金明秀) 시집 『 침엽수 지대』
- 1993년 제 8회
- 이문구 소설집 『유자소전』
- 1994년 제 9회
- 송기숙 장편 『녹두장군』 전12권
- 1995년 제10회
- 조태일 시집 『풀꽃은 꺾이지 않는다』
- 1996년 제11회
- 신경숙 장편 『외딴 방』
- 1997년 제12회
- 백무산 시집 『인간의 시간』
- 1998년 제13회
- 수상작 없음
- 1999년 제14회
- 박완서 소설집 『너무도 쓸쓸한 당신』
- 2000년 제15회
- 임형택『실사구시의 한국학』
- 2001년 제16회
- 정희성『詩를 찾아서』
- 2002년 제17회
- 김지하『花開』
- 2003년 제18회
- 박범신 장편『더러운 책상』 유홍준 『완당평전』
- 2004년 제19회
- 홍석중 장편『황진이』
- 2005년 제20회
- 김원일 연작 소설 『푸른 혼』
- 2006년 제21회
- 김규동 시집 『느릅나무에게』
- 2007년 제22회
- 김영하 장편소설 『빛의 제국』
- 2008년 제23회
- 윤영수 소설집 『소설 쓰는 밤』
- 2009년 제24회
- 공선옥 소설집 『나는 죽지 않겠다』 『명랑한 밤길』
- 2010년 제25회
- 강만길 자서전 『역사가의 시간』
- 박형규 회고록, 신홍범 정리 『나의 믿음은 길 위에 있다』
- 2011년 제26회
- 천양희 시집 『나는 가끔 우두커니가 된다』
- 2012년 제27회
- 이시영 시집 『경찰은 그들을 사람으로 보지 않았다』
- 2013년 제28회
- 조갑상 장편소설 『밤의 눈』
- 2014년 제29회
- 한강 장편소설 『소년이 온다』
- 2015년 제30회
- 수상작 없음
- 2016년 제3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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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상 이인휘 소설집 『폐허를 보다』
특별상 김형수 『소태산 평전』
공동수상 416세월호참사 작가기록단『다시 봄이 올 거예요』
- 2017년 제3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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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상 김정환 시집 『내 몸에 내려앉은 지명(地名)』
특별상 황석영 이재의 전용호 기록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 2018년 제33회
- 김해자 시집 『해자네 점집』
- 2019년 제3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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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상 황정은 연작소설 『디디의 우산』
특별상 김두식 지음 『법률가들: 선출되지 않은 권력의 탄생』
- 2020년 제3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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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상 최진영 장편소설 『이제야 언니에게』
특별상 김종철 문학론집 『대지의 상상력』
- 2021년 제3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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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상 김승희 시집 『단무지와 베이컨의 진실한 사람』
특별상 김용옥 『동경대전』(전2권)
만해 한용운
1879년 | 8월 29일 충남 홍성 출생. 본관은 청주. 자는 정옥(貞玉), 속명은 유천(裕天)이며 득도(得度) 때의 계명(戒名)은 봉완(奉玩), 법명은 용운(龍雲), 법호는 만해(萬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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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6년~7년 | 의병에 참가하였다가 실패하여 몸을 피해 고향을 떠남. |
1899년 | 블라디보스또끄로 건너갔으나 박해를 받고 곧 돌아와 정처없이 전전. |
1905년 | 1월 백담사에서 김연곡사(金蓮谷師)에게 득도(得到), 전영제사(全永濟師)에게 수계(受戒). |
1907년 | 4월 강원도 건봉사(乾鳳寺)에서 수선안거(首先安倨)--최초의 선(禪)수업---를 성취. |
1909~10년 | 7월 강원도 표훈사(表訓寺) 불교 강사(講師)에 취임. 승려 취처(娶妻) 문제에 관한 건의서를 두 차례 당국에 제출하여 불교계에 물의를 일으킨『조선불교유신론(朝鮮佛敎維新論)』을 백담사에서 탈고. |
1911년 | 범어산에서 조선임제종종무원(朝鮮臨濟宗宗務院)을 설치하여 3월 관장(管長)에 취임. 한일합방 이듬해 8월 만주로 건너가 독립지사들과 만나 운동의 방향을 논의. |
1914년 | 4월 『불교대전(佛敎大典)』을 범어사에서 발행. 8월 조선불교회 회장 취임. |
1918년 | 9월 월간지 『유심(惟心)』을 창간하여 이때부터 더욱 문학 창작에 힘을 기울여 「조선청년과 수양」「고통과 쾌락」「고학생」「천연(遷延)의 해(害)」「훼예(毁譽)」 「무용(無用)의 영심(榮心)」등 많은 글을 『유심(惟心)』상 발표. |
1919년 | 3·1운동 주동자로서 손병희를 포섭하고 최남선이 작성한 「독립선언서」를 3월 1일 태화관에서 33인을 대표하여 연설하고 거사 후 피검. 가을, 감형되어 출옥. |
1924년 | 조선불교청년회 총재에 취임 |
1926년 | 5월15일 『십현담주해(十玄談註解)』를 발행. 5월 20일 시집『님의 침묵』을 간행. |
1928~29년 | 1월 수필 「천하명기 황진이」를 『별건곤』지에 발표. 다음해 11월 광주학생의거를 전국적으로 확대시키고 민중회의를 개최. |
1935~36년 | 장편소설 「흑풍(黑風)」을 조선일보에 연재.「후회(後悔)」를 조선중앙일보에 연재하다가 신문 폐간으로 중단. |
1939년 | 회갑을 맞음. 11월 『삼국지』를 번역하여 조선일보에 연재. |
1940년 | 5월 수필 「명사십리」가 『반도산하』에 수록. 창씨개명을 맹렬히 반대. |
1944년 | 6월 29일 중풍으로 심우장에서 입적(入寂). 유해는 미아리 화장터에서 다비를 거친 후 망우리 공동묘지에 안장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