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간 창비어린이

『창비어린이』 94호(2026년 가을호)

가을호 특집 ‘어린이책은 누가 읽지?’는 어린이책을 쓰고 만드는 과정에서 ‘진짜 어린이’가 소외되고 어른의 편의와 관성만 남은 것은 아닌지 되짚어 보고, ‘독자’를 초점으로 동시·동화·청소년소설·그림책 분야의 현재를 진단하려는 시도에서 출발했다. 동시인 임수현과 국어교육 연구자 이지영, 아동청소년문학평론가 심지섭과 김지은은 성인의 고정 관념을 뛰어넘어 어린이의 솔직한 감정과 열린 시선을 포용하는 태도를 제안한다. 나아가 김지은은 어린이의 감각과 삶이 담길 때 생기는 그림책의 예술적 울림을 강조하며 ‘어른을 위한 그림책’ 개념을 재고해야 한다는 중요한 논점을 던진다. 2026년 6월 영면한 故 이상교 시인을 추모하는 김유진의 특별기고는 50년 넘도록 어린이에게 도달한 글을 써 온 시인의 마음을 깊이 헤아린다. 이외에도 글을 읽기는 어렵지만 온몸으로 책을 사랑하는 특수학교 도서관 아이들 이야기, 30년간 한국 어린이책을 함께 읽어 온 일본의 번역 모임 후기, 김중미의 『괭이부리말 아이들』(창비 2000)을 새롭게 조명한 이다의 만화, AI와 아동청소년문학에 관해 논한 어린이청소년책작가연대 토론회 참관기 등 풍성한 읽을거리가 담겼다.



[특집] 어린이책은 누가 읽지?
가을호 특집은 어린이·청소년과 어른의 시각 차이를 살피는 한편, 어른의 권위가 어린이·청소년의 독서 경험을 제한하지 않아야 한다는 문제의식 아래 아동청소년문학과 이중 독자가 만나는 접점을 다룬다. 동시인 임수현은 어른이 어린이에게서 외로움과 쓸쓸함 같은 감정을 발견할 기회를 빼앗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야 한다고 말한다. 어린이 입맛에 맞추기 위한 탕후루나 마라탕 같은 문학만을 만들지 말고 뜨끈한 국밥 같은 문학을 내놓으며 어른보다 훨씬 더 너른 상상력과 잠재력을 지닌 어린이의 힘을 믿자고 제안한다. 국어교육 연구자 이지영은 어린이가 좋아하는 동화와 어른이 읽히고 싶어 하는 동화의 간극을 짚으며, 어린이에게 좋은 책을 쥐여 주는 ‘문식성 후원자’로서 어른의 역할을 상기시킨다. 아동청소년문학평론가 심지섭은 청소년 독자의 생생한 목소리를 직접 들은 경험을 이야기하며, 청소년의 실제 생활과 언어에 귀 기울이고 관계를 맺는 비평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아동청소년문학평론가 김지은은 ‘어른을 위한 그림책’이라는 표현이 사라져야 할 때라고 말하며, 그림책이 관념적인 영역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어린이 생활의 구체성을 확보해야 함을 강조한다. 그림책이 출발점에서 함께했던 어린이 독자에게 가까이 다가설 때 새로운 길을 발견할 수 있음을 환기하기도 한다. 이번 특집이 어린이·청소년 독자가 어른이 그어 놓은 경계를 허물고, 문학이라는 공간을 마음껏 누비도록 돕는 이정표가 되기를 바란다.

[평론] 부모 없는 성장의 역설: 『맨홀』과 『페퍼민트』
[어린이와 세상] 어린이책과 북클럽 11: ‘오리니(オリニ)번역회’ 30년
[어린이와 세상] 교실 속 책 이야기 11: 도서관에서 만나는 다른 감각
[특별기고] 기쁘게 쓰는 시: 故 이상교 시인을 추모하며
가을호에서는 아동청소년문학이 가닿는 다양한 ‘현장’에 집중한다. 평론란에서 방은수는 박지리의 『맨홀』(사계절 2012)과 백온유의 『페퍼민트』(창비 2022)를 중심으로 청소년소설에서 부모가 돌봄을 수행하지 못하거나 부재하는 상황에서 청소년 주인공이 살아가는 방식을 조명하고, 그들이 어떤 선택을 하게 되는지 살핀다. 성장을 방해하는 부모로부터 벗어나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마침내 어두운 그늘로부터 한발 나아가는 주인공의 모습을 발견한다면 독자는 풀잎처럼 여리지만 강인한 용기를 얻게 될 것이다. ‘어린이책과 북클럽’에서는 오랜만에 해외의 한국 아동문학 관련 활동을 소개한다. 한일 아동문학 연구자 나카무라 오사무가 일본에서 번역 모임을 만들어 30년 동안 한국의 어린이책을 읽고 번역해 온 경험을 풀어놓으며, 현지에서 외면받을 수 있는 타지의 문학을 알리고 양국 아동문학의 다리를 연결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교실 속 책 이야기’는 인천의 특수학교인 인혜학교 도서관 사서 이소라가 특수학교 아이들이 도서관에 머물며 책을 읽고, 소리를 듣고, 책의 물성을 즐기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책을 만나는 모습을 소개한다. 어린이책이 장소에 따라 서로 다른 의미를 지니는 현장을 잘 보여 주는 글이다. 시인이자 아동문학평론가 김유진은 ‘특별기고’ 란에 50년 넘도록 동시와 동화를 써 온 故 이상교 시인을 기리는 마음을 담았다. 이상교 시인의 아름다운 시심(詩心)에 눈을 맞추며, 시인이 기쁜 마음으로 한 글자씩 시를 써 내려가던 손길을 되새길 수 있을 것이다.

[동화] 고민실―비밀은 오늘까지 / 김혜진―길 잃어버린 날 / 이해준―버찌의 맛이 궁금하다면
[청소년소설] 김민령―연못을 메워야
[연재] 이다 ‘어린이 고전 탐구’: ‘괭이부리말 아이들’ 편
[발표] 제31회 창비 ‘좋은 어린이책’ 원고 공모 수상작 / 제20회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창작란에는 잔잔한 일상에 작은 파문을 일으킨 순간들을 포착한 작품들이 실렸다. 모둠 숙제를 하며 각자가 소중하게 여기는 반려동물에 관해 털어놓는 과정에서 저마다의 엉킨 마음을 풀어 가는 고민실의 동화 「비밀은 오늘까지」, 길을 잃은 아이가 우연히 들어간 편의점에서 새 친구를 만나고 주인 잃은 가방을 찾아 주며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는 김혜진의 동화 「길 잃어버린 날」, 용기 내어 버찌 열매를 맛보고 자신의 솔직한 마음에 응답하는 이해준의 동화 「버찌의 맛이 궁금하다면」, 사진 도용을 둘러싼 아이들의 갈등 속에서 진심 어린 사과와 책임의 의미를 묻는 김민령의 청소년소설 「연못을 메워야」가 깊은 여운을 남긴다. 아울러 김중미의 『괭이부리말 아이들』이 그린 가난의 현실에 관해 논한 이다의 만화 「어린이 고전 탐구」, 다채로운 스펙트럼의 동시 창작란과 신간 서평도 만나 볼 수 있다. 우리 아동청소년문학이 나아갈 미래를 모색하는 제31회 창비 ‘좋은 어린이책’ 원고 공모와 제20회 창비청소년문학상 심사 결과 및 수상 소감도 일독을 권한다.

계간 『창비어린이』는 2003년 창간된 아동청소년문학 전문 비평지로, 매호 국내 동시, 동화, 청소년소설 장르의 우수작을 엄선하여 게재함으로써 창작자에게 지속적인 활동 지면을 보장하고 창작 에너지를 북돋고 있습니다. 또 아동청소년문학의 현주소를 정밀하게 진단하고 미래지향적 전망을 모색하는 비평의 장을 마련하는 한편, 외국의 주요 비평이론을 소개하여 우리 아동청소년문학의 수준을 한 단계 높이는 데 기여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독자에게 수준 높은 아동청소년문학 향유의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한국 아동청소년문학 발전의 토대로서 기능함을 목적으로 합니다.

계간 『창비어린이』는 한국 아동문학의 도전, 개척, 논쟁을 이끌어 내는 데 앞장서고자 노력 중입니다. 한국 아동문학의 근대성에 대한 성찰, 현대 외국 아동문학의 성과에 대한 점검, 번역·인터뷰·대담 형식을 통한 외국 아동문학과의 직접적인 교류 등을 지면 기획의 바탕으로 삼고 있습니다. 또 매년 1회, 창간 기념 세미나를 개최하여 한국 아동문학의 근대성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현대성의 과제를 제기하며 뜨거운 현장토론을 이끌어 내고 있습니다.

계간 『창비어린이』는 어린이문화에 관한 지속적인 관심을 통해 어린이와 시대의 소통을 돕는 데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를 거듭하는 시대와 어린이가 교차하는 지점―학교, 도서관, 학원, 텔레비전, 인터넷, 영화, 출판 등―모든 영역에서 진지한 담론을 형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