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으로 가는길

책 소개

『능으로 가는 길』은 천년고도 경주의 왕릉을 배경으로 강석경의 주옥 같은 산문과 강운구의 그림 같은 사진이 어우러져 한폭의 장관을 펼치는 산문집이다. 지은이 강석경(1951년생)은 1974년 『문학사상』 제1회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했고, 시대의 상처와 젊은 세대의 아픔을 그린 『숲속의 방』으로 1986년 ‘오늘의 작가상’과 ‘녹원문학상’을 수상하며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은 소설가이다. 1999년 장편소설 『내 안의 깊은 계단』(창작과비평사)을 비롯하여 『세상의 별은 다, 라사에 뜬다』 등을 펴낸 바 있으며, 이번 책은 『인도기행』 후 10년 만에 펴내는 산문집이다. 저자가 인도를 여행하면서 지구문명의 여백 같은 존재인 인도를 발견했다면, 신라 왕릉을 산책하며 찾아낸 것은 무엇일까. “벌써부터 자기 문명에 이질감을 느끼고 구원이란 화두를 들고 헤매다니다가 거대한 알 같은 고분들이 널려 있는 경주로 불현듯 돌아온 것은 우연한 회귀일까?” 작가는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그는 경주 고분을 통해 구원을 향한 여정에 올랐다고 할 수 있다.

『능으로 가는 길』에는 드라마틱한 신라 왕들의 탄생설화와 일대기, 당대인들의 애환어린 삶이 작가의 뛰어난 통찰력과 사색, 그리고 방대한 사료를 통해 재현된다. 총 11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고분들을 돌아보며 천여년 전 살았던 무덤의 주인들과 대화하고 그 감상을 ‘문명’ ‘집착’ ‘슬픔’ ‘고독’ ‘위로’ ‘꿈’ ‘영혼’ 등의 주제어로 아름답게 갈무리한다.

제1장 ‘문명에 대하여’는 신라 시조 박혁거세 등의 무덤 오릉과 석탈해왕릉을 돌아보는 가운데 철기로 상징되는 인류문명의 빛과 그림자를 사색한다. 제2장 ‘집착에 대하여’의 무대는 헌강왕릉과 삼릉(아달라왕, 신덕왕, 경명왕의 능)인데, 간통하는 아내를 용서한 처용의 의연함과 오늘날까지 여전히 씨성(氏姓)에 집착하는 문중사회의 완고함과 아집이 대비된다. 제3장 ‘유목민의 꿈에 대하여’는 대능원(미추왕릉, 황남대총, 천마총)을 배경으로 북방유목민의 후예로서의 고대 신라인들을 그리는 가운데, 작가의 상상력은 그가 갈망하는 전생의 꿈을 더듬어 대륙의 초원을 넘나든다.

제4장 ‘슬픔에 대하여’는 진덕왕릉과 선덕왕릉을 다룬다. 여전히 남성중심주의를 벗어나지 못하는 현대사회에 비추어 여왕이 존재할 만큼 자유분방하고 호연했던 신라인들의 모습을 돌아보는 한편, 여왕을 사모하다 불의 귀신이 된 지귀의 모습을 통해 이루어질 수 없는 또다른 수많은 사랑을 아파한다. 제5장 ‘고독에 대하여’는 무열왕릉과 서악고분군(법흥왕, 진흥왕, 진지왕, 용춘의 능)을 둘러보는 가운데, 제왕처럼 군림하여 두렵기도 하지만 언제나 따뜻한 벗이 되어주는 고독을 예찬한다. 제6장 ‘위로에 대하여’에서는 문무왕릉 대왕암 앞에 모여 기원의 제를 올리는 인파를 모티프로 하여, 죽은 뒤 용으로 환생해 나라를 지키고 백성을 위무한 문무왕의 행적을 더듬는다.

제7장 ‘민초들의 꿈에 대하여’의 배경은 노서동 고분군(금관총, 서봉총, 호우총)이다. 국보급 유물들이 쏟아지듯 발굴된 이 능들에 얽힌 사연은 이채롭고 재미있을뿐더러 세상의 때가 덜 탄 당대 경주인들의 순박함과 꿈이 묻어난다. 제8장 ‘남성적인 것에 대하여'(진평왕릉, 신문왕릉), 제11장 ‘여성적인 것에 대하여'(노동동 고분군: 금령총 식리총 봉황대)에서는 이 시대의 진정한 남성성과 여성성을 탐구하는데, O양•B양 비디오사건 등과 관련한 세태에 대한 꼬집음이 통렬하다. 제9장 ‘아름다움에 대하여’의 무대는 성덕왕릉과 경덕왕릉이다. 당시 완성된 에밀레종(성덕대왕신종), 불국사, 석굴암 등을 통해 우리 미의 원류를 추적하는 장이다. 제10장 ‘영혼에 대하여’에서는 잃어버린 반쪽에 대한 그리움과 영혼의 합일을 갈구하는 작가의 소회가 내비쳐지는데, 이 장의 배경은 괘릉(원성왕릉)과 신라 유일의 부부합장묘인 흥덕왕릉이다.

이 책에서 강석경의 철학적인 미문에 은은한 훈향을 더하는 것은 사진작가 강운구의 사진이다. 강석경이 이미 수년전 경주로 이주해 정착하면서 능을 답사하고 마음의 결을 닦아왔다면, 강운구는 자연과 어우러진 극적인 능역의 모습을 포착하기 위해 사계절에 걸쳐 수십차례 경주에 내려가 작업했다.

강운구(姜運求, 1941년생)는 신문사 사진기자로 일하다 언론사태로 해직된 이후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했으며, 2회의 개인전을 가지고 많은 기획전에 참여한 중견 사진작가이다. 주요 작품집 『내설악 너와집』 『우연 또는 필연』 『모든 앙금』을 비롯하여 『경주 남산』 『사진과 함께 읽는 삼국유사』 등으로 이미 오래 전부터 고도 경주의 역사와 풍광을 렌즈에 담는 작업을 해왔다.

시원하면서도 단아하게 편집된 사진은 읽는 재미와 함께 보는 재미를 더해주며, 권말 수록된 ‘신라 역대왕 및 재위 연도’ ‘경주 고분 지도’는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 답사의 길잡이 역할을 해준다.

목차
수상정보
저자 소개
  • 강석경

    1951년 대구에서 태어나 이화여대 조소과를 졸업했다. 1974년 『문학사상』 제1회 신인상에 단편소설 「근(根)」 「오픈 게임」이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시대의 상처와 젊은 세대의 고뇌를 그린 중편소설 「숲 속의 방」으로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했다. 이후 당대 사회에 화합하지 못하는 개인의 고독한 방황, 진실한 삶을 찾아 고뇌하며 구원을 모색하는 인물 등을 그려왔다. 소설집 『밤과 요람』 『숲 속의 방』, 장편소설 […]

  • 강운구

    1941년 경북 문경 출생. 경북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사진부 기자로 일하다가 1975년 언론사태 때 해직됨. 1983년부터 프리랜서 사진작가로 활동하며 다수의 다큐멘터리 사진과 포토에세이를 발표함. 2회의 개인사진전을 비롯 많은 기획전에 참가했고, 사진집으로 『내설악 너와집』(1975) 『경주 남산』(1987) 『우연 또는 필연』(1994) 『모든 앙금』(1998) 『사진과 함께 읽는 삼국유사』(1999) 등이 있음. 소설가 강석경의 『능으로 가는 길』(창작과비평사, 2000)의 사진작업을 함.

0 reviews
리뷰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