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빵이 어때서?

책 소개

한국소설의 참신한 상상력을 발굴하기 위해 창비가 제정한 창비장편소설상의 6회 수상작 김학찬 장편소설 『풀빵이 어때서?』가 출간되었다. 『풀빵이 어때서?』는 소재에 대한 장악력, 생생한 인물 묘사, 깔끔한 스토리텔링이 돋보이며 재치있는 발상과 기발한 화법이 눈길을 사로잡는다는 평가를 받았다(‘심사평’ 196~97면).

작가 김학찬은 진중하면서도 균형 잡힌 문제의식으로 현실세계를 진단하고 이를 재기 발랄한 이야기로 재창조해내는 귀한 재주를 가진 신예다. 이 작품에서 보여준 뛰어난 구성력과 흥미진진한 스토리텔링 솜씨는 앞으로 그가 펼쳐갈 새로운 상상의 세계를 기대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반죽은 피보다 진하다!

풀빵 부자(父子)의 기묘한 동행

 

가볍고 경쾌한 문장, 영상을 보는 듯 생생한 묘사, 태연한 말장난과 은근한 농담까지. 소개팅 현장을 묘사하며 시작되는 『풀빵이 어때서?』의 첫 장면은 작품 분위기를 한눈에 보여준다. 소개팅에서 주인공은 ‘가업’을 잇는 일에 대한 자부심을 과장되게 늘어놓는다. 주인공의 행색과 외모에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던 여자는 주인공이 ‘가업’을 들먹이자 자세를 고쳐 앉으며 높은 관심을 표한다.

 

 

 

그녀의 얼굴에 감탄과 의문이 뒤섞였다. 그녀는 다시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나는 얼마 전에 다녀온 미술전시회 이야기를 꺼냈다. 너무 집안 이야기만 하는 건 실례지. 이번에 예술의 전당에서 한 전시회 말이죠, 현대적이면서 도전적인 세련미를 담은 새로운 화가의 등장으로…… 그녀는 숫제 나를 존경할 기세였다.

 

“저, 하시는 일에 대해 조금 더 알고 싶어요. 너무너무 궁금해요.”

 

“혹시 타꼬야끼라고 들어보셨나요?”(10면)

 

아버지 밑에서 주인공이 잇는다는 ‘가업’은 다름 아닌 풀빵 장사다. 주인공의 아버지는 평생 붕어빵만을 구워온 붕어빵 명인이고, 주인공은 아주 어릴 때부터 대를 이어 붕어빵 굽는 걸 천직으로 생각해왔다. 미래에 대해 따로 고민해본 적도 없고 붕어빵 굽는 데 대학 졸업장은 필요 없기에 대학 진학도 고려해본 적이 없다. 그런 그에게 위기가 찾아온 건 군에 입대한 직후였다.

 

 

 

“야 이 반란군 놈의 새끼야!”

 

“새끼, 너 솔직히 불어. 간첩이지? 어? 우리 군을 붕괴시킬 목적이지?”

 

훈련소는 무사히 마쳤는데 자대 배치를 받은 후 뭐만 했다 하면 사고가 났다. 사고치는 것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었다.(32면)

 

고문관으로 낙인찍힌 주인공은 사회에서 붕어빵을 굽다 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일명 붕어빵병으로 활약하게 된다. 제대할 때까지 전투복을 갖춰 입고 붕어빵만 구운 주인공은 제대와 동시에 질릴 대로 질린 붕어빵에 이별을 고한다. 제대 후 일본으로 떠난 여행에서 운명처럼 타꼬야끼를 접한 주인공은 타꼬야끼 굽는 기술을 전수받기 위해 유학을 떠난다.

이 순간부터 부자의 불화는 시작된다. 아버지는 타꼬야끼를 굽는 아들을 인정하지 않고 아들은 붕어빵만을 고집하는 아버지를 견디지 못한다. 붕어빵이라는 고전적인 음식과 새로이 수입돼온 타꼬야끼라는 음식의 대립은 부모세대와 자식세대의 갈등을 상징하기도 하는데, “아들아, 붕어빵은 여전히 너를 그리워하고 있다.

나와 붕어빵은 너를 용서할 준비가 되어 있어. (…) 어서 귀순하거라”(34면)라고 고집스레 말하는 아버지와 아들의 갈등은 막상 완전히 새로운 국면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다. 바로 주인공이 어릴 적 집을 나간 줄로만 알았던 어머니의 비밀을 알게 되는 것. 가족의 비밀이 폭로되며 주인공은 예상치 못한 강펀치를 맞지만 결국 ‘미안하지는 않지만, 고맙다’고 능청스레 말하는 정신적 건강함을 보이며 한걸음 성장한다. 진정한 가족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해보게 만드는 이 일련의 과정은 유쾌하면서도 잔잔한 울림으로 남는다.

 

 

담담한 응시에서 퍼져나온 전복적 상상

정규직 세대의 유쾌한 인생 사용법

 

『풀빵이 어때서?』는 읽다보면 붕어빵과 타꼬야끼의 식감이 고스란히 떠오를 만큼 맛깔나는 묘사로 가득하다. 공을 주고받는 듯 톡톡 튀는 대화는 서사에 활력을 불어넣는데, 특히 간결하게 치고받는 부자의 통화 장면은 만담을 듣고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그러나 김학찬이 구사하는 기발한 화법과 농담은 결코 과장된 느낌을 주지 않는다. 그것은 등장인물의 캐릭터가 생생하게 살아 있어 작가의 문장이 그들의 입담으로 완벽히 화하기 때문이다.

 

나쁜 놈들, 이렇게 뺏은 돈으로 고기 먹고 열심히 운동해서 더 훌륭한 깡패가 되겠지. 나는 고기 먹을 돈을 빼앗겨 풀만 먹고 더 약해져서 또 자릿세를 뜯길 거고.(146면)

 

선을 봤다. 여자가 물컵을 들었다가 그대로 내려놓아서 안도했다. 터덜터덜 돌아오니 편지가 와 있었다. 편지를 받아본 지가 하도 오래되어 무슨 고지서인 줄 알았다.(185면)

 

그러나 이 작품은 재미와 웃음만을 추구한 것이 아니다. 풀빵이라는 소재 하나에 가족서사와 사회문제까지를 엮어내며 집중력을 잃지 않은 작가의 소재 장악력과 뛰어난 구성력 또한 눈여겨보아야 한다. 김학찬이 보여준 기발하고 재치있는 서사의 이면에는 현실세태에 대한 깊은 고민이 자리하고 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비정규직 세대’로 대표된다. 열심히 공부해 대학에 가봐야 취업난이라는 더 큰 장벽에 부딪히고, 겨우 일자리를 찾는다 해도 언제 그만둬야 할지 모르는 비정규직이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나 주인공은 이런 뻔한 과정에서 자발적으로 탈락해 자신만의 길을 담담하게 걸어간다.

붕어빵 장사를 가업이라고 표현하고, 그것을 잇는 것을 장래희망으로 품는 주인공의 모습은 분명 현실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하지만 『풀빵이 어때서?』는 이런 통속적 현실을 뒤집으면서 펼쳐지는 경쾌한 상상의 한판 놀이터다. 작가는 치열하고 투쟁적인 모습으로 사회를 작품에 담아내는 대신 담담하게 세태를 응시하며 그 틀을 통째로 흔드는 전복적인 삶을 제시한다. 그리고 이 유쾌한 인생 사용법은 지난한 길을 걸어가는 동세대 독자들에게 통쾌한 웃음의 위로를 건넬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이야기, 연대의 모색

 

『풀빵이 어때서?』의 하나의 또다른 축은 현지와 주인공의 연애담이다. 임용고시를 준비하며 취업난에 시달리는 인물로 등장한 현지는 비정규직 세대 절대다수의 삶을 대변한다. 이렇게 현지는 주인공의 반대급부로 자리하면서 작품에 현실감각을 부여해줌과 동시에 산뜻한 연애감정을 불어넣는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주인공이 타꼬야끼 장사로 큰돈을 번다거나 불현듯 찾아온 사랑이 인생을 바꾸어놓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주인공은 주인공대로, 현지는 현지대로 각자가 처한 상황에 적절히 고민하고 대응하며 삶을 살아갈 뿐이다. 작가는 그들이 고단한 삶의 과정에서 우연히 만나 서로에게 작은 흔적을 남기고 다시 한걸음씩 나아가게 만든다.

이는 만남의 순간과 그 찰나에 이는 연대의 감각이 소중하다는 것을 일깨우며, 서로 다른 삶과 만나는 접점에서 타인의 삶을 공유하고 연민하는 것이 중요한 경험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리고 어쩌면 바로 그것이 비정규직 세대가 처한 현실에서 쉽게 지치지 않기 위해 가져야 할 자세일 것이다. 성급하게 현실을 진단하거나 손쉬운 결론을 내지 않는 것, 연대와 소통의 가능성을 비관하지 않는 것이 바로 이 유쾌한 작품이 품고 있는 미덕이다.

목차

프롤로그 가업(家業)
풀빵의 계보
타꼬야끼의 정체
진짜?
타꼬야끼라도 괜찮아
에필로그 편지

작가 인터뷰 / 기준영
심사평
작가의 말

수상정보
저자 소개
  • 김학찬

    金學贊 1983년 경북 고령에서 태어났다. 고려대학교 국어교육과를 졸업했고 동대학원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장편소설 『풀빵이 어때서?』로 제6회 창비장편소설상을 수상했다. 장편소설 『상큼하진 않지만』이 있으며 최명희청년문학상, 전태일문학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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