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과밖 52호

책 소개

『안과밖』 52는 여덟편의 특집과 연작기획 글을 통해 혐오・배제・분열이 일상화된 한국사회를 분석하고, 모성과 돌봄의 대안적 공동체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한다. 대통령 선거와 지방 선거를 치르는 2022년 상반기에 ‘분열’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자주 소환되었는지를 고려하면, 분열이 지금 한국정치의 전면에 있음은 명백해 보인다. 제20대 대통령 선거는 기록적으로 작은 차이로 당선인을 가려냈고, 선거 결과로 드러난 분열된 국민의 표심만큼이나 선거 과정 또한 분열의 연속이었다. 선거의 정치공학은 국민의 표심을 세대별・남녀별・지역별・소득별로 분화해서 계산하고, 여론조사는 이러한 분화와 분열을 강화하고 공고히 해왔다. 분열의 정치공학이 선거라는 단기적 정치 이벤트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20대 남자 또는 20대 여자’라는 여론조사 표본집단이 ‘정치 효용성’을 내세워 적극적으로 집단적 대표성을 받아들이는 국면에서 잘 드러났다. 지금 한국사회의 여러 특징 중 하나는 분열의 정치를 거쳐 생겨난 분열의 일상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일상화된 분열은 취업・부동산 등 삶의 구체적 면면에서 첨예한 갈등 양상으로 드러나며, 타 집단에 대한 혐오와 배제가 일상의 영역에까지 깊숙이 침투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이러한 분열을 극복하기 위한 포용적 공동체 재건이 시대적 과제임은 자명하다. 일상화된 분열의 시대에 통합과 포용의 공동체는 어떠한 형태여야 할까? ‘모성과 돌봄’은 흔히 분열의 상처를 보듬고 어루만지는 처방으로 요청되어왔다. 하지만 ‘혐오와 배제’로 표출되는 이 시대의 일상화된 ‘분열’이 이전의 분열과 다른 양상을 띠고 있기에 신자유주의가 가속화하고 있는 지금 ‘모성과 돌봄’이 가득한 가족공동체라는 익숙한 대안도 재고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특집] 모성은 새로운 윤리가 될 수 있는가?: 영미문학으로 보는 모성과 돌봄

‘특집’에는 신자유주의를 체화한 가족공동체의 안과 밖에서 돌봄과 모성서사가 작동하는 방식을 비판적으로 사유하는 네편의 논문을 싣는다. 정서현의 논문 「돌봄 빚의 미로」는 찰스 디킨스의 19세기 중엽 소설 『리틀 도릿』을 중심으로 금융자본주의와 부채경제에 기반을 둔 영국 빅토리아 사회에서 돌봄노동이 작동하는 방식을 읽어낸다. 돌봄노동은 공동체를 지탱하는 사회의 핵심 구성요소인 만큼 사회는 경제적 채무와 마찬가지로 ‘돌봄 빚’을 지고 있지만, 모성에 대한 기만적 기대에 의지해 ‘돌봄 빚’을 은폐하고 있음을 논문은 밝힌다. 더 나아가 모성적 돌봄이 가족 단위의 혈연 기반 공동체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사회 전반 공동체의 근간을 이루는 것임에도 빅토리아 사회가 돌봄 빚에 대한 지불 불능 상태에 있음을 드러낸다. 이어지는 서정은의 논문 「루이자 메이 올컷의 대안적 돌봄공동체 연구」는 『작은 아씨들』로도 잘 알려진 루이자 메이 올컷의 19세기 후반 소설 『일: 경험 이야기』를 중심으로 돌봄노동 현실을 진단하고, 대안적 돌봄공동체를 상상한다. 논문은 돌봄노동과 가정의 역할을 강조하는 것이 흔히 ‘집 안의 천사’로 제시되는 전통적 성 역할을 다시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음을 경계하면서도 가부장제와 시장논리 너머의 대안적 돌봄공동체를 적극 모색한다. 이 과정에서 『일: 경험 이야기』에서 그려지는 공동체는 이러한 대안적 공동체의 문학적 구현으로 해석된다. 권영희의 논문 「‘괴물-아이’의 엄마 되기」는 신자유주의적 경제 주체로 포획된 모성에 비판적으로 접근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20세기 후반에 출판된 도리스 레싱의 소설 『다섯째 아이』에서 모성서사의 비판적 잠재성을 읽어낸다. 논문은 소설이 어떻게 모성과 돌봄을 중심으로 하는 신자유주의적 가족 이데올로기를 해체하는지를 밝히고, 모성이 ‘괴물-아이’라는 타자로 설정된 소설의 ‘다섯째 아이’와 맺는 유동적 관계 속에서 자아・타자・사회의 관계를 재사유한다. 박선아의 논문 「급진적 돌봄과 흑인 모성시학」은 그웬돌린 브룩스와 오드리 로드의 현대 미국시에서 드러나는 급진적 돌봄과 흑인 모성시학을 논한다. 급진적 돌봄담론은 신자유주의적 개인 주체가 아닌 상호의존적 존재에 기반을 둔 공동체를 모색하는 것을 특징으로 하는데, ‘다른어머니’의 돌봄은 개별 신체가 아닌 사회적 신체를 경계 없이 돌보는 개념으로서 중요시된다. 논문은 두 작가의 시에서 시적 주체로 제시되는 어머니에 주목하며, 여기서 시적 어머니가 생물학적 어머니가 아닌 공동체 안의 ‘다른어머니’ 형상으로 제시됨을 밝힌다.

 

[연작기획] 혐오와 배제를 넘어선 공적 담론의 재구성

이번 호는 ‘혐오와 배제를 넘어선 공적 담론의 재구성’이라는 주제로 연작기획을 처음으로 선보인다. ‘혐오와 배제’가 작동하는 다양한 양상을 탐색하는 네편의 논문은 ‘모성과 돌봄’의 대안적 공동체를 비판적으로 모색하는 특집과 조응을 이룬다.

김수아의 「미디어 환경 변화와 혐오 확산」은 혐오 확산의 구조에 미디어의 환경 변화가 자리잡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포털 서비스 중심의 뉴스 전파 구조, 수용자 중심의 뉴스 소비와 주목 경쟁, 온라인 커뮤니티를 정보원으로 삼는 보도 양상, 특정 프레임을 전달하는 기사 제목 작성 실태, 알고리즘에 의한 편향성 등을 분석함으로써 분열・차별・혐오・배제가 확산되는 양상을 논의한다. 또한 이러한 혐오 표현의 확산을 막고 저널리즘의 윤리적 실천을 위해서는 전통적 미디어가 소수자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사실의 다면적 차원을 드러내야 한다고 역설한다. 김정하의 「코로나19 팬데믹과 아시아라는 스타일」은 팬데믹 상황에서 폭력적으로 표출된 아시아인 혐오가 미국의 집단 상상력 안에서 역사적으로 재현된 방식을 분석하고, ‘미국의 아시아 인종화’를 ‘경제적 형태’의 문제로 이해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논문은 기계처럼 작동하는 것으로 여겨진 19세기 후반 쿨리 노동자에서 신자유주의 국면에 등장한 자기갱신적 모범소수자에 이르기까지 아시아가 인종화되어온 방식을 추적한다. 논문은 이창래의 소설 『만조의 바다 위에서』가 하나의 서사적 스타일로 아시아라는 형상이 인종화되어온 역사를 그려낸다고 말한다. 김태영육주원의 「일상화된 혐오와 생존의 페미니즘」은 혐오의 일상화와 젠더 갈등을 지역 청년여성 페미니스트 사례 분석을 통해 논의한다. 논문은 래디컬 페미니즘을 하나의 ‘주의’로 보는 대신에 페미니스트 ‘되기’에 영향을 주는 담론의 장으로 보고, 온라인 공간에서의 미러링 등이 이러한 페미니스트 담론 형성에 끼친 긍정적이거나 부정적 영향을 상세히 살핀다. 또한 페미니스트 낙인이 일상에서 ‘문화 단속’의 형태로 배제적으로 작동하는 방식을 분석하고, 신자유주의 시대의 생존전략으로서 페미니즘을 제시한다. 서세림의 「초대받지 못한 손님과 복화술사들」은 한국사회에 진입한 탈북자에 대한 혐오담론을 탈북문학을 중심으로 논의한다. 논문은 동정과 연민, 무관심 등의 방식을 통해 소설 속 등장인물에게 혐오와 배제가 작동하는 양상을 밝히고, 탈북 이주민의 현실은 한국사회 안에서 혐오가 가장 대표적으로 드러나는 공간이라고 말한다.

 

[동향/시평]

‘동향’에서 윤수진의 「디지털 시대의 비평이론: 현재의 문제들과 사이버네틱스」는 디지털 테크놀로지로 급격히 재편되고 있는 세계를 적절히 설명하지 못하는 기존 비평의 한계를 짚어내고 새로운 비평이론의 가능성을 탐색한다. 저자는 디지털리티의 기원에 사이버네틱스가 자리잡고 있음을 지적하고, 2차 세계대전 중 발명된 사이버네틱스가 전쟁 이후 전방위적으로 확산・적용되는 과정을 추적한다. 그리하여 사이버네틱스를 경유하는 최근 디지털리티 이론이 현대 자본주의 작동방식, 그리고 현대사회의 권력 구성과 운용을 이해하는 데 유용한 이론적 기반을 제시한다고 역설한다. 또한 사이버네틱스가 디지털 시대에 문학서사 양식의 변화를 읽어내는 비평적 틀로서 기능한다고 논한다.

‘시평’에서 배경진의 「비수도권 대학의 현실: 비수도권 대학 위기의 원인과 해소방안」은 현재 비수도권 대학이 겪고 있는 위기를 진단하고 그 원인과 해소방안을 논의한다. 충원율과 중도탈락률 등의 지표는 비수도권 대학이 전국적인 학령인구 감소와 수도권 인구 집중 현상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고 있음을 여실히 드러낸다. 이와 같은 비수도권 대학의 위기를 해소하기 위한 처방으로 교육부는 ‘적정규모화’라는 이름으로 정원 감축을 유도하는 한편 산업과 사회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대학의 특성화를 제시한다. 하지만 저자는 이러한 단기적인 처방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고 지적하며, 권역별 기능적 분업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정책의 방향을 제시하고, 현재 운영되고 있는 자연과학 분야의 고등과학원과 같이 인문사회 기초학문을 지원하는 기관이 설치되어야 할 필요성을 역설한다.

 

[서평]

이번 호는 세편의 ‘서평’을 싣는다. 김경미는 ‘장애인은 비장애인과 다른가, 같은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이에 답하는 패트릭 데블리저 외 10인 공저 『장애를 다시 생각한다』를 소개한다. 서평은 장애를 ‘다름’으로 인식하는 ‘개인적 모델’과 ‘다르지 않음’을 강조하고 장애인의 집단적 정체성을 중시하는 ‘사회적 모델’이라는 두 이론 모델에 대한 비판으로서 데블리저의 책을 읽는다. 평자는 이 책이 기존의 두 모델이 지니고 있는 각각의 문제에 대한 인식을 기반으로 ‘비슷하지만 다름’이라는 대안적 모델을 제시하며,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상호의존성을 바탕으로 한 관계적 접근이 장애를 이해하는 데 유용하다고 말한다. 김재철은 “셰익스피어를 탈식민주의 법정에 세운다”는 이경원의 저서 『제국의 정전 셰익스피어: ‘이방인’이 본 ‘민족시인’의 근대성과 식민성』을 소개한다. 서평은 파농, 사이드, 바바를 이념적 토대로 삼는 연구서의 탈식민주의 이론적 계보를 밝히는 동시에 연구서가 신역사주의적 이론을 탈식민주의 비평에 녹여내는 방식을 설명한다. 또한 연구서의 주된 분석 대상인 셰익스피어라는 ‘저자’ 개념이 어떻게 잉글랜드의 ‘민족시인’이라는 ‘저자 기능’으로서 ‘근대성의 징후’와 ‘식민성의 모순’이라는 상이한 담론을 읽어낼 수 있는 ‘절합 국면’으로 작동하는지 밝힌다. 평자는 신역사주의・탈식민주의 비평의 중요한 이정표로서 이경원의 연구서를 독자에게 권한다. 이번 호의 마지막 글에서 심보선은 아시아계 미국인으로서 자신의 삶과 시를 자전적 에세이 형식으로 담아낸 캐시 박 홍의 『마이너 필링스: 감정들은 사소하지 않다』를 소개한다. 서평은 ‘아시아계 미국인’이라는 정체성의 역사적 기원을 살피고, 역사적 기억을 집단적 의식 속에 상기시키고 누적시키는 홍의 책이 ‘문학’을 넘어서는 것이라고 평가한다. 한편 ‘관해 말하기’가 아닌 ‘근처에서 말하기’를 채택하는 홍의 글쓰기 전략이 집단에 관한 보편적 서사를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소수자적 감정을 개별적으로 드러내는 것을 특징으로 하는 ‘문학적 글쓰기’임을 밝힌다. 평자는 마지막으로 아직 “우리에게 한국의 캐시 박 홍은 없다”면서 한국의 소수인종 문학과 문학적 주체를 탐색하는 새로운 시선이 필요함을 역설한다.

목차

[책머리에] 분열의 일상화, 공동체 모색하기|김희진

 

[특집] 모성은 새로운 윤리가 될 수 있는가?: 영미문학으로 보는 모성과 돌봄

돌봄 빚의 미로: 『리틀 도릿』이 그리는 확산적 경제공동체와 모성서사의 기만|정서현

루이자 메이 올컷의 대안적 돌봄공동체 연구: 『일: 경험 이야기』를 중심으로|서정은

‘괴물-아이’의 엄마 되기: 『다섯째 아이』와 모성서사의 비판적 잠재성|권영희

급진적 돌봄과 흑인 모성시학: 그웬돌린 브룩스와 오드리 로드의 경우|박선아

 

[연작기획] 혐오와 배제를 넘어선 공적 담론의 재구성

미디어 환경 변화와 혐오 확산: 혐오에 대응하기 위한 연결 윤리 구축에 대한 소고|김수아

코로나19 팬데믹과 아시아라는 스타일|김정하

일상화된 혐오와 생존의 페미니즘: 지역 청년여성들의 페미니스트 되기|김태영·육주원

초대받지 못한 손님과 복화술사들: 탈북문학과 혐오담론|서세림

 

[동향]

디지털 시대의 비평이론: 현재의 문제들과 사이버네틱스|윤수진

 

[시평]

비수도권 대학의 현실: 비수도권 대학 위기의 원인과 해소방안|배경진

 

[서평]

장애의 독특성과 다양성을 이해하는 방식에 대하여: 패트릭 데블리저 외 지음, 이동석 외 옮김 『장애를 다시 생각한다』(그린비, 2021)|김경미

칼리반의 지성이 읽은 프로스페로의 민족주의와 식민주의: 이경원 『제국의 정전 셰익스피어』(한길사, 2021)|김재철

한국의 캐시는 없다: 캐시 박 홍 지음, 노시내 옮김 『마이너 필링스』(마티, 2021)|심보선

수상정보
저자 소개
  • 영미문학연구회
    영미문학연구회

    영미문학연구회는 소장 영미문학 연구자들을 주축으로 1995년 6월 3일에 창립되었습니다. 현재 전국에서 220여 명의 회원이 활동하고 있는 우리 연구회는 상설 연구조직으로, 영미문학의 연구와 성과의 교류 및 대중적 확산을 통하여 우리의 문학·문화 발전에 이바지하고자 합니다. 영미문학이 학문에서는 물론이고 문화 전반에서도 무시 못할 파급력을 갖는 우리의 현실에서 영미문학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대단히 중요하다 하겠습니다. 더구나 영어권의 영향력이 지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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