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보다 높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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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어떤 기억은 심장에 새겨지기도 한다
심장이 뛸 때마다 혈관을 타고 온몸으로 번져간다”

 

삶의 바닥에서 건져 올린 애도와 사랑의 비가(悲歌)

 

치열한 응시와 아름다운 상상력으로 일상 속 슬픔과 경계의 삶을 시로 담아내며 큰 주목을 받아온 신철규 시인의 두번째 시집 『심장보다 높이』가 창비시선으로 출간되었다. 첫 시집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로 “동시대 사람들의 깊은 상처와 슬픔에 다가”간다는 찬사와 함께 2019년 신동엽문학상을 수상한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심장의 박동과 같이 생명력 넘치는 목소리로 세계의 비극적 풍경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심장보다 높이』의 시편들은 인간의 근원적 슬픔을 절실한 언어로 그려내는 동시에 자신만의 슬픔에 함몰되지 않고 타자의 고통에 닿으려 애쓴다. 시인은 고통으로 가득 찬 현실을 직시하며 폭력의 역사와 동시대의 눈물을 시에 담아낸다. 나와 타자의 슬픔을 엮고자 하는 의지와 잔잔하면서도 강렬한 비유가 묵직한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심장보다 높이』가 전하는 진실한 마음은 독자들에게 큰 호응을 받아온 절묘한 비유와 선명한 이미지에서 시작한다. 그는 연민의 감수성을 바탕으로 “발성기관 없는 물고기처럼 뻐끔거리며 우는 사람”(「그을린 밤」)을 기억하고 인간에 대한 참된 이해에 이르고자 노력한다. 특유의 섬세한 관찰력으로 “아주 연약한 거미줄에도 물방울은 맺”(「얇은 비닐 막을 뚫고 가는 무딘 손가락처럼」)히는 풍경을 그려내 독자와 함께 오랫동안 바라보고자 한다.

 

시대의 고통을 기록하는 절실한 목소리

 

시인은 “침몰이라는 재난 이후의 세계”를 살아가는 고통의 시간 속에서도 “타인의 아픈 심장에 나의 슬픈 심장을 맞추는”(김승희, 추천사) 윤리 의식을 바탕으로 우리 사회의 슬픔을 시로 기록한다. 시인에게 슬픔은 혼자만의 것이 아니고, 타인의 고통은 나와 무관한 것이 아니다. 표제작 「심장보다 높이」는 욕조 속에서 느끼는 일상의 작은 통증, 공포의 감각에서 시작해 타인의 슬픔을 이해하고 시대의 폭력성에 공분하는 데까지 이어지는 연대의 상상력을 보여준다. “무너질 수 없는 것들이 무너지고 가라앉으면 안 되는 것들이 가라앉았”던 비통한 시대적 고통을 증언하고 슬픔으로 이어진 연대의 끈을 잇는다.
시인이 기록하고자 하는 고통의 목소리는 오늘날의 슬픔에 국한하지 않는다. 예컨대 「세화」에서 시인은 4·3 사건의 고통에 대해 무겁게 적는다. 화자가 서 있는 곳은 오늘날의 제주, 아름다운 해변 ‘세화’이지만, 시는 “죽이려고 하는 사람들 앞에서/살아남으려는 사람들은 어김없이 폭도가 된다”라는 문장으로 오랜 시간 이어져온 폭력과 끝나지 않는 슬픔을 기억한다. 그의 시에서 슬픔은 일시적 감정이 아니라 폭력이 만들어낸 피해의 결과이며 그 실체가 분명한 현실의 문제이다. 그렇기에 『심장보다 높이』는 “상처와 고통의 연대기”(남승원, 해설)이자 시대의 고통을 기억하려는 비가(悲歌)이다.

 

부조리한 사회구조에 내재된 폭력 앞에 속절없이 무너져 내려 삶의 벼랑 끝으로 내몰린 채 지금도 울고 있는 사람이 있는 한 시인은 어떤 위로보다도 따뜻한 “한 줌의 구원”(「병원 정문에서」)을 갈구하며 시대의 그늘을 기록할 것이다. 신철규의 시는 다시, 계속해서 “물속에 손을 넣으려고 하면/손을 잡기 위해 떠오르는 손”(「불투명한 영원」)을 향해 뜨거운 손길을 건넨다.

 

추천사
  • 어떤 시는 한번 읽으면 그 시를 읽지 않은 시간으로 다시는 돌아갈 수 없게 한다. 나에게는 신철규의 「심장보다 높이」라는 시가 그러했다. 시네포엠같이 잔잔하게 이미지가 흐르는 시. 그럼에도 이미지 과잉은 아니고 꼭 적절한 이미지로 최소의 서사를 펼쳐가는 시. 김종삼이 말하는 시네포엠에 가장 가까운 시가 아닐까 한다. 이 시를 읽은 후 욕실 속의 욕조를 볼 때마다 캄캄한 정전이, 물의 재난이, 침몰의 공포가, 스틱스라는 저승의 강이, 헐떡이는 심장이, 몸의 위태로움이, 욕실 문을 긁는 고양이의 발이 느껴진다. 물이 심장보다 높은 곳에 있는 재난과 그 악몽! 아, 이런 공포의 액체적 상상력은 만나고 싶지 않다,라고 생각하면서도 고개를 돌리고 자꾸 그 시를 생각하게 된다. 이 표제시를 비롯하여 『심장보다 높이』에 실린 시들은 거의 비가의 느낌을 준다. 비가는 때로 연가를 포함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그러하다. 침몰이라는 재난 이후의 세계에서의 불안과 애도의 우울과 사랑을 그린다. ‘나’보다 키가 작은 연인이 발뒤꿈치를 살짝 들어 올려 ‘나’에게 심장을 맞추는(「빛의 허물」) 사랑의 묘사에서 나는 죽음의 신화에 맞서는 인간의 따스한 몸의 저항을 느꼈다. 몸은 얼마나 허망한가. 그럼에도 “붉게 달아오른 피가 온몸에 장미 문신을 그려놓는”(「침묵의 미로」) 사랑의 순간은 소멸에 맞서는 절묘한 아름다움이다. 몸도 허망하고 시간도 삶도 허망하지만 타인의 아픈 심장에 나의 슬픈 심장을 맞추는 것, 그것이 이 시집이 보여주는 생명의 눈부신 약동이자 문학의 윤리다. 시는 곧 임상이자 의료라는 것을 신철규의 아름다운 시는 잘 보여준다.

    김승희 시인

목차

제1부

세화

흐르는 말

갇힌 사람

심장보다 높이

검은 고양이

역류

침묵의 미로

손안의 새

그을린 밤

복잡한 사람

검은 산책

 

제2부

빛의 허물

다른 나라에서

해변의 눈사람

날짜변경선

얇은 비닐 막을 뚫고 가는 무딘 손가락처럼

약음기

무중력의 꿈

공중그네

납작한 파동

11월

불투명한 영원

 

제3부

슬픔의 바깥

만종

병원 정문에서

슬픔의 바깥

그날의 구두는 누구의 것이었을까

어디까지 왔나

슬픔의 바깥

거미 여인

굴렁쇠 굴리는 아이

적막

내 귓속의 저수지

 

제4부

뜨거운 손

어항을 깨뜨리다

인간의 조건

악수

귀신놀이

단추를 채운 밤

검은 악보

붉은 바벨탑

폭우 지난

엔딩 크레디트도 없이

 

해설|남승원

시인의 말

 

수상정보
저자 소개
  • 신철규

    1980년 경남 거창 출생. 2011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 등이 있음.

끊임없이 맴도는 말들과 계속해서 되뇌는 말들.
투명한 것이 온도와 밀도의 변화에 따라 색을 띠게 되는 것처럼
생각의 집적과 생각의 경로에 따라 무게가 달라지는 말들.
 
그 말들 때문에 여기까지 왔다.
 
부족공동체의 유일한 생존자처럼
누구와도 말을 나눌 수 없는 사람이
곧 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곧잘 한다.
어떤 대화도 혼잣말이 되어가는 것 같다.
 
꿈에 나오는 것은 다
지금 내 옆에 없는 것들이다.
잠시 잠깐 인간이 되었다가
대부분의 시간은 인간이 아닌 채로 살아간다.
 
미워할 수 없는 사람들과
오해로 점철된 말들과
포기할 수 없는 시간들이 있다.
터무니없이 부서진 마음을 그러안고 인간의 조각들을 수습하고 있다.
 

2022년 3월
신철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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