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섭이 가라사대

책 소개

2001년에 등단해 소설집 『사람의 신화』와 장편 『귀신의 시대』를 출간하여, 공동체적인 삶이 파괴된 채 약육강식의 원칙만이 존재하는 폭력적 현실에 적응하지 못했으나 내면 깊이 변혁 의지를 품은 인간 군상을 희화하하고 풍자적으로 그려낸 작품들을 발표해온 손홍규가 두번째 소설집 『봉섭이 가라사대』를 발표했다. 2005년부터 2년 남짓한 기간 동안 발표한 단편 중에 10편을 가려뽑은 이번 소설집은 차세대 입담꾼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해 보여준다. 작가 손홍규의 폭넓은 스펙트럼은 농촌과 도시, 남과 북, 그리고 과거와 현재를 종횡하며 인간성 상실의 환경 속에서 스스로 인간이기를 포기한 채 비루한 존재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상황을 한층 비애롭게 그려낸다. 인간의 진정한 의미를 되묻고 인간 존엄성의 가치를 되새기게 하는 독특한 상상력을 만날 수 있는 작품들이다.

 

 

 

이보다 더 비루할 수 없다-인간이 되기를 거부한, 인간이 될 수 없는 별난 종족

손홍규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조건을 상실한 황폐한 상황에서 곧장 동물이나 다름없는 존재가 되고, 곧 동물이 되기도 한다. 첫번째 소설집 『사람의 신화』에 등장했던 “나는 사람이 아니다”라는 화두는 두번째 소설집 『봉섭이 가라사대』를 지배하는 주된 정조이되, 좀더 구체적으로는 사람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그럼 사람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들에 답하는 작품들이다. 「봉섭이 가라사대」와 「뱀이 눈을 뜬다」에는 바로 ‘반인간·비인간’의 모습을 한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표제작 「봉섭이 가라사대」에는 대를 물려 소싸움꾼이자 소장수의 삶을 사는 응삼이와 틈만 나면 집을 떠날 궁리를 하는 아들 봉섭이가 등장한다. 평생을 소와 함께하면서 생김새마저 소를 닮은 응삼의 자식들은 번번이 송아지에 기를 빼앗긴 채 목숨을 잃고 천신만고 끝에 아들 봉섭과 그뒤로 딸 둘만 남는다. 그러나 봉섭은 아버지의 소를 훔쳐 달아났다가 밑천이 떨어지면 다시 돌아오기를 반복한다. 세번째로 귀향한 봉섭은 소 다섯 마리를 끌고 새벽시장에 나갔으나 거래가 성사되지 못한 채 소싸움만 벌이고 소는 뿔뿔이 도망쳤다가 성치 않은 모습으로 하나둘 응삼의 집으로 돌아온다. 자신에게도 아버지 응삼 못지않은 소싸움꾼의 정기가 흐름을 느낀 봉섭이 역시 집으로 돌아와 두 부자는 함께 우사로 향한다. 자신보다 먼저 났지만 송아지 때문에 목숨을 잃었던 형제들과 달리 봉섭은 송아지를 먼저 죽여버림으로써 목숨을 얻은 신세이고, 소와 평생을 같이 해 소를 닮은 나머지 소처럼 되새김질을 할 지경에 이른 응삼은 차라리 인간이기보다 동물이기를 택한 경우이다. 소와 한몸이 된 응삼의 모습은 미국산 쇠고기를 반대하는 농민집회에서 만천하에 드러난다.

 

 

 

그때 한떼의 황소들이 먼저 나타나 눈 깜짝할 사이에 저지선을 뚫고 매표소마저 통과해버렸다. 전경이며 농민이며 모두들 궁둥이를 흔들며 뒤뚱뒤뚱 뛰어가는 황소들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응삼이도 그들 틈에서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 황소들은 사실 응삼이가 몰고 온 녀석들이었다. / 신응삼씨, 뭐허요? 저놈들이 고속도로 들어가면 대형사고 납니다. 얼렁 잡지 않고 왜 그러고 서 있소? 딴 냥반들은 다들 트랙터니 경운기니 몰고들 왔는데 중뿔나게 왜 소는 몰고 와 가지고 속을 썩이요?

응삼이와 안면이 있는 순경이 이렇게 말하며 어깨를 떠밀었는데, 그 순간 응삼이는 새우처럼 허리를 숙이며 토악질을 했다. 응삼이의 입가로 주르륵 멀건 타액이 흘러나오다가 후루룩 빨려들어갔다. 그러더니 그걸 다시 우걱우걱 씹어먹는 게 아닌가. 잠시 뒤 다시 토악질을 하듯 경련을 했고 목구멍을 넘어 온 것들이 입속에 가득 찼는지 응삼이의 두 볼이 팽팽하게 부풀어올랐다. 입안엣 것들을 꿀꺽 삼킨 응삼이가 버럭 화를 냈다./진드기 같은 새끼가 왜 사람을 떠밀고 난리여. 안 그리도 속이 껄쩍지근해서 죽겄구만. (「봉섭이 가라사대」)

 

부모 속을 썩이는 난봉꾼 아들 앞에서,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하려는 나라님에 대한 반항으로 응삼은 기꺼이 소가 되고, 자식보다 나은 소를 끔찍하게 위한다.

 

「뱀이 눈을 뜬다」에서 주인공은 보일러공으로 일하다 무기력하게 해고통지서를 받는다. 그와 연인이었던 경숙 역시 구내식당 주방보조로 일하다가 업체가 바뀌는 바람에 직장을 잃고 자취를 감춘다. 그의 몸에 똬리를 틀고 있던 뱀의 존재마저 따뜻하게 감싸주던 경숙과 있는 동안에는 뱀이 잠잠했으나 경숙이 떠나자 다시 꿈틀대기 시작한다. 그가 세를 살던 집의 주인인 ‘박’에게는 안면장애에 지체장애가 있는 딸 ‘은주’가 있다. 박은 그에게 은주를 떠맡기려고 애쓰지만 자신의 처지도 은주의 처지도 감당할 수 없어 은주를 외면하다가 유치장에 갇히는 신세가 된 박 대신 결국 그가 은주를 받아들인다. 「뱀이 눈을 뜬다」는 이미 인간이 될 수 없는 인간들, 반인간, 비인간, 나아가 짐승의 탄생과 관련된 이야기이다.

 

한편 「이무기 사냥꾼」에는 사면발니(사면발이)와 동거하며 일용잡부직을 전전하는 용태와, 밀입국자에 불법체류자인 알리가 등장한다. 용태의 부모는 마을사람들에게 ‘상피붙은 자식’이란 오해를 사고 평생을 죽은 듯이 지내야 했고, 알리는 파키스탄에 있을 때 죽은 척하면서 목숨을 부지했던 경험이 있다. ‘죽은 척’이란 곧 살아 있는 인간 되기를 거부하는 몸짓에 다름아니다. 문학평론가 김미정은 손홍규 소설에 등장하는 별난 종족은 모두 비루하기 짝이 없는 비인간·반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되 동전의 양면처럼 궁극에는 ‘인간다움’과 ‘인간’에 대한 탐색을 멈추지 않는다고 해석한다.

 

 

 

이 소설집의 동물-인간 상상력은 여러 층위를 갖고 변주되지만, 공통적인 것은 이것이 어떤 유물론적이고 역사철학적인 계기와 관련된다는 점이다. 이 점에서 손홍규는, 녹아내린 한시절이 또다른 자명함으로 고착되는 지점을 탐사하고 재구성하는 고고학자의 시선을 가지고 있다. 인간이 왜 비루해져갔는지, 어떤 인간들은 왜 짐승이나 다름없는 삶을 사는지, 인간의 위상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그는 이 조건들, 기반들을 탐색중이다. 동시에 그는 분명 소설가다. ‘인간’에 대한 절망이나 냉소나 폐허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인간다움’에 대한 가능성을 여전히 탐색하는 작업은 분명 소설의 것이고 문학의 것이기 때문이다. (김미정, 「해설」)

 

이어 「매혹적인 결말」과 「상식적인 시절」에 이르러서는, 그토록 비루하지만 인간이 되려는 몸부림, 인간답게 살려는 노력의 일단을 목격할 수 있다. 2000년대 도시빈민으로 살아가는 존재로서의 소설가를 그린 「매혹적인 결말」의 두 친구는 모두 소설가를 꿈꾸는 청년이다. ‘나’는 친구 따라 서울에 올라와 단칸방의 월세를 나눠내며 동거를 시작한다. 금세 밑천이 떨어진 두 친구는 막노동판에서 일을 해보기도 하지만, 일당보다 많은 약값만 떠안은 채 그만두는 신세가 되고 유혹을 뿌리치지 못해 거금 이만원을 주고 산 도색잡지가 알고 보니 변태스러운 그림투성이임을 알고는 갖다 버리기도 한다. 구질구질한 일상에서도 두 사람은 소설쓰기에 대한 고민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소설 한 편 변변히 쓰지 못한 채 허송세월을 하면서 소설에 대한 믿음만 잃어갈 무렵, 시골에 계신 어머니가 사고를 당해 편찮으시다는 소식을 접하고 ‘나’는 “소설은 처음부터 진리를 담는 그릇 같은 게 아니었는지도 몰라”라며 씁쓸하게 귀향을 준비한다.

 

「상식적인 시절」의 주인공은 ‘걸레’라는 별명을 가진 아영이다. 지방 소도시에서 아버지는 집을 나가고 할머니와 엄마와 함께 살고 있던 아영은 동네 녀석들에게 윤간을 당하고 성병을 앓게 된다. 아영의 윤간사건 소문이 동네에 파다하게 퍼지자 아영은 오십명의 사내를 상대해 병을 옮겨주는 것으로 복수한다. 이 사건 이후에 아영은 ‘걸레’라는 별명을 얻게 되고 도시를 떠난다. 역시 집을 떠나 전전하던 아영의 아버지 ‘대패’는 강남의 룸살롱에서 딸을 만나 두 부녀는 함께 귀향하지만 이미 아영의 할머니도 어머니도 세상을 떠난 뒤다. 아영은 다시 한번 어머니의 복수를 꿈꾸며 동네 교회의 부흥회에 나타나 어린시절부터 자신을 멀리서 바라봐준 수남과 함께 한바탕 소동을 벌이고 홀연 다시 도시를 떠난다.

 

“인류애니 정의니 평화니 하는 고상한 단어들”이 아니라도 “악마는 되지 말아야지”라는 「매혹적인 결말」의 주인공의 다짐은 결국 ‘인간적인 것’으로의 지향이라고 볼 수 있다. ‘걸레’라는 별명으로 불리기 전부터 아영이 입에 달고 살던 말은 바로 “상식적으로다가 살자”이다. 대단한 도덕률을 지키지는 못하더라도 그저 상식적인 선만은 지키면서 살자는 아영의 말 역시 ‘인간적인 것’으로 통한다.

 

 

 

 

부조리한 현실에의 전복 의지―지리멸렬한 계획으로만 남은 테러

어떤 이유에서든지 인간적이지 못한 현실에 대한 적개심으로 가득해 테러를 꿈꾸는 주인공들이 등장하는 ‘테러리스트’ 연작은 80년 광주의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풍비박산 난 가족의 이야기에서 시작해서 부조리한 현실에 적응하지 못한 채 겉도는 젊은이들까지 시점을 바꿔서 진행된다. 광주항쟁 때 둘째아들 명수를 잃은 박노인은 복수를 꿈꾸며 전대통령의 암살을 기도하지만 번번이 실패하다가 끝내 아무도 암살하지 못한 채 최후를 맞는다(「최후의 테러리스트」). 박노인의 손자 재호는 할아버지와 살다가 입대를 하고, 재호의 아버지 정수(박노인의 큰아들)는 도망간 아내를 찾아가 총부리를 겨누다 외팔이 신세가 되고, 재호의 여자친구 현주는 재호가 군대에 있는 동안 삶이 지겨워 자살을 기도한다(「최초의 테러리스트」). 연작의 마지막에서는 현주의 남동생 스물한살의 현수가 주인공으로 등장해, 또래의 친구들과 하릴없이 모여 살인부터 강간까지 지리멸렬하게 테러를 모의한다(「테러리스트들」).

 

 

 

이번에도 시작은 예전과 다를 게 없었다. “국회에 가서 싸가지 없는 새끼 한놈만 골라 족쳐버리는 거야!” “미친새끼, 도토리 키 재는 게 낫겠다. 그냥 다 쓸어버려!” “한놈만 족치든 전부 다 족치든 말만 해.” 이런 식으로 그들은 실행에 옮기지 못할 계획들만 늘어놓았다. 그들은 알고 있었다. 이러다 결국 공중전화박스나 지구대의 입간판을 부수는 것으로 의견이 모아지리라는 것을. 승준이 이 지리멸렬한 모의에 비수를 박았다. “나는 강간을 하고 싶어.” (…) “근데, 강간도 테러라고 할 수 있냐? 그건 양아치새끼들이나 하는 짓이잖아.” (…) 물론 그들은 헤어진 뒤 각자의 방으로 돌아가 생각에 잠길 것이다. 과연 인간이라면 마땅히 지녀야 할 어떤 본성이 있는지, 본성이라는 게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 누구나 가지고 있는 심장처럼 부록으로 딸려 있는 것이라면 강간을 하겠다고 마음먹은 것도 본성의 발로인지 따져볼 것이다. (「테러리스트들」)

 

 

‘테러’를 꿈꾸는 스물한살 청춘들은 중국집 배달원, 탈영병 등의 신세로 소통의 출구도 통로도 막힌 답답한 인생들이다. 세상에 대한 적개심으로 의기투합하여 테러의 대상을 물색하지만 사실은 강아지 한 마리 죽이지 못하고 스스로 위악적인 존재가 될 수 있다는 데에 자부심을 느낄 뿐이다. 이들에게 테러란 일종의 사회적 심판인 셈이다. 그러나 ‘강간’이라는 말이 튀어나온 순간부터 이들은 해서는 안될 짓이 무엇인가 하는 고민에 빠지고, 그 고민은 곧 ‘인간이라면 마땅히 지녀야 할 어떤 본성’, 즉 ‘인간적인 것’의 차원으로까지 깊어진다. 인간에게 허락된 최대치의 용기와 금기를 뛰어넘느냐 머물 것이냐의 문제에 봉착한 것이다. “아직 그들이 발휘할 수 있는 용기는 여기까지다. 하지만 그들이 무엇을 계획하고 무엇을 하든, 그들에게 허락된 것들이 사람이라는 존재에게 허락된 것들의 최대치일지도 모른다”는 결말이 말해주듯이, 스물한살의 그들은 사실 현실의 테러보다 무리지어 무언가를 궁리하고 계획한다는 공동체적인 행위 속에서 다만 위안과 희망을 찾을 뿐이다. 끝내 이 세상에서 아무도 테러리스트가 되지 못하고 ‘인간적인 것’으로의 지향만 남은 셈이다.

 

 

 

의뭉스러운 익살과 입담의 세계

등단 초기부터 작가 손홍규 자신도 걸쭉하고 구수한 입담의 소유자로 이름 높았지만 그의 작품 속에 녹아 있는 익살과 입담의 세계는 그만의 독특한 상상력과 화법을 의뭉스럽게도 표현해내는 썩 좋은 필살기로 작용했다. 소설쓰기와 소설가에 대한 단상을 풀어놓았던 「매혹적인 결말」에서, “한국문학의 미래를 위해” 소설가가 되겠다는 비장한 청춘들은, 돈이 없어 꽁초를 주워 피우고, 경로당 노인들의 담배나 훔치고, 배고픔을 잊기 위해 졸음이 쏟아지기만을 기다리는 한편, 때때로 토니오 크뢰거처럼 고뇌하기도 한다. 이들이 보여주는 금욕과 방탕, 절제와 무절제, 저속한 삶과 고귀한 이상들은 낙차가 클수록, 우리의 예상들을 배신하는 아이러니의 효과는 극대화된다. 아들의 원수를 갚기 위해 ‘젓가락 던지기’라는 황당무계한 기술을 연마하는 ‘테러리스트 박’(「최후의 테러리스트」), 그러나 그의 계획은 번번이 어이없게도 실패로 돌아간다. 여기서도 비극적인 현실을 아이러니하게 희극적으로 만들어버림으로써 실제로는 ‘박’의 상처를 더욱 도드라지게 만드는 효과를 낳는다.

 

 

 

 

 

“어쩌면 소설은 처음부터 진리를 담는 그릇 같은 게 아니었는지도 몰라”라며 씁쓸해하는 「매혹적인 결말」의 주인공과 달리 손홍규는 특유의 상상력 속에 독특한 유머와 능수능란한 아이러니를 구사하면서 인간사의 진리와 인간다움의 진리를 부단히 탐구하고 있으며 그것을 불가능하게 하는 부조리한 현실을 변혁하려는 굳건한 의지를 보인다. 차세대 입담꾼으로 꼽히며 읽는 재미마저 톡톡한 그의 소설이 마냥 재밌고 유쾌하게만 읽히지 않는 이유는 아마도 그 안에 담긴 주제의식의 무거움이 녹록치 않기 때문일 것이다.

목차

상식적인 시절
매혹적인 결말
이무기 사냥꾼
봉섭이 가라사대
뱀이 눈을 뜬다
도플갱어
푸른 괄호
최후의 테러리스트
최초의 테러리스트
테러리스트들

해설·김미정
작가의 말
수록작품 발표지면

수상정보
저자 소개
  • 손홍규

    2001년 『작가세계』 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소설집 『사람의 신화』 『봉섭이 가라사대』 『톰은 톰과 잤다』 『그 남자의 가출』, 장편소설 『귀신의 시대』 『청년의사 장기려』 『이슬람 정육점』 『서울』 『파르티잔 극장』 등이 있다. 노근리 평화문학상, 백신애문학상, 오영수문학상, 채만식문학상, 이상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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