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여자 사랑하기

책 소개

2004년 게오르크 뷔히너 상을 수상한 현대 독일의 대표적인 소설가 빌헬름 게나찌노(Wilhelm Genazino)의 장편소설 『두 여자 사랑하기』(원제 Die Liebesblödigkeit)가 번역 출간되었다. 잔드라와 유디트, 두 여자를 동시에 사랑하는 주인공의 심리적 갈등을 섬세하고 유머러스하게 그려내면서 규격화된 현대 문명 속에서 규칙과 질서로 환원할 수 없는 사랑의 본질을 포착한다. 묵직한 주제와 복잡한 심리를 다루면서도 능청스럽고 재기발랄한 유머 감각을 놓치지 않는 솜씨가 일품이다.

 

 

 

두 여자를 사랑하는 남자, 한 여자만 사랑할 수는 없는 남자

 

 

 

 

 

대중들에게 종말론을 강의하면서 현대문명의 문제점을 설파하고 다니는 주인공 ‘나’에게는 오랜 세월 연인으로 지내온 두 여자가 있다. 작은 회사의 비서로 일하는 잔드라와, 실패한 피아니스트로 학생들을 가르치며 사는 유디트. 물론 두 여자는 작품 끝까지 서로의 존재를 알지 못한다. 잔드라는 주인공을 세심하게 배려해주고 일상의 자질구레한 일들을 처리해주며, 생활력이 강하고 안정된 직장을 가지고 있다. 적극적이고 성실한 그녀의 자세로 인해 그녀와의 성생활 역시 매우 만족스럽다. 잔드라와 함께 있으면 편안하고 아늑하다. 그러나 그녀는 지성미와 예술적인 감성이 부족하다. 한편 유디트는 교양이 풍부하고 예술적인 감성을 지니고 있고, 지적인 대화에 능하며, 늘 기발한 아이디어로 권태로운 삶에 새로운 생기를 불어넣어준다. 그러나 유디트는 자주 우울하고 전혀 가정적이지 못하다. 다시 말해, 한 여자가 줄 수 있는 것을 다른 여자는 줄 수 없는 것이다.

 

이 두 여자를 사랑해온 주인공은 이제 나이가 쉰둘이고, 두 여자 사이를 오락가락하며 조심스럽게 상황을 관리하는 일이 날이 갈수록 힘들어질 뿐만 아니라, 오래전부터 두 명의 연인과 동시에 사랑을 나누는 행위가 윤리적으로 옳지 못하다고 생각해왔다. 결국 주인공은 조만간 두 여자 중 한 여자와는 헤어져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린다. 이는 소설을 관통하는 유일하고 주요한 갈등으로 작품 내내 주인공의 행동과 사고를 지배한다. 그러면서도 주인공은 이렇게 되뇐다.

 

 

 

두 여자를 동시에 지속적으로 사랑하는 것은 적극 권장할 만한 일이다. 그런 사랑은 세계에 두 개의 튼튼한 닻을 내려놓은 것과 같다. 그런 사랑은 사람을 살찌우며, 내게 필요한 것은 바로 그런 사랑이다. 두 여자를 사랑하는 것은 음란하지도, 야비하지도, 특별히 본능적이거나 음탕하지도 않다. 오히려 지극히 정상적이다(그리고 정상으로 만들어준다). 또한 모든 삶의 면면이 의미심장한 깊이를 얻게 된다. 나는 이런 사랑을 부모님의 사랑과 자주 비교한다. 누구도 어머니와 아버지 중 한쪽만을 사랑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우리가 어머니와 아버지 모두를 사랑해야 하며, 그것도 동시에, 언제나 열렬하게, 평생 혹은 그 이상으로 오래 사랑해야 한다고 누구나 말하지 않는가. 어느 한쪽을 덜 사랑해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스스로 한 여자를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럴 수 없는 자신의 욕망을 정당화하기 위한 주인공의 기발한 착상이다. 두 여자를 사랑하는 일이 윤리에 어긋날지라도 주인공은 진정으로 두 여자를 사랑하고 있고, 두 여자와 함께 두 세계를 누리는 것이 너무나 행복하므로 결단을 내리기가 어렵다. 주인공은 결국 모든 결정을 포기한다. “사랑의 혼돈을 그대로 인정하고, 이 혼돈이 영영 해소되지 않으리라는 사실도 인정”하는 것이다.

 

주인공의 갈등을 해결해주기 위해 공황장애 전문상담가인 오스발트 박사는 ‘가방 실험’을 제안한다. 낡은 가방에 필요없는 물건들을 넣어 길에 놓아두고, 누군가가 그 가방을 가져가는 장면을 지켜보는 실험이다. 딱히 필요하지는 않지만 내것임이 분명한 가방을 타인이 가져가는 모습에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는 결국 오래된 연인을 떠나보내는 연습일 수도 있었으나, 주인공은 그런 실험을 반복하면서 오히려 모든 결정을 포기하고 판단을 유보하기로 마음먹는다. ‘두 여자 사랑하기’에 대한 반어적이고 인간적인 태도, 모순을 감수해내는 태도를 획득하는 것으로 작품은 마무리된다.

 

이 소설의 원제인 “Die Liebesblödigkeit”는 작가가 만든 말로, 작품에서 일종의 병명처럼, 고유어처럼 사용된다. ‘사랑의 미혹’ 혹은 ‘사랑의 어리석음’ 정도로 번역되는 원제를 한국어판에서는 ‘두 여자 사랑하기’로 바꾸었다. 주인공이 당면한 가장 큰 문제로, 윤리적인 문제와 현실적인 삶의 복합성이 가져오는 갈등이 결국 바로 이렇게 두 여자를 동시에 사랑하는 데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이 문제에 대해 반어적이고 인간적인 태도, 모순을 감수해내는 태도를 획득하는 것으로 작품이 마무리된다.

 

옮긴이 이재영은 이 소설의 장점을 “작품 전체의 근저에 깔려 있는 우울함을 반어적인이고 경쾌한 어조로 서술해내고 있다”는 데에서 찾는다. 모순을 받아들이고 견뎌내는 자세의 미덕이 가장 잘 드러나는 지점은 등장인물의 사고나 행위가 아니라 바로 이 어조를 통해서이다. 게나찌노 문학의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이라 할, 대상을 향한 섬세하고 느긋하며 꼼꼼한 시선이 이 작품에서도 여지없이 나타난다. 게나찌노는 2004년의 한 인터뷰에서 “모든 분명함이란 삶을 좀더 견딜 만하게 하기 위한 게으른 타협에 불과하다”고 했다. 작가는 “결정을 하지 않을 무한한 권리”를 소설의 등장인물들에게만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도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시대에 눈과 귀를 밀착시킨 포용력 있는 영혼의 소유자, 불굴의 익살꾼

 

 

 

게나찌노의 작품은 이 소설을 통해 처음 한국에 소개된다. 빌헬름 게나찌노는 1943년 독일 만하임에서 태어났다. 대학에서 독문학, 철학, 사회학을 공부했으며, 1965년 소설 『라슬린 거리』(Laslinstrasse)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파르동』(Pardon)과 『레제짜이헨』 (Lesezeichen) 등 여러 신문과 잡지의 기자와 편집자로서 일했다. 그가 작가로서 본격적으로 알려지게 된 것은 1977~79년에 발표한 『압샤펠』(Abschaffel) 3부작을 통해서였다. 2004년에는 독일 어문학 아카데미에서 수여하는 독일 최고의 문학상인 게오르크 뷔히너 상을 수상했고 그밖에도 1990년 브레멘 문학상, 1995년 졸로투르너 문학상, 1996년 베를린 문학상, 1998년 바이에른 예술 아카데미 문학대상, 2001년 크라니히슈타이너 문학상 등을 수상하며 지성적이고 섬세한 작품 세계를 선보이고 있다.

 

옮긴이 이재영(李在榮) 서울대 독문과를 졸업하고 베를린 자유대학 독문과에서 박사과정을 마쳤다. 2001년 「상실의 세계와 세계의 상실」로 제8회 창비신인평론상에 당선했으며 현재 경원대에 출강하고 있다.

목차
수상정보
저자 소개
  • 빌헬름 게나찌노

    빌헬름 게나찌노는 1943년 독일 만하임에서 태어났다. 대학에서 독문학, 철학, 사회학을 공부했으며, 1965년 소설 『라슬린 거리』(Laslinstrasse)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파르동』(Pardon)과 『레제짜이헨』 (Lesezeichen) 등 여러 신문과 잡지의 기자와 편집자로서 일했다. 그가 작가로서 본격적으로 알려지게 된 것은 1977~79년에 발표한 『압샤펠』(Abschaffel) 3부작을 통해서였다. 2004년에는 독일 어문학 아카데미에서 수여하는 독일 최고의 문학상인 게오르크 뷔히너 상을 수상했고 그밖에도 1990년 브레멘 문학상, 1995년 […]

  • 이재영

    서울대학교 독어독문학과와 독일 베를린 자유대학 철학과를 졸업했다. 서울대, 성신여대, 이화여대 등에서 강의하고 있으며, 창비신인평론상과 시몬느 한독문학번역상을 수상했다. 옮긴 책으로 『이민자들』 『빌헬름 텔』 『토성의 고리』 『철학의 탄생』 『빛이 사라지는 시간』 『아름다움의 구원』 『노래의 책』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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