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령의 세계

책 소개

시간이 뒤틀리는 순간, 세계의 끝에 가 있어야 해.

작지만 소중한 세계를 지키기 위한 마녀의 승부수

 

“나는 마녀의 딸이다. 이름은 마령.” 새로운 10대 마녀 주인공이 등장했다. 취미는 장기, 할 줄 아는 마법이라곤 아직 엉성한 환상으로 달콤한 디저트를 만들어 내는 것뿐이다. 무심한 듯 다정한 주인공 ‘마령’이 신비롭고 아름다운 마녀의 세계를 펼쳐 보인다.

최상희 장편소설 『마령의 세계』(창비청소년문학 103)는 마녀의 딸인 주인공 ‘마령’이 멸망의 징조가 가득한 가운데 동생 ‘마루’를 구하기 위해 진정한 마녀로 거듭나는 이야기다. 정체가 의심스러운 장기 동아리 친구들이 흥미를 자아내며, 곳곳에 포진한 장기 게임은 세계와 인생의 이치를 생각해 보게 한다. 매일 아침 괴물들이 갇힌 방에 결계를 친 뒤 학교에 가고, 동생과 고양이, 친구들이 함께하는 일상은 특별하지 않지만 소중하다. 그런 세계를 지키기 위해 마령은 흔쾌히 자신의 모든 것을 건다. 불확실한 미래에 절망하지 않고 한 발 한 발 나아가는 주인공을 기꺼이 응원하게 되는 매력적인 성장담이다.

 

 

마법 지팡이도 빗자루도 하나 없는

서툰 마녀 마령

 

마녀의 딸인 마령은 동생 마루, 고양이 만옥과 함께 살며 매일 아침 괴물들이 빠져나오지 못하도록 집에 결계를 친다. 길고 긴 등굣길에 자동차와 운전면허를 얻을 날을 꿈꾸고 마법 빗자루나 지팡이 하나 물려주지 않은 엄마와 할머니에게 투덜거리는 평범한 고등학생이다. 마령이 방과 후 들르는 장기 동아리에서는 어딘지 정체가 의심스러운 명리, 묘주, 이랑, 능이가 매일 장기를 둔다. 동아리의 담당 교사인 위다솔 선생님은 열정적인 화학 교사로 아이들을 위하는 마음이 가득하지만, 부원들은 담당 교사나 동아리 운영에 관심이 없고 오로지 장기에만 열중할 뿐이다.

어느 날 마령은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끼고 집 안에 봉인되어 있던 괴물들이 결계를 뚫고 흩어졌다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세상은 시시각각 멸망으로 치닫고, 동생 마루마저 사라지고 만다. 절박해진 마령은 마루를 구하기 위해 도움을 청할 이들을 찾아 나서고, 아직 제대로 된 마법을 전수받지 못한 서툰 마녀는 자신의 세계를 구하기 위한 모험을 펼친다.

 

 

닫히지 않은 세계는 연결될 수 있다.

작지만 커다란 나의 세계를 위하여

 

‘마령의 세계’는 두 계(界)에 걸쳐 있다. 과학 법칙이 지배하는 평범한 인간들의 세계와 인간이 아닌 이종(異種)들이 말을 걸고 온갖 환상이 펼쳐지는 마녀의 세계. 마령이 속한 두 공간을 응축한 무대가 바로 ‘장기’다. 전차와 대포가 불을 뿜고 코끼리와 말이 날뛰는 전장이자 치열한 수 싸움이 펼쳐지는 곳. 환상과 현실이 교차하는 장기판 위에서 가장 무력한 말인 왕을 지키기 위해 분투하는 장기의 승부는 마루를 구하기 위한 마령의 싸움과 닮아 있다.

 

“누구나 자신의 세계 하나쯤은 가지기를 원하고, 나는 장기판 위에서 말을 움직일 때 그 작은 사각형 공간이 오롯이 내 세계라 느꼈다.” ―본문 196면

 

마령에게 오롯한 ‘자신의 세계’는 “동생과 친구들과 고양이와 거미가 있는”(249면) 평범한 일상이다. 지구를 지키는 슈퍼히어로가 아닌, 도시 변두리에 사는 어린 마녀에게 세상의 멸망은 자신과는 무관한 일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그로 인해 동생 마루와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이 사라진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마령의 세계』는 자신을 이루는 것은 다름 아닌 곁에 있는 사람들과 일상이라는 점을 일깨우며, 그들과 함께 “서로의 안위를 살피며”(185면) 나아가는 걸음을 다정히 격려한다.

 

 

다름 아닌 마녀의 딸

새롭게 그리는 아름다운 마녀의 계보

 

『마령의 세계』는 또한 모계로 이어지는 마녀의 혈통을 아름답게 묘사한다. 마녀들은 버려진 여자아이를 입양해 자신의 능력을 전수한다. 어머니로부터 딸에게 전수되는 마법은 세상에서 배척당한 마녀들을 지키는 힘이자 모계의 공동체를 이어 주는 끈이다. 전통을 깨고 엄마가 낳은 아이인 마령과 마루. 금기를 어긴 탓에 힘을 잃은 엄마에게 배운 마법은 아직 미완이지만, 마령이 기억하는 엄마와 할머니와의 추억은 든든하게 자매를 지키는 마법이 되어 준다. 어느 주말 아침의 향기로운 빵 냄새, 잠 못 드는 밤을 채우던 환상적인 동화와 믿음을 담아 바라보던 눈길, 그 기억들과 엄마의 이름은 무엇보다 강력한 주문이다. “이 순간 떠오르는 단 하나의 주문. 나는 목이 터져라 엄마를 부른다.”(125면) 서툰 아이가 세계를 지키는 마녀로 자라나기까지 엄마와 할머니의 따뜻한 품이 등 뒤에 함께한다. 그리고 그 아이는 다시 어머니들의 힘이 된다. 서로가 빛이 되어 주는 연대와 결속, 다름 아닌 어머니와 딸들의 이야기가 반갑고 아름답다.

 

“하지만 우리 때문에 엄마는 힘을 잃었잖아요.”

“아니, 네 엄마는 누구보다 더 큰 힘을 갖고 있어.”

할머니는 나를 잠시 바라보다 말했다.

“너와 마루. 다름 아닌 마녀의 딸.” ―본문 242-243면

추천사
  • 마령의 세계는 장기판 하나이기도 하고, 도시 하나이기도 하다. 그 세계를 지키기 위한 마령의 위태로운 걸음걸음을 따라가다 보면, 한 사람은 매일 매 순간 한 세계를 지키고 있으며, 그럼으로써 다른 모두의 세계를 돕는다는 사실을 돌이키게 된다. 닫히지 않은 세계는 연결될 수 있다. 이 얼마나 귀한 선물인가. -이수현(『왕좌의 게임』 번역가, 작가)

  • 수많은 악을 마주하며, 이럴 거면 그냥 망해 버리는 편이 낫지 않겠어? 할 때가 있다. 그래. 망하자. 주저앉아 버린다. 그러나 『마령의 세계』는 우리를 일으킨다. 그러곤 기회를 준다. 부디 한번 잘 살아 봐. 언제나 지켜보고 있으니까. 어쩌면 이것이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르겠다. -손수현(배우)

목차

꿈 007

1부 친구 혹은 적일지도 모를 009

2부 불길한 구름이 사방에 자욱하니 087

3부 세계의 끝, 마령의 포진 179

 

작가의 말 251

수상정보
저자 소개
  • 최상희
    최상희

    『그냥, 컬링』으로 비룡소 블루픽션상을, 『델 문도』로 사계절문학상을 받았다. 『바다, 소녀 혹은 키스』로 대산창작기금을 받았다. 그 밖에 『칸트의 집』 『하니와 코코』 『B의 세상』 등의 청소년소설과 『여름, 교토』 『빙하 맛의 사과』 『북유럽 반할지도』 『숲과 잠』 등의 여행책을 썼다.

‘예를 들면?’이라는 질문을 좋아한다. 어째서인지 모르겠다. 예를 들면 이런 이야기.
샨사의 소설 『바둑 두는 여자』에는 바둑 두는 사람들로 가득 찬 광장에 관한 묘사가 나온다. 바둑판을 펼쳐 두고 기다리면 누군가가 그 앞에 앉고 게임이 시작된다. 이름이나 나이 같은 것은 묻지도 궁금해하지도 않고 해가 질 때까지 오직 묵묵히 바둑을 둔다.
비슷한 광경을 나는 몇 해 전 종묘 근처를 지나다 본 적 있다. 나무 그늘 속, 바둑을 두고 그것을 구경하는 사람들이 공원 광장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주로 노년의 남성들이었고 바둑판은 수십 개는 되어 보였다. 상상과는 달랐고 좀 싱거웠지만 잠시 눈이 가긴 했다. 광장을 벗어나자 한적한 길이었고 그곳에도 대적하고 있는 이들이 이따금 있었다. 주변에 구경꾼도 없이 마주 앉은 두 사람 사이에는 장기판이 놓여 있었다. 뙤약볕이 내리쬐는 길 위에서 그들은 말을 들어 옮기기를 지속했다. 멀찍이서 잠시 지켜보았지만 나는 별로 이해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나는 장기를 둬 본 적 없고, 둘 줄도 몰랐다. 나는 그 자리를 떠났고 이내 그 광경을 잊었다.
오랜 시간이 지난 뒤 한 소녀가 내게 말을 걸었다. 가령, 이런 이야기라면? 그리고 네 명의 소녀와 소년이 차례로 나타났다. 그들은 조금은 불안하고 위태로워 보이지만 웬일인지 절망도 낙담도 없이 묵묵히 이 세계를 견뎌 낸다. 그들을 둘러싼 세계는 완전히 어둡지는 않고 어린 고양이처럼 조금은 애틋하게 따스하고 부드럽다. 예를 들면 나는 그런 이야기를 쓰고 싶었던 것 같다.
로저 젤라즈니, 셜리 잭슨, 레이 브래드버리. 신비롭고 기이하게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쓴 작가들, 나는 그들의 열렬한 팬이다. 낡은 집과 고성, 그곳에 사는 기묘한 존재들, 성에 사는 소녀들의 이야기에 나는 늘 끌렸다. 언젠가는 그런 소설을 써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 세계는 생각보다 덜 견고하고 상상보다 훨씬 더 위태로운 곳일지도 모르겠다. 세상을 간신히 지탱하는 것은 바로 일상이며, 지금 이 순간에도 일상을 유지하기 위한 수고로움이 있다. 그런 상냥함이 있어 불안한 지금을 견디고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완전히 절망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자신만의 포진을 갖추고 그것을 무너뜨리지 않기 위해 한 발 한 발, 이곳보다 더 나은 쪽을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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