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키는 대로 제멋대로

책 소개

내 삶이 멋대로 시작해 버린 것처럼

나는 다시 새로운 출발선 앞에 서 있다

 

2014년 월간 『현대시』 신인 추천을 통해 등단했고 2018년 시집 『캣콜링』으로 제37회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한 이소호 시인의 첫 에세이 『시키는 대로 제멋대로』가 출간되었다. 시인은 누군가가 추억이라고 쓰지만 자신에게는 ‘지옥’이었던 유년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캣콜링』(민음사 2018)에 등장했던 시적 자아 ‘경진’이 이번에는 자신의 무수한 ‘첫’ 발자국에 대해 이야기한다. 시인은 ‘괜찮다’는 말을 어디에서도 건네지 않지만 자기 고백에서 흘러나오는 자연스러운 위로가 고통받았던 유년의 경진이뿐만 아니라 녹록지 않은 현실을 살아가는 지금의 청춘들을 어루만진다. 어른이 된 소호의 글 가운데 등장하는 어린 경진이의 실제 일기는 시인의 ‘처음’을 엿볼 수 있는 특별한 기회다. 『시키는 대로 제멋대로』는 『캣콜링』의 경진이를 더 알고 싶었던 독자들에게 큰 기쁨으로 다가올 책이다.

 

처음은 그러하다

가장 엉성하며 의뭉스럽고 불분명하다

 

갑자기 무주로 이사 가게 된 어린 시절의 경진이는 자기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부모, 하나뿐인 자매, 친구들과의 관계까지 모든 게 제멋대로 되지 않는 현실에 경진이는 생각한다.

 

‘여기서 더 나빠질 것이 있을까?’ 칠이 벗겨진 정글짐. 균형이 맞지 않는 시소. 슬쩍 손을 대면 녹물이 흐르는 그네. ―본문 21면

 

어느 멋진 영화에서처럼 자신을 구해 주는 왕자님도 없고 소위 말하는 ‘베스트 프렌드’도 없는 고요한 삶의 한가운데에서 경진이는 칭찬받기 위해 일기장과 인터넷 게시판에 글을 쓰기 시작한다. 마법처럼 글에 재능을 찾아 행복해졌다는 이야기였으면 좋았을 테지만 시인은 곧바로 자라지 않는다. 글쓰기를 시작했지만 언제나처럼 넘어지고 상처받고 눈물을 흘린다. 나 자신이 되는 것조차 힘겹다고 생각할 무렵 시인은 깨닫는다. 인생이 뜻대로 풀리지 않는다는 사실이 항상 옆에 머물고 있었다는 것을. 이소호 시인은 자신의 처음이 불분명하고 의뭉스러웠다고 말한다. 그 생각은 훌쩍 자라 어른이 된 지금도 변하지 않았지만, 시인은 그것이 당연하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고 덧붙인다. 어른이 되어서야 겨우 알게 되었다는 그 솔직함이 지금 불확실한 현실을 살아가는 누군가에게는 꼭 필요한 위로가 되어 준다.

 

인생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여기, 여기에 있다. 여러분은 지금부터 모든 것을 포기하는 ‘경진’이를 보고 ‘소호’를 볼 것이다. 부디 당신의 삶에 겹쳐 보았을 때 다르지 않길 바란다. ―본문 10면

 

 

미워했던 나와 진심으로 화해하는 힘

생각해 보니 처음은 멋질 필요가 없다

 

흔히들 성장은 계단식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정해진 길을 차근차근 올라가는 경우는 드물다. 이십 대를 지나 삼십 대에 접어든 이소호 시인이 말하듯, 어른이 되면 펼쳐질 줄 알았던 그럴듯한 계단은 사실 존재하지 않는다. 계단을 성큼성큼 올라 성장하지 못하고 주저앉아 우는 자신이 견디기 힘들 정도로 싫어지는 순간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펼친 독자는 스스로를 미워하는 시인의 에피소드에 울고 웃다 마침내 그토록 미워했던 자신과 화해하는 한 사람을 볼 것이다. 그리고 엉성하게 써 내려간 첫 줄에도 진정으로 웃는 법을 시인과 함께 깨달으며 다음 걸음을 내디딜 수 있는 힘을 얻을 것이다.

 

“엄마, 있잖아. 내가 여기서 더 자라면 무엇이 될까?”

“네가 아무리 자라도 우리 소호는 엄마 눈에 여전히 아기지.”

(…)

역시 사람은 너무나 쉽게 변하거나, 그보다 쉽게 변하지 않는다. 나는 그 누구로부터도 영원히 고쳐 쓰이지 않을 것이다. 오로지 변하는 것은 매일매일 내 손으로 쓰는 나 자신뿐이다. ―본문 279면

목차

프롤로그

 

1부

누군가는 추억이라고 쓰고 나는 그걸 지옥이라고 읽지

고랑과 이랑

너와 나와 우리의 사전

전지적 피해자 시점

라스트 아날로거

그 많던 아버지는 모두 어디로 갔을까

채미숙 대백과사전

어떤 일은 일어나지 않는 편이 좋았다

방파제와 파도 그리고 현주

첫 줄은 형편없이 시작되었다

 

2부

운명을 바꿀 수 있다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소호

슬기로운 병원 생활

소호의 각주

 

3부

그 도시를 기억하는 법

세상의 끝에서 우리는

점점 멀어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는 여전히 무겁다

검은 강, 모기 그리고 다카시

알래스카에서 온 편지

파티션 블루스

안전거리 확보

사람은 너무 쉽게 변하거나, 그보다 쉽게 변하지 않는다

꿈을 꾸는 것은 저주에 걸리는 것만 같다고 말했다, 네가

 

에필로그

수상정보
저자 소개
  • 이소호

    1988년 여의도에서 연년생 장녀로 태어났다. 서울에서 태어났으나 적응할 때쯤만 되면 운명의 장난처럼 부산, 무주로 이주하여 학창시절을 났으며 서울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와 미디어창작학부를 동기도 교수님도 모르게 비밀스럽게 다녔다.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어쩌다 동국대 일반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 진학하여 석사를 수료했다. 석사 4학기 재학 중 이경진에서 이소호로 개명까지 한 후, 눈물겨운 투고 끝에 월간 『현대시』 신인 추천으로 등단했다. 2018년 시집 […]

그렇게 내 삶이 멋대로 시작해 버린 것처럼
나는 지금 다시 새로운 출발선 앞에 서 있다.
 
출발선 앞에서 나는 처음을 읊조린다.
 
처음은 그러하다.
가장 엉성하며, 의뭉스럽고, 불분명하다.
처음은 늘 그런 것이다.
생각해 보니 처음은 멋질 필요가 없다.
그냥 다음 세계로 넘어갈 힘만 가지면 된다.
 
나는 지금껏 그걸 믿으며 살았다.
 
다음, 나에게 그다음으로 향해 발 디딜 수 있는 ‘첫’만 계속 만나기만 하면 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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