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밤이 끝나가요, 때마침 시는 너무 짧고요

책 소개

“사랑하는 사람은 시 속에만 있어요”

상실의 아픔을 따스하게 감싸는 최지은의 첫 시집

남은 사람의 자리를 지키며 빚어낸 슬픔이 주는 뭉클한 위로

 

 

2017년 창비신인시인상에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한 최지은 시인의 첫 시집 『봄밤이 끝나가요, 때마침 시는 너무 짧고요』가 창비시선으로 출간되었다. 등단 시 “사유의 넓이와 감각의 깊이에서 길어 올린” 시편들에서 “신산한 생활의 풍경을 담담하게 늘어놓는 진술들이 돋보였다”는 호평을 받았던 시인은 꾸준히 자기만의 목소리를 가다듬어왔다. 등단 사년 만에 펴내는 첫번째 시집에서 시인은 상실과 슬픔으로 어룽진 지난 세월과 자신의 내력을 고백하듯 펼쳐 보인다. “떠날 수도 잊을 수도 없는 자리에서 기억하듯이 꿈을 꾸고 꿈을 꾸듯이 기억하는 방식으로 들려주는” 애잔한 이야기들이 “한 사람의 내밀한 고백을 넘어 누구나 품고 있을 저마다의 상처가 바로 그 자신의 뿌리를 이룬다는 사실을 아프게 일깨워”(김언, 추천사)주는 이 시집을 통해, 우리는 가장 개인적인 슬픔에서 비롯된 작은 파동이 각자의 슬픔을 두드리는 큰 울림으로 번져오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최지은의 시에서 퍼져나오는 이 슬프고도 아름다운 울림은 봄밤의 은근함과 초여름의 따스함을 닮은 위로를 전하며 또 한번 새로운 세대의 서정을 마주하게 한다.

 

여기 있음의 아름다움으로

나 아닌 것들을 안아주며 걸어가는 한 사람

 

시집은 한편의 슬픈 소설을 읽는 듯하다. 오랜 슬픔과 외로움이 “내 안의 물소리”(「밤, 겨울, 우유의 시간」)로 일렁이는 애달픈 가족 서사가 먹먹하다. 세살이 되던 해 “다른 사랑을 찾아 나를 떠난”(「이 꿈에도 달의 뒷면 같은 내가 모르는 이야기 있을까」) 어머니, 열여섯이 되던 해 “스스로 물속으로 사라진”(「햇빛 비치는 나무 책상 위로 먼지, 내려앉는」) 아버지, ‘나’의 꿈속에서 “다시 태어나려고 꿈을 고르고 있”(「여름이 오기 전에」)는 할머니, “부모됨을 배운다며 달걀을 품고 다니”(「벌레」)던 언니, 그리고 여전히 “내 머릿속 가득 짖어대는//내가 잃어버린 개들”(「폭염」). 지금은 곁에 없는 그리운 존재들을 하나하나 되살리며 시인은 “나를 낳은 사람과 낳은 사람을 낳은 사람들의 이야기 끝을 모르는 이야기”(「내가 태어날 때까지」)를 잔잔하게 속삭이듯 들려준다.

 

문학평론가 소유정이 해설에서 “훌륭한 몽상가”라고 말했듯이, 시인의 고백은 “내 마음 가장 못생긴 시절”(「십이월」)의 아련한 기억 속에서 반복되는 “꿈속의 꿈”이거나 “이야기 속의 이야기”(「한없이 고요한, 여름 다락」)로 이어진다. 시인은 “이 꿈을 어떻게 끝내야 할까”(「부고」) 하면서도 늘 삶과 죽음의 경계를 허무는 꿈속으로 하염없이 잠겨든다. “안전하고 조금 슬픈” 그곳에서 “내 안에서 내가 나를 부르는 목소리”와 “낯설게 중얼거리는 다성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시인은 “내가 미워하는 나의 시”(「목소리」) 속에서 자신의 내력을 되짚어보고, “내가 만든 꿈” “내가 만든 시” 속에서 “나의 어둠을 알아”(「밤, 겨울, 우유의 시간」)채어 다시 태어나기를 바란다. 끝없이 반복되는 꿈의 굴레를 끊어내자면 오로지 그 방법밖에 없을 테니 말이다.

 

상실의 아픔과 슬픔도 때로는 빛이 되어 어둠 속을 살아가는 힘이 된다. 지나온 시간을 찬찬히 더듬어온 시인은 “어수선한 몽상의 이미지를 하나하나 거두어”(「이 꿈에도 달의 뒷면 같은 내가 모르는 이야기 있을까」)간다. 이제 시인은 “더는 늦지 않게/해야 할 말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나만은 만지지 못하는 나의 슬픔”(「청혼」)을 어루만지며 달래는 ‘사랑’의 힘으로 삶을 꾸려갈 것이다. “듣고 싶은 말이 들릴 때까지”(「창문 닫기」) 차분하게 기다리며 “나만의 시 나만의 놀이//나만의 장난을 이어”(「너 홀로 걷는 여름에」)갈 것이다. 시인은 “여기 있음의 아름다움을 힘껏 사랑한다”(시인의 말)고 말한다. 그리고 나지막이 들려오는 목소리. 비로소 “처음으로 소리 내어 말해보고 싶었”던 말, “최선을 다했잖아요”(「너 홀로 걷는 여름에」). 뭉클하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차례로 떠나가는 뒷모습을 그려내면서도 시인은 “나 아닌 것들을 안아주면서” “나는 나라서 다행이라고” 말하며(「나는 나라서」), 바로 지금 이곳에 남아 “걸어가는 역할”(「얼음의 효과」)을 묵묵히 맡는다. 그런 그는 “후회라도” 하기 위해 “해야 할 일”을 하기 위해 남은 “한 사람”(「히어리의 숲」) 몫을 끝까지 살아내려고 하는 자이다. 개인의 상실이 온전히 한 사람의 상실만으로 남지 않는다는 사실이 너무도 절실히 다가오는 이 시대, “한 사람”의 자리에서 그 오롯한 자세를 지키며 슬픔의 길을 걸어가는 화자의 모습에서 우리는 어쩌면 따뜻한 위로와 용기를 얻을 수도 있겠다. 그리하여 찾아오는 환한 슬픔의 빛을 품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추천사
  • 최지은은 “듣고 싶은 말이 들릴 때까지” 기다릴 줄 아는 시인이다. 시가 되기를 기다릴 줄 안다는 말과도 통하는 저 기다림의 미덕은 그래서 하고 싶은 말부터 쏟아내는 시나 듣고 싶은 말부터 들려주는 시와는 태생부터 다른 시를 예감케 한다. 최지은에게 시는 한 박자 늦게 탄생하는 무엇이다. 한 박자 늦게 도착하는 소식처럼 천천히 들려오는 그 무엇의 소리는 한편으로 자신의 내면을 한바퀴 더 돌고 나온 자의 목소리일 것이다. 한바퀴 더 도는 동안 자신의 내부에서 더듬더듬 만져지는 것들. 건져지는 것들. 이 모든 것이 한번도 쥐어보지 못한 누군가의 그리운 손길로 다가올 때, 시는 끝내 닿을 수 없는 도착지를 거느린 이야기가 된다. 반대로 저 모든 것이 한번도 뿌리치지 못한 누군가의 애처로운 눈길로 느껴지면, 시는 어찌해도 달아날 수 없는 상처에 붙들린 꿈이 된다. 꿈이든 이야기든 혹은 꿈의 이야기든 상관없이 계속해서 그 자리를 맴도는 방식으로 흘러나오는 말. 스며나오는 말. 조금씩 조금씩 백지를 적시듯이 번져오는 그 말이 쌓이고 모여 물방울 하나의 형상으로, 물방울 하나의 목소리로, 물방울 하나의 운명으로 응결된 자리에 다시 최지은의 시가 있다. 떨어질 듯 떨어지지 않는, 떨어져서도 다시 떨어지기 위해 제자리로 집결하는 물방울의 말이 끊임없이 되돌아오는 방식으로 모여든 곳에 이 시집이 있을 것이다. 떠날 수도 잊을 수도 없는 자리에서 기억하듯이 꿈을 꾸고 꿈을 꾸듯이 기억하는 방식으로 들려주는 이 시집의 이야기는, 한 사람의 내밀한 고백을 넘어 누구나 품고 있을 저마다의 상처가 바로 그 자신의 뿌리를 이룬다는 사실을 아프게 일깨워준다.
    -김언 시인

목차

제1부이 꿈을 어떻게 끝내야 할까

폭염

칠월, 어느 아침

우리들

전주

부고

사랑하면 안 되는 구름과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되는 구름에 대해

메니에르의 숲

밤, 겨울, 우유의 시간

 

제2부한없이 고요한, 여름 다락

구름 숲에서 잠들어 있는 너희 어린이들에게

내가 태어날 때까지

가정

열일곱

열세살

한없이 고요한, 여름 다락

시리즈

여름

여름

여름이 오기 전에

한낮의 에스키스

벌레

열다섯

오직 일어나지 않는 일들만 살아남는다

 

제3부듣고 싶은 말이 들릴 때까지

불면

기일

목소리

삼나무숲으로 가는 복도

얼음의 효과

히어리의 숲

유월

눈 내리는 병원의 봄

창문 닫기

하나의 시

내 뒷마당 푸조나무 위로 눈이 내리고

기록

나는 나라서

미래에게

나 없이도

여름의 전개

 

제4부나만의 장난을 이어갑니다

십이월

청혼

신혼

칠월

영원

햇빛 비치는 나무 책상 위로 먼지, 내려앉는

너 홀로 걷는 여름에

이 꿈에도 달의 뒷면 같은 내가 모르는 이야기 있을까

지혜의 시간

 

해설|소유정

시인의 말

수상정보
저자 소개
  • 최지은

    1986년 서울 출생. 2017년 창비신인시인상으로 등단.

나와 눈 맞추어주는 나의 개가 어젯밤 내게 일러준 것.
 
인간, 여기 내가 있어.
 
몇편의 시를 묶고 또 버리며, 어쩌면 내가 하고 싶던 말이 결국 이것이 아니었을까 돌아본다.
여기 있음의 아름다움을 힘껏 사랑한다.
 

두려운 것은 더 두려워졌고 아름다운 것은 더 아름다워졌다. 나아갈 수 없어도 깊어지는 사랑을 생각한다는 이야기. 새로운 시를 쓰고 싶다는 이야기. “하늘은 이 정도면 충분하다”(Tennessee Williams)를 자꾸 되뇌는 봄밤.
 

여전한 나의 어리석음과 미숙함을 나 역시 알지만. 부끄럽고 아프게 새기며 계속해보고 싶다. 어쩌면 그것이 여기 있음의 아름다움일지도 모르니까.
 

빛과 바람, 돌멩이와 언덕에게
내가 쓴 몇편의 시를 들려주고 싶다.
 

2021년 5월
검은 개 흰 개와 함께 최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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