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

책 소개

신동엽문학상 현대문학상 김승옥문학상 수상작가 김금희 신작 소설

지금, 김금희 소설만이 도달할 수 있는 문학적 성취

 

우리의 굴절된 마음을 환한 문장으로 그려내는 작가 김금희가 네번째 소설집 『우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를 출간했다. 2019년부터 2021년까지 발표한 작품을 묶어낸 이번 소설집에는 지난 3년간 각종 문학상의 호출을 받은 탄탄한 수작 일곱편이 모였다. 표제작 「우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는 “한 세대의 열정, 사랑, 좌절 그리고 그 좌절을 통한 성장을 증언하고 확인하는” “아름다운 소설 그 자체”(심사평, 김화영)라는 평을 받으며 2020년 김승옥문학상 대상을 수상했고, 수록작 「마지막 이기성」은 2019년 김승옥문학상 우수상과 2020년 이효석문학상 우수작품상을, 「기괴의 탄생」은 2019년 김유정문학상 수상후보작으로 선정되었다. 2017년 현대문학상 수상 당시 “이제는 잘 쓰는 작가에서 신뢰할 수 있는 작가의 단계로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심사평, 윤성희)라는 평을 듣기도 했던바, 이만큼 태작 없이 필력을 발휘하는 작가도 드물다. ‘우리’는 과연 어디에서 발생해 어디를 향해 흘러왔는지, ‘우리’가 함께했던 한 시절과 그 이후의 성장을 촘촘하고도 섬세하게 보여주는 이번 소설집은 김금희만이 쓸 수 있는 소설이 있음을, 김금희 소설만이 도달할 수 있는 문학적 성취가 돌올하다는 것을 독자에게 다시금 확인시켜준다.

한편, 포털 사이트에서 오디오북 형태로 신작을 발표하는 등 독자에게 새로운 독서 체험을 선사하는 데 누구보다 앞장서는 작가는 현재 개인 SNS를 통해 독자들과 책을 주제로 한 소통을 꾸준히 이어가는 중이다. 작가의 독자층 또한 2030세대를 넘어 40대까지 확장되며 독자들의 높은 지지를 받고 있다.

 

미세한 마음의 결을 어루만지는 환한 문장들

김금희라는 믿음직한 세계

 

표제작 「우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는 ‘나’가 ‘기오성’과 함께 노교수의 종택에서 족보 정리 아르바이트를 했던 3개월 동안 가까워졌다가 이내 어긋나는 과정을 그린다. 그 관계에는 노교수의 손녀인 ‘강선’이 끼어 있는데, 노교수의 종택과 족보로 대표되는 세상의 질서와 위계를 대놓고 무시하는 강선은 ‘나’와 ‘기오성’의 관계를 교묘하게 훼손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 관계에서 빠르게 물러나버린 ‘나’는 아주 나중에야 그 물러섬이 “그렇게 해봤자 손에 쥘 게 없다는 가난한 체념”이었을지 자문한다. 그뒤 발견한 ‘성장’의 의미는 20대라는 한 세대에 대한 정의처럼 읽히기도 한다.

 

어디에서 왔는지도 알 수 없고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르겠어서 울고 싶은 기분으로 그 시절을 통과했다는 것. 그렇게 좌절을 좌절로 얘기할 수 있고 더이상 부인하지 않게 되는 것이 우리에게는 성장이었다.(172면)

 

2000년대 초중반에 20대를 보낸 한 세대의 회고 서사는 김금희 소설의 인장과도 같다. 이번 소설집의 문을 여는 「우리가 가능했던 여름」은 대학 진학에 거듭 실패한 삼수생 ‘나’와 의대에 입학했지만 적응하는 데 실패한 ‘장의사’가 함께 보낸 패배한 여름의 풍경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이 소설이 특히 빛나는 지점은 그 시절을 회고하는 ‘나’의 현재에 있다. ‘나’는 지금의 젊은 세대가 느끼는 빈곤과 무기력을 단순화하는 자신에게 심한 부끄러움을 느끼며 “지금의 시선으로 그 시절을 돌아보는 일은 불가능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각자가 지나온 시대를 낭만화하지 않으면서 “일산의 여름을 지켜내는 일”을 골몰하는 이 현재의 자리에서 김금희의 소설은 언제나 새로이 쓰인다.

「마지막 이기성」은 유학생 ‘이기성’과 재일 한국인 ‘유키코’의 연애와 연대가 교차하는 소설로, 서로 다른 입장으로 같은 자리에 서 있었던 이 둘이 한때나마 함께했던 투쟁을 그린다. 이 투쟁은 결국 실패로 끝나지만 ‘이기성’은 “불안의 청춘이 미래를 상상하며 지금으로 던진” “마지막 진실”을 발견한다. 「기괴의 탄생」은 사랑 앞에서 벌어지는 “기괴”한 선택을 위로하는 동시에 질타하고 싶어하는 우리의 복잡한 마음을, 아주 매력적인 인물을 통해 보여주는 작품이다. 학생과 불륜을 저지르고 이혼까지 하게 된 ‘선생님’을 이해할 수 없었던 ‘나’는, 이혼하고 뉴욕에서 귀국했다는 직장동료 ‘리애씨’와 속내를 터놓으며 가까워진다. 그 두 인물을 통해 기괴한 인생의 진실을 맞닥뜨리려는 찰나 화자가 느끼는 고통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진실을 목도하며 성장하는 인물의 면면은 이번 소설집에서 유독 도드라진다. ‘나’의 이종사촌인 ‘초아’는 집안에서 유일하게 명문대에 입학하며 집안에 파란을 일으켰지만 지금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주식 투자를 할 뿐이다. 불합리한 일에 “정당”하게 항의할 줄 알았던 ‘초아’와 오랜만에 재회한 ‘나’는 “그 시간들의 복원이 이끌어낸 변화”로서, 부당하다 생각했던 일에 자신만의 방식으로 항의하며 “스스로에 대한 정당한 대접”을 이끌어낸다.

SNS에서 ‘맛집 알파고’로 유명한 옛 연인을 인터뷰하기 위한 부산행을 그린 「크리스마스에는」은 한바탕 소동 같은 하루 동안의 취재를 통해 비로소 ‘나’의 과거와 화해하는 과정을 따스하고도 산뜻하게 보여준다. 제주 부속섬 레지던스 ‘공가’에 입주한 작가들이 모여 고장 난 자동차를 수리하는 데 성공하기까지 과정을 감동적으로 보여주는 「깊이와 기울기」 또한 생의 의미를 발견하는 긍정의 메시지를 독자에게 전하는 작품이다.

 

책으로 묶는 작업을 하면서 다시 읽어보니 이별한 누군가와 재회하는 내용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실은 내가 처음 글을 쓰려고 했을 때부터 나를 붙들고 있던 문제이지만 다시 만나는 것이라니, 그것은 얼핏 상처의 치유나 관계의 회복처럼 읽을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결손의 확인에 가까워 보였다. 뚜벅뚜벅 걸어가 장막을 확 젖혀 어느 무대를 매섭게 쏘아보는 듯한, 하지만 거기에서도 어떤 환하고 무른 기억들이 쏟아져나와 그것이 지닌 에너지에 문득 손을 떨구고 마는. 그 모든 것들을 무사히 소설로 쓸 수 있어서 기쁘다. ‘작가의 말’ 중에서

 

김금희는 과거의 상실을 그리되 그것을 미화하거나 낭만화하지 않는다. 이미 지나간 그 시절을 기어이 현재와 연결하여 지금 우리 앞에 놓인 유의미한 진실을 발견해낸다. 과거의 상처를 극복하지 못한 인물이 어떤 식으로든 그것을 뛰어넘어 “마지막 진실”을 배우며 달라지는 모습을 보여주는 이 소설을, 특유의 날카로운 시선으로 매번 새롭고도 아름다운 장면을 만들어내는 이 작가를, 우리는 믿지 않을 도리가 없다.

추천사
  • 어쩔 수 없는 고군분투가 있다. 나는 나로서 살아야 하고 그것이 여의치 않더라도 역시 사람으로 살아야 하기에 어떤 권리라는 것이 있다,고 김금희의 소설은 말하는 듯하다. 어찌된 일인지 더 힘들어져버린 이 고군분투를 김금희의 소설은 계속해서 지켜볼 것이다. 지금, 그 지켜봄에서 발견되고 발생할 것들보다 더 절실한 ‘사건’도 없을 듯싶다. —황정아 문학평론가

목차

우리가 가능했던 여름

크리스마스에는

마지막 이기성

우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

기괴의 탄생

깊이와 기울기

초아

 

해설|황정아

작가의 말

수록작품 발표지면

수상정보
저자 소개
  • 김금희

    200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너의 도큐먼트」가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센티멘털도 하루 이틀』 『너무 한낮의 연애』 『오직 한 사람의 차지』, 장편소설 『경애의 마음』 『복자에게』, 중편소설 『나의 사랑, 매기』, 짧은 소설 『나는 그것에 대해 아주 오랫동안 생각해』, 산문집 『사랑 밖의 모든 말들』 등이 있다. 신동엽문학상, 2016년 젊은작가상 대상, 현대문학상, 우현예술상, 김승옥문학상 대상,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등을 […]

네번째 소설집에 묶은 단편들을 모두 사십대에 썼다는 사실을 지금에야 깨닫는다. 생물학적 나이야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다들 위안 삼아 말하지만 실제 맞이한 사십대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많은 변화들이 있었으며 그것은 대부분 봄도 여름도 아닌, 가을에 가까운 마음이었다. 그러면 내가 서 있는 지금은 8월의 끝자락쯤 될까, 혹은 후하게 쳐준다면 장마가 막 끝나갈 7월 중순쯤, 무엇이든 이제 나는 적어도 어떤 봄과 여름에 대해서는 말할 준비가 충분히 된 것 같다.
책으로 묶는 작업을 하면서 다시 읽어보니 이별한 누군가와 재회하는 내용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실은 내가 처음 글을 쓰려고 했을 때부터 나를 붙들고 있던 문제이지만 다시 만나는 것이라니, 그것은 얼핏 상처의 치유나 관계의 회복처럼 읽을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결손의 확인에 가까워 보였다. 뚜벅뚜벅 걸어가 장막을 확 젖혀 어느 무대를 매섭게 쏘아보는 듯한, 하지만 거기에서도 어떤 환하고 무른 기억들이 쏟아져나와 그것이 지닌 에너지에 문득 손을 떨구고 마는. 그 모든 것들을 무사히 소설로 쓸 수 있어서 기쁘다. 이렇게 또 한고비를 넘는다.
12년 전, 온전히 나의 어떤 갈구로 시작된 글쓰기가 여기에 이르게 된 건 독자분들 덕분이다. 읽어주는 분들 덕분에 더 쓰거나 혹은 덜 쓸 수 있었다. 그 절묘한 균형감을 찾기 위해 분투하는 것이 사실상 소설 쓰기의 기저라는 생각을 이제야 한다. 그것은 곧 내가 무엇을 위해 쓰려고 하는가에 대한 실천적 응답이라는. ‘우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라는 제목은 정말 어느 피자가게에서 점심을 먹고 나온 날 떠올렸다. 망원의 그 식당에서 나와 걷는 동안 나는 페퍼로니 대신 다른 말들도 한번 넣어보았다. 종암동에 특별한 인연이 없는데도 우리는 종암동에서 왔어,라는 문장도 생각해보았다. 그외에 스스로 붙여 누군가가 자기 자신을 설명할 수 있는 여러 단어들을. 그러다 처음에 생각한 대로, 좀 엉뚱하고 이상하기는 하지만 페퍼로니로 다시 안착되었고 이제는 그 문장 뒤에 다른 하나도 붙여두고 싶다. 우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 그리고 아무도 그곳으로 돌아가지 않기로 선택했지. 그렇게 해서 어떤 인생의 책무를 이행하고 있는 우리 자신에게 가능한 무른 마음을 갖는 여름이길 빈다.
 

봄비를 들으며 보내는 4월의 마지막 밤
김금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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