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3 2021년 1호

책 소개

나의 ‘위치’는 어떻게 ‘우리’를 구성하는가

개인이 상상하는 자기 구획과 위치에 따른 정체성 정치의 양상  

 

주목: 나의 위치, 우리의 장소

『문학3』 2021년 1호가 출간되었다. 이번호 주목란에서는 ‘나의 위치, 우리의 장소’를 키워드 삼아, ‘나’라는 중층적 존재의 특정한 위치를 중심으로 형성되는 자기정체성의 문제를 살펴보고자 했다. 한 개인을 이루는 요소는 국적, 젠더, 계급, 신체적 조건, 문화적 배경 등 다양하다. 그리고 각 요소가 여러 층위에서 교차할 때 비로소 한명의 개인이 성립하게 되는데, 이때의 개인은 교차하는 여러 정체성 중 임의로 자신의 정체성을 선택하고 해당 정체성을 공유하는 집단에 대한 소속감을 강화하기도 한다. 특히 정체성 집단 간의 갈등이 사회 곳곳에서 가시화되고 있는 지금, 가족이나 지역공동체와 같은 생래적 요인을 넘어 온라인 커뮤니티나 ‘여성’이라는 개념 등으로부터 자기정체감을 획득하고 행위하는 일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이번 『문학3』 주목란의 여섯편의 글은 한 개인이 ‘나’라는 존재의 위치를 임의적으로 선택 또는 변경함으로써 임시적인 ‘우리’를 구성하는 방식이 어떻게 우리의 삶과 연결되어 있고 또 그것이 어떻게 정치적인 힘을 발휘하고 있는지 살펴본다.

연구자 남수정은 연구프로젝트그룹 ‘서울퀴어콜렉티브’가 수많은 교차성을 드러내는 공간인 종로3가에 대해 탐구한 내용을 전하며, 하나의 공간에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 정체성들이 어떻게 상호배제되어 왔는지 살핀다. 정체성 간의 마주침에서 발생하는 낯섦이 새로운 정치성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을 환기한다. 연구자 송유진은 정체성 정치가 만나는 공간으로서의 ‘여대’를 중심으로 ‘트랜스젠더 여대 입학 거부 사건’의 의미를 되짚으며 공간과 정체성에 대한 폐쇄적 상상력이 정치와 삶의 역동적 재구성을 차단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이어 문학평론가 김미정은 이미상의 단편소설을 살피며 안전이 위협받는 세계에서의 환대의 어려움과 소중함을 이야기한다. 그 과정에서 정체성이 아닌 위치성의 사유를 통해 여성의 이름과 ‘나-우리’의 가능성을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한편 시인 김승일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나타나는 폐쇄적 균일화를 문제시하며 온라인 커뮤니티 안에서 구성된 정체성과 정치성의 공허함에 대해 논한다. 나아가 온라인 커뮤니티의 배타적 폐쇄성으로부터 벗어나 다시금 안전한 공간을 만들 것을 요청한다. 칼럼니스트 위근우는 서로에게 적대적이며 그 배타성을 공고히 하는 여러 집단 사이에서 한명의 개인주의자로 살아가는 일의 어려움을 토로한다. 그러면서도 개인주의자로 살아갈 수 있게 뒷받침해주는 사회정치적 안정망에 대해 이야기하며 개인 간 연대의 가능성을 모색한다. 마지막으로 기록노동자 희정은 기록 대상자와 오랜 세월 맺어온 관계를 풀어내며, 타자를 온전히 이해하는 일은 불가능하다는 점을 말하는 동시에 그 불가능을 뛰어넘어 비로소 가능해지는 타자와의 만남에 대해 짚어본다.

 

창작과 중계

이번호 소설란은 김현 박민정 우다영 이금이 임성순의 신작과 원고모집으로 선정한 하가람의 작품으로 채웠다. 코로나19로 지쳐 있는 우리 시대의 면면을 환기하는 작품들이 눈에 띄며, 고유한 시선을 아름다운 문장으로 펼쳐낸 작품들도 풍성함을 더한다. 중계 코너에서는 경찰관 원도, 소설가 이주혜, 연출가 진해정이 수록 소설들을 함께 읽고 의견을 나누어주었다. 시란에는 김소형 오은경 이기성 채길우의 신작시와 함께 원고모집을 통해 선정한 손유미의 작품을 수록했다. 따뜻하게 아리는 시어와 독특한 감각이 주목되는 작품들이다. 시 중계에는 편집자이자 작가인 최혜진, 에세이스트이자 시인인 한정원, 바디 에세이스트 홍수영이 함께해주었다.

 

현장과 시선

사단법인 ‘나눔과나눔’의 상임이사 박진옥무연고사망자 공영장례 현장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홀로 떠날 수밖에 없었던 사람과 가족을 홀로 떠나보낼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풀어내며, 완벽하게 ‘무연(無緣)’인 사람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짚고 과연 ‘잘 사는 것’은 무엇인지 질문한다. 이어 젠더교육연구소 이제(IGE)의 연구원 윤보라는 가상과 현실이 밀착된 ‘지금’ 우리의 삶을 중심으로 단톡방 성희롱 문제를 사유하는 글을 보내주었다. 한 개인의 삶을 무너뜨릴 수 있는 힘을 지닌 폭력이 일상적이고 사적인 대화 정도로 치부되는 현실을 세심하게 환기하며, 성찰과 정화를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지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마지막으로 책방이음 대표 조진석책방이음이 문을 닫게 된 과정을 생생하게 기록했다. 작은 서점들을 충분히 보호하지 못한 도서정가제와 온라인 서점을 필두로 한 과열된 서점 경쟁 등 출판계의 현주소를 날카롭게 지적한다.

시선란에는 일러스트레이터 양양의 그림 에세이 「우리는 모두 혼자다」가 실렸다. 타인과 함께 있으면서도 혼자 남겨진 것 같은 순간들에 대한 쓸쓸하면서도 포근한 그림이 뭉클하게 다가온다. 사진가 황예지2020년 세월호의 자취를 따라 걸은 순간들을 담은 일련의 사진들과 함께 ‘박무’라는 제목으로 짧지만 묵직한 글을 보내주었다. 사진 속 일상적 장면들은 침착한 모습으로 계속되는 아픔을 전한다.

 

문학웹과 문학몹

문학웹(www.munhak3.com)의 시 연재 코너 ‘시작하는 자리’가 새롭게 문을 열었다. 장소와 공간에 대한 신작시와 에세이를 선보이는 이번 자리는 김연덕을 시작으로 김누누 정고요 임유영 류휘석 김영미 이기리 유혜빈 등 신인 시인들의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3×100’ 코너의 장류진 「달까지 가자」산문 기획 ‘생태: 우리가 사는 모양’도 성황리에 연재를 마쳤다. 2부터는 김혜진 백승연 이미상 서장원의 신작 소설 연재가 이어진다.

 

휴간 안내

〔문학3〕의 문학지는 잠시 쉬어가는 시간을 갖는다. 곧 다시 찾아올 다음 시즌의 『문학3』은 문학과 삶이 더욱 치열하고 밀접하게 만나는 장이 될 것임을 약속드린다. 문학지가 쉬어가는 동안에도 문학웹의 연재는 계속된다. 앞으로도 많은 기대와 관심을 부탁드린다.

목차

황인찬   타인의 얼굴을 상상하며

 

주목

나의 위치, 우리의 장소

남수정   일상의 정치

송유진   여대라는 장소와 여성이라는 정체성―여대는 페미니즘의 요새가 될 수 있을까?

김미정   환대는 멸균실에서 나오지 않는다―2020년 가을의 독서 노트

김승일   나쁜 구경꾼

위근우  개인주의자의 작은 고단함

희  정  살아가고 싸우고 견뎌내는 일, 기록

 

김소형   살아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죽어가는 사람들 / ㅁㅁㅁㅁ

손유미   애관극장 앞에서 / 탕의 영혼들

오은경   수많은 오해를 통해 / 어지러운 마음

이기성   오래전에 / 빵

채길우   움 / 맥박

중계    초를 켠 마음 / 최혜진 한정원 홍수영

 

소설

김  현   가상 투어

박민정   흔들리는 마음

우다영   뷰티

이금이   바이러스

임성순   번아웃

하가람   해바라기 리허설

중계    사랑이라고 할 수 있는 얼굴 / 원도 이주혜 진해정

 

현장

박진옥   무연(無緣)의 도시 서울―무연고사망자 공영장례 현장

윤보라   단톡방 성희롱―폭력과 일상, 가상과 현실의 교차점

조진석   이상한 나라의 동네책방

 

시선

양  양   우리는 모두 혼자다

황예지   박무

수상정보
저자 소개

타인의 얼굴을 상상하며

19세기 시인 보들레르는 길에서 상복을 입은 사람의 얼굴을 스치듯 보고, 그를 다시는 만날 수 없으리라는 사실을 한탄하며 「지나가는 여인에게」라는 시를 썼습니다. 일순의 마주침은 결코 반복될 수 없고, 그가 누구였는지도 알 수 없으며, 그에게 느꼈던 사랑은 영원히 가능성의 영역에만 머물 것이라는 내용의 시였지요. 현대적 도시의 성장과 더불어 나타난 익명성이라는 특징을 예민하게 포착해낸 작품이었습니다. 이처럼 익명성이란 현대적 삶과 개인의 성립에 있어 매우 밀접한 요소였습니다.

그리고 2021년의 우리는 타인의 이름뿐 아니라 얼굴 또한 모르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얼굴을 드러내는 것이 폐가 되는 세상이 되었으니까요. 대중교통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아 벌어지는 실랑이가 종종 뉴스를 통해 전해오기도 하고, 길에서 얼굴을 드러낸 타인을 보면 멀찍이 거리를 두고 지나가게 되곤 합니다. 얼굴을 완전히 개방하는 일이 서로에 대한 위협이 된 셈입니다. 우리는 서로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얼굴을 가려야만 하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이죠. 과거에 얼굴을 가린 사람을 보며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비교적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얼굴을 드러낸 사람에게서도 두려움을 느낍니다.

“상상했던 것과 얼굴이 다르네요.”

지난해에는 누군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사람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없는 시대에 왕왕 벌어지는 일입니다. 마스크를 쓴 채 누군가를 처음 알게 되었다면, 그 사람의 민낯을 한번도 보지 못하고 그와 시간을 보내다 헤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함께 웃고 이야기를 나누며 어떤 마음을 주고받았다 하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서로의 얼굴을 모를 수도 있는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참 이상하고, 다시 생각해보면 조금 무서워지는 일이지요. ‘생면부지’라는 말을 줄곧 써왔지만 이제 우리에게는 이 생면부지의 영역이 예전보다 넓어졌다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그만큼 타인은 더욱 멀어진 셈입니다.

저는 팬데믹이 초래한 일들이, 우리가 21세기를 통과하며 느껴온 타인에 대한 감각이 징후적으로 물화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타자에 대한 두려움과 혐오, 몰이해, 소통의 어려움 등이 마스크라는 사물을 통해 명징하게 드러나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팬데믹이 우리를 이렇게 만들었다기보다는, 우리의 삶이 줄곧 품어온 여러 어려움과 불안들이 팬데믹을 계기로 터져나오며 가시화되는 것은 아닌가 합니다. 계속되는 긴장과 갈등 속에서 자신이 속하지 않은 특정 집단을 비난하거나 단죄하는 일을 우리는 줄곧 목격해왔습니다. 그것은 타인을 말 그대로 생면부지의 존재로 믿고 있기에 가능한 일일 것입니다.

“상상했던 것과 얼굴이 다르네요.”

다시 떠올려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얼굴의 보이지 않는 부분을 상상할 힘이 있음을 다시 생각해보게 됩니다. 설령 그렇게 떠올린 얼굴이 사실과 다르다고 하더라도, 오히려 사실과 다르기에 가능해지는 희망과 전망이 있으리라 믿으면서요. 19세기 보들레르의 시가 이름 모를 누군가의 얼굴을 그리워했다면, 21세기 우리의 문학은 가려진 타인의 얼굴을 상상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번 호를 준비하는 동안 2021년을 맞았습니다. 혼란과 불안 속에서 맞는 새해이지만, 우리는 우리의 문학이, 그리고 우리의 삶이 생면부지의 얼굴을 상상함으로써 보다 단단하고 따뜻하게 지속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실로 그렇게 되리라고도, 강하게 믿고 있습니다.

아울러 〔문학3〕이 하나의 시즌을 마무리하고 잠시간의 정비 기간을 갖게 되었음을 말씀드립니다. 곧 다시 찾아올 다음 시즌의 〔문학3〕은 문학과 삶이 더욱 치열하고 밀접하게 만나는 장이 될 것임을 약속드립니다. 문학지가 쉬어가는 동안에도 문학웹의 시 연재와 3×100 연재는 계속될 예정입니다. 앞으로도 많은 관심과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정기구독자분들께는 다른 방법을 통해 다시 인사를 전하겠습니다. 밝음과 가벼움을 잃지 않는 한해가 계속되기를, 그리하여 서로의 얼굴을 직접 보며 웃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소망합니다.

문학3 기획위원 황인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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