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의료는 가능하다

책 소개

K-방역의 성공에 가려진 한국형 의료체계의 민낯을 밝힌다

돈이 압도해버린 한국 의료는 사람중심 의료로 변할 수 있을까

 

의료 공공성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면서 공공의료의 중요성을 전사회적으로 인식하게 되었고, 소위 선진국이라는 국가들에서 그동안 공공의료를 축소해온 결과로 벌어진 참상을 목도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거기다 지난여름 코로나19 사태 와중에 정부의 공공의대 도입 방침에 반대하면서 벌어진 전공의 파업 사태는 의료 공공성의 문제를 한국사회의 뜨거운 쟁점으로 부각시켰다. 하지만 의료 공공성 문제는 여전히 추상적이거나 감정적인 수준에서 논의되고 있을 뿐 시민들에게 구체적인 의제로서 다가가지 못하고 있으며, 정치권에서 주도하는 정책과 사업이 시민들의 요구를 반영하지 못한 채 결국 자본의 논리를 따라갈 가능성도 높다. 한편 정부에서는 공공의료의 중요성을 선언적으로만 내세울 뿐 관련 예산을 전혀 확보하지 않고 있고, K-방역의 성공을 내세우며 비대면 의료 시범사업의 확대를 밀어붙이고 있다. 살아 있고, 아프고, 죽어가는 사람들의 고통에 귀 기울이기보다는 첨단기술 활용을 중심으로 의료산업을 육성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 책 『다른 의료는 가능하다』는 시장논리가 압도해버린 한국 의료의 모습을 가감 없이 드러내고, 시민들이 이 모순을 역사적·구조적 맥락에서 비판적으로 성찰하게끔 기획되었다. 돌봄과 커먼즈의 문제를 지속적으로 연구해온 백영경을 비롯해 의료현장의 최전선에서 활동해온 전문가들이 재벌자본의 의료시장 장악, K-방역과 인권, 의사파업, 의료 사각지대, 낙인화된 질병 등 핵심 쟁점을 파고들며 한국사회에서 다른 의료가 과연 가능할지 타진하고, 우리가 원하는 의료의 모습을 사려 깊게 전망한다.

 

목차

책을 펴내며 다른 의료란 무엇인가

 

1장 의료민영화는 건강을 위협한다 _대담 백재중

2장 병원의 존재 의미를 묻다 _대담 최원영

3장 여성과 소수자를 위한 현장의 의료 _대담 윤정원

4장 사람답게 아프고 늙어간다는 것 _대담 이지은

5장 사람중심 의료를 향해 _대담 김창엽

수상정보
저자 소개
  • 백영경,백재중, 최원영, 윤정원, 이지은, 김창엽

    백영경 제주대 사회학과 교수. 여성 건강과 의료, 역사적 기억과 사회적 고통에 대한 연구를 지속해왔으며 최근에는 돌봄과 커먼즈의 문제를 기후위기와 연결시키기 위해 노력 중이다. 시민들 간의 평등하고 자유로운 관계, 생태적이고 조화로운 삶, 역사적 기억의 문제가 모두 건강한 삶에 큰 영향을 준다고 믿고 있다. 『창작과비평』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함께 지은 책으로 『마스크가 말해주는 것들』『배틀그라운드』『고독한 나에서 함께하는 우리로』『프랑켄슈타인의 […]

다른 의료란 무엇인가: 의료라는 커먼즈
 
의료 공공성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코로나19사태를 거치면서 공공병원의 중요성을 절감하게 되기도 했고, 소위 선진국이라는 국가들에서 그동안 공공의료를 축소해온 결과로 벌어진 참상을 목도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거기다 지난여름 코로나19 사태 와중에 정부의 공공의대 도입 방침에 반대하면서 벌어진 전공의 파업과 의대생들의 국가시험 응시 거부 사태는 의료 공공성의 문제를 한국사회의 뜨거운 쟁점으로 부각시켰다.
 
한국 의료는 좋아지는 중인가
코로나19를 대처하는 데 다른 국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성공적인 면모를 보이면서 소위 K-방역의 성가가 올라갔고, 한국 의료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평가가 쏟아지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실제로 한국 의료를 둘러싼 상황은 전공의 파업 사태에서 상징적으로 드러났듯이 밝다고만 하기 어렵다. 대통령이 나서서 공공의료의 중요성을 강조했지만, 실제로 통과된 내년 예산에는 공공병원 설립을 위한 예산이 전혀 반영되어 있지 않다. 대전, 광주, 울산은 대도시임에도 불구하고 공공병원이 전무하여 코로나19 국면에서 불안감이 컸는데, 앞으로도 빠른 시간 내에 변화가 이루어지기는 어려워 보인다.
공공의대를 설립하여 공공의료를 확충하겠다는 정부는 공공병원 확대 예산은 확보하지 않은 채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대비하기 위한 한국판 뉴딜의 3대 프로젝트와 10대 중점과제 중 하나로 비대면 의료 시범사업의 확대를 밀어붙이고 있다. 몸이 불편한 어르신이나 장애인 등이 병원에 가지 않고도 편하게 진료를 받을 수 있는 방안이라며 대중의 감성에 호소하는 이야기를 듣다보면 감염병 창궐의 시대에 비대면 진료는 반드시 필요한 의료고, 도입에 타성적으로 반대하는 집단들이 문제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실제 환자들이 겪는 어려움이 단지 병원에 찾아가기가 힘들다는 것만은 아니다.
여전히 많은 시민들이 아픈 사람이 되고 나면 치료와 간병에 드는 비용에 허덕이고 생계가 곤란해지며, 병원에서는 짧은 진료 시간과 환자를 배려하지 않는 시스템 속에서 소외를 경험한다. 의사들은 대체로 권위적이며 필요한 설명을 제대로 해주지 않고, 응급 상황에서 갈 수 있는 의료기관의 지역별 차이도 심하다. 의료계는 돈이 되는 질병에만 집중할 뿐 노화와 함께 경험하게 되는 많은 증상들에 무관심하다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실제로 병원을 찾아가기 어려운 환자를 위해서라면 왕진의료의 확대나 오랫동안 시범사업만 하고 있는 전국민 주치의제도의 도입 등 여러 대안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에서는 실제 살아 있는 사람들의 필요보다는 첨단기술 활용을 중심으로 의료산업을 육성하는 방법을 제안하고 있다. 한마디로 시민들의 의료에 대한 관심은 그 어느 때보다 높지만 현재 정부가 내놓는 해결방안을 살펴보면 우려가 큰 상황인 것이다.
 
한국사회에서 의료는 무엇인가
한국 의료의 개선 논의에 진전을 이루기 어려운 이유 가운데 하나로 의사들의 평판이 기자나 정치인만큼이나 안 좋다는 사실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의 공공의대 추진은 그 방향성부터 현실성까지 문제투성이 정책이었지만 의사집단이 반대한다는 이유로 전국민적인 찬성을 얻을 정도로 의사집단에 대한 신뢰는 낮다. 특히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강행되었던 전공의 파업사태는 더 큰 상흔을 남겼다. 팬데믹이라는 위기 상황에서 공동체를 돌보는 것은 의료인만의 의무가 아니라 시민으로서의 규범일 터이기 때문이다.
한편 의사들을 비판하는 한국사회의 일반적인 여론도 대책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이제까지의 방역에 의사가 한 일은 거의 없다더라, 이참에 집단행동을 한 의사들의 면허를 아예 취소하자, 간호사들에게 진료 권한을 주면 문제가 해결된다, 의사를 해외에서 수입하자 등 감정적인 비난부터 현실성 없는 발상들이 쏟아져 나왔지만, 한국의 의료가 어쩌다 이 지경까지 이르렀나 하는 현실 직시는 드물었다. 예를 들어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정부의 의대생 증원 추진을 반기는 독일 의사들을 좀 배우라는 지적이 쏟아져 나왔지만, 의대 학비부터 의료환경까지 독일과 한국의 의료는 아예 다른 시스템이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찾기 어렵다. 꾸바 의사들은 낮은 급여를 받으면서도 시민들을 헌신적으로 돌본다며 부러워하는 사람은 많아도, 한국사회가 중시하는 가치가 평등한 가난이나 시민적 연대에 있지 않은데 의사만 꾸바 같기를 바랄 수는 없다는 상식적 논의는 드물다.
그러다보니 한국 의료에 대해서는 근거 없는 장밋빛 희망이나 현실성 없는 비난이 난무할 뿐, 차분하게 현장을 뜯어보면서 대안을 모색하는 논의를 찾아보기가 어려웠다. 또한 이래야 한다는 당위와 그에 미치지 못한 현실 사이에서 ‘다른 의료’가 가능하다는 희망을 찾기도 어려웠다. 이 책은 한국 의료가 여러 문제들이 오래 곪아온 현장이며 환자부터 의료 종사자와 정치권에 이르기까지 이해관계와 욕망의 실타래가 복잡하게 엉킨 판이라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 문제를 푸는 실마리라는 생각으로 기획되었다. 무엇보다 일단 현장을 아는 다양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에서부터 시작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으로 백재중, 최원영, 윤정원, 이지은, 김창엽 다섯분을 모셨다.
 
의료라는 커먼즈
의료를 하나의 커먼즈(commons, 공동영역)로 본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우선 의료란 국가와 시장에만 맡겨둘 수 있는 것이아니며, 시민과 지역이 함께 주체가 되지 않는 한 저절로 주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코로나19 사태가 커지면서 의료를 시장논리에만 맡겨놓을 수 없으며 이후를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공공의료가 필요하다는 논의가 많이 나왔다. 공공의료를 지금보다 대폭 확충하고 필수적이지 않은 의료기관은 공공화하며 인공호흡기나 필수 의료장비, 마스크 등의 생산과 유통은 정부가 관리해야 한다는 방안에 대해서 반대할 생각은 없지만, 정작 문제는 의료생태계 전체의 공공성이다.
실제로 코로나19 사태 중에 대구·경북 지역에서 폭증한 집단감염 상황에 비교적 성공적으로 대처할 수 있었던 것은 단지 공공의 힘만은 아니었다. 대학병원, 의료봉사 형식으로 결합한 민간의 의료인력, 기업에서 지원한 생활치료 공간이 두루 활용되었으며, 장애인을 비롯하여 홀로 자가격리하기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돌봄의 공백을 메운 많은 시민단체와 자원봉사자가 있었다. 이는 의료 공공성이 단지 공공병원 병상 확보의 수준을 넘어서는 문제이며 시민사회의 강화 혹은 사회 전반의 공공성 강화라는 차원으로 귀결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공동체의 필요에 반응하고 움직일 수 있는 시민들의 존재가 중요하며, 위기 상황에 응답하여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을 아울러 조직하고 동원할 수 있는 거버넌스가 필요할 뿐만 아니라, 이를 가능하게 하는 정치가 뒷받침되어야 하는 것이다.
의료는 공공재이며 필요한 사람 누구에게나 주어져야 한다는 주장도 많지만, 실제 현대사회에서 의료는 고가의 장비와 약품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으며 특히 의료에 수반되는 돌봄은 매우 귀한 자원이 되어버렸다. 그러므로 의료를 공공재로서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권리로 만들기 위해서는 역으로 의료를 공공재로 만들어줄 정치적 공동체가 필요해지는 것이다. 시민들의 삶에서 필수적인 부분은 무엇인지를 판단하고, 거기에 집중해서 반드시 필요한 의료에 대해서는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권리로 만들어가야 하며, 이를 위해 공공과 민간, 전문의료와 돌봄, 다양한 소수자를 포괄하는 커먼즈의 존재 없이 의료는 공공재가 될 수 없다.
 
기획 단계에서부터 의료의 다양한 측면을 포괄하고자 했지만, 한국 의료의 여러 문제를 담는 데 책 한권은 턱없이 부족하다. 그럼에도 어려운 내용을 대화의 형식으로 풀어낸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독자들이 한국 의료의 현장에 대해 어느정도 실감을 가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해결책을 내놓기보다는 일단 현실의 복잡함과 엄중함을 직시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마음으로 시작한 이 무모한 기획에 기꺼이 동참해주신 다섯분 덕분이다. 호흡기내과 의사인 백재중은 의료의 공공성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민간의 역할 역시 중요함을 강조하면서, 의료민영화 비판을 통해 과연 우리가 바라야 할 의료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중환자실 간호사 최원영은 좋은 의료와 돌봄이 가능해지기위해서는 결국 인력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역설하면서, 공공병원이라는 하드웨어에 치중하기 쉬운 공공의료 논의를 비판적으로 볼 수 있게 해준다. 산부인과 의사 윤정원은 일반적인 공공의료 논의가 흔히 놓치기 쉬운 소수자와 여성을 위한 의료의 영역을 강조하며, 인류학자 이지은은 좋은 의료를 위해서는 역으로 좁은 의미의 의료라는 틀을 깨야 함을 환기한다. 마지막으로 보건학자 김창엽은 그간의 공공의료 논의와 정책 방향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면서 의료 공공성의 핵심은 사람중심의 의료임을 일깨운다. 각기 다른 영역에서 활동하는 분들을 모신 이유는, 의료는 이러한 여러 주체들의 협업으로 이루어지는 커먼즈, 혹은 공동영역이라는 이 책의 취지를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추상적인 차원의 공공성을 반기는 사람은 많아도 막상 구체적으로 파고들면 껄끄러운 이야기도 많기 마련이다. 어려운 내용을 입말로 푼다고 해서 과연 쉽게 전달될 수 있을지 확신을 갖지 못하고 시작한 작업이었다. 하나의 주제를 건드리면 한국사회의 모든 묵은 문제가 딸려 나오면서 종횡무진 흐르는 복잡한 이야기들을 잘 정리해준 이하림, 김가희 편집자에게 감사드린다. 이 책을 관통하는 주제는 좋은 의료이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좋은 삶과 죽음이다. 사람을 중심에 놓고 죽음을 외면하지 않으며 좋은 삶을 찾아갈 때, 지금과는 다른 의료가 가능하리라는 희망이 독자들을 만나 한국사회에서 공동의 삶을 확장하는 계기가 되리라 믿는다.
 

2020년 12월
백영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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