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렁이들의 집

책 소개

1980년 희곡으로 등단하고, 1986년 장편『구경꾼』이 『소설문학』소설공모에 당선되면서 본격적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한 중견작가 최인석(崔仁碩, 1953년생)의 다섯번째 소설집이 출간되었다. 작가 최인석은「그 찬란하던 여름을 위하여」등의 희곡으로 대한민국문학상, 백상예술상, 영희연극상을 받았으며, 영화「칠수와 만수」의 씨나리오를 집필하기도 했다. 1995년에는 소설집『내 영혼의 우물』로 제3회 대산문학상을 받은 바 있는 작가는 불의와 폭력이 구조화된 우리 시대 삶의 조건에 치열하게 맞선 예술성 있는 작품들을 발표하여 문단과 독자들의 주목을 받아왔다.

 

이 소설집은『나를 사랑한 폐인』이후 1998년부터 2000년까지 최근 3년간의 작품활동 성과를 담고 있으며 모두 다섯편의 중편소설들로 구성되어 있다. 소설집의 권말에 실린 임철우(林哲佑, 소설가)의 발문에는 최인석의 소설에 대해 “현실과 환상, 사실과 신화가 뒤범벅으로 엉킨 알레고리적 장치, 연극무대 공간을 연상시키는 극히 폐쇄된 플롯, 인물의 정서적 감응이나 내면풍경에 대한 묘사를 거의 배제한 채 독자를 작가의 의도대로 시종 긴박하게 압박하며 끌고나가는 그 집요하고 숨가쁜 화법 등의 특성”과 함께 “현실세계 및 인간 삶 자체가 완전히 뒤집히고 붕괴된 채로 마치 악몽이나 지옥도처럼 제시”된다고 평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암울하고 묵시론적인 전언을 통하여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인가? “최인석은 참으로 고뇌와 탄식에 겨운 몸짓으로, 절망을 통해 희망을 전파하고자 애쓴다. 그의 작품에 들어 있는 극단적 비관은 우리로 하여금 현실의 만연한 질병과 불구성을 깨닫게 만들고, 이 불구의 현실과 안락의 일상에서 우리의 영혼이 함께 병들어가고 있음을 알리는 강렬한 경고이다.”

 

 

 

「구렁이들의 집: 말더듬증에 관하여」

 

가난한 아비, 어미가 감금한 방안의 좁은 세계에서 자란 ‘나’는 세상의 이중성을 알았고, ‘나’ 또한 사슴과 승냥이의 이중적 속성을 지니고 있다. 그 이중성은 말더듬증으로 나타났다. 떠나간 아비와 어미가 맡긴 큰아비의 집은 새로운 세계였다. 완전무결한 중심을 찾다 길을 잃고 꿈만 남은 큰아비 앞에서 ‘나’는 말더듬증을 깨고 때로는 사슴의 말로, 때로는 승냥이의 말로 얘기를 하게 되지만 큰아비의 세상으로 들어가지는 못한다. 코카인이 만드는 환각의 세상에서는 ‘나’는 말을 더듬지도 않고, 세상 모든 것이 구별되지 않는 황홀함을 맛본다. 그 낯선 황홀함을 위해 조로증을 앓는 ‘나’의 사랑 사촌누이 순이의 목숨을 맞바꾼다. 순이의 죽음을 전해준 큰아비와 함께 증오만 남은 큰어미의 집 담을 타넘고, 큰어미의 집 지붕에서 ‘나’는 거대한 구렁이의 현현을 본다.

 

 

 

「잉어 이야기: 깃발에 관하여」

 

잉어의 자식으로 태어나 물에서 나온 ‘나’는 다시 물로 돌아간다. 모든 것을 구별짓는 세상, 차별하는 세상, 그리고 수백의 나라들과 그 나라들을 상징하는 깃발을 금기를 깨고서. 사랑하는 아내가 우렁이의 환생임을 의식하고 그리하여 각시를 떠나보낸 우렁이 서방, 그가 돌아간 물속으로 ‘나’ 역시 돌아간다. 그곳은 어떠한 깃발도 펄럭이지 않아 나무가 벌레가 되고 벌레가 나비가 되며 그 나비가 다시 꽃이 되는 환상의 세계이다.

 

 

 

「모든 나무는 얘기를 한다」

 

스스로를 타락한 맑스주의자라고 말하는 장수호는 유능한 카피라이터였다. 87년 시위현장에선 여공 출신의 아내와 더불어 혁명을 외쳤지만, 시위가 잦아들고 승리를 도둑맞자 다시 자본주의의 최선봉에 선 쎄일즈맨의 역할을 해나간다. 하지만 젊은 나이에 최고의 카피라이터 자리를 올랐던 장수호는 돌연 종적을 감춘다. 그를 다시 만났을 때 그와 아내는 깊은 산속에서 송이와 더덕을 캐고 있었다. 세상을 버렸다고 하는 장수호는 나무를 비롯한 자연사물들과 교감을 하고, 불임이던 장수호의 아내는 건강한 아이들을 낳아 기른다. 이러한 모습을 보고 자기 아이들 생각에 급히 수호의 집을 내려오면서, ‘나’는 장수호는 세상을 버렸지만 세상은 여전히 그를 놓아주지 않았음을 알게 되는 비애에 젖어든다.

 

 

 

「포로와 꽃게」

 

고아인 ‘나’는 징집명령을 거부함으로써 이념•국가•종교의 이름으로 사람을 살상하는 전쟁터 같은 세상속으로 들어가기를 거부하는 국외자이다. ‘나’는 스스로를 바리데기 무당이라고 하는 까페 주인 명순을 만나고 그 세계로 불려간다. ‘나’는 그 까페에서 일하며 한구석의 쪽방에서 컴퓨터로 가상의 세계에서 세상과 접촉하기도 하고 세상을 해킹하기도 한다. 부모에게 버림받고 창녀짓을 해야 했던 명순은 자신을 버린 그 부모를 살리기 위해 무수한 생명들을 죽이는 죄를 지어야만 했다. 뱃속의 아이를 지키려다 권력의 중심에 있는 아이 아버지에게 강제로 낙태를 당한 명순이 무당 여축처럼 게를 타고 하늘을 나는 것을, 포로가 된 ‘나’는 아득하게 바라본다.

 

 

 

「봉천동, 그 찬란하던 날」

 

목욕탕털이범 상구가 감옥에 간 사이에 아내 영주는 이혼서류를 보내고, 그가 악착같이 모은 돈을 가지고 아이와 사라졌다. 아내를 응징하기 위해, 자기 손으로 직접 처형하기 위해 아내를 뒤쫓지만 다른 사내와 살고 있는 아내는 여전히 불행하고 아이는 보이지 않는다. 교도소에서 만난 사형수 한주선은 사람을 죽이던 순간 또 사형집행을 당하는 순간 ‘푸른 송아지’가 보인다고 했다. 나라에선 불행한 사람의 몫을 빼앗은 죄로 가장 행복한 사람을 골라 처형하겠다는 법을 만든다고 떠들썩한데, 조그마한 행복조차 짓밟은 아내를 나라의 법이 아닌 자신의 손으로 응징하려는 순간 눈물을 흘리는 푸른 송아지가 상구의 눈에도 보인다.

목차

작가의 말
구렁이들의 집– 말더듬증에 관하여
잉어 이야기– 깃발에 관하여
모든 나무는 얘기를 한다
포로와 꽃게
봉천동, 그 찬란하던 날
발문

수상정보
  • 2003년 제8회 한무숙문학상
저자 소개
  • 최인석

    1953년 전북 남원에서 출생했고, 1980년 희곡 「벽과 창」으로 『한국문학』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1986년 『소설문학』 장편소설 공모에 『구경꾼』이 당선되면서 본격적인 소설창작을 시작한 이래, 불의와 폭력이 구조화된 우리 시대 삶의 조건에 치열하게 맞선 예술성 있는 작품들을 발표해왔다. 저서로 소설집 『구렁이들의 집』 『나를 사랑한 폐인』 『혼돈을 향하여 한걸음』 『인형 만들기』, 장편소설 『서커스 서커스』 『아름다운 나의 귀신』 『안에서 바깥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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