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엽 김수영 등과 참여문학을 일군 시인 신동문,
사후 30여년 만에 시인의 전 작품을 집대성한 결정판 출간
시대의 발언자이자 4월혁명을 불멸의 언어로 노래했던 시인 신동문(辛東門, 1927~1993)의 전집이 창비에서 간행되었다. 신동문은 1950~60년대 한국 시문학사에서 개성 있는 시세계를 개척한 독보적인 시인임에도 그동안 일반 독자들에게는 잊히거나 ‘4·19 시인’ 정도로만 기억되어왔다. 그의 뛰어난 시와 산문들이 제대로 소개되지 못한 까닭이다. 그는 전후(戰後)의 황폐한 사회현실을 직정적(直情的)인 언어로 노래했고, 불의한 현실에 맞서 저항하는 순정한 시적 자아를 창조했으며, 지나온 청춘의 삶을 통렬히 비판하거나 참회하는 모습도 가감없이 드러냈고, 지식인의 책무 앞에서 고뇌하는 지성의 모습도 보여주었다. 또한 그는 월간 『새벽』 편집장, 신구문화사 주간, 계간 『창작과비평』 발행인을 지내며 최인훈의 중편소설 「광장」과 『현대한국문학전집』 등을 발굴한 뛰어난 출판편집인이기도 했다. 이번에 창비에서 그의 사후 30여년 만에 펴낸 『신동문 전집』은 시인의 이러한 다양한 세계를 접할 수 있는 작품들을 대거 발굴 수록한 결정판 전집이다.
창비판 『신동문 전집』은 2004년 출간됐던 기존의 전집을 바탕으로 하되 이 전집이 가진 문제점을 전면적으로 수정 보완했다. 첫째, 원문(발표본, 육필원고)과 대교하여 기존 전집의 서지상의 오류(오탈자, 발표연도 등)를 모두 바로잡았다. 둘째, 국립중앙도서관을 비롯한 각 대학도서관을 섭렵, 자료를 검색하여 이전 전집에 비해 시 15편, 산문 20편을 더 수록하였다. 셋째, 유족이 보관하고 있던 유고를 입수하여 지금까지 조사한 바로는 한 번도 발표된 적이 없는 시 36편, 산문 11편을 새로 수록하였다. 이로써 신동문 시인의 문학을 온전히 복원해낸 이번 전집은 신동문 연구 및 1950년대 한국 시문학사 연구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된다.
지금껏 잊혀온 신동문 시인의 삶과 문학을 복원하다
미발표 유고 47편 수록
먼저 이번에 발굴 수록한 시에서 눈여겨볼 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입원 장병 문예공모 당선작 「하늘」. 공군 사병 시절의 경험을 다룬 이 시는 1952년경 국방부 산하 승리일보사가 입원한 국군장병을 대상으로 시행한 현상공모에서 시부문 1등으로 당선된 작품이다. 당시 심사위원은 김동리·염상섭·오상순·이서구·이한직·조지훈 등 쟁쟁한 분들이다. 말하자면 사실상 데뷔작인 셈이다. 조선일보 신춘문예 등단작 「풍선기」(1956)도 공군 사병 시절의 경험을 노래한 작품으로, 향후 두 작품의 연관 관계를 밝히는 후학들의 연구가 뒤따를 것으로 기대한다.
둘째, 미발표 시 중 1950년대 전반기의 작품 「대낮」(1949), 「정물」(1952), 「배꽃 능금꽃」(1953), 「귀야」(1953), 「무제몽」(1954) 등은 신동문 시인의 초기 시세계를 심도 있게 연구하는 데 귀중한 시편이 될 것으로 보인다.
셋째, ‘4·19혁명’을 다룬 또다른 시편들이 여러 편 발굴되었다. 그동안 「아! 신화같이 다비데군(群)들」 한 편으로 ‘4월혁명의 시인’으로 불려왔으나, 이번에 「학생들의 죽음이 시인에게」 「핏방울이 고여 있던 한 켤레의 신발처럼」 「4월의 시인」 등이 추가되어 4월혁명 시인으로서의 면모가 한층 더해졌다.
시인인 동시에 뛰어난 산문가임을 보여주는 데 부족함이 없는 다양한 성격의 산문 또한 함께 수록되었다. 이번에 발굴 수록한 산문 중에 눈여겨볼 만한 글 몇편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인간 만송기’족보다 미운 박쥐족」(1960). ‘만송’은 정치가 이기붕의 호로, 이승만 정권이 3·15 부정선거를 획책하고 일부 문인과 예술인들이 ‘인간 이기붕’을 찬양하는 문필과 행사에 동원되고 있을 때 신동문은 이기붕의 호를 따서 그들을 ‘만송족(晩松族)’이라 부른 것이다.
둘째, 「나의 방청기」(1966). 이 글은 1966년 3월 16일에 열린 ‘국회 국방·외무위원회 연석회의’를 방청하고 나서 쓴 것이다. 이는 베트남전쟁 전투부대 증파안(增派案)을 심의하는 회의였다. 신동문은 장장 5시간 동안 방청했지만 “질의하는 의원은 과연 이 시점에서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궁금한 것인지 도대체 모르는 사람 같은 얼빠진 질의만 하고 있고, 그에 대답하는 정부측은 우등생의 학습발표처럼 힘도 안 들이고 뻔한 기정사실인 것을 뭐 그러느냐는 식으로 척척 대꾸만 하고 있었다. (…) 말하자면 그들의 행사는 도대체 물어볼 것도 대답할 것도 없는 일들을 갖고 절차상 하는 수 없이 하는 것이라는 인상 이상의 그 아무것도 아니었다.”(396면) 지금의 국회는 45년 전의 국회와 무엇이 달라졌는지 생각해보게 하는 글이다.
셋째, 「문예작품 비판은 양식에」(1967). 이 글은 「분지」(『현대문학』 1965.3)로 인해 소설가 남정현이 반공법 위반혐의로 불구속 기소되어 ‘징역 7년에 자격정지 7년을 병과’하는 구형을 받자 창작의욕을 위축시킬 우려가 있다는 시인의 견해를 피력한 것이다.
넷째, 「아아! 국수(國手)와의 일국(一局)」(1969). 이 글은 문인바둑대회에서 우승하여 ‘문단 국수(文壇國手)’로 불리던 신동문 시인(3단)이 국수 김인(金寅) 7단과 대국(對局)한 접바둑 자전기(自戰記)이다. 시인의 인간적 면모와 호방한 풍모를 엿볼 수 있다.
다섯째, 소설 습작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자료들이 처음 소개되었다. 앞서 말한 입원 장병 문예공모 소설부문에서도 「집」이 3등으로 입선된 사실이 적힌 자료를 수록했고, 쓰다가 중단된 소설로 보이는 육필원고 「어느 초가을 날」을 소개했다.
그밖에 첫사랑이나 결혼 등에 대한 자기고백적인 글, 청년들의 사회참여(앙가주망)를 역설하거나 당대의 사회문제에 대한 날카로운 비평을 담은 글, 김삿갓의 행적을 추적한 기행문 등이 소소한 재미를 안겨준다. 이외에도 시인을 꿈꾸던 청년기의 오랜 투병생활 끝에 건강을 되찾은 이야기인 대담 「마늘」, 편집자와 발행인 시절의 숨겨진 일화를 들려주는 좌담 「‘창비’ 10년」 등은 시인의 전기적인 사실을 복원하는 데 소중하게 쓰일 자료이다.
4월혁명 60주년을 맞은 올해, 그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던 독자들은 이번 전집을 통해 시인과 다시금 새롭게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정직한 자기성찰을 유지했던 신동문의 시적 열정은 전후 한국문학의 한쪽 여백을 채움과 동시에, 오늘날 우리의 현실에도 끊임없이 되새겨야 할 소중한 자산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