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쾌한 문법에 담은 삶의 이면과 진실
2006년 실천문학 신인상에 당선되면서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시작한 김명철 시인의 첫시집 『짧게, 카운터펀치』가 출간되었다. 삶의 불안과 고독을 긴장감 있는 언어로 밀도있게 응축한 이번 시집에는 시인이 그간 써온 57편의 시가 담겼다. 등단 당시 호평을 받았던 시인 특유의 활달한 상상력과 관찰력이 그의 첫시집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일상의 풍경을 포착하는 예리한 시선, 가벼움과 무거움 사이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어법이 바로 그만의 장기이다.
그는 섬세한 시선으로 우리 삶의 일면들을 주의깊게 바라보고 이를 하나의 단면도로 우리 앞에 제시한다. 어느 한낮의 공원에서, 거리에서 또는 전철에서의 사건과 풍경들을 다양한 감각으로 붙잡아 구체적인 언어로 그것을 빚어낸다. 재치있고 경쾌하게 언어를 다루는 시인의 솜씨가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
그가 포착한 우리 주변의 풍경들은 일견 고단하고 피로하며 따분하지만, 다만 공허함이나 허무함 같은 상투적인 감상으로 끝나지 않을 깊은 공감을 담고 있다. 그의 언어는 생활에 밀착되어 있으며, 그의 사유는 이 생활의 끝없는 바닥까지 집요하게 가닿는다. 신인답지 않은 탄탄한 내공이 여기에서 빛을 발한다. 시인은 한편 한편 이어지는 수많은 이미지들을 일종의 스케치처럼 단발적으로 그려내지만, 그 기저에 묵직하게 자리잡고 있는 삶의 무거운 서사들을 불러들여 기꺼이 그것을 짊어지고 가는 것이다.
시인이 ‘풍경’을 그리는 행위는 필연적이며, 그것은 자신을 향한 것이기도 하다. “내가 한쪽으로 기울기 시작했”(「고요한 균열」)다고 시집의 초반부에서 스스로 고백한 화자는 그렇게 기울어진 시선으로 끊임없이 “안팎의 풍경”을 보고 그 무게를 감당하는 것이 시인의 운명임을 일찌감치 깨닫는다. “빈틈없는 생활”을 하고 “방심하지 않는 자”도 ‘틈’에게 습격당한다. “마지막 일전을 치를 수도 투항할 수도 없으”니(「틈」) ‘틈’을 온전히 품고 ‘틈’으로 ‘틈’의 안팎을 바라보는 행위, 즉 기울어진 눈으로 사물과 세계를 바라보고 그것을 시로 옮기는 행위를 반복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평론가 유성호는 하이데거의 말을 인용, “예술은 현존하는 것을 그것 자체로 이끌어내 자신의 모습이 고유하게 드러나도록 하는 행위”라며, 이러한 의미에서 그의 첫시집이 ‘고유함’을 획득한다고 평했다. 김명철 시인은 ‘균열’을 ‘돌파’해 ‘성장’한다는 손쉬운 서사를 버리고, 대신 그 균열에 전면적으로 머물거나 최소한 그 근처를 서성거리는 방식을 택했다. 이것이 “송두리째 몸을 내어던지는 맹랑한 배짱”(「고함(高喊)」)에 불과할지라도, “어둠의 본색에 다다”르거나(「어둠본색 1」) “검은 구멍”(「기항」)을 여는 또 하나의 길이라 할지라도, 결국 시인의 걸음은 삶이 기울어지는 바로 그 자리를 밟는다. 경계를 돌파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따라 묵묵히 걸어가는 시인은 그 안팎의 낙차를 몸소 겪는 것이 시인의 현실감각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꿰뚫고 있는 듯하다.
그의 시는 쉽사리 비상하기보다는 차라리 고통스럽게 내려앉으며 가파른 삶의 진실과 마주한다. 시인은 무심한 듯 담담한 언어로 이 진실의 풍경들을 소묘하지만, 거칠고 무거운 생활의 진실들은 그 층위를 잃지 않은 채 시인의 언어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첫시집에서 그가 보여준 치열하고 고유한 문법이 앞으로 어떤 행보로 이어질지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