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진하고 담담(淡淡)하여 더 아름다운 시와 생활
약관 스물둘의 나이로 등단한 이래 20여년간 아름답고 섬세한 감성으로 많은 사랑을 받아온 장석남 시인의 여섯번째 시집 『뺨에 서쪽을 빛내다』가 출간되었다. 5년 만에 선보이는 이번 신작시집은 시인 특유의 아름다운 시어가 여전히 빛을 발하는 가운데 삶을 사유하는 관조의 시선이 더욱 깊이를 더함으로써 서정시의 한 진경을 선사한다.
이번 시집에서 고요한 서정성이 유달리 돋보이는 이유는 그것이 과장된 수사나 애써 발견한 소재가 아니라 시인의 일상에서 길어올린 자연스러운 결과물이라는 데 있다. 시력(詩歷)으로나 나이로나 어느덧 중견이 된 시인답게 그는 살아가는 것 그 자체에서 녹록지 않은 깨달음과 감각적인 시적 표현을 얻는다.
이렇듯 일상에서 발견하는 시를 가능케 하는 것들은 꽃 바람 물 등처럼 자연 속에 자리한 경우가 많다. 그것들은 시인에게 일방적인 찬양의 대상이나 인간을 압도하는 거대한 존재가 아니라 삶에 친숙하게 들어와 시인의 내면과 감수성을 드러내는 중요한 고리로서 때로는 시인 자신을 성찰하게 하는 거울이, 때로는 인생의 회로애락을 곱씹게 하는 매개가, 또 때로는 시 그 자체의 현신이 되기도 한다.
흔히 장석남의 시 하면 떠올리게 되는 알싸한 사랑을 말하는 시들은 이번 시집에서도 깊은 인상을 남기기에 충분하다. 시인의 연시는 나직한 목소리이지만 그러나 선연한 이미지와 함께 저릿하게 감성을 자극한다.
그의 시는 비단 어느 특정한 한 시점, 한 지점 위에서 돋아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층위의 시공간이 조화를 이루는 가운데 한 장면을 빚어낸다(최창근 ‘발문’). 시인의 시적 인식이 그만큼 여유롭고 폭넓어졌음을 짐작게 하는바, 모든 시간과 공간이 모이는 ‘지금-여기’ 속에서 시인은 풍부한 감상을 긷고 깨달음의 깊이를 더해가는 것이다.
이렇듯 그의 시는 다양한 면모에서 접근해볼 수 있지만 그럼에도 시집 전체를 관통하는 어떤 정서나 주제의식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그것은 시인이 줄곧 곡진한 태도와 담담한 어조를 유지하는 데서 비롯된다. 노래하는 일차적인 대상이 꽃이든 돌이든 가족이든 사랑이든, 시인은 그것을 자신의 삶 속으로 데려와 양자 모두를 찬찬히 정성스럽게 쓰다듬는다.
시인은 그렇게 무언가를 따뜻하고 세심하게 대하는 것이 곧 삶이라고 여기는 듯하다. 그 삶 속에선 분노도 눈물도 사랑도 죽음도 모두 담담하게,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그리고 그곳에 시가 있다. 장석남에게 시란 일상이고 자연이며 사랑이자 그리움인, 그리고 과거인 동시에 미래이며 죽음이기도 한 것이다.
대개 시란 화려한 수사나 재치있는 언어유희, 격정적인 감상 따위로 이루어지는 것이라 인식된다. 그러나 시가 사람들 속에 자리하는 것이라면, 그리고 우리네 삶이 그런 것들로만 채워지는 것이 아니라면 당연히 곡진하고 담담해서 더 아름다운 시가 있을 것이다. 장석남의 시가 바로 그 증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