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듯 따뜻한, 활달하면서 애절한
2006년 첫시집 『곰곰』에서 활달한 상상력과 탄탄한 언어감각으로 개성있는 시세계를 펼쳐 보이며 독자와 평단의 주목을 끈 안현미 시인의 두번째 시집 『이별의 재구성』이 출간되었다. 경쾌한 말놀이와 감각적인 환상은 독특하고, 그 안에 담긴 누추한 현실을 바라보는 시선은 묵직하며, 그 바탕에서 우러나는 사람에 대한 깊은 사랑은 간절하다. 불편한가 하면 따뜻한, 매혹적인 시집이다.
이번 시집에서도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말을 다루는 시인의 능란한 솜씨다. 시집은 시종 활달한 언어유희로 유쾌하다. “이 별의 재구성 또는 이별의 재구성”부터도 그렇고, “냉전도 반민주도 복고 복고, 지지고 볶고”(「내 책상 위의 2009」) “나는 무(無)와 나를 접붙여 나무가 되고 싶습니다”(「‘풋’을 지나서」) “나 자주자주 까먹어요 슬픔을 고독을 사탕처럼 까먹어요”(「뢴트겐 사진―생활」) 같은 말놀이와 ‘심은하 씨 아버지 심학규 씨’ ‘친절한 미류씨’처럼 비틀어 쓴 문화적 전거가 시편마다 경쾌한 리듬을 부여하며 시를 읽는 재미를 맛보게 해준다. 때로는 현실의 흔적을 분간하기 어려울 만큼 연상이 또다른 연상으로, 환상으로 자유자재하게 이어지기도 한다.
그렇게 말들이 함께 헤엄치고 춤춘다. 비참과 환멸이 눈앞에 드러나는 시에서조차 그렇다. 경쾌한 언어의 의장을 하고 있지만, 아닌게아니라 시인의 시선이 향하는 것은 이별이고 슬픔의 시간이고 환멸스러운 현실이 압도적이다. 그것을 위무하기 위해서, 또는 감추면서 드러내기 위해서 시인은 짐짓 경쾌하고 활달한 언어유희와 환상을 구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현실의 그늘에 대한 감각이 짙게 깔려 있기 때문에 그의 시가 난해하기만 한 기표의 세계에 고립되는 것으로 읽히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여러차례 평가되어온 바다. 또는 말을 바꾸면, 저 활달한 목소리가 단지 활달하게만, 평면적으로 들리지 않는 것은, 그 목소리가 항상 “울지 마 울지 마 하면서/우는 아이보다 더 길게 우는 소리”(「여자비」)를 배음으로 깔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보았을 때 두드러지는 것은 이 한 시집 안에 담긴 여성성-모성의 다양한 면모일 것이다. 시집 발문을 쓴 손택수 시인이 주목하듯, 그것은 우선 클림트의 「유디트」 연작을 연상시키는 ‘공포스러운’ 표정과 ‘무아경에 빠진’ 표정의 두 가지 얼굴로 드러나 있다.
이런 환상은 전복적이어서 치명적이다. 이것이 도발적인 여성상의 면모라면,
이 경우는 당혹스러울 만큼 전통적인 여성상을 환기시키는데, 하지만 곰곰이 들여다보면 여기에서도 정한의 서정에 대한 날카로운 도발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시인에 의해 서정은 교란되면서 동시에 갱신되고 있다. 그래서 “작금의 문학 신구 구분을 그녀의 시는 아주 가뿐하게,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교란시킨다. 그녀는 가장 오래된 소재를 새로운 문법으로 다루고, 가장 새로운 소재를 오래된 문법으로 다룬다”(김정환 ‘추천사’)는 평은 적확하다.
또한 이 여성성-모성은 ‘보듬는’ 것이기도 하다. ‘고장난 가로등처럼 서 있는 사내’를 ‘언어 이전의 어항골목’이 감싸안듯(「어항골목」), 시인의 시는 시간을 거스르며 그것을 감싸안는다. “안개 핀 호수를 건너 태백 이전으로 날아가는 시간들, 날아가 아픈 이마 위에 놓여질 착한 물수건 같은 시간들, 그 이마 위에서 안개처럼 피어오를 미열들, 그 미열들을 끌어안고 안개꽃이 되고 있는 저 여자”(「안개사용법」). 말하자면 ‘사랑’이라 해야 할 이런 온기가 다른 모든 시들에도 배어 있음을 알기란 어렵지 않다. 시인 스스로 “내가 쓰는 모든 시들이 유서 같다가 그것들이 모두 연서임을 깨닫는”(「불멸의 뒤란」)다고 한 것처럼, 생각해보면 죽음과 시원은 결국 같은 것이다. 때문에, 시인이 시간에 대해 말할 때 그의 시는 유서이거나 연서이거나 매한가지인 것일 터이다. 그러니 이렇게도 말해볼 수 있겠다. 시인이 이별에 대해 말할 때, 그는 이별 이전의 사랑에 대해 말하는 것이라고. 유서이거나 연서이거나, 우리에게 그의 시들이 애절하고 따뜻하게 읽히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