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타운

책 소개
최첨단 시대를 사는 사람들은 행복한가

1975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해, 신동엽창작상(1983)과 불교문예작품상(2006)을 받은 바 있는 중견 시인 하종오의 신작시집 『베드타운』이 출간되었다. 그는 동년배 시인들에 비해 왕성한 작품활동과 식지 않는 창작열을 불태우는 시인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지난해에만 해도 『국경 없는 공장』과 『아시아계 한국인들』 등 두 권의 시집을 동시에 펴내기도 했다. “다작은 내 운명이고, 나는 시 쓰다가 죽을 것”(‘시인의 말’)이라는 시인의 고백에서도 느껴지듯, 그의 다작은 수다스럽다는 뜻과 거리가 먼 동시에 서늘한 시인의 결기를 동반한 것이다. ‘베드타운’ 연작(43편)과 ‘자연부락’ 연작(31편)으로 구성된 이번 시집에서도 시인은 타자들의 삶에 집요한 시선을 던져 풍경을 일군다. 이 타자들은 단순히 나 이외의 사람들이 아닌 사회적·문화적·정치적 상황의 특수성 아래 놓인 다양한 계층의 소박한 인물들이라는 점에서 그동안 민중이라는 보통명사로 뭉뚱그려진 집단과는 차원을 달리한다.

 

『베드타운』에는 오랜 시력에 걸맞은 원숙한 시선과 자연스러운 말투로 현대 한국사회의 풍경이 그려져 있는데, 제1부 ‘베드타운’과 제2부 ‘자연부락’으로 구분되어 있다. 언뜻 단순해 보이는 이 구도는 도시와 농촌이라는 이분법에 바탕을 둔 것 같지만, 베드타운과 자연부락을 오가는 시인의 시선이 교차하듯이, 두 공간 사이의 사회적·계급적·생태적 환경이 서로 얽히면서 총체적인 상을 이룬다는 점에서 단순하지 않다. 베드타운과 자연부락이란 큰 표제 아래 묶인 낱낱의 시편들이 제각기 울림과 흥취를 지니며, 시 읽기의 맛을 더하고 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는 장점이다. 이러한 구성의 효과는 물론이고 오래 각인되는 내용과 더불어 제목과 본문에서 자주 쓰는 절묘한 우리말의 활용은 시인만의 독특한 시적 개성이라 할 수 있다.

 

시집을 읽으면, 오늘날 도시와 농촌이 맺고 있는 관계에 관한 성찰이 이 시집의 탄생을 가져왔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관계의 성찰뿐이라면 굳이 시를 읽을 필요가 있을까. 시인은 그저 보여주기에 급급한 자세로 현상을 관찰하지 않는다. 신흥주택 단지, 밀집한 아파트들 사이의 아스팔트길을 유모차를 끌고 가는 어느 젊은 엄마의 모습을 카메라로 촬영하듯 무덤덤하게 묘사한다. 하지만 그 풍경은 잇따르는 아기를 안은 베트남 출신 엄마의 어딘지 초조해 보이는 모습과 겹쳐지면서, 냉정하고 객관적인 듯한 화자의 시선에는 현상의 표면을 꿰뚫는 인간 성찰의 의지가 매개돼 있음을 보여준다.

 

 

아이를 안은 여자는/앞만 살피며 번화가를 걷고 있었다/아이와 여자는 얼굴도 피부색도 닮지 않았다/뙤약볕 아래서 아이는 자지러지고/여자는 손바닥으로 땀을 닦아주곤 했다/못사는 엄마의 나라 베트남에선/이만한 더위에는 그늘을 찾지 않는다고/잘사는 아빠의 나라 한국에서/이렇게 같이 있으니 함부로 울어선 안된다고/여자는 손바닥으로 부치며 아이를 달래곤 했다/차량들이 차도에 즐비하게 주차되어 있는 일요일/빌딩 쇼윈도우마다 가득 찬 상품은 봐도/아이와 여자를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았다/도시로 구경나올 적에도 앞서 나오고/시골집으로 돌아갈 적에도 앞서 돌아가는/남자를 따라 여자는 걷고 있었다/여자는 남자가 왜 떨어져 다니는지 몰랐다/번화가를 빠져 나오는 어귀 버스정류장에서/아이와 얼굴도 피부색도 닮은 남자가/여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 「베드타운―나들이」 전문

 

농자금 빌려서 특용작물 짓다 망한/늙은 아들은/유산으로 받은 임야를 넘기면서도/아버지의 무덤을 옮겨가지 않았다//(…) 한해에도 겨우 한번/예초기를 메고 벌초하러 가서도/절대로 임야를 돌아보지 않다가/빈털터리로 영영 부락을 떠나버렸다//아버지의 봉분이/폭우에 쓸려 간 뒤에 찾아온/늙은 아들은/오래 된 무덤 자리를 정확하게 몰라서/그 부근 유일하게 열매 연 유실수에게 절을 올렸다 ― 「자연부락―구산(舊山)」 부분

 

아무도 아버지 무덤 있는 산자락을 가지려 하지 않았다//뿔뿔이 외지에 나가 사는 자식들을 모아놓고/가지고 싶은 곳을 가지게 하려고/아버지는 일평생 땅을 간직했는지도 몰랐다//자식들은 저마다 태연하게 빈정거렸다/필요한 나이에 한 밑천 주셔야 고맙지/쓰일 데 많을 적에 한 밑천 주셔야 고맙지 ― 「자연부락―상속」 부분

 

 

특히 시인은 현대 한국사회를 표상하는 공간으로 대별되는 베드타운과 자연부락이 모두 삶을 일구는 진정한 공간이 되지 못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다시 말해, 도시중심의 업무지구에 딸린 잠만 자는 주거지로서의 베드타운과 도시중심의 생산체제에서 소외되어 고령자들이 시답잖은 일거리로 소일하는 자연부락은 애초부터 생기와 활력의 재생산을 이루기 어려운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다. 이를 통해 시인은 현대 자본주의의 한계를 말한다. 흙을 일구면서 시시콜콜한 일상의 매순간에 서로 끼여들면서, 삶과 사랑을 나누던 목가적인 자연부락의 존재는 이제 더는 어디서도 찾을 수 없다. 도시는 여전히 농촌에 젖줄을 대고 있지만 그것은 자본의 이용가치가 있을 경우에 한해서이다. 흙과 생명이 있는 삶의 중심을 존중해서, 가장 깊은 생존의 뿌리가 그곳에 있어서가 아니라는 말이다. 농촌이 도시의 주목을 받는 경우는, 개발이 예정돼 있어 땅값이 올라갈 때거나, 쾌적하고 안락한 삶을 그리며 자연부락에 터전을 잡은 도시인의 상상을 통해서일 뿐이다. 이미 오래전에 안락함이 사라진 도시뿐만 아니라 농촌 역시 이제 아낌없이 주는 자연이 되지 못한다. 농촌은 더이상 공동체의 따스함이나 인정 넘치는 향수를 기대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오직 자본의 수단으로 전락한 물질계에 속한 영역일 뿐이다.

21세기의 민중은 무엇인가

이처럼 시인 하종오는 무서우리만치 냉철하게 현실을 인식한다. 이번 시집에 유독 돈거래 이야기가 많은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역사적으로 볼 때 도시는 유토피아의 공간이었다. 농촌에서 도시로 성장하는 과정은, 더 나은 삶의 꿈이 작용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비대해진 도시는 역(逆)유토피아, 즉 디스토피아의 상징이 되어버렸다. 이 끔찍한 역의 전환을 하종오의 시집은 다양한 계층의 인물을 시적으로 조명함으로써 보여주고 있다. 도시 베드타운에서 콘크리트 반죽을 부어 딱딱한 벽을 세우고, 부드러운 살과 투명한 숨결을 지닌 사람들은 그 사각의 벽 안에 들어가 평안을 누린다. 그러나 기실 그것은 살과 숨결의 차단, 부드러움과 투명성의 차폐인 것이다.

 

 

사내가 동네 길을 가는데/레미콘차가 탱크에서 쏟아내는 콘크리트를/펌프카가 철관으로 끌어올리고 있었다//사내가 서서 쳐다보는 동안/콘크리트가 거푸집을 채우며/벽으로 서고 천장으로 누우니/수십 가족이 들어갈 수십 채가 만들어졌다//사내가 이사갈 집을 구하러/동네 길을 계속 가려는데/땅에 헉, 제 몸이 없어져서/길에 헉, 제 몸이 없어져서/어리둥절 쳐다보았다//레미콘차가 탱크에/사내를 집어넣고 콘크리트에 뒤섞고/펌프카가 철관으로/사내를 빨아올려 쏟아놓고 떠나자/고층에 사내가 굳어 있었다 ― 「베드타운―콘크리트」 전문

 

 

박성우 시인이 말했듯 하종오 시인은 “밀릴 만큼 밀리고 버려질 만큼 버려진, 아니 이제는 대부분의 시인들이 거들떠보려조차 하지 않는 민중을 얘기하는 21세기 다문화시대의 유별난 글쟁이다.” 하지만 시를 읽다보면 “거기에는 천박한 경제논리와 자본의 꽁무니를 쫓다 곤경에 빠진 한통속의 우리가 들어 있”(추천사)음을 아프게 깨달을 수 있다. 이 시집에는 농촌의 제문제(낙후된 경제, 무너진 공동체, 농촌총각의 결혼문제 등)와 여기서 파생된 이주노동자, 다문화가정(혼혈) 등이 전면적으로 제시된다. 이러한 소재와 주제는 낡아빠진 것이 아니라, 지금-이곳의 엄연한 우리의 현실이자 21세기 ‘민중’의 모습이다. 우리가 아무리 탈근대와 선진화를 논하고 그밖의 것들을 덮어놓아도, 사뭇 달라진 전근대적 양상들은 자연부락뿐만 아니라 도심 한복판(베드타운)에도 깊숙이 그 배면을 장악하고 있다. 어떤 강력한 주의주장 없이 시를 통해 담담하게 묘사하는 시인의 의도는 바로 이러한 현실을 제대로 보아달라는 뜻일지도 모른다. 외면할 수 없는 우리 시대의 부끄러운 위선은 이미 우리 일상이 되어버렸다.

 

이 시집에서 시인은 베드타운과 자연부락의 경계가 뚜렷한 것이 아님을 끊임없이 보여준다. 경계를 나누게 하는 어떤 왜곡된 시선이 개입돼 있는지도 묻지 않는다. 그저 있는 그대로의 현상을 아이러니와 냉정함을 통해, 때로는 잔잔한 목소리로 전달한다. 시 한 편 한 편을 숙련된 솜씨로, 어렵지 않은 언어와 비유로 엮어낸 시집을 통독하고 나면, 이 시대와 동시대의 인물 군상의 삶과 애환이 오랜 잔향을 남기며 내내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또한 안정감 있는 시적 서술로 우리 시대의 풍경을 이처럼 잘 해부하는 시인의 시각과 필봉이 아주 날카롭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읽으면 읽을수록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게 할 만큼, 이 시집은 감출수록 더 적나라해지는 우리 시대의 초상을 정확하게 그려내 전시하고 있는 것이다.

목차

제1부 ●베드타운
베드타운―서시
베드타운―공원
베드타운―부용자(芙蓉姿)
베드타운―보드 타는 아이들
베드타운―낙지집
베드타운―나들이
베드타운―구시가지
베드타운―후림대수작
베드타운―상노인
베드타운―택지
베드타운―안택(安宅)
베드타운―두 주인
베드타운―나무들의 만수받이
베드타운―흙 차용 화분 차용
베드타운―유모차
베드타운―해질녘 풍경
베드타운―양산 쓴 모녀
베드타운―저녁, 여덟시와 아홉시
베드타운―베란다 정원
베드타운―부레옥잠 모녀
베드타운―씨도둑
베드타운―자정과 한시 사이
베드타운―담의 주인
베드타운―노을여인숙
베드타운―외곽 동네
베드타운―옥상 기슭
베드타운―일요일 오후
베드타운―벤치 식사
베드타운―어깨
베드타운―식사시간
베드타운―다운타운 오가는 길
베드타운―소리 냄새
베드타운―콘크리트
베드타운―안개
베드타운―매뉴얼
베드타운―홈쇼핑 쇼호스트
베드타운―고객만족
베드타운―달러 딜러
베드타운―쇼핑카트 탄 아이
베드타운―타단(他端)
베드타운―테마 모텔
베드타운―이미테이션
베드타운―씨뮬레이션

제2부●자연부락
자연부락―난거지든부자, 난부자든거지
자연부락―황소 기르기가 쉽나, 염소 기르기가 쉽나
자연부락―상질 하질
자연부락―말참견
자연부락―헬리콥터
자연부락―동갑내기
자연부락―무릎장단 허벅지장단
자연부락―미장가
자연부락―산욕(山慾)
자연부락―한동기
자연부락―맹세지거리
자연부락―고자질
자연부락―경운기
자연부락―구산(舊山)
자연부락―가계(家系)
자연부락―콩
자연부락―집재산
자연부락―상속
자연부락―입맛
자연부락―종착지
자연부락―눈비음
자연부락―두렁에서 술 마시고 놀고 일해서 힘세다
자연부락―야적
자연부락―원금
자연부락―비닐하우스
자연부락―빚
자연부락―값
자연부락―밭도지 나무도지
자연부락―통사정
자연부락―일견식
자연부락―누가 도둑인지 누가 주인인지

시인의 말

수상정보
저자 소개
  • 하종오

    1954년 경북 의성 출생. 1975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 『남북주민보고서』 『신강화학파』 『국경 없는 농장』 『웃음과 울음의 순서』 『겨울 촛불집회 준비물에 관한 상상』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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