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과 환상 세계를 넘어 시가 날아왔다
몽환의 수사학으로 생의 비참함을 꿰뚫어보는 개성적인 시각의 시인 김성규의 『너는 잘못 날아왔다』가 출간되었다. 김성규는 200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독산동 반지하동굴 유적지」가 당선되어 등단할 때부터 이목을 끈 신예시인으로, 데뷔 이후 4년 동안 치열하게 작품을 쓰고 그 가운데 53편을 엄선해 첫시집을 묶은 것이다.
시적 대상을 포착하는 시인의 눈은 고고학자의 그것처럼 섬세하고 조심스럽다. 섣불리 판단하지 않으며 행복이든 불행이든 치밀하게 들여다본 생의 단면을 실마리 삼아 그 배후의 풍경을 그려낸다. 그의 작품으로 형상화된 이 세상은 비참하지만 한편으로 아름답다. 세계가 스스로 비참한 속을 확 열어젖히면서 비참함의 극점에 다다를 때 그 속에 어리는 쉽게 표현할 수 없는 진실과 오묘한 빛, 시인은 그것을 놓치지 않고 포착해 그만의 목소리로 우리에게 들려준다. 모든 것은 산화되어 공기 속에서 부서지고 무너지고, 갈리고 사그라진다. 어쩔 수 없는 풍화작용에 노출된 존재들은 각각이 세상의 한 귀퉁이를 짊어지고 있다. 시인은 이들의 찢기고 쫓기는 일상을 천연덕스럽게 보여준다. 그 일상이 펼쳐지는 지상과, 그 지상을 굽어보고 있는 천상을 노래한다. 그는 단정한 어법으로 매일매일 우리 곁에서 벌어지는 낯선 풍경에 깊은 시선을 매단다.
고개를 돌려 외면하고 싶은 것들을, 시인은 왜 자꾸만 이렇게 집요하게 캐내려 할까? 데뷔작 「독산동 반지하동굴 유적지」를 비롯해 많은 시편에서 시인은 섬세하면서도 집요할 정도로 묻어놓거나 덮어놓거나 외면해버린 풍경들을 발굴한다. 그는 땅속에 묻힌 값비싼 보물을 노리는 자가 아니다. 즉 그는 영화에 등장하는 모험가 기질의 고고학자가 아니라, 오히려 ‘나무 위의 세상’이 어떤지 안부를 묻는 형이상(形而上)의 세상에 눈을 대고 있는 관찰자다. 예기치 못하게 묻힌 것들, 아무도 찾으려 하지 않고 볼 수 없는 것들, 그 참상들을 통해서 이 세상 너머의 풍경을 새롭게 인식한다. 이러한 발굴 작업으로 햇살 아래 드러난 비극과 고통은 이제 그곳에 머물지 않는다. 더이상 파묻힌 비극과 고통이 아니므로 슬픔과 아픔마저 더는 슬프지도 아프지도 않게 된다. 이제는 아무것도 없는 마을, 그곳의 노래는 지상에서 한 뼘쯤 떠 있는 유령처럼 미끄러지며 다가온다.
어둡고 축축한 세계, 불행을 그리는 일에 집착하는 그의 시가 술술 읽히는 건 왜일까? 이 시집의 해설에서 문학평론가 황현산은 그 이유가 ‘불행의 편’에 선 시인의 ‘몽환의 수사학’과 ‘유려하고 아름답기’까지 한 언어와 표현 덕분이라고 말한다. 또 이 시집의 가장 심각한 전언이 거기 들어 있다고 강조한다.
한마디로 그의 시에서 초현실적인 힘을 뿜어내지 않는 불행은 없다는 것이다. 시인 김성규는 중력을 거부하려 하지 않으면서도 공중으로 떠오르는 느낌의 시들을 쓴다. 우리는 그가 그린 시 속의 풍경에 섬뜩해하다가 어느새 구름을 밟고 있는 듯한 황홀에 빠지게 된다. 현실의 경험세계와 환상세계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상상력, 그리고 이를 통해 아름다운 시의 언어와 미학에 빠져들게 하다가 어느순간 이 세계를 낯설게 만들어버리는 힘, 이것이 이 신예시인의 범상치 않은 재능이다.
분명 김성규는 경험과 감각을 넘어 적극적인 의지를 담은 환상성으로 이 세계의 감춰진 이면을 발굴함으로써 기존의 리얼리즘을 갱신하는 패기를 보여준다. 경험세계와 상상세계를 무리없이 결합시키는 동화적 상상력과 환상적인 어법은 동세대 시인들과 겹치면서도 독보적인 영역을 구축한다. 읽을수록 강해지는 흡인력은 신인의 저력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다. 슬프고 끔찍할수록 그만큼 더 아름다운 시집은 그 유례가 드물기 때문에 이 신예의 행보는 더욱더 값지고 소중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