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웃는다

책 소개

1998년『시와반시』 신인상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하고 첫시집 『喪家에 모인 구두들』로 주목 받았던 유홍준 시인의 두번째 시집이 출간되었다. 유홍준은 경험된 실제를 그로테스크하게 비트는 방식, 주로 육체를 왜곡하고 과장하는 방식을 통해 현실의 불모성을 강렬하게 드러내왔는데, 이번 시집 『나는, 웃는다』에서는 변하지 않은 치열성을 한층 성숙한 기량으로 뿜어내고 있다.

 

 

 

표제작 「나는, 웃는다」에서 시인은 “숟가락으로 파먹다 만/뒤통수를 감추고 웃는다”. 이 웃음은 경쾌 발랄한 즐거움의 표현도 아니고 비겁한 세상과의 타협도 아니다. 그보다는 “흉터”를 가진 자만이 지을 수 있는 표정이자, 삶의 그로테스크함을 부각시키며 그런 삶을 강제하는 일상에 대한 조소라고 할 수 있다.

 

 

 

유홍준의 시편을 관통하는 주제는 가족서사이다. 지난 시집에서 아버지로 대변되는 가부장적 세계의 폭력과 그로 인해 고통받는 어머니상이 섬뜩하게 전면화되어 있었다면, 이번 시집에서는 이 주제가 아버지와의 관계를 좀더 구조적으로 넓고 깊게 탐색하는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폭력/권력의 얼굴 깊숙이 정면으로 자신을 포함시켜 성찰하기 시작한 시인은 “감쪽같이/자신의 과오를 수습하던 아버지”를 만나서 “나도 이제 개종을 하고 싶다 말하고 싶네”(「아교」)라고 노래한다. 여기서 드러나는 아버지와의 화해는 봉합이 아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지니게 되는 솔직한 삶의 자세이면서 동시에 세계의 복합성과 아이러니까지를 담아내는 방식이다. 아버지가 된 자기 모습에서 옛날 아버지의 모습을 보는 것, 할아버지에서 아버지로, 아버지에서 아들로 삶이 이어지는 것은 사적인 것만이 아니라 보편적인 경험이다. 시인은 이것을 포도나무라는 이미지를 통해서 개성있게 구현한다. “얘야 내 포도를 네가 먹으니 즐겁구나 (…) 아버지 껍질눈이 웃으신다 알맹이 발라먹고 뱉은 아버지 껍질눈이 (…) 어린것들 바라보며 웃고 계신다”(「포도나무 아버지」). 마찬가지로 고통받는 희생양의 표상이던 어머니 역시 「어머니 독에 갇혀 우시네」와 같은 시편에서 “어머니 커다란 독에 갇혀/ (…) /마른 바람의 혓바닥으로 우시네”라고 술회하는 것처럼 한결 서늘하고 깊어진 시선으로 포착하고 있다.

 

 

 

“돌너덜겅 지나//양손에//아버지와 형의 두개골을 들고 걸어가는”(「이장」), 또는 “살점이 하나도 붙어 있지 않은 뼈의 얼굴 뼈의 입이 벌컥벌컥 물을 마시고 있다”(「개의 두개골을 보다」)에서 보듯 여전히 그의 시에는 섬뜩한 죽음의 이미지들이 끊임없이 떠다닌다. 그러나 그것은 고통의 선혈이 낭자하던 날것 그대로의 모습이라기보다는 “진종일 시의 뼈다귀 하나만을 물고 핥고 빨고 논”(「마스크를 쓴 개」) 뒤에 생겨나는, 조용하지만 더 능수능란해진, “오직 한 길 생산도(生産道)를 닦는”(「기계는 기계의 염주 베어링을 돌린다」) 숙련공의 모습이다.

 

 

 

이수명 시인은 유홍준의 시가 갖는 힘에 대해 “사물들을 불러내는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감각이 우리의 삶을 농밀하고 강렬하게 만든다”며 높이 평가하고 있다. 평론가 최현식은 “유홍준은 의외성과 돌연성을 능숙하게 구사함으로써” 개성적 보편성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고 확언한다.

 

 

 

또한 시인의 ‘흉터’는 가난한 다른 생의 모습까지 보듬는 너른 시선을 가지게 되었다. “끝끝내 우리 집이 되지 못한 (…) 언덕배기”(「도화동 공터」)를 응시하거나, 안마사와 택시기사의 대화를 옮겨적으며 천국 가는 길이 “그다지 먼 길 아니었다”(「천국 가는 길」)고 털어놓는다. 회색 벽과 축축한 구석과 파리와 바퀴벌레에게 밥을 권하는, 「지하급식소」에서 점심을 먹는 사람의 이야기는 감상이 끼어들 틈 없이 써내려간 시편이지만 독자는 어쩔 수 없는 감동을 느끼게 될 것이다. “싸구려 비닐구두를 구겨신고 (…) 생면부지 사내의 어깨 빌려 (…) 깊이 잠든” 「복숭아밭에서 온 여자」나, “두 눈 때꾼해지는 야근을 마치고/공단 식당 허름한 방석 위에”서 “희멀건 밀양돼지국밥/한 뚝배기” 받는 사람(「푸른 도장」)의 이야기 역시 넓어진 세계를 증명하는 변주들이다.

목차

오월
복숭아밭에서 온 여자
얼음나라 체류기
소음은, 나의 노래
의자 위의 흰 눈
저울의 귀환
포도나무 아버지
문맹
붕대
다방에 관한 보고서
사진관 의자
수평선
아교
민박
토끼
나는, 웃는다
푸른 도장
개의 두개골을 보다
꼬리를 머릿속에 집어넣고 다니는,
몽유도원도
그의 흉터
반쪼가리 노래
모래 속의 얼굴
지구의 가을
의족
도화동 공터
이장
물고기 꿈
일주일 후,
반달
아스팔트 속의 거북
한 아름의 실감
백년 정거장
마스크를 쓴 개
尾行
검은 관 위의 흰 백합
저녁이 오면 고기가,
어머니 독에 갇혀 우시네
은사시나무 길
천국 가는 길
안개가 흘러나오는 수화기
빌어먹을 동백꽃
지하급식소
팔만대장족경
오토바이와 쟁반
외장포 일기
눈썹벌레
계단을 찾아서
기계는 기계의 염주 베어링을 돌린다
사하촌의 봄
가봉이 덜 된 옷들이,
배추벌레
내 입술에 씌우는 콘돔
문 열어주는 사람
몽블랑 만년필
어안이 벙벙하다
벚꽃나무
꿀맛
직방
주석 없이
벌레 잡는 책
북천

해설_최현식
시인의 말

수상정보
저자 소개
  • 유홍준

    1962년 경남 산청에서 태어났다. 1998년 『시와반시』신인상에 「지평선을 밀다」 등이 당선되어 등단했고 시집으로『喪家에 모인 구두들』『나는, 웃는다』『저녁의 슬하』가 있다. 2005년에 젊은 시인상을, 2007년에 시작문학상과 이형기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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