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종오 시인이 4년 만에 새 시집 『무언가 찾아올 적엔』을 간행했다. 1981년 창비시선 『벼는 벼끼리 피는 피끼리』를 간행하여 당대의 가파른 현실의식을 보여준 하종오 시인은, 지난 10년간 현실과 초월의 아슬아슬한 경계를 그려냈던 ‘님’의 세계를 벗어나 현실 속의 자아를 발견하는 자리에 와 있다.
자신의 삶과 시의 존재방식을 바꾸려 한 시인의 고투의 결과가 이번 시편들에 잘 드러나 있다. 보이지 않던 삶의 여러 부분을 조명하는 시인의 눈은 이제 밝음을 되찾아 새로워졌다. 그 새로움이 자연에 대한 깨달음을 통하여 시인이 우려하는 여러 세계간의 단절을 이으려는 시적 성취로 나타났다.
「초봄이 오다」에서 시인은 산수유 한 그루를 텅 비어 있는 집안으로 옮기고 있다. 이 ‘옮김’은 농경사회를 잊은 지 오랜 도시생활 속에서 시인이 가까스로 얻은 시적 행위이다. ‘뚜두두둑’ 하고 산수유 뿌리가 뜯기는 소리는 화자의 귀를 통해 주변 산수유의 꽃망울 터지는 소리로 이어지면서 시집 전체를 환기한다. 이 산수유는 곧 시인 자신으로 비춰지는데, 노란 꽃망울을 터뜨리는 산수유는, 박영근 시인이 해설에서 밝힌 것처럼 시인의 내부에서 피어나는 자연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개화이다.
이러한 시세계는 「살아서 가는 법」에서 육화되었다. 수직 상승이 아닌 등나무의 하향성은 하종오 시인이 체득한 한 경지라 할 수 있다. 수직 상승에서 휘어져 내려오는 등나무는 대지의 냄새를 맡았다. 이 등나무의 휘어짐이 이번 시집의 여러 시편들 속에 실뿌리들처럼 연결되어 있다. 세상을 떠난 어머니에 대한 기억, 고향에서의 식사를 통해 화자는 까마득히 잃어버린 농경시절의 추억을 재현하면서 은근히 문명을 비판하고 있는 자못 지친 자신의 몸을 발견하는 것이다.
실적과 경쟁을 강요하는 도시의 삶 속에서 일탈하려는 자신의 실종을 그린 「일개미 한 마리」에서도 시인이 적극적으로 암시하고 있는 내밀한 발언들은 불가피한 현실대응과 치열한 자기고민에서 비롯된 결과이기에 이 시집은 하종오 문학에서 중요한 착지라고 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