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은 시인이 새 시집을 간행했다. 『두고 온 시』에 수록된 시들은 모두 신작시들이다. 작년에 『순간의 꽃』을 펴낸 지 1년 만이다. 이 시집의 제2부에 수록한 50여 수의 작은 시들은 『순간의 꽃』에 이어지는 시편들로서 고은 시인이 각별한 의미를 부여하였다. 그리스 경구시나 근세 일본의 하이꾸와는 다른 시형식을 만들고 있다. 시인은 이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또한 나 자신도 굳이 이 작은 시편들을 禪家의 게송과도 일정한 차이를 두고 싶은 것이다. 형식이되 자유인 것, 그래서 형식이 촛농처럼 녹아내려야 촛불이 환해질 것이다. 나는 서사의 진행에 한없이 홀려 있거나 서정의 확대에 기울어지는 일 아니고도 이런 작은 시의 현재를 늘 체험하고자 한다.”
이 시집의 제1부는 나라 안의 여러 지점에서 얻어진 표상의 내재화가 눈에 띄고 있지만 나라 밖의 도처에서 고은 시인이 삶의 정체성을 돌아보는 흔적도 의미있다. 제1부를 ‘순례의 시편’이라 한 것도 그 까닭이다. 사실 고은 시인에게 지난해는 여러 나라 시축제에 불려다닌 한해였다. 특히 유네스코 세계 시 아카데미 창립대회와 관련하여 고은 시인은 해외활동에 누구보다 앞장서고 있다. 해외활동을 통하여 고은 시인은 시의 진정한 해맑은 얼굴을 발견하기에 이른 것 같다. 그 결과물이 이번 시집이다. 비록 수많은 지구상의 언어들이 사멸의 위기를 맞고 있고 정보통신시대에 시의 존재의미가 위협받는 것도 사실이지만 고은 시인은 바로 시의 얼굴을 절실하게 찾고 싶었던 것이다.
외국여행을 통하여 얻은 수확으로는 「아시아의 작은 산들」을 비롯하여 「화이트마운틴」「빅서에서」「히긴스 비치」등이다. 이러한 외국여행시는 단순한 여행시가 아니라 자신과 조국을 돌아보게 하는 촉매제가 되면서 고은 시의 영역과 의미를 한단계 높이는 계기가 되었다. 그런가 하면 고은 시인의 이번 시집에서 한가지 의미있는 것은 숲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이 숲은 새로운 호흡을 느끼게 하고 그리고 소년의 노래로 돌아가는 마음을 내비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또 「토함산」 등의 시편에서는 석굴암의 발견 과정을 노래하면서 한국 내지 불교의 운명을 극적으로 환생시킨 점이 돋보인다.
독자가 고은 시인의 노래를 따라잡기는 쉽지 않다. 그는 너무 빨리 상상의 전환을 불러일으키며 걸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카리브 바다에서」가 출렁이면 저기서「휴전선」 155마일이 출렁인다. 또 40년 만에 찾은「이어도」란 시가 있는가 하면 그는 어느새「안면도」에 가 있다. 이것이 고은 시인의 행방이다. 고은 시인은 도처에서 피어나고 있다.
이번 시집의 해설을 서울대 교수이자 문학평론가인 김성곤씨가 집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