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편의 시를 모아 최정례 시인이 새 시집을 펴냈다. 지난 시집에서처럼 최정례 시인은 여전히 시간과 기억에 관한 주제를 붙잡고 있다. 시인은 “기억 속에 시간은 조각조각 흩어져 있다. 안개와 함께 떠돈다. 그 시간의 파편 속에서 내가 모르던 나의 실재를 끌어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 속에서 나를 이해하는 것이 다른 사람과 이 세계를 이해하는 한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따라서 시인의 관심은 ‘나의 실재’를 끌어내는 일과 ‘다른 사람과 이 세계를 이해’하고자 하는 것이 이번 시집의 주요한 의도이며 그 주제를 ‘시간의 파편’을 조합하고 분해하는 방법으로 드러내고 있다.
시인은 파헤쳐진 흙, 죽은 고래, 동물원의 사슴 등은 시인 자신의 팔다리이며 꼬인 창자들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시인의 얼룩이며 결핍이다. 이 시집은 결핍의 얼룩을 통해 다른 이의 얼룩을 안고 덧없는 순간으로부터 벗어나는 시편들로 채워져 있다. 하지만 시인은 돌멩이 하나가 허공에 떠 있는 순간의 짧은 작열감을 타고 시의 어떤 순간이 오기를 기다렸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착란의 순간은 짧고 거의 모든 시간 동안 돌멩이는 땅바닥에 팽개쳐져 뒹굴 뿐이다.
평론가 이광호 씨는 최정례 시인의 작품들이 시간을 기억하는 시들이 아니라 시간의 균열을 파고들어 그 파편들을 호명해내고 비상의 욕망과 그 불가능성을 동시에 응시한다고 하였다. 바로 그곳에 순간의 관능적 희열과 추락의 예감이 동시에 숨쉰다. 그러나 이 절망적인 비상을 포기하지 않고 시간의 파편들을 확인한다. 이러한 증거를 이광호 씨는 [3분 동안] [무너지기 전에] 등에서 분석해내고 있다.
최정례 시는 마치 예리한 침묵처럼 삶의 근원적 모순과 결핍을 파고드는 흡입력을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