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책 소개

[전라도] [백제] 연작시로 잘 알려진 이성부(李盛夫) 시인이 5년 만에 일곱번째 시집『지리산』을 출간했다. 전 시집『야간 산행』(1996)에서도 산에 대한 시들이 많은 비중을 차지했지만, 이번에는 모든 시편이 ‘내가 걷는 백두대간’이라는 부제를 달고 연작시집의 형태를 이루고 있다. 시인을 이처럼 산에 빠져들게 한 배경에는 ’80년 광주’ 체험이 있다. 시인은 현실적 문학적 고향인 광주가 무너지는 것을 보며 한없이 절망하고, ‘살아남았다’는 죄의식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뿐만 아니라 이 거대한 부조리와 폭력은 그에게 시어에 대한 불신을 가져다주어 시를 쓰지 못하게 한다. 이런 그에게 탈출구로서 산이 다가왔다. 처음에는 현실도피와 자기학대로 시작한 산행이 차츰 구원과 자유를 향한 길을 열어준 것이다. 산은 시를 버리고 산행에 몰입했던 그에게 다시 시를 쓰게 만들었다. 폭력과 부정의 세계는 산을 통해 긍정적인 것으로 변화되고 시들도 예전에 비해 한결 부드럽고 잔잔한 어법으로 전개되고 있다.

백두대간 종주를 계획해서 토막토막 실행하고 있는 그는 우선 지리산을 오르면서 쓴 시편들을 이번 시집에 담았다. 능선과 계곡들에 서려 있는 역사의 상처들은 시를 통해 부활한다. 역사의 고통을 가슴에 안고 잠을 못 이루고([있어도 걱정 없어도 걱정]) 아파하는 시인은 깊은 연민과 사랑을 가지고 격렬했던 시대와 인물들은 위로한다. 빨치산과 토벌군의 대립, 이념의 대립을 화해로 변화시키고([양수아가 토벌군을 사로잡다]), 주검들을 쓰다듬어 지리산이라는 화엄에 진혼한다([젊은 그들]).

산행에서 접하는 선인(先人)들의 삶에서도 시인은 지혜와 교훈을 놓치지 않는다. 남명 조식, 최치원, 김일손, 청허당(서산대사), 도선국사, 김개남, 매천(梅泉) 황현 등 많은 역사적 인물들이 시 속에 등장해서 깨우침을 주기도 하고 세상을 질타하기도 한다([남명선생] [도선국사]).

이 지혜는 산에 든 시인에게 현재의 어지러운 세상을 풍자하고 꿰뚫어보게 한다. 옳고 그름을 판별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질타하고([통천문을 내려가며] [또 다른 일출]), ‘부정부패 부조리 지역감정’ 같은 것도 산의 일몰처럼 ‘어둠속에 묻어’버리라는 가르침을 준다([반야봉에 해가 저물어]). 이처럼 과거는 잊혀질 대상이 아니라 현재의 삶에 가득 차 있고 현재를 새롭게 태어나게 하는 힘이 된다. 역사는 늘 현재와 겹쳐져 우리의 시야를 넓혀주는 것이다([그 산에 역사가 있었다]).

산을 통해 얻은 깨달음과 자기성찰이 빛나고 있는 점이 이번 시집을 주목하게 한다. 산속에서 길을 잃고 오르막과 내리막을 반복하면서 인간은 성숙해지고 인생의 고단함을 배운다는 평범한 진리를 탁월하게 그려내고 있다. 이는 시대적 반성과 문학적 회의를 거치고 산과 하나가 되어 넉넉함과 직관력을 지닌 이성부만이 할 수 있는 작업이다.

지리산은 이제 그에게 힘과 부정이 표출되는 이념의 상징이 아니라 ‘마음속 깊은 고향([지리산])’으로 따뜻하게 자리잡았다. 그러나 이 고향은 안주의 대상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의 원동력이 된다. ‘안정과 안주에 길들여진 사람은 결코 다른 세계로의 열림을 볼 수 없다(‘시인의 말’)’는 시인에게 산은 늘 ‘새로운 길’에 서게 하고 ‘우리들 모두 꿈과 희망을 가득 채우고’ 가게 하는 존재이다([우리를 감싸안고 가는 길]). 지리산을 지나 백두대간으로 뻗어올라 이어질 그의 시의 행로를 지켜볼 일이다.

목차

서시 ― 산경표 공부

제1부

그 산에 역사가 있었다
중산리
남명선생
다시 남명선생
좋은 사람 때문에
산죽(山竹)
치밭목 산장
정순덕에게 길을 묻다
소금길 소금밥
축지(縮地)
칠선골
달뜨기재
도령들의 봄
천왕봉 일출에 물이 들어
또 다른 일출
통천문 내려가며
제석봉
고사목
성모석상의 사연 알아보니
성모석상의 말

제2부

지리산
산길에서
백무동
한신골에서 나를 보다
유두류록이 헤아리는 산
김일손이 이렇게 말하였다
가는 길 모두 청학동이다
청학동에 사는 남난희
쇠통바위가 열린다
소녀전사의 악양 청학이골
외삼신봉
세석고원이 옷을 입었다
쌍계별장을 나서며
화개동천에서 최치원을 보다
단풍이 사람을 내려다본다
날망과 등성이
대성골에서 비트를 찾아내다
젊은 그들
정규화 시인에게

제3부

청허당을 흉내내어 쓰다
금줄
이현상 아지트에 길이 없다
화가 양수아의 빗점골 회고
양수아가 토벌군을 사로잡다
오토바이
벽소령 내음
벽소령을 지나며
어찌 헤매임을 두려워하랴
대성골이 너무 고요하다
통곡봉은 아직 울음을 그치지 않았는가
숨어서 내뱉는 시
막걸리를 노래함
배반하는 것이 사랑이라고?
있어도 걱정 없어도 걱정
한눈 파는 발
귀신 형용
뼈다귀들 나무 사이로
그리움
풍경

제4부

24번 국도
아름다운 돌이 불길을 다독거렸다
파아골 다랑이논
피아골 산장에서 들은 이야기
남겨진 것은 희망이다
반야봉 꽃안개
뱀사골에서 빠져죽은 고정희 생각
서둘지 않게
그들은 지금 어디 있는가
오월
반야봉에 해가 저물어
노고단에 여시비 내리니
보석
김개남의 사진 한장
달과 바람을 끄집어오다
도선국사
매천선생의 절명시를 흉내내어
처용을 닮아간다
정월 보름날 복조리가 하는 말
화가 한 사람
전적기념관
우리를 감싸안고 가는 길

시인의 말 / 산속으로 뻗은 시의 길
지리산 지도

수상정보
  • 2001년 제9회 대산문학상
저자 소개
  • 이성부

    1942년 전남 광주 출생, 경희대 국문과 졸업. 1962년 『현대문학』에 『열차』 등으로 추천 완료되었고, 196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우리들의 양식]이 당선되어 작품활동 시작. 시집으로 『이성부 시집』(1969) 『우리들의 양식』(1974) 『백제행』(1976) 『전야』(1981) 『빈산 뒤에 두고』(1989) 『야간산행』(1996) 『지리산』(2001) 『작은 산이 큰 산을 가린다』(2005) 등이 있음. 현대문학상(1969), 한국문학 작가상(1977) 대산문학상(2001)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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