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보다 더 단단한 마음을 갖고 싶어”
시로 ‘마음의 온도’를 맞춰주는 싱고의 ‘토닥토닥’ 웹툰 에세이
2014년 첫 시집 『싱고,라고 불렀다』를 펴내고 시인으로서 활발하게 활동하던 신미나 시인이 어느날 ‘싱고’라는 이름으로 독자들에게 스케치북을 건넸다. 스케치북에는 단정하고 사랑스러운 그림들과 시 같은 에세이, 그리고 시 한편이 실려 있었다. 일상의 고민과 어린 시절의 추억이 따뜻하게 그려진 싱고의 시 웹툰은 독자들의 뜨거운 호응과 공감을 끌어냈고, 2015년 겨울부터 반년 남짓 창비 네이버블로그에 ‘시 읽어주는 누나, 詩누이’를 연재하면서 출간 전부터 큰 기대를 모았다. “종이책을 벗어나 다른 방식으로 시를 읽어보면 어떨까?”(작가의 말, 295면) 하는 고민에서 시작한 싱고의 웹툰 에세이는 시 읽기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면서 일상에 지친 우리의 마음을 토닥토닥 위로해준다.
『詩누이』에는 시인 자신의 캐릭터인 ‘싱고’, 그리고 그녀와 십년 넘게 함께 살고 있는 인간 나이 69세의 고양이 ‘이응옹’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좋은 시를 읽으면 눈을 반짝”(7면)이는 싱고는 일곱 남매의 막내딸로 태어나 취업대란과 비정규직의 설움을 겪었던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평범한 30대 여성으로, “핀란드의 할머니처럼 우아하게 늙고 싶고 환갑이 넘어서도 스웩을 잃지 않는 힙한 할머니가 되고 싶다”(8면)는 꿈을 가지고 있다. “좌로 봐도 둥글, 우로 봐도 둥글어서”(11면) ‘이응’이라 불리며 싱고와 함께 사는 거묘(巨猫) 이응이는 종종 싱고에게 잔소리를 하기도 하지만 싱고에게는 더없이 각별한 친구이다. 이들은 서로 툭탁거리면서도 일상의 고락을 함께하고 서로의 온기를 나누며 삶의 소중함을 알아간다.
싱고가 가만, 묻습니다
“나는 나와 잘 지내고 있는 건지, 정말 괜찮은 건지”
싱고에게 시는 고민의 시작점이 되기도 하고 위안의 실마리가 되기도 한다. 빙수를 먹다가 ‘시원한 곡선’을 그리는 송승언의 시 「커브」를 떠올리며 상쾌한 기분을 느끼기도 하지만(「시원한 곡선」), “걸어가다가 넘어질 뻔하거나 내려야 할 정류장을 그냥 지나쳐버릴 때”(33면), 혹은 “마음에도 없는 말을 많이 하고”(17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싱고가 길 위에서 줍는 시 한편은 우리의 마음을 울컥하게 한다. 오늘도 출근해서 나의 진심과는 상관없이 다른 사람만 배려하느라 애쓴 자신에게 싱고는 박소란의 시 「설탕」을 건네며 묻는다. “나는 나와 잘 지내고 있는 건지, 정말 괜찮은 건지”(21면).
타인의 기분을 억지로 맞추다보면
상대방이 원하는 말을 고르게 되고
팽팽하게 다잡았던 마음에
올이 풀려버려서
가장 중요한 게 빠져나가는 느낌(…)
이제 괜찮다고
한결 가벼워졌다고 설탕을 입에 털어넣지만
입속에 남은 단맛을
혀로 느끼면서
가만, 물어보게 됩니다
나는 나와
잘 지내고 있는 건지
정말 괜찮은 건지(「당신은 다정한 사람입니까」)
길을 걷거나 버스를 타고 가면서 싱고는 자주 생각에 잠긴다. ‘오늘도 이불킥’하며 잠 못 드는 밤에는 나의 감정상태를 알려주는 ‘뚜뚜뚜 센서’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귀여운 상상을 하기도 하고(「뚜뚜뚜 센서가 필요해」), 예뻐서 샀지만 길들일 수 없었던 구두 한켤레로 타인과의 관계를 생각하기도 한다(「서로에게 길들여진다는 것」). 일곱 남매의 막내딸로 태어나 유독 형제가 많았던 어린 시절을 떠올릴 때면 언니들과의 일화로 웃음 짓다가도 “더이상 엄마가 담가준 김치나 들기름을 맛볼 수 없는 날이 오게”(188면) 될 걸 생각할 때면 마음이 아릿해지기도 한다.
싱고는 일상의 소소한 일화와 추억을 이야기할 때는 담백하고 유머감각이 넘치는 한편, 우리 사회의 문제를 외면하지 않고 시인 신미나로서 단단한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세월호사건을 오래 기억하기 위해 정호승의 시를 읽어주고(「내 이름은 홍순영」), 강남역 살인사건을 겪어야 했던 우리에게 김혜순과 도종환의 시를 건네며(「당신이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당신이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누구의 사랑이든 존중받아야 하는 것임을 김현의 시로 말한다(「두려움 없는 사랑」).
폭력은 흔한 일이고
그런 일은 내 잘못으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니
몸가짐을 조심해야 한다는 것만 배웠습니다
그 말은 태어나보니 지뢰밭이고
어디에 지뢰가 숨어 있을지 모르니
알아서 피하란 말과 같았습니다(…)
그러나 나는
언제 어디서
지뢰를 밟을지 모릅니다
다리를 잃은 인어공주가 되고 싶지 않아요(「당신이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싱고는 시를 읽고 그림을 그리는 동안 “한편의 시가 말을 걸면, 자연스럽게 다른 이야기가 물꼬를 트고 흘러나오길 기다렸”(296면)다고 말한다. 시와 그림이 잘 어우러지길 바라는 싱고의 마음이 따뜻한 책 한권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청춘이 뭐 이렇게 시시한가”(222면) 하는 편벽한 마음이 들 때, “다른 이와 주파수를 맞추며 사는”(120면) 게 힘들게 느껴지거나 야근을 하다 막막해질 때, 혹은 그저 엄마가 그리울 때 ‘詩누이’ 싱고가 건네는 시와 그림을 선물처럼 받아보길 바란다.
시와 친해지고 싶은데, 어떤 시부터 읽어야 할지 막막하다면 가벼운 마음으로 이 책을 펼쳐주세요. 되도록 천천히, 시간 날 때마다 한편씩 읽어주세요. 잊은 듯이 지내다가 이 책에서 봤던 시와 그림이 떠오른다면, 그것대로 보람이겠습니다.(작가의 말, 29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