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론과 식민지 조선문학

책 소개

『동양론과 식민지 조선문학: 제국적 주체를 향한 욕망과 분열』은 그간 한국문학사에서 ‘암흑기’로 통칭되면서 극에 달한 일제의 폭압에 저항하거나 굴종한 역사로만 기록되어온 1940년대 문학의 다양한 면모를 재조명한다. 서구적 근대를 넘어서 세계를 재편할 중심세력이 되고자 한 일본제국주의의 이데올로기 ‘동양론’의 영향관계가 이 시기 한국문학을 다시 조명하는 키워드이다. 해방 이후 독립국가 건설요구에 부응하기 위한 문학사적 평가가 ‘암흑기’ 규정을 만들어내는 과정, 저항문학 아니면 친일문학이라는 추상의 이분법이 담지 못하는 1940년대 문학의 실질이 이태준•이기영•김남천•김내성•최재서•김중한 등의 문학활동과 작품분석을 통해 흥미롭게 드러난다. 이 연구서는 순수한 탐미적 동양주의나 저항적 면모를 지녔다고 알려진 작품세계의 밑바탕에 깔린 ‘제국주체’를 향한 열망을 살펴보고, 일제 정책에 적극 부응한 지식인들이 식민지조선의 현실 앞에서 했던 갈등의 실체를 탐구한다. 저자는 근대 비판의 사상이면서 동시에 제국주의 이데올로기인 동양론을 통해 식민지현실에서 벗어나 보편주체로 신생하고 싶어한 이 시기 문인•지식인을 ‘이카루스의 후예’로 명명한다. 이들의 보편과 주체화를 향한 모험과 좌절을 직시하는 것이 해방후 굴절된 근대화의 길을 걸어온 한국 사회와 문학을 제대로 이해하는 기초임을 역설하고 있다.

 

 

 

1940년대 한국문학 ‘암흑기’의 탄생

 

그간 한국문학사는 1930년대 문학을 한국 근대문학이 풍성한 결실을 맺은 시기로 특화하는 데 비해 2차대전 발발을 기점으로 한 1940년대 문학은 주체적 문학활동이 불가능했던 ‘암흑기’로 규정해왔다. 그러나 여기에는 한편으로 일제의 외적 강압을 부각하여 침묵과 협력의 문학활동을 합리화하려는 자기변명이 작동하고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를 통해 민족문학적 연속성과 동질성을 확보하려는 논리가 자리잡고 있다. 실제로 이 시기 한국문학은 동양의 공존과 평화를 지향한 탐미주의, 맑시즘을 근간으로 한 근대적응과 일제에 대한 저항, 현실을 수용하되 힘을 가진 주체를 열망한 친일적 면모 등으로 다양하게 나타난다. 문학이 현실세계의 폭넓은 반영이라면 이들 작품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서구적 근대에 대한 극복과 비판의 논리이자 한편으로 제국주의의 동원이데올로기로 작용한 ‘동양론’과의 영향관계를 조명하지 않을 수 없다.

 

 

 

‘동양론’의 변주와 식민지조선에 미친 영향

 

‘동양론’은 단일한 이론으로 탄생한 것이 아니며, 동양 담론은 일본의 제국주의적 팽창과 함께 다양하게 변주되며 폭넓은 자장을 흡수했다. 이 책에서 ‘동양론’은 1930년대를 전후해 본격화한 근대 비판과, 근대 이후의 시대원리를 모색한 일련의 논의를 포괄한다. 그간의 한국 근대화연구는 식민지시기 동양론을 일본제국주의 확장에 활용된 논리로 치부하여 배제해왔으나, 중층성을 지닌 동양론의 영향은 깊고 넓었다. 식민지현실을 살았던 당대의 누구도 서구 근대의 몰락을 전제하고 동양을 새로운 보편으로 상정한 이 논리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2부에서는 조선에 미친 동양론의 영향을 조명한다. ‘조선적인 것’의 원형을 찾는 작업은 ‘일본적인 것’과 만났고, 서양을 타자로 동양을 구성해 진보의 주체로 일본을 설정하는 동양사학으로 연결되었다. 동양적 질서를 구축하려는 논의 속에 조선의 근대주의자들이 동양주의를 매개로 제국적 주체를 열망하고 좌절한 과정, 일본의 전승이 이어지며 지리적 영토 확장이 가시화되는 시기, 인식의 거점을 만주와 중국대륙으로 이동하면서 피식민지인의 자아가 식민자의 면모를 띠는 과정이 주로 논구된다.

 

 

 

열망하고 분열하는 문학작품 속의 제국주체

 

1940년 전후 한국문학에서 동양론의 영향을 주로 받은 이태준(李泰俊) 이기영(李箕永) 김남천(金南天) 김내성(金來成) 네 작가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작품 속에서 이를 구현했다. 이들의 작품은 해방 이후 남북한 문학이 분화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연속적 주체성과 실패한 기획을 대표하는 것이기도 하다.

 

동양적 처사(處士)로 자처하고 정신적 동양주의를 배경으로 심미적 주체를 구성한 이태준의 작품세계는 해방후 남한이 부각한 순수문학•전통주의로 연결된다. 전체주의적 윤리 앞에서 이태준이 내세운 심미적 주체는 분열할 수밖에 없었으며, 이는 이후 작품에서 국가주의를 내면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동천홍』 『광산촌』 『처녀지』 등에서 생산문학과 사회주의적 전망을 공유한 이기영의 작품세계는 이분법적 대립구도를 갖는다. 생산과 소비, 농촌과 도시, 정신과 물질의 선명한 대비는 대동아공영과 서구적 근대의 이항대립 앞에서 대동아 계몽주체를 형상화하는 방식으로 드러난다. 그러나 해방후 독자적인 길을 걸은 북한문학계에서 이기영 문학이 구축한 집단주의•전체주의적 주체는 사회주의적 계급주체로 변모한다.

 

한편, 동양론이 부여한 보편주체에 매혹되면서도 식민지의 주변부성으로 분열한 김남천 문학의 주체는 해방후 실패한 신생국가의 기획을 표상한다. 계급과 민족을 내세우고 자기고발과 새로운 리얼리즘적 주체 구성을 모색하다 식민지 말기 사상전향에 이르는 김남천 문학세계는 ‘생활세계에 투신한 소시민문학’으로 규정되어왔다. 「길우에서」의 갈등하고 분열하는 개인(자아)이 『사랑의 수족관』에서 제국의 윤리를 펼쳐 보이기까지의 과정은 기존 김남천 문학의 반자본주의적 서사가 과학적 합리성에 대한 신뢰로 변모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 변모는 합리성과 질서, 조직된 사회적 윤리와 전체성을 앞세운 제국의 신민으로 주체화되는 것을 의미했다.

 

김내성의 스파이-탐정서사, 선풍적인 인기를 모은 『백가면』『태풍』 들이 보여주는바 식민지대중이 가진 ‘대동아’의 심상지리는 제국주의의 논리인 동양론이 대중화한 양상을 보여준다. 서구열강 스파이집단의 음모를 분쇄하기 위해 활약하는 조선인 명탐정은 사실상 일제의 국민화 이데올로기를 내화하고 제국주체로 우뚝 서고자 한 식민지대중의 또다른 얼굴이다.

 

 

 

1940년대 문학의 중층성, 오늘의 한국문학의 기원

 

일제말 『국민문학』을 이끈 최재서(崔載瑞)와 김종한(金鍾漢) 두 사람의 발언과 글을 집중적으로 조명하는 4부는 이들의 논리를 통해 1940년대 문학이 가진 중층적인 면모를 드러낸다. 1940년대, 이미 자명해져 벗어날 수 없어 보이는 식민지체제 안에서 ‘그 너머’를 꿈꿀 수 없는 문인•지식인으로서 이들이 보여주는 분열된 의식은 그 자체로 저항과 협력, 반일과 친일의 도식을 넘어서는 것이다.

 

식민지시기 동양론을 매개로 형성된 제국적 주체구성의 경험은 해방후 신생국가 기획과정에서 반복되거나 변용되었다. 이분법을 넘어 1940년대 문학을 조명하고 변용과 반복의 양상을 연구하는 것은 이제부터 이어져야 할 작업이다. 이는 또한 지금 한국문학의 기원을 탐색하는 일이기도 하다.

목차

서남동양학술총서 간행사|21세기에 다시 쓴 간행사
책머리에

제1부 ‘암흑기’의 탄생: 문학사에 나타난 1940년대

제2부 근대의 위기와 동양으로의 회귀
1. ‘동양론’의 발생과 전개: 겐요오샤에서 근대초극론까지
2. 동양문화론과 민족문화 구성의 관련
(1) 동양사학과 ‘조선적인 것’의 기원
(2) 동양주의미술론과 조선미술론의 형성
3. 근대주의의 파탄과 ‘국민문화’의 모색
(1) 맑스주의의 쇠퇴와 전향자의 동양론
(2) 빠리 함락과 모더니스트의 방향 전환
4. 대륙으로의 지리이동과 ‘조선인’ 정체성의 간극
(1) 중일전쟁과 ‘조선인’의 위치
(2) ‘대륙’이라는 장소와 식민주체로의 성형
(3) 전선기행 혹은 ‘국민화’의 환각여행

제3부 동양론과 제국적 주체 형성의 문학적 양상
1. 미적 주체 만들기와 심미화의 경로: 이태준
(1) 비동시적인 것의 동시성: 전통과 모던의 부조화
(2) ‘동양적 처사’라는 심미적 주체의 형성
(3) 전체주의 윤리와 심미적 주체의 분열
(4) 분열의 봉합과 국가주의의 내면화
2. 제국의 중심을 향한 욕망과 생산문학: 이기영
(1) 생산문학과 사회주의적 전망이라는 신화
(2) ‘동양/서양’ 대립의 변주: 생산/소비, 농촌/도시, 정신/물질
(3) 대동아의 계몽주체와 만주의 꿈
3. 주체의 분열과 모럴을 통한 자기구원: 김남천
(1) ‘계급’ ‘민족’ 범주와 ‘타락’의 내러티브
(2) 전체주의 윤리에 대한 매혹과 폭력의 예감
(3) 반자본주의 서사: 과학적 기술합리성과 사회주의적 윤리감각의 조우
(4) 보편과 특수 사이의 분열과 동요: 전향소설 연작과 ‘동양론’
(5) 폭력이 편재한 ‘생활세계’의 서사화와 전향자의 윤리감각
4. 대중문학이 상상한 대동아의 심상지리와 조선: 김내성
(1) 식민지 후반기 김내성 소설의 재계보화
(2) 『백가면』을 통해 본 김내성 스파이-탐정소설의 기본모형
(3) 대중서사 속의 대동아공영권론: 김내성의 『태풍』론

제4부 『국민문학』과 ‘암흑기’의 내면풍경
1. 『국민문학』 창간과 ‘조선적 독창성’론: 최재서
2. ‘국민시’의 이상과 ‘반도인’의 탄생: 김종한

제5부 결론: 1940년대 문학연구를 위한 제언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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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정보
저자 소개
  • 정종현

    鄭鍾賢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10년부터 1년간 쿄오또대학 인문과학연구소에서 외국인연구자로 식민지시기 제국대학의 조선유학생에 대해 조사, 연구했으며, 현재 동국대학교 문화학술원 전임연구원으로 재직중이다. 주요논문으로는 「해방기 소설에 나타난 귀환의 민족서사」 「사실, 과학 그리고 문학의 신생」 「미국 헤게모니하 한국문화 재편의 젠더정치학」 「신남철과 대학제도의 안과 밖」 등이 있으며, 공저서 『1919년 3월 1일에 묻다』 공역서 『고향이라는 이야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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