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무엇을 쓴다 해도

책 소개

“나는 내 옆의 사람을 끝까지 사랑하는 사람이다”
일상의 파문에서 ‘미지의 말들’을 포착하는 비명과 침묵

 

내가 네 미래의 책을 사랑할게/아직 떠오르지 않은 무지개를/거기서 뛰놀고 있는 너의 흰 발을/너는 숨 쉬지 않는다//나는 태어나지도 않았다/그런데 우리는 열심히 사랑하고 있다/땀을 뻘뻘 흘리며//미래의 씨앗들을 뱉고 있다/달콤할까 커다랄까/약속했어 정말이지//이제 너의 손가락이 만들어질 차례/끝까지 네가 씌어질 차례/단단해진다/봉긋해진다//우리가 함께 태어난다/한몸으로/아름답지 않지만/동시에 늙어가지만(「세번째여서 아름다운 것」 전문)

 

2004년 『현대문학』을 통해 시단에 나온 뒤 “시 언어의 혁명적인 가능성”(이광호)을 조용히 밀고나가며 독특한 발상과 낯선 화법으로 개성적인 시 세계를 펼쳐온 이근화 시인의 네번째 시집 『내가 무엇을 쓴다 해도』가 출간되었다. 『차가운 잠』(문학과지성사 2012) 이후 4년 만에 새롭게 선보이는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감정이 절제된 차분하고 담백한 어조로 일상의 소소한 풍경을 섬세한 관찰력과 감각적인 언어로 그려낸다. 욕망과 갈등이 들끓는 고단한 일상에서 마주칠 수밖에 없는 존재의 부조리함과 삶의 본질적인 문제를 냉철하게 응시하면서 “무감각하기만 한 일상의 시간”과 “나날의 삶이 기실 얼마나 메마르고 외롭고 위태로운 것인가를 알려주는 비명이자 침묵”(이영광, 추천사)의 목소리가 깊은 여운을 남기며 잔잔한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추천사
  • 언젠가 그녀의 남편과 통화하다가, 수화기 너머에서 잠깐씩 섞여드는 그녀의 목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그 목소리는 묻고 답하고 달래고 웃는다는 느낌으로, 귓가에 울렸다. 용건과 사무의 대화 저편에서 들려오는 알 듯 모를 듯한 말들. 그 말들이 웅성거리는 곳에, 책을 읽고 장을 보고 밥을 짓고, 상념에 시달리며 시를 쓰는 사람이 있었을 것이다. 온갖 감각이 얽혀 있는 곳인데도 이상스레 무감각하기만 한 일상의 시간에 불현듯 틈이 나고 파문이 일었을 것이다. 그런 생각 때문이었을까, 나는 끊겼다 이어졌다 하는 그 말들이 그녀의 시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목차

 

산유화
택시는 의외로 빠르지 않다
코맥스 200
내가 무엇을 쓴다 해도
왜 당신이 가져갔습니까
당신이 살아 있다는 것
유통기한
블루베리
요양원
대화
외로운 조지
태극당 성업 중
다시 사랑
세번째여서 아름다운 것
트렁크
그림자
스파이
비의 기록
집은 젖지 않았네
집으로 가는 길
미믹 버스
가짜 논란
네덜란드인과 결혼하기
두시
내 마음은 피바다를 건넌다
나의 소원
미역국에 뜬 노란 기름
도서관에 갔어요
…왔어요
사진 속에 딸기잼 한병
연못 속에 없는 것
나는 비자연
오르페
작은 불빛에도
삶이 모자라서
3
여주
뜻밖에도
햇살에 꽂힌 듯 허공에서 떨고 있는 잠자리와 나의 불편한 관계
모란장
놀이동산에 없는 것
대파에 대한 나의 이해
한쪽 눈을 지그시 감고
바나나 전선
탄 것
내 죄가 나를 먹네
두부처럼
이 집의 주인은
좋은 것들
중랑에는 뭐가 있을까
기찻길 옆 마을에서
눈사람
모과
새의 가슴
괴물은 얼굴에 발이 달렸네
졸업식
나의 친구

해설 장철환
시인의 말

수상정보
저자 소개
  • 이근화

    1976년 서울에서 태어나 2004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집 『칸트의 동물원』 『우리들의 진화』『차가운 잠』 『내가 무엇을 쓴다 해도』, 동시집 『안녕, 외계인』 『콧속의 작은 동물원』, 산문집 『쓰면서 이야기 하는 사람』 『고독할 권리』 『아주 작은 인간들이 말할 때』등이 있다. 김준성문학상, 현대문학상, 오장환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무수한 잘못 가운데 내가 불쑥 솟아올랐다는 생각. 생각 속에서 나는 천천히 무너져간다.

갑작스럽게 죽은 이들 옆에서 잔인한 호흡법을 배운다. 아직 살아 있는 사람들을 사랑해야 하는 일이 내게는 무척 어렵다.

‘버려진’ 시들이 여전히 내게 더 가까운 것 같다.
살아보지 못한 삶이 ‘나’라고 우겨본다.

2016년 8월
이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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