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하고 발랄한 젊은 평론가의 날렵한 현장 비평
문학 평론이라고 하면 으레 재미없고 딱딱하게 여기기 십상이다. 아동문학 평론에 대한 세간의 평도 이와 다르지 않다. 그런데 박숙경의 평론은 좀 다르다. 그의 비평은 솔직하고 발랄하고 재미있고 때로 통쾌하기까지 하다. 『보다, 읽다, 사귀다』는 저자가 아동문학 평론 활동을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쓴 글을 묶은 첫 평론집이다.
저자는 1990년대 후반부터 발표되는 작품들을 성실하게 읽고 비평적인 발언을 솔직하게 개진해 왔다. 아동문학의 활황기와 침체기를 두루 겪으며 쓰인 그의 글들은 지난 15년간의 흐름을 짚어 보면서 작품의 성과를 따져 보고, 우리 아동문학에 무엇이 부족한지 진단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아울러 영상문화 시대에 아동문학이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는 데도 공력을 들이는 등 날카로운 현실 인식에 기반한 현장비평들을 충실하게 담은 보기 드문 평론집이다.
이 책에서 먼저 눈길을 끄는 것은 제목이다.
1부에 수록된 글 제목에서 따온 ‘보다, 읽다, 사귀다’에 이 평론집을 관통하는 저자의 문제의식이 집약되어 있다. 오늘의 아동문학이 어린이들의 사랑을 받으려면 읽자마자 눈앞에 선하게 떠오를 만큼 잘 ‘보이고’, 문학만이 제공할 수 있는 ‘읽는’ 재미를 알려 주고, 만화나 애니메이션 못지않게 ‘사귀고’ 싶은 친구들을 선사해 줘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동시에 평론 역시 아동문학을 좋아하는 어른 독자들에게 잘 보이고, 잘 읽히고, 사귈 만한 벗이 되었으면 하는 게 저자의 일관된 생각이다. 교사, 학부모, 작가들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은 책이다.
‘이야기’의 관점에서 오늘의 아동문학을 비평한다
이 평론집은 아동문학에 대한 독특한 관점과 흥미로운 진단을 보여 주는데, 특히 ‘이야기’의 관점에서 아동문학을 바라본다는 점이 돋보인다. 독자들이 작품 속 ‘이야기’에 얼마나 몰입할 수 있는가에 따라 작품의 재미와 감동의 크기가 결정된다는 것이다. 또한 인물이나 사건 등 작품을 이루는 개별 요소들도 결국 이야기를 잘 살렸는가 아닌가에 따라 그 가치가 좌우된다고 분석한다. 한마디로 아동문학의 성패는 이야기 자체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기준으로 오늘의 아동문학을 바라보면 위기철의 『무기 팔지 마세요!』, 황선미의 『샘마을 몽당깨비』, 김기정의 『해를 삼킨 사람들』 등 빼어난 작품이 없진 않지만 전반적으로는 이야기가 턱없이 빈약한 편이다. 가슴 설레게 하는 이야기가 극히 드물거나 아예 이야기 자체가 없는 경우도 있다.
게다가 이야기가 있더라도 “어디를 가나 똑같은 아파트, 똑같은 교실 풍경, 그 틀 안에서 날마다 반복되는 일상과 고만고만한 경험들”(「이야기 자체로 말하라」)을 담은 생활동화들이 주류라는 것이다. 아이들이 문학을 외면하는 것이 시대적인 대세라는 점은 저자도 인정하지만, 그 전에 우리 아동문학은 어린이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이야기를 충분히 생산해 왔는가를 따져 묻는다. 동화작가는 ‘이야기꾼’으로서의 책무를 다하고, 동화와 소년소설은 하루 빨리 이야기의 본질을 회복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영상 시대 아동문학의 역할과 과제는 무엇인가
이 책에서 흥미로운 점은 대중문화 시대 혹은 영상문화 시대에 아동문학이 나아갈 길을 모색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아동문학에서 자신의 잠재력을 자극하고 실현해 줄 이야기를 찾지 못해 만화나 영화, 게임으로 떠나는 게 현실이라면 아동문학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저자는 아무리 영상문화 시대로 접어들었다고 하더라도 문자 언어만이 구현해 낼 수 있는 이야기 영역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영상은 수용자가 자신의 상상력을 적극적으로 개입시킬 여지가 거의 없는 데 비해 문학은 독자가 자발적으로 상상력을 펼치면서 이야기를 구축하고 전개하는 특별한 경험과 즐거움을 선사한다는 것. 즉, 문학은 ‘이야기 공급원’으로서의 독자적인 역할이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아동문학에서는 어린이 독자 대중의 자발적인 지지와 열렬한 사랑을 받은 작품이 거의 없었다. 이러한 점을 우려하며 저자는 우리 아동문학에 ‘문학적 이야기’와 ‘오락적 이야기’가 공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독자들은 삶의 깨달음을 얻거나 자신을 성찰하기 위해서 책을 읽기도 하지만 일상에 지친 심신을 달래기 위해 그저 오락용으로 읽는 경우도 많다. 어린이 독자 역시 마찬가지다.
무언가를 배우고 깨닫기 위해서 아동문학을 읽는다면 아동문학은 또 다른 이름의 족쇄가 될 것이다. 저자는 딱히 의미가 있지는 않아도 순수하게 오락적인 이야기, 즐겁고 신나게 즐길 만한 대중적 아동문학이 필요함을 개별 작품의 구체적 비평을 통해 선명하게 보여 준다.
우리 아동문학에는 친구로 사귀고 싶은 캐릭터가 없다
아이들이 스스로 찾아내어 정신없이 빠져드는 아동문학을 만들어 내려면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저자는 ‘친구가 될 만한 캐릭터’를 만들어 내야 한다고 피력한다. 아이들이 스스로 세운 베스트셀러라고 할 수 있는 ‘해리 포터’ 시리즈의 인기 비결 중 하나는 누가 뭐라 해도 캐릭터다.
저자는 긴장감을 놓치지 않는 스토리만큼이나 해리, 헤르미온느, 론 같은 캐릭터가 가져다주는 친근함과 생생함이 아이들이 이 시리즈에 열광하게 한 커다란 동력이었다고 분석한다. 그에 비해 우리 아동문학은 독자들이 마치 자신의 친구처럼 여길 수 있는 캐릭터를 만드는 데 인색하거나 서툴렀다는 것이다.
저자의 주장처럼 아이들이 자신을 투영하거나 동경할 만한 캐릭터가 있고, 자신도 그 세계의 일원이 되어 즐기는 가운데 일상의 피로를 덜고 읽는 보람을 느낄 수 있는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을 우리 아동문학에서 많이 만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