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국인이 아니다

책 소개

나는 아픔이며 고통이며 투쟁이며 연대다

자본과 권력의 무자비한 폭력에 맨몸으로 저항하는 처절한 삶의 현장에서 뜨거운 목소리로 희망을 노래해온 송경동 시인의 신작 시집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가 출간되었다. 2016년 ‘창비시선’의 문을 여는 첫번째 시집이자 시인의 세번째 시집이다. 지난 시집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창비 2009)에서 노동하는 삶의 핵심을 꿰찌르는 “사유의 깊이와 깨달음”으로 “한국 노동시의 새로운 지평을 예시하며”(염무웅) “빛나는 시의 한 정점을 보여주었”(정희성, 추천사)던 시인은 7년이라는 오랜 시간 뒤에 펴내는 이 시집에서 ‘어떤 빼어난 은유와 상징’ 혹은 ‘어떤 아름다운 수사’로도 형상화할 수 없는 삶의 밑바닥에서 길어올린 ‘피어린 시’들을 선보인다. “역사의 어둠에 빠져들지 않으려는 한 정직한 인간의 몸부림”이면서 “한 노동자 시인이 한국의 1990년대와 2000년대를 통과하며 제 몸속에 아로새긴 고통스러운 기억”(송종원, 해설)들이 선득한 공감 속에서 가슴을 울린다.

 

추천사
  • 시집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눈을 감는다.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 대」라는 브레히트의 시가 생각났다. “어떤 위대한 시보다/더 넓고 큰 죄 짓기를 마다하지 않기를”(「시인과 죄수」) 다짐하는 송경동에게 왜 좀더 서정적이고 기교적인 시를 쓰지 않느냐고 묻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목차

제1부

고귀한 유산

어머니의 나라말

MRI를 찍던 날

뻰찌 예찬

허공클럽

시인과 죄수

몸철학

바다 취조실

뒷마당

다른 서사

학문이 열리던 날

마지막 잎새

여섯통의 소환장

 

제2부

주문

문딩이 가족사

말더듬이

새벽 안주

결핵보다 더 무서운 병

소금과 나트륨의 차이

그 노래들이 잊히지 않는다

사다리에 대하여

국가, 결격사유서

사적 유물론

모자를 쓰고 싶었다

그리운 하루

 

제3부

진술을 거부하겠습니다

교조

관료

먼저 가는 것들은 없다

변혁을 위한 비빔밥

법외 인간들을 찬양함

우리 모두가 세월호였다

1%에 맞선 99%들

나비효과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

 

제4부

문장강화

저작권

자유권

빈자리

명경

모두가 떠나간 폐교

연인들

국보

가리봉 공구점

내가 앉아 있어야 할 자리

그 고양이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스모키 마운틴

 

제5부

공장은 무덤을 생산한다

기륭과 보낸 십년

경로

여덟발자국

너희는 참 좋겠구나

노동자들의 국기

우리들의 크리스마스

아직은 말을 할 수 있는 나에게

저녁 운동장

 

해설|송종원

시인의 말

수상정보
  • 2010년 제12회 천상병시문학상
  • 2011년 제29회 신동엽문학상
저자 소개
  • 송경동

    1967년 전남 벌교 출생. 2001년 『내일을 여는 작가』 『실천문학』에 시를 발표하며 작품활동 시작. 시집으로 『꿀잠』『사소한 물음들에 답함』『나는 한국인이 아니다』 등이 있음.

희망버스를 기획했다는 죄목으로 부산구치소 0.7평 독방에 갇혔을 때 비로소 자유의 참맛을 알았다. 하루 세끼 변기통에서 식기를 세척하다보면 마음이 한없이 소박해지고 깨끗해졌다. 하루 삼십분 창살 틈으로 들어왔다 가는 ‘다람쥐 꼬리’만 한 햇빛에 얼굴을 내밀어 해바라기하는 일이 참 놀라운 일이었다. 갇히고 나서야 내 안에서 세월이 흘러도 자라지 못한 채 어둡게 웅크리고 있던 한 아이를 떠나보낼 수도 있었다. 잘 가라. 한없이 아팠지만 고마웠던 세월이여. 너의 결핍을 통해 비로소 살아가며 귀한 일들이 무엇인지를 알았다. 그제야 ‘나’라는 작은 집착과 경계에서 조금은 자유로워져 성년이 되는 기분이었다.

내 경우처럼, 세월이 흐른다고 모든 시대가 저절로 성숙해지는 것은 아니었다. 모든 어른이 저절로 ‘어른’이 되는 것도 아니었다. 그 반대의 경우가 더 많았다. 어떤 미련과 상처 때문인지 중세의 거울 앞을 떠나지 못하고, 여태 봉건의 좁은 우물 속을 사는 이들이 있다. 야만의 근대를 악착같이 붙잡고 늘어지고, 끝내 분단 시대를 고집하는 이들이 있다. 자본의 시대를 마지막으로 역사의 종언을 고하고 싶은 이들이 있는 반면, 아직 역사의 외부는 더 있다고 믿고 다른 세계를 꿈꾸는 이들이 있다. 하나의 현대를 사는 것 같지만 ‘우리’가 모두 같은 동시대인은 아니었다. 결국은 나도 어느 자리엔가 설 수밖에 없었고, 그 자리들이 나의 시가 되기도 했다.

이렇게 나는, 이제야 내가 살아가는 세계의 초입쯤에 다다르게 되었다. 앞으로도 더 알아야 할 다름과 경이로움, 더 배워야 할 존중과 공존의 세계가 많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잃지 말아야 할 높은 용기와 신념의 세계도 많을 것이다. 시보다 먼저 살아야 할 일들이, 시보다 먼저 만나야 할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참지 말고 퍼부어야 할 말들이 있는 반면, 한없이 반성하며 작아져야 할 일들이 많을 것이다. 내 것으로 움켜쥐어야 하는 것들보다 공공의 것으로 내려놓아야 할 것들이 더 많을 것이다. 악독하고 비참한 일들도 많은 세상이지만 그보다 더 존엄하고 아름다운 일들로 가득찬 게 이 생명의 별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어떤 경우에도 우리가 살아가며 배우지 말아야 할 말 중 하나는 ‘절망’일 것이다.

2016년 2월
송경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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