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 비평의 인문학

책 소개

개념의 동시대성을 고찰하는,

인문학의 새로운 칼날

 

인문학 열풍 앞에서 그 미래를 모색하는 연구방법론이 나왔다. 『개념비평의 인문학』은 문학평론가 황정아(한림대 한림과학원 HK교수) 2000년대 후반부터 인문학의 여러 개념이 지닌 당대적 의의를 파헤치며 그것이 현대사회를 어떤 방향으로 이끄는지를 탐구해온 작업의 집적물이다. 개념사 연구의 대가 라인하르트 코젤렉이 ‘진보’ ‘평화’ ‘문화’ 등 추상화된 관념의 역사적 의미를 밝혔다면, 황정아는 그런 개념이 지금 이 시대에 사회적·문화적으로 어떤 흐름을 제시하는가를 탐구한다. 즉 개념사 서술에서 가장 최근에 해당하는 시기를 특별히 주목하는 연구방법론이다. 현재의 문제의식에서 “비평적 혹은 당파적 관점”이 출현해야 한다는 도전적 문제제기이자, 개념사학의 지평을 넓히고자 하는 이들에게 선사하는 새로운 칼날이기도 하다.

 

목차

책머리에 005

 

제1부 보편의 귀환

제1장 인권의 보편성과 정치성

제2장 동아시아 담론과 보편성

제3장 ‘윤리’에 묻혀버린 질문들

제4장 이방인, 법, 보편주의에 관한 물음

제5장 보편주의와 공동체:

바디우, 지젝, 니체의 기독교 담론

 

 

제2부 근대의 경계

제1장 ‘새로움’으로서의 근대성

제2장 법의 폭력, 법 너머의 폭력

제3장 생존과 자유 사이의 심연:

한나 아렌트의 정치 개념

제4장 ‘상상’의 모호한 공간과 민족주의:

베네딕트 앤더슨의 『상상의 공동체』 읽기

 

제3부 문학과 현실

제1장 리얼리즘과 함께 사라진 것들:

‘총체성’을 중심으로

제2장 실재와 현실, 그리고 ‘실재주의’ 비평

제3장 자끄 랑시에르와 ‘문학의 정치’

제4장 비평의 위기, 비평의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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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글 발표지면

수상정보
저자 소개
  • 황정아

    서울대에서 영어영문학을 전공하고 동대학원에서 D. H. 로런스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문학평론가로서 현대 영국소설과 한국소설 및 비평이론에 관한 글을 쓰고 있으며, 한림대 한림과학원 HK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은 책으로 『개념비평의 인문학』 『다시 소설이론을 읽는다』(편저) 『소설을 생각한다』(공저)가 있고, 옮긴 책으로 『아메리카의 망명자』 『왜 마르크스가 옳았는가』 『도둑맞은 세계화』 『이런 사랑』 『컬러 오브 워터』 『내게 진실의 전부를 주지 마세요』 『쿠바의 […]

개념비평에서 출발하는 인문학 연구

위기라고도 하고 열풍이라고도 하며 숱한 구설수에 시달린 인문학을 또다시 소환하게 되어 민망한 마음이 없지 않다. 이 소환의 이유가 우리 시대에 인문학이 처한 사정을 진단하거나 그러저러한 진단을 받은 인문학의 나아갈 바를 처방하는 데 있지 않다는 점을 서둘러 밝혀야겠다. 다른 어떤 엄숙한 근거에 앞서 무엇보다 인간으로 살아가는 일에 가장 밀착해 있기에, 인문학의 미래는 그리 염려하지 않는다.
인문학 연구의 새로운 방향에 대한 모색도 그간 여러 각도에서 이루어졌고 공공성, 운동성, 개방성, 통합성 등 인문학 연구가 갖추어야 할 성격이나 중심에 놓아야 할 가치에 관해서도 다양한 논의가 있었다. 그런 문제의식에 공감하면서 이 책은 분과학문의 경계를 벗어나는 동시에 현실에 더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인문학 연구의 방법으로 ‘개념비평’을 시도한다.
정직하게 말하면 이 책에 실린 글들을 쓰는 순간에 개념비평이라는 범주를 의식한 것은 아니었다. 이제껏 해온 작업의 일부를 책으로 묶어내면서 새삼 어떤 일관성을 찾아보려 했으니 이 범주는 실상 소급된 방법론에 불과할지 모른다. 더욱이 ‘개념비평’이라는 것 자체가 이미 존재하는 ‘개념’이 아니었는데, 이 책이 실제로 하고 있는 바에 비추어보면 개념에 ‘관한’ 비평이면서 개념을 ‘중심으로 한’ 비평이라 정의할 수 있겠다. (개념비평은 필자가 확인한 범위에서는 이런 의미로 사용되고 있지 않으며, 이와 비슷한 의미로든 아니든 널리 통용되는 이름이 아니다.)
개념에 초점을 둔 연구방법으로는 훨씬 일반적이고 익숙한 개념사(conceptual history)가 있고, 개념비평이라는 용어도 개념사라는 명칭을 근간으로 필자가 구상해본 것이다. 개념사 연구를 정착시켰다고 일컬어지는 라인하르트 코젤렉(Reinhart Koselleck)은 역사란 특정 개념들로 분명히 표현되는 정도까지만 이해될 수 있음을 강조했다고 전해진다. 그에게 개념은 역사를 인식하는 매개에 그치지 않고 사회의 (재)구성과 역사의 변화에 관여하는 주된 요소였다는 사실도 널리 알려져 있다. 개념사는 개념이 가진 이런 인식적·실천적 역량을 토대로 구축된 방법론으로, 필자가 소속된 한림과학원 인문한국(HK)사업단의 프로젝트 ‘동아시아 기본개념의 상호소통’을 포함해 한국 학계에서도 꽤 자리를 잡은 방법론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는 크게 두가지 이유로 개념사 대신 개념비평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먼저, 특정 개념을 다루는 방식에 있어 일반적으로 개념사에 기대하듯이 긴 시기에 걸친 개념의 의미 변화를 포괄하기보다 그 개념이 지금 이 시대에 어떤 사회적·담론적 결절을 형성하며 어떤 운동을 추동하는가 하는 점을 포착하는 데 방점을 두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개념비평은 개념사 서술에서 가장 최근에 해당하는 시기를 특화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또 한가지 이유는 ‘비평’의 측면을 강화하려는 의도 때문이다. 개념사 연구는 대체로 전근대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시기의 사회적·정치적 기본개념들, 곧 그 시기에 중요한 사회적·정치적 변화를 매개하고 재현한 개념들을 다루어왔다. 그런데 어떤 개념이 그와 같은 ‘기본’개념에 속하는가 하는 판단은 그 판단의 주체가 살아가는 시대에 어떤 개념들이 현재적 중요성을 갖는가와 맞닿아 있는 문제다. 따라서 개념사는 오늘날의 정치적·사회적 담론과 논쟁에서 중심적 위치를 차지하는 개념들에 민감해질 필요가 있으며, 그런 개념들이 개념사 서술에 알게 모르게 미치는 영향에 관해서도 더 의식할 필요가 있다. 개념비평은 개념의 역사적 변화를 추적함으로써 사회사를 서술하는 개념사가 현재의 개념지형을 의식하고 문제화해야 한다는, 곧 분명한 비평적 관점을 지향해야 한다는 주장을 함축한다.
책의 1부는 ‘보편의 귀환’이라는 제목을 달고 인권과 법과 윤리처럼 보편을 표방하는 개념들과 지역(동아시아)과 공동체와 타자처럼 보편과 문제적 관계에 놓여 있는 개념들을 살펴본다. 포스트주의의 이론적 득세와 ‘대안은 없다’는 이데올로기의 유포로 한동안 보편이라는 범주 자체가 기피되는 풍조가 지배했지만, 근래는 이 범주가 이론적·현실적 실천에 주요한 동력이라는 인식도 다시 등장하고 있다. 그간의 평가절하가 불가피할 뿐 아니라 불가결했던 면이 분명 있지만, 그 지향점은 보편의 폐기가 아닌 재구성이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기반으로, 여기서는 보편의 귀환을 주도하는 개념들을 중심으로 이 귀환을 둘러싼 담론 구도를 비평적으로 고찰한다.
‘근대의 경계’라 이름 붙인 2부에서는 근대의 자기의식으로서의 근대성 개념을 비롯하여 폭력, 정치, 민족, 국가 등 근대의 견고한 경계를 구축하고 있으며 따라서 탈근대 혹은 근대극복의 과제가 궁극적으로 직면해야 할 개념들을 살펴본다. 지난 수십년에 걸쳐 이 개념들은 하나같이 비판과 해체의 대상이 되어왔으나 그와 같은 비판과 해체를 통해 역설적으로 그 확고함이 입증되기도 했다. ‘경계’라는 표현은 뚫고 부수고 파괴해야 할 장벽을 암시하지만 경계를 구성하는 개념들은 어쩌면 ‘타고 넘는’ 식의 한층 복합적인 대응을 요구한다는 점을 강조하려 한다.
3부 ‘문학과 현실’은 문학이 담아야 할 현실성과 운동성에 초점을 둘 때 재조명이 필요한 개념들을 살펴본다. 한국의 문학담론에서 현실성이나 운동성과 관련해 가장 중요하게 떠오르는 이름은 (사실주의로 불리는 문학사조와 구분되는) 특유의 ‘리얼리즘’이다. 리얼리즘 역시 90년대 이래의 포스트 담론에 밀려 한동안 거론조차 되지 않았는데, 여기서는 리얼리즘의 핵심요소로 특히 비난의 표적이 되어 온 총체성 개념을 재평가하고 더불어 정신분석 담론의 영향으로 널리 운위된 실재 개념을 리얼리즘에서의 현실 개념에 비추어 검토한다. 또한 최근 한국 문단에서 이루어진 ‘근대문학 종언’ 및 ‘문학과 정치’ 논의에 주목하여 문학과 비평에서 작동하는 정치 개념을 짚어본다.

한데 묶고 보니 공부의 수준을 드러내는 데서나 공부의 궤적을 반영하는 데서나 글은 역시 정직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D. H. 로런스 연구로 박사논문을 쓴 이래 내 사유가 얼마나 깊어졌는가 하는 질문에는 도무지 자신있게 답할 수 없지만 여러 주제로 계속 관심을 넓혀온 것만은 사실이다. 물론 그런 관심의 확장조차 순수한 학문 내적 동기에서 비롯하기보다 여러 직장을 옮겨다녀야 했던 나의 사회적 위치가 강요한 것이기도 했다. 어떤 과정을 거치게 되든 언젠가는 더 풍부하면서도 분명한 자기 영역을 구축할 수 있기를 희망해본다.
현재 소속인 한림과학원을 비롯하여 내가 속했던 모든 공간에서 함께 일하고 공부했던 분들, 계간 『창작과비평』 편집진과 비평모임 ‘크리티카’ 동인들과 그밖에 함께 읽고 토론했던 모든 분들, 한결같이 힘이 되어주는 가족들, 특히 책 한권이 없다고 구박함으로써 이 책의 출간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남편 김중기, 그리고 미적대는 내 등을 떠밀며 격려해준 창비 출판사 염종선 편집이사, 난삽한 글을 꼼꼼히 읽어준 편집자들께 깊은 감사를 보낸다.

2015년 12월
황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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