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조/선/갑/을/경/제,
어떻게 뜯어고칠 것인가
『한국경제 대안 찾기: 경제정책 전문가가 제안하는 대한민국 개혁 매뉴얼』은 정대영 송현경제연구소장이 우리 경제의 불균형·불평등을 해소할 근본 대책을 제안하고자 내놓은 책이다. 정대영은 1978년부터 2012년까지 34년간 한국은행에서 금융안정분석국장 등으로 일하면서 통화·금융정책을 연구하고 현장경제를 배워온 ‘금융통’이자 ‘현장경제 전문가’로서, 지금은 여러 경제인·언론인·현장활동가 들을 만나며 현실성있는 대안을 주로 제시해왔다.
특히 이 책은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 이후 불거진 한국사회의 불평등 구조에 대해 매우 명쾌한 해석을 내놓고 있다. 저자는 피케티의 기본법칙을 토대로 하여 한국의 저축률, 국민소득, 성장률 등 구체적인 통계자료를 분석하여 한국의 소득불평등이 극심하다는 것, 그중에서도 한국의 상위 고소득자의 불평등도가 다른 나라에 비해 더욱 심하다는 것을 밝혔다. 다시 말해, 기업 경영진 같은 초고소득자보다는 의사·변호사 등의 전문직, 교수·공무원·공기업 직원 같은 광범위한 상위 소득자에게 소득이 집중되는 양상이 두드러졌다는 뜻이다. 이에 더해 주택임대소득, 상속자산 등의 한국사회 특유의 요소까지 더해지면 한국의 소득불평등도가 세계 최고 수준일 것이라고 못박는다. 즉 2015년 지금의 ‘헬조선’을 만들어낸 정치·경제·사회적 구조가 상당히 악질적으로 고착화된 것이다. 과연 그렇다면 이와 같은 ‘헬조선 갑을경제’를 완화할 방도는 무엇일까.
불평등 완화와 경제의 성장, 두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근본적 모색
불균형·불평등이라는 문제와 더불어, 점점 침체의 늪으로 빠져드는 경제에 어떻게 활력을 불러일으킬 것인가도 저자의 또다른 고민이다. 즉 불평등의 극복과 성장정책 강화가 문제해결의 두가지의 축으로 제시된 것이다. 그렇다고 과거와 같이 금리인하·환율인상·부동산 경기부양 등으로 성장률을 올리는 ‘쉬운’ 정책들은 한국경제의 왜곡된 구조를 심화할 뿐임을 강조한다. 이제는 다른 것을 떠나, 한국경제의 구조와 문제점, 특히 한국경제를 어렵게 만드는 문제의 뿌리를 차근차근 파헤쳐보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제1장 「한국경제의 흐름과 구조의 이해」는 한국경제가 흘러가는 양상과 구조를 다룬다. 피케티 이론을 통해 본 한국의 불평등, 국민경제의 순환과 경제구조, 한국의 잠재GDP, 금융위기와 한국경제 등을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설명했다. 저자는 “숫자 다루기를 거부하는 것이 가난한 이들의 이익에 도움이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라는 피케티의 말을 인용하면서, 분석의 모든 측면에서 통계를 꼼꼼하게 활용한다. 한국의 산업과 분배, 수요의 구조를 생산·분배·지출의 부문으로 나누어 분석하는 과정에서 금리·물가·국민소득 등의 핵심 개념을 짚어주는 부분은 ‘경제 가이드북’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준다. 이와 같이 경제 전체를 조망하는 방식은 ‘잘사는 나라에서 소득이 왜 불평등한가’라는 질문에 대해 다각도로 그 원인을 모색할 수 있는 틀을 제공해준다.
제2장 「한국경제, 무엇이 문제인가」에서는 문제의 근원을 탐색한다. 한국사회 전체에 큰 영향을 주는 근본 문제 중 첫째는 신뢰 부족과 이에 따른 불확실성의 증가다. 이는 공동체 의식을 훼손하고 불확실성을 높여 국민경제의 생산성과 경쟁력을 약화시킨다. 공무원 관료, 의사, 교수 등 특권적 이익집단이 국민경제의 성과를 과도하게 가져가는 것은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기본 원리와도 위배될뿐더러 양극화와 불평등의 뿌리가 된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상위 10퍼센트, 즉 좋은 일자리를 가진 소수의 이익집단이 높은 소득과 혜택을 누리는 것은 불공정한 제도와 정부의 과보호 탓이다. 제도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나머지 90퍼센트만이 시장원리 아래에 놓인다. 좋은 일자리를 얻기 위한 젊은층의 스펙 쌓기나 고시·공시 준비가 일반화되어 노동인구가 줄고 과학·기술 분야로 우수한 인재가 유입되지 않아 기업의 경쟁력이 떨어진다.
공무원 관료들이 벌이는 정책의 불투명성과 자의성도 중요한 문제다. 관료들은 강력한 권한과 과도한 재량을 지니고, 법률안을 제안하고 예산을 편성·집행하며 각종 인허가와 단속 등을 벌인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의 업무에 책임을 지지 않는다. 이는 곧 4대강사업, 부실자원외교, 론스타사태 등 어마어마한 경제대란을 부추겼다. 이외에도 금융산업의 낙후성, 어설프고 부실한 조세제도와 복지제도 등의 문제에 대해 짚어보았다.
한국경제, 정답은 따로 있다
제3장 「한국경제, 해법은 있다」에는 경제개혁을 위한 다섯가지의 해법을 담았다. 첫번째는 불평등 완화의 첫걸음이기도 한, 부동산시장 정상화 방안이다. ‘소득이 있으면 세금을 부과한다’라는 기본 요건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던 한국의 현실에 맞게 과세하되, 소액의 임대소득에는 세 부담을 없애는 등 도입 초기의 완충 장치를 마련하자는 현실적 방안도 뒤따른다. 또한 양도소득세와 보유세 등의 개선, 주거비 지원 등 세입자에 대한 지원 확대 등 세부적 대책에 이어, 저자는 주택시장이 급격히 나빠져 중산층이 붕괴되고 은행시스템이 망가질 것을 대비해 매우 상세한 비상계획을 제안한다. 더이상 부동산을 인위적으로 부양하지 않더라도 부동산시장을 정상화할 수 있다는 주장이 실증적으로 뒷받침되는 부분이다.
두번째 방안은 한국경제의 오랜 숙제인 ‘괜찮은 일자리’ 창출 방안이다. 이를 위해 직업 간 과도한 보상 격차의 해소, 비정규직과 중소기업 노동자의 노동조건 개선, 일자리창출산업에 대한 지원 등을 제시한다. 또한 새로운 직업 창출을 막고 있는 현행 법률과 제도를 개혁해야 함을 강조한다. 세번째는 한국의 가장 강력한 이익집단 중 하나인 관료의 개혁방안이다. 과감한 시도로만 보이겠지만, 행정고시 폐지 및 내부 승진 확대, 정무직 공무원 운영 개선 방안 등은 충분히 실현 가능한 정책들이다. 특히 정치와 관료 간의 야합을 철폐하고 채용의 공정성을 높이는 방안으로 ‘기관장 등 취임을 위한 국가자격시험’ 제도를 설계하여 그 세밀한 시행방안을 내놓는 부분은 정치개혁을 꿈꾸는 이들에게 좋은 아이디어다.
네번째로, 가장 낙후된 산업 가운데 하나이지만 좋은 일자리를 창출할 가능성을 지닌 금융산업의 발전방안,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조세제도와 복지제도, 연금제도의 개혁방향도 모색한다. 금융산업의 긍정적 모델로는 탄탄한 신용협동조합제도를 지닌 독일과 최근 금융감독체계 개편에 성공한 영국의 사례를 살펴본다. 조세정의를 확립할 수 있는 조세제도의 개선 방안을 논의하면서는 미국의 소득세 포괄주의를 검토했다. 연금지대의 사각을 줄일 수 있는 방안인 노인연대세 역시 흥미로운 제안이다. 마지막으로 중소기업과 농업 지원정책의 방향, 대표이사 연대보증제의 폐지, 자연의학과 우리 술 산업의 육성 방안, 아시아판 에어버스 사업 등 산업정책과 남북협력사업에 대한 몇가지 아이디어도 제시했다.
기존 한국경제 관련 도서들은 경제학계가 중심이 되어 ‘재벌개혁’ ‘경제민주화’ ‘복지’ 등을 다뤘다. 이와 같은 여러 프레임이 한국경제를 해석하는 하나의 통념으로 자리잡고 있는 지금, 이 책이 제시하는 구체적 정책들은 색다른 접근법이라는 평가를 넘어, 실제로 실현해봄직한 방안으로서 값어치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헬조선’ ‘갑을경제’가 현실이라면, 그 불공정·불평등의 근원인 특권과 철밥통을 깨기 위한 정책 또한 현실적이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