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70주년인 올해는 일본이 태평양전쟁에서 패전한 지 70년째가 되는 해이기도 하다. 1868년 1월 3일, 일본 메이지(明治)정부는 천황을 국가 원수로 내세우는 제국주의를 주창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80여년간 일본은 적극적으로 서구 문물을 받아들이는 개방 정책을 통해 ‘근대화’를 이룩했다. 풍부한 물자와 강력한 군대를 바탕으로 급성장한 일본은 동아시아 각국을 식민지배하며 제국을 건설했다. ‘제국일본’의 탄생이다.
오랜 식민지배와 연이은 대규모 전쟁. 제국일본이 동아시아에 끼친 영향은 엄청났다. 그러나 제국의 몰락은 순식간이었다.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를 하나로 묶는 ‘대동아 신질서 건설’을 외치며, 미국이라는 ‘외세’를 방어한다는 명분으로 일으킨 태평양전쟁에서 제국일본은 처참하게 패배했다. 그리고 한국과 대만을 비롯한 제국의 식민지들은 제대로 된 준비 없이 해방을 맞았다. 제국일본이 몰락한 이후 미국·소련이라는 새로운 질서 아래에서 동아시아에는 새로운 주권국가가 하나둘 건설됐다. 이른바 ‘포스트 제국’ 상황이다. 포스트 제국 시기가 시작되고 반세기가 지나 사회주의 소련이 몰락했고, 최근에는 서구·일본 등 제국의 침탈에 시달렸던 중국이 새로운 제국으로 부상하고 있다. 포스트 제국에 새로운 전기가 도래한 것이다.
시시각각 급변하는 정세 속에서 우리가 가져야 할 물음이 있다. “과연 제국일본은 청산되었는가”다. 제국일본의 잔재가 여전히 남아 있다는 증거는 신문지상에도 수시로 등장한다. 일본이 동아시아 각국과 벌이고 있는 영토분쟁,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위안부 문제, 제국일본을 미화한다는 의심을 받는 친일 교과서 등이다. 그러나 제국과 식민지의 경험이라는 비대칭성 때문에 발생하는 지금의 논란 속에서도 ‘제국일본’을 발견하기는 쉽지 않다. ‘제국’이라는 말을 입에 올리는 것 자체가 금기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제국의 기억을 파묻기만 하는 콘크리트 공사를 멈춰라!”
『제국일본의 사상』은 제국의 기억을 끄집어내지 못하는 지금의 상황을 ‘콘크리트 공사’에 비유한다. 포스트 제국 시기가 도래하자마자 동아시아 각국들이 과거 제국의 기억을 깡그리 지우는 일에 집중했다는 의미다. 이는 식민지배를 한 일본뿐만 아니라 여러 식민지에서도 공통적으로 찾아볼 수 있는 현상이다. 전후 일본은 ‘파시즘’ ‘침략전쟁’ ‘식민지배’를 지금의 일본과 분리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제국을 담론장에서 지워나갔다. 뼈아픈 식민경험을 한 한국은 ‘반만년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단일 민족’ 등의 구호를 통해 상처입은 자존심을 회복하려는 듯 제국을 잊기 위해 노력했다. 해방과 동시에 찾아온 미소냉전과 한국전쟁, 뒤이은 극심한 좌우분열 때문에 제국일본을 성찰할 여유가 부족했던 것도 사실이다. 과거에 엄연히 존재했던 제국일본이라는 지층을 탐사하려는 노력 없이, 새로운 국가 건설을 명분으로 콘크리트를 바르듯이 제국의 기억을 망각한 것이다.
그러나 제국일본은 콘크리트 바닥 아래에서 가만히 잠들지 못했다. “정상국가로 돌아가자”며 아베 정권이 추진하는 평화헌법 개헌 움직임에 대해 과거 식민지들이 크게 반발하는 등 제국과 식민지의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제국일본이라는 지층은 요동쳤고, 콘크리트에 균열을 냈다. 악화 일로에 있는 지금의 동아시아 정세가 이를 잘 나타낸다. 이제 과거를 콘크리트로 덮는 일을 멈추고, 제국일본이라는 지층 탐사에 나서자는 게 이 책이 주장하는 바다.
토오꾜오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저자 김항(연세대 국학연구원 HK교수)은 이미 2010년 일본에서 『帝國日本の閾』(제국일본의 문턱, 岩波書店)을 저술한 바 있다. 이를 통해 일본 내부에서 천황제의 의미, 관동대지진과 조선인 학살 등 근대 일본이 은폐하고 있는 핵심 요소들을 파헤쳤다. 한국으로 돌아온 저자는 더욱 폭넓은 관점에서 제국일본이라는 지층을 탐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제국의 지층이 콘크리트에 균열을 내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 세가지를 찾아냈다. ‘주권’ ‘식민지’ 그리고 ‘아시아와 한반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