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의 특권화를 넘어서

책 소개

‘신라통일 담론은 식민사학의 발명인가’라는 도발적 문제제기로 역사논쟁에 불을 지피며 근대에 관한 다양한 중층적 시각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은 김흥규(고려대 국문과 명예교수)가 그간의 논쟁을 모아 『근대의 특권화를 넘어서: 식민지 근대성론과 내재적 발전론에 대한 이중비판』으로 엮어냈다. 계간 『창작과비평』에 수록되어 논쟁을 불러일으켰던 글 3편을 포함하여 여러 포스트담론들에 대한 범례적 문제제기를 담은 총 6편을 담고 있다. 부제에서 드러나듯이, 한편으로는 민족주의적 사고의 경직성을 비판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한국 문화연구의 새로운 주류로 등장한 탈민족주의 담론의 역사이해 부재를 비판하는 이 책은 2000년대 문학평론과 그 너머의 문화연구의 큰 줄기를 동시에 가늠해볼 수 있는 잣대로 손색없다.

 

 

 

식민주의를 넘어설 것인가 아니면 다시 불러들일 것인가

 

 

 

2000년대에 들어 탈민족주의, 포스트콜로니얼리즘 등의 담론이 성행하는 가운데 민족주의 담론은 신랄한 비판을 받았다. 학술 토론의 장에서 민족 개념을 옹호하는 식의 발언은, 저자의 말대로 “신용하(愼鏞廈) 선생 정도의 원로가 아닌 한 비웃음거리가 될 언동으로 여겨졌다”. 저자는 내재적 발전론이 노쇠하여 더이상 생산적 역할을 해낼 수 없다는 데에 동의하지만, 이는 탈민족주의 담론같이 ‘민족’ 개념을 무차별적으로 용도폐기하자는 뜻이 아니라, ‘민족’을 역사의 한 주체로 인정하며 기존의 내재적 발전론에 대한 수정안을 만들거나 혹은 그로부터 완전히 떠날 새로운 길을 찾아내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한다.

 

제1장 「조선 후기 시조의 불안한 사랑과 근대의 연애」는 20세기 초 한국문화사에서 중요하게 다뤄진 ‘연애(戀愛)’가 우리 고시조의 다양한 작품들 속에 ‘짝사랑, 새 님, 남의 님’ 주요 키워드로서 이미 존재해왔다는 점을 논증한다. 식민지 근대성론자들은 연애를 “개항 이후 출현한 외래적 근대성의 일부분”이라고 규정하며 이것이 서구에서 비서구로 전파되었다고 보았다. 연애 즉 ‘love’란 “이국의 언어감정을 번역하기 위해 계발된 언어”였다는 식민지 근대성론의 전제에 대해, 이 책은 20세기 초 우리 풍속을 뒤흔든 ‘연애’가 실제로는 고려조부터의 사랑노래에서부터 그 연원을 찾을 수 있음을 다수의 고시조의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논박한다.

 

식민지 근대성론은 왜 민족주의와 극명히 단절되는 방식을 택하게 되었을까. 제2장 「정치적 공동체의 상상과 기억」은 식민지 근대성론자들이 근대라는 시공간 안에 갇혀 전근대의 일상을 왜곡하는 한계를 좀더 풍부히 설명하며 이 질문에 대해 명쾌하게 답한다. 저자는 베네딕트 앤더슨 등의 탈민족주의자들이 원초주의(민족주의)를 근대주의와 양분하여 이 두 개념을 극명히 나눴다는 점에 주목하며, 그들이 근대의 발명과 변혁을 강조하다보니 전근대의 유산과 기억을 폐기하게 되었다고 지적한다. 여기서 파생하는 문제는, 식민지 근대성론이 근대라는 시공간이 형성되는 제1원인으로 식민주의 헤게모니를 가정한다는 것이다. 즉, 전근대와 근대에 걸쳐 다양하게 드러난 변화의 인과관계를 살피지 못하고 어느순간 이를 송두리째 외래사상의 체제하로 재편성한 것이 문제라는 지적이다.

 

제3장 「신라통일 담론은 식민사학의 발명인가」는 식민주의 헤게모니를 이와 같이 역사운동의 최우선에 두면서 발생하는 문제를 통렬히 지적한 글이다. 이 글은 ‘통일신라’라는 관념이 일본 식민주의 역사학의 ‘발명’이라는 윤선태•황종연 교수의 주장에 대해 실제 사료를 들며 그 허구를 반박함으로써, 발표 직후 통일신라를 둘러싼 역사논쟁의 도화선이 되었다. 식민지적 근대성론이 근대를 일방적으로 강조하면서 더 나아가 식민주의를 “전능한 지배력을 가진 것처럼 특권화”했다는 주장은 평론과 문화연구에 일대 쎈세이션을 일으켰다.

 

이와 같은 ‘식민주의/근대의 특권화’는 단순히 통일신라가 ‘발명’된 것이라는 입론에만 머물지 않는다. 제4장 「한국 근대문학 연구와 식민주의」는 이 특권화가 현대문학 연구 전체에 만연해 있음을 논증한다. 식민지 근대성론이 “식민지시대의 종속적 회로 안에서만” 근대문학 형성사를 엮으려 하는 것은 우선 역사에 대한 그들의 몰이해를 드러낸다. 뿐만 아니라 식민주의 특권화가 다양한 장르와 요소의 문학이 만들어내는 여러 변수와 그것이 사회가 맺어내는 동적 연관을 모색하는 힘을 막아왔다는 주장은 풍부한 사례로 뒷받침되며 설득력을 지닌다.

 

 

 

식민주의와 근대의 특권화를 넘어서

 

 

 

김흥규의 글에 대해 윤선태, 황종연 교수의 반론이 이어지면서 논쟁은 한층 더 날카로워졌다. 제5장 「식민주의와 근대의 특권화를 넘어서」는 이들의 반론에 대한 재반론의 글이다. 여기서 문학•문화연구자에 대한 주문은 더욱 구체화된다. 즉, 민족주의 담론을 기존의 프레임 안에서 긍정하냐 부정하냐를 따지기보다 “정치행위의 주체들이 속한 실천적 맥락의 함수로서 역사화해서” 봐야 한다는 주장이다.

 

식민지 근대성론과 내재적 발전론 양측의, 출구가 없어 보이는 다툼을 어떻게 끝낼 수 있을까. 양측 모두에 대한 이중비판과 대안을 종합한 결론이 마지막 장인「특권적 근대의 서사와 한국문화 연구」에 녹아 있다. 주요 대안은 근대 개념이 의미론적으로 불안정하다는 점을 인정하고 근대 개념의 역사철학적 의미를 그 뿌리부터 다시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근대가 “광역성•다양성”을 지닌 역사 전체를 짊어지게 되면서 “의미과잉”에 놓였다는 점을 받아들여야 하며, 결국 논쟁의 출구를 열기 위해서는 중세와 근대, 서구와 비서구 각각의 시공간들의 다양한 현실을 조망하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이다.

 

우리는 ‘중세’ ‘근대’ 개념이 등장하면서 그 역사의 가위질에 따라 발췌되고 정렬되는 방식을 벗어날 필요가 있다. 이는 유럽의 역사를 기준으로 한국을 비롯한 여타 지역의 다양한 시공간을 재단해버리는 “세계사의 식민화”일 뿐이다. 저자가 발언하는 아래의 메시지는 식민지 근대성론과 내재적 발전론의 향후 미래를 위한 중요한 주문을 담고 있다.

 

 

 

“우리는 ‘근대’와 ‘중세’가 실재하는 보편적 역사단계에 사후적으로 붙여진 이름이라고 믿기보다, 이들이 모종의 역사적 가상을 창출하고 보편사의 권위로써 그것을 강요한 개념장치였다는 통찰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런 전복을 통해 우리는 ‘중세, 근대’라는 술어들이 우리로 하여금 무엇을 보지 못하게 했는지 확인하게 되리라 생각한다.”(이 책, 20면)

목차

감사의 말
책머리에

제1장 조선 후기 시조의 불안한 사랑과 근대의 연애
제2장 정치적 공동체의 상상과 기억
제3장 신라통일 담론은 식민사학의 발명인가
제4장 한국 근대문학 연구와 식민주의
제5장 식민주의와 근대의 특권화를 넘어서
제6장 특권적 근대의 서사와 한국문화 연구

원문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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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정보
  • 2013년 제5회 임화문학예술상
저자 소개
  • 김흥규

    1948년 인천에서 태어나 고려대 문과대학 국문학과 및 서울대 대학원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197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문학평론 부문에 당선되었고 계명대 전임강사를 거쳐 고려대 국문학과 교수를 지냈고 현재 고려대 명예교수로 있다. 주요 저서로 『문학과 역사적 인간』『한국문학의 이해』『한국 현대시를 찾아서』『조선 후기의 시경론과 시의식』『욕망과 형식의 시학』『한국 고전문학과 비평의 성찰』, 편저로 『판소리의 이해』『고시조 대전』(공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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