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한 용기, 욕심 없는 우정
세상에서 가장 빛나는 것을 찾아 떠나는
도레미의 잊지 못할 이야기
제1회 창비어린이 신인문학상(동화 부문)을 수상하며 등단한 이래 『꼬마 너구리 삼총사』 『호랑이 눈썹』 등 모범이 될 만한 저학년 동화를 꾸준히 펴내 온 이반디 작가의 신작 『도레미의 신기한 모험』이 출간되었다. 전작들에서 보여 준 장기인 개성 넘치는 동물 캐릭터와 판타지적 상상력이 다시 한 번 유감없이 발휘되었으며, 한결 풍부해진 서사와 더 깊어진 감동을 선보인다. 저학년 동화로는 보기 드문 스케일의 판타지 세계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흥미진진한 모험담이 독자들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으며, 그 속에 새겨진 참된 용기와 우정의 의미가 오래도록 뭉클한 여운을 남긴다.
탄탄한 무대와 매력적인 인물
『도레미의 신기한 모험』은 저학년 동화로는 상당한 규모의 판타지 세계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작가는 이 작품에서 단순히 기묘한 설정이나 발상만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손쉬운 방법을 택하지 않고, 뚜렷한 인과와 다채로운 양상을 지닌 완벽한 하나의 세계를 새로이 만들어 냈다. 또한 이 작품에는 작가 특유의 독특한 동물 캐릭터는 물론 ‘도레미’라는 인상적인 어린이 주인공이 등장한다.
도레미의 언니는 얌전하고 공부를 잘했습니다. 사람들은 언니를 자주 칭찬했습니다. 도레미도 줄넘기를 잘했지만, 그걸 칭찬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도레미의 동생은 말이 많고 얼굴이 예뻤습니다. 사람들은 동생을 좋아했습니다. 도레미도 발가락이 예뻤지만, 발가락을 보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게다가 꼼지락거리는 열 개의 발가락은 늘 신발 안에 조용히 있었으니까요.(본문 8면)
씩씩하고 정의롭지만 무엇이든 곧잘 깜박하고 헷갈리는 도레미가 우연한 사건을 계기로 하룻밤 새에 머리가 좋아지는 설정은 나날이 학업 부담에 시달리는 어린이들의 마음을 빼앗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도레미가 진정 어린이 독자들로부터 사랑받을 까닭은 따로 있다. 돋보이는 언니와 동생 사이에 끼어 누구도 예뻐해 주지 않지만, 작가는 그런 도레미에게서도 작은 장점들을 발견해 낸다. 남들이 보기에 작은 장점이더라도 아무도 몰라주는 자신의 본모습을 누군가 애정 어린 눈길로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은 이 책을 읽게 될 평범한 어린이들에게 결코 작지 않은 위로가 되어 줄 것이다.
마음이 조마조마해지도록 흥미진진한 서사
평온한 일상에서 어느 날 갑자기 홀로 이상한 세계에 툭 떨어진 도레미. 종이 인간과 동물 들이 가득한 이곳에는 갖가지 모험이 기다리고 있다. 도레미는 모르는 게 없는 나라에서 종이 병사들에게 쫓기는가 하면, 악어 아가씨를 마녀로 모는 마을 사람들의 소동에 휘말리기도 하고, 속임수를 쓰는 원숭이 인간의 달콤한 꾐에 빠져 위기에 처하기도 한다. 공간과 인물이 끊임없이 전환되며 리드미컬하게 펼쳐지는 전개는 일견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오즈의 마법사』『사자왕 형제의 모험』 등의 익히 알려진 서양 판타지 모험 서사와 견주어도 가히 손색이 없다. 책벌레가 갉아먹은 책장 수나 치타와 거북의 경주에서 승자를 묻는, 곳곳에 숨어 있는 엉뚱한 논리 퀴즈들은 어린이 독자들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며 또 하나의 소소한 즐거움을 안긴다.
진실한 용기와 조건 없는 우정이란 값진 보물
한편 『도레미의 신기한 모험』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이야기 속에 ‘용기’와 ‘우정’이라는 결코 가볍지만은 않는 주제를 녹여냈다.
“어떻게 이 은혜를 갚지?”
도레미가 물었습니다. 두꺼비가 눈을 끔벅이더니 천천히 말했습니다.
“도와줄 땐 그냥 하는 거다. 그냥.”
도레미가 허리를 숙여 인사하자 모두 무척 쑥스러워 했답니다.(본문 110면)
도레미가 천사의 눈동자를 꺼냈습니다. 푸른 용은 천사의 눈동자를 이리저리 보았습니다.
“왜 나한테 주느냐?”
도레미가 웃으며 말했습니다.
“그냥. 친구끼린 그냥이야.”(본문 132면)
가족, 친구들과 떨어져 홀로 이상한 세계를 헤매게 된 도레미는 이곳에서 친구들을 만난다. 도레미가 이 세계에서 처음 만난 까마귀, 두꺼비, 솔새는 낯모르는 도레미에게 어떤 보답도 바라지 않는 친절을 베푼다. 더욱 놀라운 것은 도레미가 까마귀, 두꺼비, 솔새에게 받은 은혜를 그들에게 돌려주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새로운 친구 푸른 용에게 갚음으로써 우정의 선순환을 이루어 낸다는 점이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았어도 도레미가 스스로 깨달은 이 순환의 구조는 작가가 어린이의 세계를 유치하다 얕보지 않고, 어린이가 지닌 성장의 가능성을 성숙한 태도로 신뢰했기에 가능하다. 그토록 집에 돌아가기를 소망하던 도레미가 소중한 친구 ‘빨개’의 죽음 앞에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양보하는 장면 역시 이러한 짐작의 증거이다. 이와 같은 작가의 어린이관은 드물게 어른 조력자 없이 어린이 스스로의 힘으로 고난을 극복하는 성장 서사의 밑바탕이기도 하다.
이처럼 『도레미의 신기한 모험』은 견고한 무대와 생생한 캐릭터, 활력 있는 서사와 진지한 주제 의식 등 좋은 동화가 갖추어야 할 미덕을 고루 지녔다. 어른은 믿고 권할 수 있으며, 어린이는 흠뻑 빠져들어 읽을 수 있는 탁월한 저학년 동화의 출현이 반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