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에 쏘였다

책 소개

“어린이들이라고 이해 못 할 세상일은 하나도 없어.”

 

삶의 구석구석을 이야기하며 어른과 아이의 경계를 허물다

 

 

 

전체 5부로 구성된 그의 세 번째 동시집 『벌에 쏘였다』에는 그동안 그가 보여 준 서정을 바탕으로 다양한 사람들의 사는 이야기가 곡진하게 담겨 있다. 휴대 전화 문자로 “우리 쌤! 고마워용 ♡ 보고 싶어요ㅠㅠ”라고 시인에게 안부를 전하는 학생 진아도 있고(「느껍다」), 아이들과 한데 어울려 지내다가 방학이 되어서야 겨우 시를 쓰는 시인도 있고(「방학 시인」), 새해 첫날 세배를 마치자마자 텅 비어 버린 집 안을 보며 서러워진 앞집 할아버지도 있고(「설날 오후」), 엉치뼈에 금 가고 어깨뼈가 부러져 병원 신세를 지면서도 아들 자랑 딸 자랑에 여념 없는 할머니 환자 여섯 명도 있다(「455년」).

 

 

 

산청 복음병원 305호에는 / 버스에서 넘어져 허리 다치고 / 안방에서 엉덩방아 찧어 엉치뼈 금 가고 / 목욕탕에서 미끄러져 어깨뼈 부러진 / 할머니 환자만 여섯 명 // 유리처럼 깨지고 금 간 뼈들이 / 더디게 아물어 가는 동안 / 물약 똑똑 떨어지는 약병을 매달고 / 아들 자랑 딸 자랑을 펼친다. // 침대 이름표 나이를 다 합해 보면 / 사백쉰다섯 살, / 아들딸 낳고 키워 낸 역사가 / 조선 왕조 오백 년만큼이나 깊다.

―「455년」 부분</p>

 

시인의 시선은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네 이웃 한 사람 한 사람과 그들의 삶 곳곳에 닿아 있다. 동시라고 해서 통통 튀고 아이들의 호기심을 만족하는 신기한 이야기들만을 노래하지도, 보고 싶은 세계만 보고 보여 주고 싶은 것만 골라서 보여 주려 애쓰지도 않는다. 그저 우리가 살면서 배우고, 겪고, 해결해야 할 모든 세상 이야기를 우리 이웃들의 사연을 빌어 건강하게 풀어냄으로써 아이들이 마음속 깊이 공감하고 바라보게 한다. 동시집 『벌에 쏘였다』가 특별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늙음’과 ‘죽음’을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뒷집 마당에 / 매화가 활짝 폈다. // 겨우내 댓돌 위에 놓였던 / 할머니 흰 고무신에 / 매화 꽃그늘 내렸다. // 겨울나러 / 큰아들네 간 할머니 / 편찮으신 몸으로 / 올해 아흔을 넘기셨다. // 홀로 가꾸던 텃밭은 / 얼었다 녹았다 / 흙이 보드라워졌는데 // 돌아오실까 / 돌아가실까 / 빈집에 매화만 활짝 폈다.

―「돌아오실까 돌아가실까」 전문

 

겨울나러 가신 할머니가 돌아오실지, 돌아가실지 담담하면서도 애잔하게 이야기하는 「돌아오실까 돌아가실까」를 비롯해, 중국집 배달원이 교통사고를 당한 현장을 보여 주는 「오토바이 타는 사람」이나, 고양이를 구하려다 순직한 스물아홉 젊은 소방관과 우편물을 배달하다 홍수에 쓸려 간 집배원 이야기를 보여 주는 「2011년 7월 27일」 등이 그렇다. ‘늙는다는 것’ ‘죽는다는 것’을 아이들에게, 굳이, 알려 주어야 하는 것인지 의문을 가지는 이가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시인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리고 뚝심 있게, 넘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게 담담한 어조로 아이들을 시의 세계로 이끈다. 해설을 쓴 반칠환 시인의 말처럼 ‘아이들에 대한 전적인 믿음’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일 테다.

 

 

 

역사 인물과 사회 그리고 세계로 확장된 시 세계

 

 

 

해방되기 일 년 전, 두 청년은 군인이었다. // 일본군에 강제로 끌려갔던 한 청년은 탈출해서 중국 대륙 육천 리를 걸어가서 대한광복군이 되었다. 천황에게 목숨 바쳐 충성하겠다고 일본 육군 사관 학교를 다녔던 한 청년은 일본 꼭두각시 만주군 장교가 되었다. // (…) // 그러던 어느 날, 마지막 광복군은 등산하다 벼랑에서 떨어져 죽었다. 사람들은 그 죽음이 아무래도 이상하다고 의심했다. 큰일을 해야 할 사람이 죽었다고 안타까워했다. // 몇 년 뒤, 만주군 장교 출신 대통령도 죽었다. 십팔 년 동안이나 대통령이었던 사람이 어이없게 자기 부하의 총에 맞았다. 어떤 일본인은 일본 제국의 마지막 군인이 죽었다고 슬퍼하기도 했다. // 일제 강점기에 한 살 차이로 태어났던 두 사람은 우리들 앞을 이렇게 걸어갔다.

―「두 청년」 부분

 

독자들은 『벌에 쏘였다』에서 여러 역사 인물을 만날 수 있다. 일본군에게 강제로 끌려갔다가 광복군이 된 청년 장준하와 일본 육군 사관 학교를 나와 만주군 장교가 된 청년 박정희의 과거와 현재를 알게 되고(「두 청년」), 아들들보다 더 강단 있고 의연했던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 조마리아와 김구 선생의 어머니 곽낙원을 만나는가 하면(「두 어머니」), 같은 마을에서 같은 해에 태어나 독립운동을 하다가 같은 해에 숨진, “둘이었으나 하나처럼 살았”던 윤동주와 송몽규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크고 깊은 울림이 전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하나처럼」). 시적 배경은 일제 강점기에 국한되지 않고 현대로 와 더욱 다양해진다. “새벽 종소리는 가난하고 아픈 사람이 듣고, 벌레랑 길가에 구르는 돌멩이가 들어. 그걸 알면서 어떻게 장갑 끼고 종을 칠 수 있어.”라며 맨손으로 종을 치던 아동문학가 권정생을 만나기도 하고(「조탑리」), 우리나라 노동 운동의 불씨를 지핀 전태일과 그 아들의 유언을 가슴에 묻고 “내 몸, 가루가 돼도, 네가 원하는 거, 끝까지 할 거다.”라며 한평생 노동자들을 위해 싸워 온 이소선 여사를 만날 수도 있다(「작은 선녀」). 시인의 시선이 머물러 짚어 내는 인물들의 면면은 독립투사, 실향민, 노동 운동가 등 그대로 덮어 둘 수 없는 우리 역사와 사회 각 영역에 걸쳐 무척 다양하다. 시인의 눈길은 세계로 확장된다.

 

 

 

“아빠, 대통령 머리카락이 나랑 똑같을까요?” // 대통령과 기념사진을 찍고 나오던 식구들이 / 막내 하는 말에 깜짝 놀랐습니다. // 소리가 너무 컸을까요. / 대통령이 그 자리에 우뚝 멈췄습니다. / “한번 만져 봐.” // 망설이는 막내에게 / 대통령이 한 번 더 말했습니다. / “만져 봐, 괜찮아.” // 대통령이 허리를 90도 꺾고 / 막내는 엉덩이를 뺀 채 / 1초쯤 지났을까요. // 막내가 크게 말했습니다. / “나랑 똑같네요.”

―「똑같네요」 전문

 

다섯 살짜리 흑인 아이가 미국 대통령 버락 오바마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는 한 장의 사진에서 포착한 「똑같네요」는 너와 나, 너희와 우리가 다르지 않다는 메시지를 간결하면서도 강렬하게 전달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2005년 10월, 조국이 처음으로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게 되자 간절히 호소해 4년 동안 지속되었던 내전을 잠시나마 멈추게 한 코트디부아르 축구 선수 드로그바와 아프리카 외다리 축구팀 일화를 통해 서아프리카에 남은 가난과 싸움을 들여다보게 하고(「축구」), 새해 첫날 팔레스타인 폭격을 구경하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사진 저편으로 똑같은 날에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겪는 고통을 헤아려 보게도 한다(「폭격 구경하는 이스라엘 사람들」). 지금 우리가 사는 현실 세계의 모습을 그럴 듯하게 포장하지 않고 이처럼 있는 그대로 보여 주는 것은 아이들을 미성숙한 존재가 아니라 세계를 이해하는 온전한 주체로 인정하고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감각적이고 섬세한 눈길로 바라본 자연과 시간

 

 

 

<blockquote>달빛 하얀 / 겨울밤 // 마당으로 / 고라니 한 마리 / 불쑥 들어온다. // 잠결에 오줌 누던 나하고 / 딱 마주쳤다. // 숨 막히는 / 0.5초 // 세상에는 / 우리 둘뿐

―「고라니」 전문

 

기와지붕 틈새 / 참새 집 있다. // 어미는 부지런히 / 먹이를 물어 날랐다. // 한 날 아침 / 새끼가 마당에 떨어졌다. // 깃털도 안 난 날갯죽지를 / 펴지도 오므리지도 못하고 / 우는 새끼 // 집에 넣어 줄 수도 / 그냥 두고 볼 수도 없는 / 우리 식구들 // 내려오지도 / 날아가지도 못하는 / 어미 새 // 그 사이를 / 흐르는 시간

―「시간」 전문

 

한편, 남호섭 시인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경탄하고 바라보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의 시선은 자연과 사람이 더불어 하나를 이루는 순간에 닿아 있다. 고라니와 마주친 0.5초의 숨 막히는 시간, 사람과 동물 사이를 흐르는 그 찰나의 시간을 마치 정지 장면처럼 특유의 감각으로 포착해 내는데, 자연을 보호하고 생명을 사랑하자는 말 한마디보다 훨씬 더 강렬한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

 

 

 

화가 고찬규의 이야기가 살아 숨 쉬는 그림

 

 

 

화가 고찬규는 이번 동시집을 통해 처음으로 일러스트 작업을 했다. 그는 남호섭 시인이 머리말에서 밝혔듯이 같은 학교 예술 대학을 함께 다닌 친구이기도 하다. 따뜻하고 서정적인 색감과 기법은 일상의 모습을 정감 있고 훈훈하게 보여 주며, 때로는 함축적으로, 때로는 현실적으로 그려 내어 시에 새로운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무엇보다 현대적 채색 인물화에 능한 화가의 특장점이 이번 동시집에 고스란히 녹아들어 시 속 인물에 생기를 더한다.

목차

머리말|셋!

제1부 방학 시인
느껍다
사람이 왜
구절초
봄날
노을
노을 2
임길택
내 사슴뿔
모과
방학 시인
발바닥에 새긴 점

제2부 조탑리
조탑리
모두가 잠깐

새들도
벌에 쏘였다
물풀
고라니
시간
도라지꽃
작은 꿈

제3부 똑같네요
부처님 오신 날
시골 버스 정류장
덕산
옛 시목마을
산길
대숲이 사라졌다
설날 오후
투표하러 가는 날
신발 찾으러
455년
똑같네요

제4부 오토바이 타는 사람
돌아오실까 돌아가실까
꽃상여
끝내
아무리
수달
그 사람
지리산 외공리
구덩이 속에
오토바이 타는 사람
2011년 7월 27일
축구
폭격 구경하는 이스라엘 사람들

제5부 새는 자유롭게
하나처럼
새는 자유롭게
두 어머니
두 청년
작은 선녀

해설|한국 아동문학, 구부림에서 발돋움으로_반칠환

수상정보
저자 소개
  • 남호섭

    1962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고 중ㆍ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쳐왔다. 1992년 「담배 심부름」 등 동시로 제1회 황금도깨비상을 받았다. 1995년 첫 동시집 『타임캡슐 속의 필통』을 냈으며, 어린이뿐 아니라 청소년의 생활 세계를 담은 시를 써 왔다. 2001년부터 경남 산청에 있는 간디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에 힘 쏟고 있다.

  • 고찬규

    1963년에 태어났고, 중앙대학교에서 한국화를 전공했습니다. 열세 차례의 개인전과 삼백여 회의 단체전을 통해 현대적 채색 인물화 연구에 꾸준히 힘 쏟고 있으며, 현재 인천대학교 조형예술학부에서 교수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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