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계단에서 도깨비가

책 소개

‘해리 포터’ 류의 판타지가 어린이문학 작가들의 화두가 되고 있는 요즘, 우리 아이들에게 필요한 판타지란 어떤 것인가를 물었을 때 임정자의 이번 작품집은 훌륭한 답안이 되어준다. 서양식의 판타지 어법이 아닌, 우리 토양에서 발효된 독특한 상상력과 깔끔한 문체 속에 오늘날 도시 아이들의 내면을 투명하게 보여주는 다섯편의 동화가 들어 있다.

 

도시, 그것도 아파트에 사는 대부분의 아이들은 학교, 학원, 그리고 부모가 주는 유형 무형의 억압에 찌들어 있다. 집에서는 아래층에 피해가 갈까봐 마음 놓고 발소리조차 내지 못하며, 아파트 놀이터말고는 놀 공간조차 없고, 그나마 친구들이 학원에 가거나 과외를 받고 없으면 혼자 남은 아이는 아무 할 일이 없다. 언젠가부터 어머니와는 말도 잘 통하지 않는다.

 

「낙지가 보낸 선물」에서는 매를 드는 엄마 때문에 주눅든 아이 남수가, 「꽁꽁별에서 온 어머니」에서는 도대체 어머니와 말이 안 통하는 문제 때문에 고민하는 아이 담은이가, 표제작인 「어두운 계단에서 도깨비가」에서는 아파트에서 쿵쾅거리며 뛴다고 잔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는 아이 수민이가, 「이빨 귀신을 이긴 연이」에서는 직장에 다니는 엄마를 이해하게 되는 아이 연이가 각각 등장한다.

 

심각한 고민을 갖고 있던 아이들의 고민이 풀리는 지점은 바로 ‘모험’이다. 남수는 뜨거운 전골 냄비 속에 들어간 산낙지를 살려주려다가 엄마에게 또 한번 회초리를 맞는다. 그런데 어느날 하늘나라로 간 낙지가 선물을 보내왔는데… 바로 빨판이 다닥다닥 달린 신발이다. 남수는 이것을 신고 다니다가 엄마의 회초리를 피해 아파트 25층벽에 붙어 서게 된다. 놀란 엄마는 그때부터 남수를 ‘가끔’ 때리는 엄마가 되었다.

 

담은이와 어머니가 서로 말이 안 통하는 이유는 어머니가 꽁꽁별에서 온 외계인이기 때문이다. 꽁꽁별에서는 어린시절의 기억을 모두 ‘기억상자’ 속에 담아놓고 아이들을 훌륭한 과학자로 길러내는데, 어머니도 마찬가지로 어린시절의 기억을 빼앗겼기 때문에 딸을 이해 못하는 것이다. 사실, 외계인이 아닌 다른 이땅의 평범한 부모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임정자는 ‘동심’을 잃어버린 어른들은 아이를 이해할 수 없음을 이러한 은유를 통해 따끔하게 지적하고 있다. 결국 담은이는 어머니가 타고 온 우주선을 타고 꽁꽁별로 날아가 어머니의 비밀을 밝혀낸다.

 

수민이는 아파트 계단으로 내려가 신기하게 생긴 도깨비 친구들을 만난다. 뜻밖에, 아파트에 사는 도깨비들도 억눌려 있기는 마찬가지다. 도깨비와 수민이는 한바탕 신나게 쿵쾅거리며 놀게 된다. 뿔 달린 도깨비가 아닌, 개성적인 장난꾸러기 도깨비를 만들어낸 이형진씨의 일러스트레이션이 이 동화의 분위기를 한껏 살려주고 있다.

 

자연스럽게 몰입하게 되는 판타지의 세계, 그 세계는 현실보다 더 실감나며 현실의 모든 억압과 고민이 풀리는 곳이다. 임정자의 판타지에는 우리나라 전통의 소재(인간과 가까운 도깨비라는 존재, 「이빨귀신을 이긴 연이」에 차용된 옛이야기의 전통 등)가 녹아 있고, 아이들의 생활과 가까운 절실한 문제들의 해결점으로서 판타지가 작용하고 있으며, 그 속에는 반드시 통쾌한 카타르시스가 있다.

 

이형진의 신나는 그림 또한 이 책을 즐겁게 만드는 요소이다. 그림마다 넘치는 유머, 과장되어 있지만 실감나는 캐릭터들, 글의 특성에 맞게 주조색을 결정하고 그에 맞게 일정한 톤으로 색을 유지하여 자칫 들뜨기 쉬운 캐릭터들을 가라앉힌 미덕이 돋보이는 일러스트레이션이다.

목차

낙지가 보낸 선물
꽁꽁별에서 온 어머니
어두운 계단에서 도깨비가
이빨 귀신을 이긴 연이
흰곰 인형

수상정보
저자 소개
  • 임정자

    1966년 경기도 포천에서 태어났습니다. 1998년 월간 『어린이문학』에 단편 「흰 곰인형」을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동화 『어두운 계단에서 도깨비가』 『무지무지 힘이 세고, 대단히 똑똑하고, 아주아주 용감한 당글공주』 『내 동생 싸게 팔아요』 『하루와 미요』 『진도에서 온 수호』 『발자국개』 『흰산 도로랑』 『할머니의 마지막 손님』 『내 편이 필요해!』 등을 냈습니다. A budding author of children’s books, Lim Jung-ja […]

  • 이형진

    일러스트레이터. 1964년 정읍에서 태어났고 서울대학교 산업미술학과를 졸업했다. 그린 책으로 『어두운 계단에서 도깨비가』『자존심』『꼭 한 가지 소원』『초록말 벼리』 등이 있고, 쓰고 그린 책으로 『끝지』『비단 치마』, ‘안녕’ 시리즈 등이 있다. Born in 1964 in Jeong’eup, South Jeolla Province, Yi Hyeong-jin studied industrial design (BFA) at Seoul National University. He has drawn for A Goblin on Dark Stair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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