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스승 리영희의 기개 넘치는 청년시절을 다시 읽는다
‘시대의 스승’ 리영희 선생의 2주기(12월 5일)를 맞아 창비에서는 선생이 직접 쓴 유일한 자전적 에세이 『역정: 나의 청년시대』를 개정판으로 출간한다. 이번 개정판에는 『한겨레』 편집인 및 리영희재단 이사인 권태선의 발문이 추가되었으며, 현대적인 디자인과 편집으로 독자들이 이 책에 한층 더 가까워질 수 있도록 꾸몄다. 권태선은 발문에서, “권력은 선생을 ‘의식화의 원흉’으로 매도했지만, 젊은이들은 선생이야말로 참스승이라고 여겼”고 그 자신부터 “대학 재학 중 『전환시대의 논리』를 읽고 기자가 되겠다는 꿈을 키웠던” 경험이 있다고 밝혔다. 이처럼 『역정』 개정판 출간은 진실에 눈뜨고 양심의 호소에 귀 기울였던 한 지식인의 삶을 생생하게 재현한 현대사 자료를 복원한다는 점에서도 큰 의미가 있다. 시민의 정치참여와 언론의 정론직필에 대한 요구가 그 어느 때보다 거센 오늘날, 『역정』은 다시금 우리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의식을 일깨우는 책이 될 것이다.
1988년에 초판이 발행된 『역정』은 1980년 선생이 신군부로부터 다시는 글을 쓸 수 없다는 선고를 받고 몇년간 은거하던 중, 자신의 저서를 읽고 실천적 삶에 뛰어든 독자들에게 자신의 삶을 고백하는 것이 도의적 책임이라는 생각에 집필하기 시작했다. 책에는 평안북도 출신인 선생의 출생에서부터 언론인으로 활약하던 1963년 박정희정권 초기 시절까지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다. 선생의 기개 넘치는 어린 시절과 사회 초년생 시절을 집중적으로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재미를 더하는 책이다.
지성인으로 성장하는 한 개인의 전사(前史)
이 책의 제1부 ‘식민지하의 조선 소년’은 일제 강점기 평안북도의 압록강변에서 나고 자란 식민지 소년의 이야기다. 출생과 가족에 얽힌 사연, ‘국민학교’ 시절의 식민지 교육, 우수한 성적 덕분에 경성 유학길에 올랐던 소년 리영희의 모습 등이 재미있게 엮여 있다. 아직 민족적인 자각이나 이념적인 열정은 덜했을지 몰라도 주어진 삶을 열심히 살아나가는 모습이 당차게 느껴진다. 이윽고 경성에 있는 중학교에 진학하여 일본인 학생들과 함께 공부하면서 처음으로 ‘나이찌진’(내국인)과 ‘한또오진’(반도인)의 차별을 느끼고 민족적 시각에 눈을 뜨기 시작하는 과정도 흥미롭게 펼쳐진다. 태평양전쟁 말기 점차 가혹해지는 식민통치하의 경성에서 소년 리영희는 더이상 견디지 못하고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바로 고향에서 해방을 맞이한다. 그는 먼 훗날 이 시절을 회고하면서, 아무것도 알지 못 했던 한 소년을 자각으로 이끌었던 여러 사람들을 떠올리며 그들에게 그리움과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제2부 ‘굴절 많은 궤적’은 혼란스러웠던 해방 정국만큼이나 어지러웠던 청년 리영희의 심정과 고뇌를 담은 이야기다. 딱히 항해사가 될 생각은 없었으나 장학금 혜택 때문에 국립 한국해양대학에 입학한 이야기, 대학 재학 중 전공 공부에는 별 관심을 두지 않고 영문학에 심취했던 사연, 그러면서 서서히 한반도의 현실과 사회의 혼란상에 눈뜨기 시작했던 과정이 소개되어 있다. 결국 진로를 완전히 바꿔 중학교 영어교사로 취직하기까지 말 그대로 ‘굴절 많은’ 세월을 지내온 사회 초년생 리영희의 고민이 잘 드러나 있다. 우연한 기회로 안동중학교의 영어교사로 일하던 당시 잠시나마 부모님과 함께 단란한 한때를 보낸 몇년은 고향을 떠나온 이후 청년 리영희의 삶에서 유일하게 안정된 생활을 했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안락함은 잠시뿐이었다. 한국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제3부 ‘민족상잔 속에서 열리는 의식의 눈’은 한국전쟁 기간을 포함하여 7년간 군에서 장교로 근무했던 시절의 이야기다. 급작스레 통역장교가 된 일, 지리산에서 우연한 계기로 사고를 피하고 목숨을 건진 일, 주위에서 전우들이 죽어나가는 것을 지켜봐야 했던 일 등을 겪으면서 그는 이때 이후로 ‘인명재천교(人命在天敎)’와 ‘새옹지마교(塞翁之馬敎)’의 신자가 되었노라고 이야기한다. “제법 과학적으로 사고하고 논리적으로 추구한다고 자부”했던 지식인 리영희의 머릿속 한편에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수도 없이 넘나들며 전쟁을 겪어낸 인간이 가질 수밖에 없는 ‘숙명론’이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국군방위군 사건이나 거창 양민학살 사건과 같이 전쟁 중에 벌어진 참상과 그 옆에서 벌어지는 웃지 못할 이야기를 통해 남과 북의 대치상황과 전쟁에서 비롯된 우리 민족의 비극을 생생하게 전한다. 이렇듯 7년이라는 값비싼 댓가를 치르고 나서 그에게 남은 것은 부패한 군대조직에 대한 실망과 대한민국 사회에 대한 절망감, 그리고 통역장교로 일하면서 익혔던 영어 실력뿐이었다.
제4부 ‘역사의 격류 속에 뛰어들어’에서는 군생활을 마치고 합동통신사에 입사한 것을 계기로 언론계에 뛰어든 이후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언론과 관련된 공부를 해본 적도 없고 우리말에도 서툴러 남들보다 더 많이 노력해야 했기 때문에 고생스러웠지만, 이제야 비로소 자신의 길을 찾은 듯한 한 청년의 열정을 한껏 느낄 수 있다. ‘시대의 언론인’ 리영희의 이야기가 여기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권태선은 발문에서 “기자 리영희는 사건을 취재·기록하는 사람을 넘어 스스로 사건현장에 뛰어들어 행동하는 사람”이었다고 말한다. 부패한 이승만정권에 맞설 때도, 급박했던 4·19의 현장에서도, 『워싱턴 포스트』와 인연을 맺고 진실을 알리기 위해 노력할 때도 그를 이끈 것은 바로 현장이었다. 현장의 진실에 충실했던 청년기자 리영희가 ‘시대의 스승’ 리영희를 만든 것이다. 5·16 쿠데타 이후 긴장감 넘치는 기자생활 중에 일어난 에피소드들이나 기자의 눈으로 본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평가 등도 흥미롭게 펼쳐진다.
그의 삶은 사회와의 끊임없는 긴장관계일 뿐 아니라
자신과의 부단한 내면적 투쟁이었다
2012년, 우리는 다시 과거를 돌아보고 미래를 선택해야 하는 순간에 있다. 이 시점에서 리영희 선생의 삶을 다시 조명하는 것은 아직도 우리 사회에 반드시 밝혀야 할 진실이 많은 까닭이다.
‘청춘’을 향한 격려와 성토가 동시에 넘쳐나는 요즘, 리영희의 청년시대가 ‘또 하나의 신화’에만 그치지 않는 이유는, 본문 그 어디에서도 그가 ‘승리’했다는 구절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고민하고, 좌절하고, 체념하거나 분노했을 뿐, 그 모든 것들을 통해 ‘깨달음’을 얻었다고 전하지 않는다. 다만 한명의 청년이자 지식인으로서 그 시대를 묵묵히 감당해온 발걸음 하나하나를 보여줄 뿐이다. 그가 걸음을 멈추지 않을 수 있었던 힘은 그의 선견지명이나 초인적 의지가 아니라, 눈앞의 현실을 정직하게 바라볼 수 있는 솔직함에서 나온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