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콩의 슬픈 그림자 인도차이나

책 소개

한반도를 닮은 인도차이나에 관한 색다른 역사문화기행서

 

 

 

제국주의의 강점과 식민지, 독립에 뒤이은 극심한 전화(戰禍), 가난ㆍ질병ㆍ폭력이 지배하는 사회. 인도차이나의 현대사는 우리를 닮았다. 그뿐 아니라 전쟁으로 우리와 직결된 대상이다. 이 책은 5년 전부터 인도차이나 3국(베트남ㆍ캄보디아ㆍ라오스) 곳곳을 10여차례 이상 방문한 저자가 올 상반기에 35일간 다시한번 기행한 기록을 모은 기행서이다.

 

가이드북과 앙코르와트 해설서 몇권이 고작인 상황에서 출간된 이 책은 인도차이나에 대한 본격적인 이해를 돕기 위한 거의 첫번째 시도가 아닐까 한다. 저자는 인도차이나의 고단한 현대사에 얼룩진 강대국의 횡포와 야만을 낱낱이 고발하는가 하면 그와 맞서 힘겹게 싸워온 인도차이나의 민중들에게 진한 애정을 보낸다. 그렇다고 저자가 미국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영웅적인’ 인도차이나란, 이제는 어느정도 익숙해져버린 도식에만 매달리지는 않는다. 이데올로기의 참화에 스러져간 수많은 희생을 발판으로 삼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철권통치의 늪에 빠져 있는 각국의 현실에도 날카로운 비판을 들이민다. 그는 인도차이나의 어제와 오늘을 묵직함과 경쾌함의 양날로 변주(變奏)하고, 그 사이에 ‘우리’를 배치한다.
누가 베트남과 호찌민, 킬링필드의 신화를 건드리는가!

 

 

 

우리 사회에서 베트남과 호찌민은 일종의 터부이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세계의 진보주의자에게도 베트남과 호찌민에 대한 비판은 금기였고, 오늘날에도 그렇다. 호찌민은 자신이 평생 꿈꿔왔던 혁명을 이뤘으며, 사후의 오욕도 피해간 몇 안되는 혁명가 중 하나이다. 그런 면에서 호찌민은 체 게바라와 더불어 가장 행복한 혁명가라 할 만하다.

 

그러나 저자는 방부처리된 호찌민의 유해 아래에서 ‘유훈통치’로 권력을 유지한(오늘날에도 유지하고 있는) 베트남의 군사엘리뜨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그 의문은 급기야 호찌민에 대해서까지 확대된다. 하노이 부근에서 출발해 남진(南進)을 계속한 베트남의 역사는 물론, 인도차이나에서 자국의 이익만을 배타적으로 앞세운 스딸린식 노선을 지킨 그의 노선에 대해서도 물음표를 던진다. 특히 그의 노선을 따른 베트남의 군사엘리뜨집단이 미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이후, 캄보디아 침공과 라오스에 대한 영향력 유지 등 인도차이나의 패권국으로 자리하는 과정을 보는 그의 시선은 퍽 비판적이다. 베트남은 물론 캄보이아와 라오스 민중에게 베트남과 호찌민이 어떤 존재인지 묻는 것이다.

 

킬링필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우리에겐 영화 「킬링필드」로 다가온 그 ‘공산주의정권의 극악무도한 대학살’의 이면에 대해서도 그는 날카로운 눈빛을 번뜩인다. 1979년 캄보디아를 침공한 베트남이 ‘발굴’해 전세계로 알린 것이 킬링필드였다는 점에서는 현실정치의 비정함을 느끼고, 세워진 지 24년 만에야 철거된 뚤슬렝박물관의 해골지도 이야기에서는 캄보디아정부의 ‘의도적인’ 무능력을 고발한다. 또 베트남전쟁이 벌어지던 68년에서 73년까지 미군의 폭격으로 60~80만명으로 추산되는 캄보디아인이 목숨을 잃었고, 광대한 옥토가 초토화되었다는 점, 80만명에 이르는 폴포트 집권시기의 사망자 중 대부분은 아사(餓死)했고, 그 극심한 식량난에 허덕이던 캄보디아에 식량원조를 한 나라가 중국뿐이라는 사실은 우리의 상식에 충격을 던진다.

 

한편 그는 지난 시절 가해자 편에서 참전한 우리는 베트남뿐 아니라 인도차이나 전체에 사과해야 한다고 말한다. 더불어 베트남전쟁을 제2차 인도차이나전쟁을 불러야 옳다고도 주장한다. 그래야 과거의 극복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는 책을 펴내며 베트남과 호찌민에 대한 우리의 시각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충언을 하는 심정’이라고 밝힌다. 일방통행이 아닌 다원성이 더더욱 필요한 이때, 베트남의 역사적 공과(功過)를 가리고 냉철히 과거를 바라보자는 그의 의견은 충분히 경청할 만하다.

 

 

 

매혹적인 인도차이나 이야기

 

 

 

이 책에는 비극적이고 참혹한 인도차이나의 역사가 소개되는가 하면 매혹적인 자연과 문명을 지닌 인도차이나도 곳곳에서 고개를 내민다.

 

먼저 인도차이나 하면 빠질 수 없는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 저자는 앙코르와트의 유적을 가이드처럼 소개하는 방식 대신 유적 곳곳에 스며 있는 역사와 현실을 소설가적 상상력과 재치로 새로 엮는다. 가령, 앙코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기구(氣球)를 타고 나서 생기는 겸연쩍은 심사를 자신 안의 자신이 꾸짖는 한마디로 압축한다. “그래, 네 발 밑에 앙코르를 두니 기분이 째지더냐?” 천년고도 앙코르에 대한 숙연함의 표현이리라. 또 프놈꿀렌에 있는 폭포에서 만난 카렌족 병사의 이야기도 인도차이나에 대한 그의 애정과 박학(博學)을 말해준다. 카렌족은 미얀마와 태국의 접경지대에 사는 고산족으로 끊임없이 박해받은 민족인데, 그 멀고먼 곳에서 캄보디아 서북부까지 흘러온 사연을 생각하는 까닭이다.

 

그는 앙코르와트 근처의 북한음식점 ‘평양랭면’에서 짙은 비애감을 맛본다. 한글로 씌어 있는 ‘아름다운 평양처녀들’ 운운하는 간판과 그 평양처녀들이 남한의 관광가이드더러 ‘오빠 오빠’ 부르는 소리를 듣고는 그만 가슴 한구석이 저릿해진 것이다. 그런가 하면 우리의 젓갈과 비슷한 쁘라혹(Prahok)에 얽힌 에피쏘드는 재미나다. 캄보디아에 불법체류하고 있는 베트남인을 구별해내는 방법으로 그 나라의 보건복지부장관인가 하는 인사가 제안했다는 방법이 새삼 기막히다. 쁘라혹을 먹여봐서 먹으면 캄보디아인이요, 못 먹으면 베트남인이라는 우스갯소리를 입심 좋게 들려주는 것이다.

 

게다가 콘래드(J. Conrad)의 소설과 같은 이름의 바, ‘하트 오브 다크니스’(Heart of Darkness) 이야기에선 코폴라의 「지옥의 묵시록」과 함께 극단적인 광기와 야만에 대한 제국주의 스스로의 자의식을 언급한다. 물론 2003년의 ‘하트 오브 다크니스’에는 서양인들로 가득 차 있고, 그들의 얼굴에는 이국에서 느끼는 나른함이 가득하지만. 그리고 한때, 섹스와 마약의 낙원으로 불렸던 프놈펜의 어제와 오늘을 음미한다. 서양인들에 의해, 서양인들을 위해, 서양인들의 낙원이던 그곳에 드리워진 그늘의 깊이를 언급할 때마다, 상처 받은 인도차이나의 초상이 또렷이 떠오른다.

 

그리고 베트남.

 

이곳에서도 저자는 우리와 그곳, 과거와 현실을 넘나들며 종횡무진 이야기꽃을 피운다. 우선 화교를 억압한 양상이 우리와 너무도 흡사해 남의 얘기 같지 않은, 이제는 차이나골목이라 불러야 할 정도로 쇠락한 차이나타운 이야기가 눈길을 끈다. 베트남의 화교 탄압과 중국의 베트남 침공 사이의 연관성(중국이 베트남을 침공한 공식적인 이유는 베트남의 캄보디아 침공이라 전해진다), 도이머이(도이모이) 이후 들락날락하는 화교자본의 뚝심 등이 잘 만들어진 다큐멘터리처럼 펼쳐진다.

 

또 호찌민의 팜응우라오(팜구라오)에서 만난 키취화가의 이야기도 흥미롭다. 이곳에는 고흐의 「해바라기」가 아니라 고단함과 짜증스러움이 여실하게 밴 「팜응우라오의 해바라기」 등 우리의 서양미술사 상식에 들어 있는 거의 모든 그림의 팜응우라오판이 살아 있다. 특히 저자에게서 디에고 리베라의 벽화 한 점을 의뢰받은 한 화가의 완곡한 거절에 얽힌 사연은 기행을 통해 느낄 수 있는 감동의 한 장면이다.

 

뿐만 아니라 꾸찌터널에서 느꼈던 죽음에 대한 공포와 1970년대 당시 베트남의 사정을 오버랩시키는 장면, 이제 우리에게도 익숙해진 베트남의 쌀국수인 퍼(Pho’)를 이야기하며, 음식에서 파생하는 북베트남과 남베트남 사이의 묘한 감정을 언급하는 대목에서도 긴장감을 자아낸다.

 

이번 여행의 마지막 경유지인 라오스. 라오스의 수도 위엥찬(비엔티안)에 있는 승리문 이야기는 서구의 눈이라면 도저히 볼 수 없는 틈을 발견해낸 듯하여 미소를 자아낸다. 라오스인들은 미국이 원조한 활주로용 씨멘트를 슬쩍해 자국 독립투사들의 영혼을 기리는 승리문 빠뚝사이를 만들었는데, 언필칭 라오스의 승리문이 빠리의 개선문을 본떴다는 서구의 폄하와 수평으로 깔려야 할 활주로가 수직으로 세워졌다는 그들의 조롱을 보기 좋게 물리친다.

 

1954년 이후 미국의 CIA가 인도차이나반도의 거점으로 삼은 라오스에서 그들이 펼친 공작정치와 꼭두각시 노릇을 하고 만 몽족이야기에서는 이제는 그다지 낯설지도 않은 미국의 제3세계 지배전략과 그에 희생된 약소민족의 슬픈 사연이 들린다.

 

 

 

180여컷의 생생한 화보와 지도, 현지발음에 충실한 편집

 

 

 

이 책에는 170여컷의 화보와 10여컷의 지도를 실려 있다. 이는 인도차이나의 풍물을 재현하는 차원을 뛰어넘어 가난ㆍ질병ㆍ전쟁ㆍ학살ㆍ앙코르ㆍ반미ㆍ밀림 등으로만 고착된 인도차이나에 대한 독자의 종합적인 이해를 돕기 위함이다.

 

또 지금까지 인도차이나의 고유명사는 ‘현지발음→프랑스식→영어식→우리식’의 단계를 거친 채 수용되었다. 그에 따라 원음과는 너무도 다른 표기가 횡행하였던바, 이 책에서는 그 점을 바로잡기 위해 많은 공을 들였다. 저자가 현지음을 반영한 상태로 원고를 집필하기도 했고, 편집이 진행되던 지난 여름 문화관광부 국어심의회 표기법분과위원회에서 「동남아시아 3개 언어 표기법 제정안」에 대한 심의를 진행했던 터라 그를 참조했다. 응오딘디엠(고딘디엠), 안롱웽(안롱벵), 짜빈(트라빈), 도이머이(도이모이) 등은 그 결과이다.

 

 

 

공존의 땅, 인도차이나여!

 

 

 

저자는 인도차이나를 식민지와 전쟁의 비극과 위대한 문명과 자연의 매혹이 ‘공존’하는 땅이라고 판단한다. 도식화된 인도차이나는 이 책에 등장하지 않는다. 빛나는 문명을 이룬 위대한 인도차이나, 제국주의의 수탈에 신음하던 비극적 인도차이나, 미국과 싸워 이긴 영웅적인 인도차이나, 대량학살과 가난을 겪은 불쌍한 인도차이나, 새로운 세기를 맞아 도약을 꿈꾸는 청년 인도차이나. 이 모두가 인도차이나의 얼굴인 까닭이다. 저자는 인도차이나의 이런 다면상(多面像)을 균형 잡힌 안목과 거침없는 입심으로 자상하게 들려준다.

목차

책머리에

전쟁과 평화의 살아있는 박물관
베트남 기행

호찌민 혹은 사이공, 쁘레노꼬
미토의 차이나타운이 차이나골목이 된 이유
작은 캄푸치아크롬, 짜빈
메콩삼각주의 중심지 껀토
어찌해도 피해갈 수 없는 것이 호찌민이라면
메콩삼각주, 강과 운하와 사람들
쌀풍선과 쌀국수
팜응우라오의 사랑스러운 키취
꾸찌터널과 악몽
전쟁과 평화
박물관 옆 미술관
다랏, 작은 보석이 어울리는 곳
냐짱 가는 길의 잊혀진 왕국
그때 그 나트랑, 냐짱
후에, 씨멘트로 덧발라진 고풍스러움
내 앞에 있는 두 개의 비무장지대에서
혁명과 호수와 36의 도시
「인도차이나」와 하롱만

앙코르와트의 영광과 킬링필드의 오욕
캄보디아 기행

국경 소묘
픽업트럭은 달린다, 차렁차페이와 함께
천년고도에 등장한 평양
달빛 아래 천년의 고도
프놈바껭의 풍선
앙코르의 새해 맞이
하루이거나 또는 한달이거나
오, 나의 귀여운 압사라
250m 상공에서의 앙코르와 풍선
앙코르와트
“나는 신이다”
여인의 성(城), 야즈나바라하의 보석
‘태국을 물리친 도시’와 전쟁
시엠립에서의 마지막 밤
위대한 호수 똔레삽, 크메르의 아버지
똔레삽을 가로질러 프놈펜으로
프놈펜이라고 불렸던 낙원
4월의 프놈펜
킬링필드의 상징 뚤슬렝박물관
‘하트 오브 다크니스’
새해 첫날 프놈펜 풍경
루트 넘버 4
헬로우 시하눅빌
마지막 폭격과 최초의 전투
와이어리스 캄보디아
깜뽓, 손톱만큼도 변하지 않은
보꼬산의 프렌치메모리
메콩삼각주에 신고하고 프놈펜으로 돌아오다
스베이리엥으로 바벳으로

고요한 코끼리와 우산의 나라
라오스 기행

100만마리의 코끼리와 우산
역사박물관에서 보는 라오스
수직으로 날아가는 승리문
또 하나의 천국
에어아메리카, CIA 그리고 헤로인
루앙파방으로 가는 길, 20명이 죽었어요?
코끼리와 우산의 고도(古都) 루앙파방

수상정보
저자 소개
  • 유재현

    1962년 서울에서 태어났고, 아주대학교 전자공학과에서 공부하다 학생운동으로 제적되었다. 그후 민청련ㆍ전노운협ㆍ전노협준비위 등에서 활동했으며 1992년 『창작과비평』 봄호에 단편소설 「구르는 돌」을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1990년대 후반기부터 인도차이나의 역사와 문화에 깊은 관심을 갖고 기행을 시작했으며, 한때는 캄보디아에 머물며 인도차이나 곳곳을 탐사하기도 했다. 우리 작가 중 드물게 ‘아시아’에 천착하고, 한반도와 아시아의 연대를 모색하는 글쓰기에 전념하고 있다. 저서로는. 캄보디아 시하눅빌에 머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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