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사신

책 소개

1992년 출간된 이래 지금까지도 많은 독자들로부터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나의 서양미술 순례』(창작과비평사)의 저자 서경식의 새로운 미술 에쎄이집 『청춘의 사신-20세기의 악몽과 온몸으로 싸운 화가들』이 출간되었다. 서양의 여러 미술관, 박물관을 돌아다니며 접한 미술품들을 다룬 연작 에쎄이 『나의 서양미술 순례』가 중세와 르네쌍스 시대의 미술로부터 출발한 반면, 『청춘의 사신(死神)』은 1899∼1900년 작품(뭉크 「생명의 춤」)에서부터 1945년 작품(후지따 쯔구하루 「싸이판 섬 동포, 신절을 다하다」)에 이르는, 전쟁과 살육의 시대라 할 수 있는 20세기 전반의 회화예술에 대한 에쎄이 31꼭지를 모은 것이다. 생생하고 세밀하게 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44컷의 컬러도판, 6컷의 흑백도판을 실어 책 읽는 재미를 더해주며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다.

 

『청춘의 사신(死神)』은 단순한 ‘미술감상의 길잡이’라는 개념에 갇히지 않고 시대의 아픔에 대한 놀라운 통찰과 역사와 교감하는 예술에 대한 섬세한 심미안을 보여준다. 또한 예술가의 삶과 작품에 관한 풍부한 교양, 평이하면서도 유려한 문체, 강렬하고 이색적인 그림들이 어우러져 책의 품격을 한층 높이고 있다.

 

저자 서경식은 1951년 일본 쿄오또에서 태어난 한국인 2세이다. 와세다대학에서 프랑스문학을 공부한 뒤 자유기고가로 활동하며 『나의 서양미술 순례』 『어린이의 눈물』(일본 에쎄이스트클럽상 수상) 『쁘리모 레비(Primo Levi)로의 여행』(마르코폴로상 수상) 『분단을 살다』 『사라지지 않는 사람들』 등을 간행했고, 현재 토요꾜오 케이자이(東京經濟)대학 현대법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역자 김석희는 『로마인 이야기』 등 백여권을 번역하고 제1회 한국번역상 대상을 수상한 명망 있는 전문번역가이다.

 

 

 

* 예술은 지하실의 창

 

주지하듯이 서경식은 1971년 한국의 군사독재정권의 감옥에 두 형(서승, 서준식)을 빼앗기고, 20여년간 조국의 옥중에 갇혀 있는 형들을 석방시키기 위해 노심초사 통고의 세월을 산 재일동포 지식인이다. 서승, 서준식 형제가 감옥에서 잔혹한 고문을 당하고, 사형선고를 받고 단식투쟁을 벌이는 동안, 서경식과 일본의 가족들은 이들을 살려내고 구출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삶의 전부였다 한다. 당시 저자는 “지하실에 처넣어진 듯한”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고 밝힌다. 예술은 그에게 ‘숨막히는 지하실에 뚫린 작은 창문’ 같은 것이었는데 창문이 벽 높은 곳에 있어서 바깥 경치를 직접 접할 수는 없지만 하늘의 색깔 변화나 공기가 흐르는 기미는 느낄 수 있었으며, 비록 창문으로 도망칠 수는 없지만 그 작은 창문 덕에 살아 있을 수 있었다고 한다.

 

이렇게 소중한 ‘창’이 되었던 예술작품들은 어떤 것들인가? 저자가 유독 아끼는 예술가 가운데 하나인 오토 딕스(Otto Dix)의 작품은 기괴하기 짝이 없다. 오토 딕스는 나찌에 의해 ‘도덕적 감정을 현저히 해친다’고 규탄 받은 작품 중 「일곱 가지 대죄」에서 혐오스러운 무리 속에 나찌의 상징인 ‘하켄크로이츠'(갈고리 십자)의 형태를 담아 나찌의 신경을 건드리는 도전장을 던졌다.

 

국내 독자에게 다소 생소한 화가인 펠릭스 누스바움의 「유대인 증명서를 들고 있는 자화상」은 탈출구가 없이 막다른 구석에 몰려 무참한 파국으로 치닫고 있는 한 남자의 절박한 심정을 여실하게 보여준다. 하지만 은신처에서 나찌에 발각되어 아우슈비츠에서 살해당한 화가 자신의 삶을 이해하고 다시 그림을 보면 궁지에 몰린 그림 속 남자가 우리에게 ‘유대인 증명서’를 내보임으로써 그림을 보는 사람을 ‘밀고자’의 위치에 놓고 있음을 알아챌 수 있다.

 

에곤 실레의 「죽음과 소녀」는 승리를 기약하기 어려운 지루한 투쟁과 세상에서 의미있는 존재가 되고 싶다는 욕망 속에서 몸부림치며 항상 가까이에서 죽음을 느낄 때 저자 서경식이 격렬한 전율과 함께 접했던 그림이다. ‘죽음과 소녀’라는 모티프는 15세기 이후 서양회화에서 빈번히 등장하는데 당시의 ‘죽음과 소녀’가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와 ‘선정적 풍속화’의 성격을 갖고 있던 반면, 에곤 실레의 작품은 청춘의 욕망과 좌절을 애처롭게 비추어낸 20세기의 회화이다. 사신(死神)이 소녀를 잡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소녀가 사신을 놓치지 않으려고 간절히 매달려 있다는 느낌이다.

 

 

 

* 현실에 떠밀려가지 않으려는 저항의 예술혼

 

제목에 쓰인 ‘청춘(靑春)’과 ‘사신(死神)’은 모두 일본 사회에서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 죽은 말[死語]이라 한다. 저자가 생각하기에 이런 말들이 소멸된 까닭은 사람들에게 생사의 윤곽 자체가 흐릿해져버렸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자신의 삶과 죽음 자체에서 소외되어 있으며, 일상의 생활 속에서 “감성을 섬세하고 예민하게 유지하는 것이 사회에서 무난히 살아가는 데 불리”하기 때문에 껍데기를 뒤집어쓰고 잔뜩 몸을 웅크리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세태에 떠밀려가지 않고 삶과 죽음의 절박한 문제들을 붙들기 위해 작가는 ‘청춘의 사신’이란 제목을 고집했다고 밝힌다.

 

케테 콜비츠(31면) 죠지 그로스(82면) 오토 딕스(139면) 펠릭스 누스바움(184면) 벤 샨(128면) 이께다 요오손(107면) 등 20세기의 고난을 온몸으로 받아들인 예술가들의 작품 밑바닥에서 솟구치는 저항의 예술혼을 캐올리며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세계대전과 대량살육으로 상징되는 20세기 전반, 예술가들은 사신(死神)의 숨결을 끊임없이 귓전에 느끼면서 끝없는 창조의 싸움을 벌였다. 푸르른 삶과 시커먼 죽음에 대한 동경. 그들이 남긴 작품은 전쟁과 대량학살, 난민의 시대가 세기를 넘어 계속되고 있는 지금도, 우리에게 그 동경이 아직도 다 타버리지 않았음을 상기시켜줄 것이다.”

 

체험에 뿌리박은 진지한 시선과 예술과 인간을 둘러싼 깊고 치열한 사색이 돋보이는 이 독특한 미술 에쎄이와 많은 독자들이 만나게 되기를 기대한다.

목차

머리말을 대신하여
지하실의 창(窓)

에로스의 혀
에드바르드 뭉크 「생명의 춤」 (1899∼1900)

창백한 괴물
빠블로 삐까쏘 「자화상」 (1901)

사악한 원숭이
구스타프 클림트 「베토벤 프리즈: 적대하는 힘」 (1902)

전쟁의 세기의 어머니와 아들
케테 콜비츠 「죽은 아이를 안고 있는 어머니」 (1903)

조용한 야수
알베르 마르께 「그랑-조귀스땡 강변, 빠리」 (1905)

그늘의 사람
조르주 루오 「거울 앞의 여인」 (1906)

순수하게 독일적인?
로비스 코린트 「대순교」 (1907)

슈테틀의 기억
마르끄 샤갈 「탄생」 (1910)

만남
바씰리 깐딘스끼 「인상 3(연주회)」 (1911)

균열
에른스트 루트비히 키르히너 「베를린의 거리 풍경」 (1913)

환시자(幻視者)
오스카르 코코슈카 「바람의 신부」 (1914)

청춘의 사신(死神)
에곤 실레 「죽음과 소녀」 (1915)

세계대전의 악몽
죠지 그로스 「매장식―오스카르 파니짜에게 바친다」 (1917)

광기와 비애
세끼네 쇼오지 「신앙의 슬픔」 (1918)

죽음의 초상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자화상」 (1919)

역사의 천사
파울 클레 「새로운 천사」 (1920)

이단의 빛
이께다 요오손 「재화의 흔적」 (1924)

저물어가는 근대 일본
사에끼 유우조오 「심바시 풍경」 (1926)

대상과 비대상의 경계
까지미르 말레비치 「머리」 (1928∼32)

항의운동의 성화(聖畵)
벤 샨 「싸꼬와 반쩨띠의 수난」 (1931∼32)

자본주의 문명의 유적
디에고 리베라 「디트로이트의 산업」 남쪽 벽화 (1932∼33)

나찌의 신경을 건드리다
오토 딕스 「일곱 가지 대죄」 (1933)

총통의 포르노그라피
아돌프 찌글러 「네 원소」 (1936∼37)

현실은 밝은 것
노다 히데오 「도회」 (1934)

죽어버릴 거야!
하세가와 토시유끼 「중화요리점」 (1936)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의 고요함
빠블로 삐까쏘 「게르니까」 (1937)

포그롬의 기억
샤임 쑤띤 「소나기가 지나간 뒤의 하교」 (1939)

흙과 예술
에밀 놀데 「바다와 붉은 구름」 (1938∼45)

궁지에 몰린 남자
펠릭스 누스바움 「유대인 증명서를 들고 있는 자화상」 (1943)

이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아이 미쯔 「눈이 있는 풍경」(1938) 「자화상」 (1944)

헌금함
후지따 쯔구하루 「싸이판 섬 동포, 신절을 다하다」 (1945)

옮긴이의 덧붙임

수상정보
저자 소개
  • 서경식

    1951년 일본 쿄오또(京都)에서 재일조선인 2세로 태어나, 와세다(早稻田)대학 프랑스문학과를 졸업했다. 2000년부터 토오꾜오케이자이(東京經濟)대학 현대법학부 교수로 재직중이다. 국 내에 번역 출간된 책으로 『나의 서양미술 순례』 『청춘의 사신』 『소년의 눈물』 『디아스포라 기행』 『난민과 국민 사이』 『단절의 세기 증언의 시대』 등이 있으며, 1995년 『소년의 눈물』로 일본 에쎄이스트클럽상을, 2002년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로 일본 이딸리아 문화원에서 시상하는 마르꼬뽈로상을 받았다.

  • 김석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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