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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 한일 우익 근대사 완전정복 
    이영채, 한홍구 지음 |교양, 인문|2020년 01월 15일|16,000원

    일본은 왜 역사반성을 하지 못했을까 경제제재와 불매운동 이후에 살펴보는 한일 근대사의 쟁점들 일본의 경제제재와 『반일 종족주의』 대량 판매로 급격하게 관심이 높아진 한일 과거사 문제를 낱낱이 해부한 책 『한일 우익 근대사 완전정복』이 출간되었다. 한일관계 악화를 계기로 공중파 등 여러 매체에 출현하며 일본 문제를 다뤄온 대표적인 한일관계 전문가 이영채 교수(일본 게이센여학원대)와 탁월한 한국현대사 연구자이자 반헌법행위자열전 책임편집인인 한홍구 교수(성공회대)가 뭉쳐 한일 극우세력의 역사인식에 정면으로 맞선다. 유튜브 채널 「한홍구TV, 역사 ‘통’」에서 두 저자가 총 10차례에 걸쳐 강연한 내용을 책으로 엮었다. 2019년 단행된 일본의 경제보복 뒤에는 식민지배를 둘러싼 한일 간 과거사 문제가 있었다. 아베 총리를 중심으로 하는 일본 극우세력은 ‘강한 일본’을 되찾아야 한다는 주장을 되풀이함으로써 지난 20년간 침체기를 겪어온 일본사회에서 장기 집권하고 있다. 그들은 일본을 다시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 만드는 작업의 일환으로 과거의 식민통치를 부정하고 전쟁 과정에서 일본이 저지른 만행을 축소해왔다.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판결에 아베 정부가 유난한 반응을 보인 것도 그런 맥락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편 한국의 보수세력은 일본 사회 우경화에 호응이라도 하듯이 제국주의 식민지배와 국가폭력을 비판하는 입장을 ‘반일 종족주의’로 몰아세우며 공격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이들은 케케묵은 ‘식민지 근대화론’뿐 아니라 일본 제국주의의 강제동원을 부정하고 친일파를 옹호하는 등 기존 서술을 전방위적으로 부정하는 도발적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반일 종족주의』는 촛불혁명 이후 입지가 좁아진 국내 보수세력의 호응을 등에 업고 일본에까지 수출되었다. 여기에 일본 우익이 역으로 반기는 모양새다. 『한일 우익 근대사 완전정복』은 이러한 한일 극우세력의 잘못된 역사관을 바로잡고 평화로운 동아시아를 만들어가자고 제안한다. 메이지유신까지 거슬러 올라가 야스쿠니 신사, 전후(戰後) 협정 등 일본 근현대사의 핵심주제를 살펴봄으로써 일본 우익의 무리한 주장이 무엇인지 밝혀내고, 일본 자체를 악마화하기보다는 일본 내 양심세력과 연대해야 함을 강조한다. 또한 국내 친일문제는 일제강점기뿐 아니라 그 후에도 계속해서 한국 사회의 주류를 형성해온 기업인, 군인, 관료, 교육자, 문인, 예술가, 종교인 등과도 관련이 있음을 지적하는 한편,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재일조선인과 일본군 ‘위안부’ 등 강제동원 문제를 자세히 설명하며 ‘오늘의 과제’를 환기시키는 내용도 주목할 만하다. 여러 차례 기회를 놓친 일본과 ‘역사 피로감’ 2차대전에서 패배한 이후 일본은 식민지배를 반성할 수 있는 기회가 여러 차례 있었음에도 매번 책임을 회피하며 기회를 놓쳤다. 전후 처리 과정에서는 승전국들이 식민지 문제에 무관심했고, 미군정으로부터 독립하면서는 일본이 이를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1965년 한일기본조약은 한일 양국의 직접적인 협상으로 식민지배 사과와 배상이 이뤄질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였다. 실제로 한국이 사과와 배상을 요구했지만, 일본은 이를 거부하고 경제협력 방식을 고집했다. 또한 인도네시아나 대만 등 식민지배를 했던 아시아 국가들과도 역사문제는 전혀 해결하지 않았다. 중국과의 관계에서도 모든 청구권을 포기시켰다. 이렇게 역사문제가 제대로 청산되지 못했음에도 일본인들이 주변국들의 반응에 ‘역사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는 점은 극우 역사관이 득세하는 현재 일본 상황을 이해하는 열쇠다. 전쟁이 잘못이라고 인정하는 일본인 상당수조차, 원폭 등 전쟁 과정에서 피해를 겪었고 전후 협정 과정에서 굴욕적으로 승전국들의 요구를 들어야 했던 일본이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야스쿠니 신사, 근대 일본의 상징이자 도발의 현장 매년 반복되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 논란은 이런 갈등을 대표하는 사례이자, 우리가 몰랐던 일본인의 집단심성을 비추는 거울이다. 일본 제국주의 침략을 경험했던 국가들은 A급 전범이 합사되어 있는 야스쿠니를 참배하는 것은 침략을 긍정하는 것이라고 강력히 비판한다. 이런 비판은 일리가 있지만, 야스쿠니에는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고 저자들은 지적한다. 야스쿠니는 메이지유신 이후 수많은 전쟁에서 천황을 위해 희생된 사람들이 신으로 합사돼 있는 곳으로, 유신 당시의 메이지 천황이 직접 설립했고 이후 천황들이 참배해왔다. 따라서 야스쿠니에는 근대국가 일본의 핵심 정체성, 바로 천황제 이념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2차대전 이후 패망한 일본 제국이 다른 모든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지켜낸 것이 천황제라는 점을 상기한다면 그 중요성을 더 분명히 알 수 있다. A급 전범이 야스쿠니에 합사된 것이 오히려 오늘날 천황과 일본 우익 총리 간의 갈등 요소라는 점도 한국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사실이다. A급 전범이 합사되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진 1978년 이후 정작 천황은 야스쿠니를 참배하지 않는다. 천황이 전범을 합사한 야스쿠니에 간다는 것은 마치 히틀러가 묻힌 곳에 독일 대통령이 참배를 가는 셈이기 때문이다. 고이즈미, 아베 등 일본 우익 총리들이 야스쿠니를 참배하는 것이 얼마나 모순적이고 도발적인 행동인지를 이 점에서도 알 수 있다. 『반일 종족주의』는 또다른 종족주의일 뿐 메이지유신 이후 천황 중심으로 재편된 일본이 폭력적인 제국주의 국가로 확장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들은 오늘날 일본 우익의 뿌리다. 이들은 오로지 ‘위대한 일본’을 만들기 위해 군국주의 국가를 만들고 주변국을 서슴없이 침략하는 데 앞장섰다. 특히 이들의 입장에서 한반도는 대륙으로 뻗어나가기 위한 발판이자 일본의 주권선을 지키는 이익선일 뿐이었다. 이런 역사에 대한 반성과 청산 없이 다시금 득세하는 일본 극우의 ‘역사 수정주의’를 지켜보는 우리의 심정은 씁쓸하기만 하다. 『반일 종족주의』는 이러한 일본의 극우 역사 수정주의를 수입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식민지 시기의 경제발전이나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노골적으로 일본 극우의 입장을 베끼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식민지 근대화론의 입장에서 인정할 만한 주장이 몇 가지 있다 해도 전체 역사서술을 다시 써야 할 만큼의 증거가 나오지 않았음에도 침소봉대하며 기존 역사연구를 부당하게 공격하고 있다. 근대를 오로지 경제개발에만 초점을 맞춰 설명하는 방식도 균형 잡힌 역사인식이라고 하기 어렵다. 이런 점에서 저자들은 ‘자본주의 맹아론’ 등 기존의 학설이 자의적이라는 그들의 비판을 『반일 종족주의』에 그대로 돌려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비관적인 흐름에서 유일한 희망은 평화세력의 연대 일본의 전후 ‘55년체제’는 자민당 내 자유주의 세력의 평화노선과 사회당과 공산당 등 일본 내 진보세력들의 공존으로 유지돼왔다. 다시금 군국주의를 긍정하는 극우세력이 일본의 패권을 장악한 것은 90년대 이후 이어진 긴 불황과 동일본 대지진, 후쿠시마 원전사태 등 대재해의 결과다. 침체기에 성장한 젊은 세대가 오히려 보수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틀이 바뀔 전망도 어둡다. 일본의 진보적 사회운동은 명맥을 이어오고 있지만 보수를 대신할 새로운 사회 비전을 제시하는 데 실패해왔다. 사회당‧민주당 등 제도권의 야당 세력은 동일본 대지진을 거치며 해체하거나 군소 정당으로 전락했고, 안보투쟁 등 주요한 계기가 되었던 사건들에서 패배해온 역사도 대안세력을 더욱 위축시켰던 것이다. 그럼에도 저자들은 한일 사회운동의 연대가 유일한 희망이라고 강조한다. 재일조선인 문제 등 우리에게도 중요한 문제가 일본 사회의 변화와 직결되어 있을 뿐 아니라, 촛불혁명을 거친 한국 사회운동과, 지역사회 운동에서 단단한 경험을 가진 일본 사회운동이 서로의 부족한 점을 채워줄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양국 시민사회의 연대는 계속돼왔지만, 최근 민주주의 발전 방향이 달랐고 냉전 등 국제정세가 변화하면서 전환이 필요한 단계에 와 있다. 역사 문제에 있어서는 한국과 일본의 분위기가 워낙 달랐던 탓에 괴리가 있기도 했다. 『한일 우익 근대사 완전정복』은 이럴 때일수록 절실한 것이 바로 상호 역사인식의 공유라고 주장한다. 근대사 문제가 다시 한일관계의 쟁점이 된 지금이야말로 오히려 양국 시민사회의 연대를 새로이 다질 기회일 것이다. 진흙 속에서 진주를 찾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 문학3 2020년 1호 
    문학3 기획위원회 엮음 |문학3, 정기간행물|2020년 01월 15일|8,800원

    그것이 우리의 미래가 아니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창간 3주년 개편호, ‘지속 가능한 삶’을 위한 다섯가지 질문 ’삶을 움직이는 플랫폼’ 〔문학3〕이 창간 3주년을 맞았다. 잡지 『문학3』은 2017년 창간호를 시작으로 촛불혁명과 광장, 이분법, 페미니즘, 주거와 공존 감각, 뉴미디어와 쓰기/읽기, 노동 및 여행 등의 키워드로 우리 사회의 단면을 민감하게 포착하고 기존의 사고방식에 새로운 질문을 던지는 신선한 기획을 선보여왔다. 2020년 1호부터 새로운 표지와 장정으로 독자들과 만나는 『문학3』은 새로 시작하는 마음으로, 삶 속에서 발견하고 행동하는 문학을 추구하고자 한다. 주목: 지속 가능한 삶 이번호 주목란에서는 ‘지속 가능성’을 화두로, 친환경을 넘어 필환경이 요청되는 지금 우리의 삶이 무엇을 위해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살펴보았다. 이번호를 준비하는 중에도 호주에서 발생한 기록적인 산불이 대규모로 확산되어가는 과정을 수시로 접할 수 있었다. 지구 온난화에 따른 해수면 상승으로 9개의 섬 중 2개가 이미 물속으로 잠긴 투발루는 국민 전체가 기후난민이 될 위기에 처해 있으며, 한국은 매년 최악을 경신하는 미세먼지를 직격으로 맞고 있다. 『문학3』은 지금 세계 곳곳에서 마주하는 재앙의 풍경이 우리의 현실임을 자각하며 각자의 영역에서 지속 가능한 삶의 방식을 모색하는 다섯 필자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예술사회학 연구자 이라영은 계층‧인종‧지역‧젠더 문제를 모두 포괄하는 이슈로서의 환경과 생태를 논한다. 비거니즘을 화두로 삼은 그의 논의는 철학적, 정치적 신념과 일상 속 실천이 일치하지 못할 때 느끼는 모순을 동력으로 삼아 그럼에도 ‘밥상 위 실천’을 통해 몸이 일상의 메시지가 되는 경험을 이어나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생태주의적 사고가 종(種) 착취의 구조 및 소수자 감수성을 발견하게 하고, 나아가 자본주의 체제와 가부장제에 대한 성찰을 가능케 한다는 그의 사유가 우리의 일상에 문제의식을 던진다. 이어서 서울 망원동에서 ‘쓰레기 덕질’을 하고 있는 환경활동가 고금숙이 ‘에코하우스’를 짓고 생활한 경험을 바탕으로,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상 속 실천에 관해 이야기한다. 기후변화를 가속하는 것이 ‘음의 되먹임’(negative feedback)이라면 한 사람 한 사람의 실천이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는 ‘양의 되먹임’(positive feedback)으로 기후위기에 대처할 수 있다는 그의 외침이 더 멀리 퍼질 수 있기를 바란다. 『왜 아무도 나에게 말해 주지 않았나』를 통해 대한민국 원자력발전소의 실상과 진실을 탐구해온 시인 신혜정은 핵발전이라는 완성되지 않은 기술의 기회비용과 위험성을 꼼꼼히 살피며 탈핵이 미래를 위해 필수적인 선택임을 강조하는 글을 보내주었다. 핵발전의 대안을 묻기보다는 ‘탈핵을 위해 할 일은 무엇인가’로 질문을 바꾸어야 한다는 통찰이 인상적이다. ‘청소년기후행동’의 청소년 활동가 오연재의 글을 통해서는 그레타 툰베리(Greta Thunberg)로부터 바통을 이어받은 결석시위가 한국에선 어떤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한국의 청소년들은 기후위기에 어떤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는지 살필 수 있다. 더 먼 미래를 살게 될 존재임에도 작은 목소리밖에 낼 수 없는 청소년 주체로서의 고민과 모색이 여실히 담겨 있다. 마지막으로 ‘지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의 홍수열은 한국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심각한 수준에 이른 쓰레기 문제의 현주소를 살피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순환경제라는 개념을 소개한다. 개인을 비롯하여 기업과 정부 차원에서 물질낭비적인 현 경제체제에 대한 반성과 극복이 필요하다고 역설하는 그의 글을 통해 더욱 거시적인 차원에서의 지속 가능한 삶을 상상해볼 수 있기를 바란다. 창작과 중계 이번호 소설란은 기준영 김숨 이민진 정용준이 보내온 신작으로 채웠다. 각자의 고유한 시선으로 주변을 응시하는 단단한 작품들이다. 중계 코너에서는 교육인류학 연구자 김경미, 잡지 『글리프』의 에디터로 활동하는 예스24 도서 MD 이정연, 시인 장현이 수록 소설들을 함께 읽고 의견을 나누어주었다. 시란에는 구현우 박연준 이해존 하재연의 신작시와 함께 원고모집을 통해 선정한 성보현의 작품을 수록했다. 서로 다른 시선과 세계가 담긴 작품이 어느 때보다 풍성하게 어우러진다. 시 중계에는 팟캐스트 「서늘한 마음썰」을 만들고 있는 KBS 라디오 PD 김휘연, 시인 조해주, 미학을 공부하며 소설을 쓰고 있는 작가 황운이 함께해주었다. 현장과 시선 『장애학의 도전』 등의 저서를 통해 장애인과 소수자에 대한 새로운 사유를 바탕으로 우리 사회의 가장 첨예한 장애 문제를 적극적으로 다뤄온 노들장애인야학 교사 및 활동가 김도현이 장애인의 자립에 관한 글을 보내주었다. 장애인운동의 변모를 환기하며, 자립과 의존을 대립적으로 보는 사고를 넘어 의존을 선택할 수 있는 상태로 장애인의 자립을 상상할 것을 제안한다. 이어 마창거제산재추방운동연합 상임활동가인 이은주가 납중독 작업병으로 고통받는 노동자 정경화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산업재해에 무방비로 노출된 노동환경을 고발한다. 수십년 동안 계속되었지만 은폐되어 기억조차 되지 않는 수많은 노동자의 죽음이 새삼 묵직하게 다가온다. 한편 바다 쓰레기, 제주 제2공항 건설 등 제주 환경문제를 지역사회 차원에서 고민하기 위한 ‘우리가 그랬어’ 행사가 작년 11월 제주시의 독립서점 일곱군데서 열렸다. 참여 서점 중 하나인 미래책방의 이나현이 행사 기획과 준비과정을 기록했다. 작지만 모여서 마주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경험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미래책방에서 환경을 위해 기획한 여러 실천이 생생하게 담겨 있어 주목란의 글과 함께 읽어볼 것을 권한다. 시선란에는 일러스트레이터 이에니가 포착한 몽환적인 풍경과 짧은 글이 함께 실렸다. 흐릿한 시야 너머로 쓸쓸함과 슬픔이 겹겹이 쌓인 아름다운 그림들이다. 이어 『그리고 먹고살려고요』의 작가 백두리의 단편 만화도 관심을 모은다. 좋아하는 일을 하고 살면서 느끼는 순수한 좌절과 사랑이 진솔하게 담겨 있다. 문학웹과 문학몹 문학웹(www.munhak3.com)의 시 연재 코너 ‘시작하는 사전’은 1년간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으며 한재범의 신작시로 연재를 마무리했다. 10월에는 문학몹 열한번째 이야기 함께 시작하는 사전 낭독회를 열어 정다연 정재율 조온윤 홍지호 시인과 함께 발표작을 낭독하고 시와 시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2020년에는 새로운 시 연재 ‘비밀의 책’이 시작된다. ‘비밀’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신작시 한편, 비밀에 관한 에세이 한편이 연재될 예정이다. ‘3×100’의 산문 연재 ‘여성과 몸’ 그리고 소설가 김성중의 「화성의 아이」도 성황리에 연재를 마쳤다. 오는 2월부터 선보일 조해진 곽재식의 각기 다른 색깔의 소설 연재에도 많은 관심과 사랑을 부탁드린다.



  • 당신을 찾아서 
    정호승 시집 |시, 창비시선|2020년 01월 10일|9,000원

    “새벽별 중에서 가장 어둡고 슬픈 별은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내일에 가야 할 인간의 아름다운 길, 끝내 영원할 시인 정호승의 신작 시집 사랑과 고통을 노래하며 삶을 위로하고 인생의 소중함을 되새기게 하는 따뜻한 시편들로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온 우리 시대의 대표적인 서정시인 정호승의 신작 시집 『당신을 찾아서』가 출간되었다. 시인의 열세번째 시집으로, 2020년 ‘창비시선’의 첫번째 시집이라 더욱 의미가 깊다.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눈물의 고해성사를 통해 인간이라는 불씨, 인간이라는 새싹을 살려내”(문태준, 추천사)는 뭉클한 감동이 서린 순정한 서정 세계를 선보인다. 진솔하고 투명한 언어에 깃든 “불교적 직관과 기독교적 묵상과 도교적 달관”(이숭원, 해설)이 아름답게 어우러진 정결한 시편들이 가슴을 촉촉이 적시며 잔잔하게 울린다. 모두 125편의 시를 각부에 25편씩 5부로 나누어 실었으며, 이 중 100여편이 미발표 신작시이다. “먼 산에 꽃은 또 피는데, 도대체 당신은 어디에 있는가” 등단 이후 47년, 사랑과 고통의 본질을 압축해낸 정호승 시의 정수 정호승의 시에는 인간에 대한 사랑과 생에 대한 경외심이 우러난다. 그의 시를 읽으면 지나온 삶을 겸허한 마음으로 되돌아보게 된다. 시인은 “내 시의 화두는 고통”이라고 밝힌 적이 있다. “살아갈수록 상처는 별빛처럼 빛나는 것”(「부석사 가는 길」)이고, 그 상처에서 피어나는 꽃과 같은 시가 삶을 성찰하는 거름이 된다고 말한다. 시인은 “눈물마저 말라”버린 “목마른 인생”(「새들이 마시는 물을 마신다」)에서 가장 가치 있는 것은 사랑이며, 그 사랑은 고통을 통해 얻어진다고 믿는다. 고통은 또한 용서를 통해 치유되는 것이기에, ‘사랑할 수 없는 것을 사랑하고 용서할 수 없는 것을 용서하는’ 일에 진심을 바쳐온 시인은 간절한 손길로 “인생이라는 강”에 “용서라는 징검다리”(「유다를 만난 저녁」)를 놓는다. 인생의 의미와 가치, 사랑과 고통의 본질을 탐구해온 시인은 삶의 고통과 슬픔을 사랑과 용서와 화해로 승화시킨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사랑하는 마음을 깊이 간직하며 아름다운 세상을 갈망해온 그의 시선은 늘 “인생을 잃고 쓰러진”(「겨울 연밭」) 연약한 존재들에게 머물며 삶의 그늘진 구석을 응시한다. 시인은 이제 비루한 삶의 낮은 곳에서도 “먼지가 밥이 되는 세상”(「먼지의 꿈」)을 꿈꾸며 “푸른 겨울 하늘을 날아/붓다를 찾아가는/작은 새”(「낙인(烙印)」)가 되어 절대적 진리와의 만남을 갈망한다. “만나고 싶었으나 평생 만날 수 없었던”(「당신을 찾아서」) 절대적 진리의 상징인 ‘당신’을 찾아서 “평생의 눈물이 얼어붙은/저 겨울 강”(「겨울 강에게」)을 건너는 시인의 열망은 뜨겁다 못해 눈물겹다. 시인은 1973년 스물네살에 대한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이후 종심(從心)의 나이에 이르기까지 오롯이 시의 외길을 걸어왔다. 질곡의 세월을 건너오는 동안 시인으로서의 삶에 늘 감사해하며 인간으로서 가치 있는 삶을 살고자 견결한 정신을 가다듬으며 살아온 천생의 시인이다. 어느덧 “죽음을 앞둔 늙은 어린이”(「나의 지갑에게」)가 되어 인생 칠십의 황혼길에 접어든 시인은 이제 다시 시를 쓸 수 있을지 못내 두렵다 말하지만, “인간의 더러운 풍경”(「새들이 첫눈 위에 발자국으로 쓴 시」)과 이 세계의 추악한 얼굴이 사라지지 않는 한 “화해하는 숯의 심장”에 “용서의 불씨를 품은 참숯”(「숯이 되라」)과 같은 순결한 시심(詩心)은 쉽사리 꺼지지 않을 것이다. 그의 시는 “인간의 심장을 검게 물들이는 어둠”(「검은 마스크」)을 밝히는 한점 불빛이자 삶을 풍요롭게 하는 영혼의 양식이다.



  • 열 가지 당부 십 대부터 알아야 할 노동 인권 이야기 
    하종강 외 9인 지음 |교양, 청소년|2020년 01월 03일|12,800원

    일하는 미래를 준비하는 청소년과 청년을 위해 우리 사회 대표 노동 전문가들이 전하는 각별한 당부! 청소년과 청년을 위한 노동 인권 교양서. 일하는 미래를 준비하는 이들, 그리고 ‘알바’와 현장 실습, ‘인턴’ 등의 이름으로 일의 세계에 처음 발을 들여놓는 이들이 반드시 유념해야 할 노동 인권 지식과 상식을 모았다. 책은 당부의 형식으로 쓰였다. 노무사, 경제학자, 의사, 인권 활동가 등 우리 사회 각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는 전문가들이 청소년과 청년에게 꼭 전하고 싶은 한 가지 당부의 말을 전한다. 그렇게 모인 총 10가지 당부는 그 자체로 ‘노동자의 10계명’이라고 할 만큼 필수적인 조언들로 구성되어 있다. 노동자의 뜻부터 노동법의 역사, 근로 계약서 작성법, 스트레스를 다스리는 법까지 누구나 알아야 할 기초적인 내용이 망라되어 있다. 어떤 직업을 갖든 자기 몸과 마음을 지키고, 자부심을 갖고 일하면서, 자신의 권리를 정확히 알고 당당하게 찾아가는 데에 큰 도움을 주는 책이다. 노동자의 뜻부터 노동법까지 미리미리 준비해야 할 기초적인 지식들 노동 인권에 대한 교육은 언제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을까? 독일에서는 초등학교에서부터 시작한다. 독일 초등학생들은 모의 노사 교섭을 일 년에 몇 차례씩 해 본다. 프랑스도 비슷하다. 프랑스 고등학생들은 노동 시장 유연성, 주 35시간 노동 등에 대해 교실에서 활발히 토론한다. 이런 수업이 가능한 이유는, 이들 나라에서는 노동 인권에 관한 지식을 사회 구성원이 널리 공유하는 것이 사회 전체에 유익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고등학교에서 노동 인권 교육이 의무화되는 등 이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있다. 일하는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 청소년들이 본격적으로 일터에 나가기 전에 노동 인권 지식을 미리 익힐 필요가 있다는 데에 폭넓은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이에 대해 비슷한 문제의식을 가진 우리 사회 대표 전문가들이 각자의 분야에서 전할 수 있는 당부들을 『열 가지 당부』에 모았다. 아직 일을 해 본 경험이 없거나 매우 적은 독자들을 위해 아주 기초적인 이야기부터 실용적인 이야기까지 종합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이야기는 ‘노동자의 뜻’에서부터 시작한다. 노동자는 누구일까? 노동 문제 분야에서 오랫동안 활약해 온 하종강 성공회대 교수는 노동과 근로란 단어의 쓰임새를 살펴본 뒤, 핀란드에서는 교장 선생님도 노조에 가입한다는 이야기를 전하면서 사회가 발전할수록 자신을 노동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범위가 점점 확대되고 있음을 알린다. 그러면서 노동이라는 단어를 어색해할 필요가 없다는 당부를 전한다. 또 법교육학자 곽한영은 노동법이 어떤 험난한 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게 되었으며, 어떻게 노동자들의 권리를 지키고자 하는지 차근차근 설명한다. 그리고 노동법이 있다고 해서 노동권이 저절로 지켜지는 것은 아니며, 시민들의 의식이 중요하다는 당부를 전한다. 노동법의 역사는 그 자체로 노동법의 존재 이유를 말해 준다. 우리 사회의 현실과, 그에 바탕을 둔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조언들 이야기는 오늘날 우리 사회의 현실에 대한 진단과 비판으로 이어진다. 임지선 『한겨레』 기자는 오랫동안 노동 현장을 취재해 온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 사회의 노동 현실이 여전히 녹록지 않음을 조심스레 토로한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최저 임금이 높아지고, 플랫폼노동연대가 만들어지는 등 긍정적 신호가 계속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로 희망을 북돋운다. 청년유니온 사무처장 김영민과 전 정의당 부대표이자 청년 정치가 정혜연은 동세대 청년의 입장을 대변한다. 오늘날 우리 청년들이 처한 상황과 생각이 기성세대와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분석하면서 같은 세대로서 공감대를 만들고, 연대와 정치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노무사 이수정과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하지현은 좀 더 실용적인 팁을 전한다. 노무사 이수정은 근로 계약서 작성법을 꼼꼼히 설명한다. 계약서에 넣어야 할 것과 넣지 말아야 할 것부터 시작해서 최저 임금은 말 그대로 최저 기준일 뿐이니 그보다 더 높은 기준을 지향해야 함을 역설하면서 노동자의 권리를 세세하게 짚는다. 의사 하지현은 스트레스를 중심으로 정신 건강을 지키는 법을 안내한다. 번아웃과 불안이 나타나는 메커니즘을 설명하면서 일할 때에는 내가 ‘다 타 버릴 때까지’ 견딜 것이 아니라 적당한 선에서 멈출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어떤 노동과 삶을 꿈꿀 것인가, 더 넓은 시야로 미래를 준비하기 위하여 당장의 필요를 넘어서, 좀 더 폭넓은 관점에서 일과 삶을 조망할 수 있도록 돕는 당부들도 있다. 경제학자 윤자영은 노동자도 기업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노동자가 알고 있으면 도움이 될 만한 기업의 특징을 설명한다. ‘사람들은 정말 일을 싫어할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시작한 이야기에서 기업의 조직은 왜 수직적인지, 기업 속에서 왜 노동자와 경영자의 이해관계가 다를 수밖에 없는지 등을 논리적으로 풀어내어 이해를 돕는다. 이런 설명은 자연스럽게 노동자들이 게으르다는 생각은 편견임을 보여 준다. 인권 활동가 류은숙은 인권의 측면에서 노동권을 바라보면서, 노동권은 마치 컴퓨터의 바탕 화면처럼 모든 노동자에게 주어지는 당연한 권리일 뿐 노력에 따른 성취, 트로피가 아님을 역설한다. 마지막으로 사회학자 신경아는 우리 사회에도 ‘일과 삶의 균형’에 대한 인식이 점차 높아지고 있음을 설명하면서 그것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을지 이야기한다. 이 챕터에서 줄곧 강조하는, 일은 중요하지만 삶의 일부분일 뿐이라는 메시지는 이 책 전체를 통과하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 현혹 
    헤르만 브로흐 지음 / 이노은 옮김 |세계문학, 장편소설, 창비세계문학|2019년 12월 30일|17,000원

    20세기 초중반 유럽의 비극을 고찰한 선구적 작가 헤르만 브로흐의 위험하면서도 유혹적인 유작 20세기 독일어문학의 대표적 모더니즘 작가로 손꼽히며 ‘지식인으로서 당대의 정점에 서 있던 존재’로 평가받는 헤르만 브로흐의 유작 『현혹』이 창비세계문학 75번으로 출간됐다. 『몽유병자들』(Die Schlafwandler)로 널리 알려진 그의 국내 초역작으로, 이노은 교수(인천대학교 독어독문학과)가 번역을 맡아 작품의 깊이를 살렸다. 『현혹』은 1차대전이 끝나고 약 10년 후, 알프스의 산골마을에서 별다른 희망도 없이 단조로운 삶을 살던 사람들 앞에 마리우스라는 의문의 인물이 나타나 그들을 현혹시키며 벌어지는 사건을 그린 작품이다. 1935년 이미 실체를 드러낸 독재자 히틀러와 그를 따르는 대중의 광기에 대한 고민 그리고 특정 시대를 초월한 존재에 대한 탐구가 오롯이 담겨져 있다. 『현혹』은 가치가 붕괴된 20세기 초중반의 시대를 살면서도 문학을 통한 윤리적 인식과 실천을 꿈꾸던 작가 헤르만 브로흐의 고민이 그 바탕에 깔려 있다는 점에서 시대를 뛰어넘는 시의성을 갖는다. 작품 줄거리 1차대전이 끝나고 약 10년 후, 알프스 산간마을의 한 의사가 어느날 우연히 마리우스 라티라는 방랑자와 마주친다. 이후 의사는 첫인상부터 어딘가 기이해 보이는 마리우스가 벌이는 행적을 살피게 된다. 마리우스는 아랫마을 농부 밀란트의 집에 임시 일꾼으로 기거하며, 독특한 사상으로 주민들을 점차 현혹시킨다. 그는 종교적 근본주의자처럼 정결한 삶을 주장하며 미혼모를 마녀라고 낙인찍어 따돌리고, 기계문물과 대량생산을 거부해 라디오나 기성복 구입을 반대하고 탈곡기 사용을 죄악시한다. 또한 직접 생산에 참여하지 않는 도시인들의 생활방식을 비난하며 서비스 직종을 직업으로 인정하지 않고 경멸한다. 마을의 지혜로운 어른인 어머니 기손은 그의 위험한 생각에 경고를 보내지만, 마리우스는 오래전부터 전설처럼 전해지는 금기된 황금 채굴의 욕망을 불러일으키며 대중을 강력하게 끌어모은다. 그러던 어느날, 난쟁이갱 근처에서 마리우스의 심복 벤첼이 훈련시키는 마을 청년들과 윗마을 주민 간의 충돌이 벌어지고, 기손 어머니의 손녀 이름가르트가 희생제사 의식을 앞두고 마리우스에게 빠져들면서 이야기는 절정을 향해 나아간다. 20세기 대중광기의 탄생을 그린 작품 20세기의 대중광기 현상을 연구한 브로흐는 가치가 붕괴되고 문명이 종말을 향하는 시기에 등장하는 개인은 비이성적 성향을 띠며, 더이상 문화적으로는 채울 수 없는 동경과 두려움에 쫓기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런 그의 사상이 압축된 『현혹』은 낙후된 마을공동체가 타지인의 선동으로 새로운 동력을 얻고 비이성적이고 폭력적으로 변모해가는 과정을 생생하게 그려냄으로써, 독일에서 히틀러가 정권을 장악해가던 과정을 떠올리게 한다. 특히 브로흐가 가치가 붕괴된 사회 구성원들의 특징으로 보았던 비이성적 요소와 소유욕, 동경과 두려움 등은 산골마을이라는 작은 공동체 안에서 더욱 뚜렷하게 가시화되고 있으며 그래서 이 소설은 대중광기 탄생에 대한 알레고리로 읽힐 수 있다. 대안적 유토피아의 가능성: 어머니 기손 하지만 『현혹』을 히틀러에 대한 알레고리로만 읽는다면 작품이 담고 있는 또 하나의 중요한 요소를 놓치게 된다. 이 소설에서는 히틀러에게 현혹된 대중의 광기라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정치적・사회적 고찰과 함께 근원적 진실에 도달하고 싶은 인간의 오랜 염원을 반영하는 신화적 세계관이 배경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마을의 현명한 노인인 어머니 기손을 중심으로 형성된 작은 세계는 모든 대립 요소가 통합되는 신화적 세계이다. 그녀는 대지의 여신과 연결되며 기술 발전과 문명의 진보에만 치중해온 서구의 계몽주의 전통에 대한 비판과 대안 제시를 위한 상징적 인물로 등장한다. 자연의 신비로운 힘을 인정하는 어머니 기손의 존재는 독재자 출현과 대중광기라는 문제와 밀접하게 연결되는 이 소설의 구성에 사뭇 다른 층위의 종교성을 부여해, 인간이 현실의 한계를 초월하고 세계의 총체적 이해에 다가가도록 한다. 무기력한 서술자: 망명과 도피의 산책길 서술자의 회상으로 이루어진 이 소설에서 그는 존경받는 마을의사로서 주민들의 육체와 영혼의 문제를 파악하고 있으며, 모든 대화와 사건에 직접 참여하거나 관찰하면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하지만 ‘지식인’으로 대변되는 그는 산간마을 공동체의 윤리적 몰락을 막는 데 실패했으며, 기존에 살던 대도시와 산간마을에서의 체험을 통해 성장한 것으로 보이지도 않는다. 또한 단순히 무기력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가치관의 혼란을 겪고 때로는 대중광기에 내적으로 동조하는 인물로서 각성과 실천에 도달하지 못한다. 공동체 안에서 존중받는 지위를 누리면서도 실제적으로는 무기력한 지식인인 그의 모습은 비정치적이고 휴머니즘적인 성향을 띠던 당시의 시민 중간계층을 대변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20세기의 비극을 녹여낸 시대를 뛰어넘는 작품 헤르만 브로흐는 1차대전과 조국 오스트리아의 몰락, 경제 공황, 나치의 집권과 2차대전, 유대인 탄압과 미국 망명 등 시대의 비극 속에서도 지식인으로서의 책임감과 윤리의식을 문학에 오롯이 녹여낸 작가이다. 『현혹』은 이런 작가의 사회를 비판하는 문학적 고민과 노력의 결과물로서 시공간을 뛰어넘어 오늘날에도 독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삶의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 질문하게 한다.



  • 무지개는 더 많은 빛깔을 원한다 성소수자 혐오를 넘어 인권의 확장으로 
    한국성소수자연구회 지음 |교양, 사회, 인문|2019년 12월 10일|18,000원

    한국 성소수자 인권은 어디까지 왔는가 성소수자 관련 지식과 정보 총망라 성소수자에 대한 오해를 바로잡고 차별과 혐오를 불식하기 위해 필요한 필수지식을 집약한 『무지개는 더 많은 빛깔을 원한다: 성소수자 혐오를 넘어 인권의 확장으로』가 출간되었다. 저자 한국성소수자연구회는 성소수자 문제를 다학제적으로 접근하려는 목적으로 교육학, 법학, 보건학, 사회복지학, 사회학, 신학, 인류학 등 다양한 학문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지난 2016년 3월 결성된 연구자 모임으로, 2019년 12월 이 책의 출간과 함께 한국 성소수자 인권을 위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다. 이 책에는 연구회 소속 19인이 참여해 성별이분법과 이성애 중심주의에서 벗어난 다양한 성별정체성과 성적 지향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전하고, 이들을 비정상으로 낙인찍는 한국의 법‧제도적 현실을 조목조목 비판한다. 나아가 혐오의 세상을 살아가는 성소수자의 삶을 생생한 면담 자료와 풍부한 통계를 통해 선명하게 그려내고, 성소수자의 가족구성권과 재생산권, 트랜스젠더 성별정정 등 여러 쟁점을 논하며 성소수자 인권이 존중받는 미래를 향한 제언을 담았다. 무지와 혐오가 사회를 병들게 한다 성소수자에 대한 오해와 진실 1장 젠더와 성소수자: 성별이분법, 불가능한 상상(박한희)에서는 여성/남성의 성별이분법에서 벗어난 트랜스젠더, 젠더퀴어, 인터섹스 등의 성별정체성을 소개하고 이들이 마주하는 현실의 벽을 세밀하게 파헤친다. 우리 사회에는 원치 않는 성별과 주민등록번호를 갖고 살아가며 여/남으로 분리된 화장실 앞에서 망설이고, 자신의 성별과 맞지 않은 구금시설에서 수용된 채 이중의 구속을 받는 사람들이 있다. 필자는 이들이 당당하게 자신의 성별을 인정받고 안전하게 살아가기 위한 개선된 법‧제도적 성별 체계, ‘모두를 위한 화장실’ 등을 제시하며 여/남의 흑백논리에 갇힌 한국사회에 다채로운 상상력을 주문한다. 동성애는 질병인가? 동성애는 선택사항인가? 동성애는 에이즈의 원인인가? 2장 동성애, HIV 감염, 그리고 혐오(김승섭)에서는 이처럼 동성애 혐오의 대표적인 레퍼토리들을 과학지식과 최신 연구결과로 논박한다. 이미 40여년 전에 미국정신의학회와 세계보건기구를 비롯한 권위 있는 단체에서 동성애는 질병이 아니고, 성적 지향은 선택사항이 아님을 확인했다. 에이즈의 원인 또한 동성애가 아니라 HIV 감염이다. 의학기술의 발달로 HIV 감염은 당뇨나 고혈압처럼 관리 가능한 만성병이 되었고 전파확률 또한 획기적으로 낮아졌다. 필자는 이런 객관적인 진실은 제대로 전해지지 않은 채 질병의 치료와 예방을 방해하는 혐오세력의 가짜뉴스와 괴담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특정 집단을 향한 낙인을 거두고 이들을 존중해야 우리 모두가 안전해진다고 강조한다. 3장 트랜스젠더가 오롯하게 살아가기 위해서(이혜민)는 트랜스젠더가 자신이 인식하는 성별정체성에 맞게 의료적 조치를 통해 신체 특징을 변화시키고 법적 성별을 정정하는 호르몬요법, 성전환수술 같은 의료적 트랜지션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트랜스젠더의 성별위화감을 해소하고 이들이 건강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 꼭 필요한 조치임을 설명하고, 의료적 트랜지션의 부담을 덜기 위한 개선 방안을 조목조목 제시한다. 혐오가 범람하는 시대 이성과 신앙은 연대를 가리키고 있다 5장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 논리적 오류를 넘어서(최훈)에서는 혐오세력에 의해 ‘정당화’되고 있는 한국사회 혐오문제를 지적하고 이런 허위선동의 논리적 오류와 문제점을 명쾌하게 논파한다. 몇가지 사례만 가지고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을 고착화하는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 성소수자가 왜 문제인지 주장의 근거를 설명할 수 없으면서 이를 성소수자의 존재를 배제하는 주장의 근거로 이용하는 ‘선결문제 요구의 오류’, “동성애에 반대합니까?”라는 뜻 모를 질문에 담긴 ‘복합 질문의 오류’, 성소수자가 부자연스럽다면서 자연스러움에서 옳고 그름을 도출하려는 ‘자연주의의 오류’ 등 성소수자 혐오와 편견의 맥락에는 온통 논리적 오류와 비과학적인 오해, 거짓이 도사리고 있다. 6장 성소수자와 그리스도교: 성공할 수 없는 그들만의 마녀재판(자캐오)은 성소수자 혐오진영의 첨단에 있는 그리스도교의 모순과 폭력성을 폭로한다. 필자는 오늘날 성소수자를 향한 혐오선동이 500여년 전 마녀사냥과 다를 바 없다고 지적한다. ‘다름’을 ‘이단’으로 몰아붙이고, 내부의 위기를 외부를 향한 공격으로 전위하고, 문자주의적 성경 해석과 권위에 맹목적으로 순응하는 관성과 무성찰을 비판하는 대목은 통렬하기까지 하다. 필자는 ‘보잘것없’고 ‘몫 없는’ 소수자와 연대하고 이들이 존중받는 사회야말로 참된 신의 뜻임을 역설하고, 공존과 평화의 세상으로 가는 ‘또다른 길’을 제시한다.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는 성소수자 가정, 학교, 직장에서의 혐오와 차별 4장 성소수자의 노동: 혐오와 차별의 일상과 위태로운 노동권(김정혜)은 성소수자가 내몰린 열악하고 차별적인 노동환경 문제를 짚었다. 이분법적 성역할 개념과 가부장적 문화에서 배태해 직장 전반에 걸쳐 있는 직‧간접적인 성소수자 차별 제도와 문화의 심각성을 지적한다.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필자는 성소수자 친화적, 다양성을 인정하고 성소수자 인권을 존중하는 다양한 차별금지 정책을 시행하는 유수의 기업 사례를 소개하고 ‘변화는 가능하다’고 힘주어 말한다. 7장 청소년 성소수자의 안전지대를 찾아서 (김지혜)/ 성소수자와 학교교육(조대훈)은 청소년 성소수자가 얼마나 치열하게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하고 탐색하는지, 그러나 학교와 교육제도, 이들을 둘러싼 사회는 청소년 성소수자의 숨통을 어떻게 죄고 있는지, 그 속에서 이들은 어떤 미래를 그리며 사회로 나갈 날갯짓을 준비하고 있는지 실상을 세밀하게 살피고 이들이 안전할 수 있는 학교공간을 만들 것을 주문한다. 8장 성소수자와 가족: 우리들의 커밍아웃(이지하)은 가정에서의 커밍아웃과 이로 인한 갈등과 통합의 과정을 풀어낸다. 가족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는 데 기인하는 심각한 정신적 부담, 쌍방향의 소통과 화해에 다다르는 긍정적인 커밍아웃의 의미를 설명하고 이것이 성소수자 당사자와 가족구성원 모두의 건강을 위해 필수적임을 다채로운 면담자료를 통해 설명한다. 배제와 억압의 질서를 뒤흔드는 정치적 변혁운동 성소수자 운동과 사회적‧법적 쟁점 9장 소수자의 가족구성권: 정상가족 모델을 넘어서(김순남)/ 성소수자와 재생산권(나영정)은 이성애 혼인‧혈연을 중심으로 구축된 ‘정상가족’ 신화에 반문하며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가족‧공동체를 구성하고 어떠한 생활공동체라 하더라도 차별없는 지위를 보장받을 수 있는 권리’인 가족구성권을 주장한다. 아울러 다양한 방식으로 상호의존적인 돌봄관계를 만들어가는 결합을 존중해야 하며 이들을 위한 주거, 노동, 사회권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나아가 가족구성권 운동이 생활동반자법, 비혼, 동성결혼 운동, 소수자의 재생산 권리 운동 등 기존의 정상가족 모델을 뒤흔드는 모든 움직임과 연결되어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10장 퀴어운동과 민주주의: 퀴어 죽음정치의 종언/ 성소수자에 관한 인류학적 사례(김현미)는 성소수자 운동이 이성애 중심주의, 성차별주의, 인종주의, 규범적 가족주의 등 주류질서를 비판하는 확장된 변혁운동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평가한다. 또한 정치학에서 부상하고 있는 성소수자 운동의 주요 아젠다를 살펴보고, 특히 ‘퀴어 죽음정치’에 대한 저항을 경유해 민주주의가 한층 성숙해질 수 있다고 강조한다. 필자는 성소수자가 죽음정치로 인해 겪게 되는 박해가 민주주의 사회의 인권 개념에 위배된다는 인식이 점차 수용되고 있다고 진단하며, 성소수자가 시민권을 보장받아야 할 사회구성원이라는 점을 인식해 ‘죽음정치’를 끝내고 민주주의를 확산할 것을 주문한다. 11장 성소수자 인권과 법적 쟁점(이승현)/ 성소수자와 형사절차(홍기옥)는 성소수자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다양한 법제도의 모순을 조목조목 비판한다. 현행법상 명시적으로 기본권이 제한되는 경우와 관련된 쟁점(동성 간 성행위를 처벌하는 군형법상 추행죄 등), 법적 공백 혹은 법적 권리 행사의 제한(파트너십제도와 동성결혼 등 가족구성에 대한 법적 인정, 성별의 법적 인정) 적극적인 기본권 실현을 위한 법 개정(차별금지법 등) 문제를 다룬다. 성소수자 연구와 운동의 공명 축제와 대담의 현장 속으로 12장 퀴어문화축제: 가시성과 자긍심의 축제/ “우리가 여기에 있다!” 2018년 인천퀴어문화축제(조수미)에서는 퀴어문화축제가 여타의 사회운동과 달리 유희성과 전복성을 핵심으로 하는 ‘축제’의 형식을 통해 억압받아온 존재의 가시화와 해방, 소속감과 자긍심을 표출하는 공연작품적 행위로서 정치적 의미가 있다고 설명한다. 아울러 반대집회의 무법적인 행사방해와 인권침해 행위로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겨주었던 2018년 1회 인천퀴어문화축제를 현장감 넘치는 서술로 재구성해 혐오세력의 발호에 대처할 수 있도록 국가와 시민사회의 관심과 인식 개선을 요구한다. 13장 [대담] 한국 성소수자 운동의 역사(홍성수 사회, 박한희, 이종걸, 이호림)/ 대학‧청년 성소수자 운동의 전개(심기용)에서는 성소수자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연구자와 활동가 4인이 한자리에 모여 한국 성소수자 운동의 궤적을 논한다. 90년대 초반 성소수자 운동의 태동기와 성소수자의 비가시화에 초점을 맞춘 초기 활동, 동성애뿐 아니라 다양한 성소수자의 목소리도 드러내면서 노동운동, 여성운동 등 다른 인권운동과 연대하기 시작한 운동의 심화 과정, 차별금지법 추진과 퀴어문화축제 확산, SNS의 발달 과정에서 운동이 대중화된 오늘날까지의 흐름 등을 짚었다. 한편 운동과 함께 성장해온 성소수자 연구의 역사도 살핀다.



  • 자동 피아노 
    천희란 소설 |소설|2019년 12월 05일|14,000원

    나는 어둠 속에서 스스로를 연주하는 피아노를 상상한다. 그리고 곧, 다시 내 안에 갇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자신을 구하고 싶은 절실한 이들을 위한 단 하나의 소설 삶에 대한 첨예한 시각과 밀도 높은 문장을 갖춘 작가, 젊은작가상을 받으며 오늘의 한국문학을 이끌어가는 젊은 작가 중 하나로 인정받은 천희란의 소설 『자동 피아노』가 출간되었다. 창비에서 펴내는 ‘소설Q’ 시리즈의 세번째 책이다. 자기 자신에 갇힌 인물의 끝없이 분열하는 목소리가 죽음을 음악처럼 연주하는 작품으로, 죽음에 대한 욕망과 충동, 이에 맞서는 삶에 대한 열망을 집요하게 그려낸다. 죽음에 대한 깊은 사유와 조각한 듯 정교하게 다듬어진 문장이 특히 돋보인다. 스물한개의 각 장 제목은 저자가 즉흥적으로 떠올린 피아노곡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작품에 대한 해석은 독자를 향해 자유롭게 열려 있다. 소설 뒤에 실린 ‘작가의 말’에는 작가가 겪은 자살사고에 대한 묵직한 발언이 담겼고, 음악평론가 신예슬이 쓴 해설은 ‘자동 피아노’라는 기계장치를 중심으로 작품을 신선하고 아름답게 풀어주었다. “평생 변하지 않는대도 괜찮다. 그러나 절대로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라고 말하는 작가의 목소리에서도 알 수 있듯, 끊임없이 재생되고 반복되는 죽음의 그림자 속에서도 이 책은 역설적으로 삶에 대한 열망을, 내일을 생각할 수 있는 미약하지만 분명한 빛을 전달한다. “죽음은 해일처럼 다가가면 빨아들이고 달아나면 덮쳐온다.” 죽음에 대항하는 치열하고 고독한 자신과의 싸움 첫 장을 열면 다음과 같은 인용구가 등장한다. “나는 지금 증언을 하고 있는 것이지 설득하려는 게 아니다.”(장 아메리 『자유죽음』) 인용구가 말하는 것처럼, 이 소설은 독자를 결코 설득하려 들지 않는다. 다만 언제 끝날지 모르는 죽음의 연주를 끈질기게 들려줄 뿐이다. 각 장 제목에 실린 피아노곡은 소설에서 그려내는 죽음의 이미지와 다채롭게 결합하여 읽는 이를 죽음과 삶에 대한 깊고 날카로운 사유로 이끈다. 단언하겠다. 내가 누군가를 죽이겠다고 다짐하면, 죽이는 일을 망설이고 있다는 뜻일 테니까. 나는 나를 죽이고 싶다. 나는 나를 죽이고 싶지 않다. 나는 죽고 싶다. 나는 죽고 싶지 않다. 나는 나를 죽이겠다. 나는 나를 죽이지 않겠다. 나는 죽겠다. 나는 죽지 않겠다. 나는 두렵다. 나는 두렵지 않다. (27-28면) 죽음을 생각하는 소설 속 ‘나’의 고민은 단순하지도 명백한 답을 갖고 있지도 않다. ‘나’는 홀로 자기 자신 안에 갇혀 치열한 싸움을 벌인다. 누구도 도울 수 없고, 끝이 어딘지 알 수도 없는 힘겨운 싸움. 화자는 ‘죽고 싶다’고 몇번이나 말하지만, 그럼으로써 죽음을 망설이는 자기 자신을 깨닫는다. 그러면서 그 어떤 순간보다, 그 누구보다 정직하게 자신과 대면하고 자신의 목소리를, 여러 갈래로 끝없이 분열하고 반복 재생되는 목소리를 듣는다. 고통은 끝나지 않을 것 같고, 나는 영원히 내 안에 갇혀 있는 듯하고, 문 밖에서는 죽음이 호시탐탐 나를 노리며 엿보고 있지만. 결국 소설은 끝난다. 자동 피아노의 연주는 끝난다. 끝날 것 같지 않던 그것이 끝난다는 것으로, 소설은 마무리된다. 이것은 희망이 아닐지도 모르지만, 언젠가 끝난다는 위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고통 끝에 서 있는 누군가에게 뜨거운 위로를 전할 것이다. 나는 내가 언제 여기에 왔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그것은 너무 오래전의 일이다. (120면) “나는 당신이 살아 있기를 바랍니다.” 마지막 용기로 타인에게 전할 수 있는 유일한 한마디 매일, 매 순간 죽음을 갈망하던 때가 있었다고,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고백한다. 작가로서 그 고백이 쉽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솔직하게 독자들 앞에 자신의 경험과 목소리를 내어놓았다. 끝없이 죽음을 노래하면서도 아름답고 매혹적으로 직조된 이 작품은, 작가의 고백과 더불어 새삼 뭉클하게 읽힌다. 음악평론가 신예슬은 이 작품을 두고 “쉼 없이 방식을 바꾸어가며 죽음을 다루는 근본적 이유에 대해 내가 덧붙일 수 있는 말은 거의 없다”고 이야기하면서도, “다만 나는 그가 죽지 않기를 바란다”고 했다. 죽음을 반복적으로 소환하면서도 그 안에 꽉 찬 삶의 의지를 드러내 보이는 것도, 죽고 싶다고 말하는 화자가 살아내기를 바라게 만드는 것도, 이 작품이 지닌 강렬한 역설의 힘이다. 죽음과 고통이라는 가볍지 않은 주제를 연주처럼 물 흐르듯 탁월하게 그려낸 이 작품을 통해서, 누군가는 벼랑 끝에 선 타인을 이해하는 기회를, 누군가는 자신을 잡아주는 마지막 손을 발견할 것이다. 이 책은 ‘당신이 살아 있기를 바란다’는, 천희란 작가가 용기를 내 전하는 유일한 한마디다. 삶이 정체되어 있다는 감정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다양한 현실적 조력이 필요하고, 그 조력 없이 개인의 의지는 자주 무력해진다. 나는 내 의지만으로 여기에 온 것이 아니고, 내 경험이 다른 누군가에게 섣부른 희망으로 전달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다만 이 말은 남겨두고 싶다. 평생 변하지 않는대도 괜찮다. 그러나 절대로 변할 수 없는 것은 없다. (144면)



  • 금색 공책 1 
    도리스 레싱 장편소설 / 권영희 옮김 |세계문학, 창비세계문학|2019년 12월 02일|18,000원

    다가올 여성해방운동의 거의 모든 주제를 예견한 페미니즘 문학의 경전을 넘어 ‘성 대결’의 이분법을 극복하고자 하는 우리 모두가 읽어야 할 필독서 ★ 2007년 노벨 문학상 수상 ★ 『타임』 『가디언』 선정 ‘100대 영문학’ ★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딸에게 선물한 책 ★ 『시녀 이야기』 마거릿 애트우드의 인생 책 ★ 김영란 전 대법관 강력 추천! 2007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 도리스 레싱의 대표작 『금색 공책』(전2권)이 작가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창비세계문학 특별판(73-74번)으로 발간되었다. ‘제2의 페미니즘 물결’이 본격적으로 도래하기 전인 1962년에 출간되었지만 레싱 스스로 “여성해방운동에 의해 비로소 탄생한 태도들이 이미 존재하는 것처럼 썼다”고 밝힌 페미니즘 문학의 경전이자 20세기 문학사를 통틀어 가장 중요한 작품 중 하나이다. 거대한 이념의 시대에 균열이 감지되던 1950년대에서 격동의 1960년대로 이행하는 과정을, 자유를 갈구하는 한 여성 작가의 구체적인 일상과 분열된 자아상을 통해 그려냈다. 서구의 제국주의와 인종주의, 반전(反戰), 공산주의의 몰락, 여성해방운동 등 첨예한 주제들이 녹아들어 있으며, 세계에 만연한 분리를 극복하고 통합으로 나아갈 것을 제시한 ‘미래의 소설’이기도 하다. 출간 이후 수십 년간 뜨거운 논쟁을 일으키며 남녀 간 ‘성 대결’의 상징처럼 여겨지기도 했지만, 여성운동의 전유물을 넘어 각각의 시대상과 조응하며 가치를 더해가는 우리 시대 필독서로 자리매김했다.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재임 기간에 읽은 책들이 균형감을 잃지 않도록 도왔다며 그중 하나로 『금색 공책』을 꼽았고, 큰딸 말리아에게 선물한 전자책 단말기에 이 책을 담아주기도 했다. 『시녀 이야기』의 저자이자 2000‧2019년 부커상 수상자인 우리 시대 대표 여성 작가 마거릿 애트우드는 2013년 작고한 레싱을 추모하는 글에서 “20대 초반에 만난 『금색 공책』의 주인공 애나 울프는 내 눈을 뜨게 해주었다”고 밝혔다. 국내 1호 여성 대법관이었던 김영란 전 대법관은 『금색 공책』을 가리켜 “빠르게 변화하는 세계를 담은, 인식의 지평을 넓힐 수 있는 책”이자 “여성운동가에게는 교과서 같은 책”이라며 추천한 바 있다. 최근 몇년 사이 우리 사회는 그간 강력한 가부장제와 경제성장 신화에 뒷전으로 밀려온 여성의 권리에 관한 논의에 일대 전기를 맞이했다. 여성의 사회 참여와 육아, 여성이 대중교통 수단이나 길거리 등 일상에서 느끼는 상시적 위협, 이성 관계에서의 기울어진 권력, 그로 인해 여성이 느끼는 좌절과 무력감 등 그 과정에서 수면 위로 떠오른 이슈들이 『금색 공책』에도 고스란히 담겨 있다. 기시감이 느껴질 만큼 『금색 공책』이 환기하는 강렬한 현재성은, 도리스 레싱 탄생 100주년인 2019년 한국의 독자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클 것이다. 네가지 색 공책으로 분열된 자아상, 그리고 “모든 것이 부서지고” 난 뒤 분리의 극복과 통합으로 나아가는 금색 공책 『금색 공책』의 구조는 각각의 부분이 거대한 전체로 연결되는 태피스트리와 같다. 여러 단편처럼 보이는 이야기들을 퍼즐처럼 엮어나가는 실험적 형식은 포스트모더니즘 글쓰기의 전형을 보여준다. 레싱은 1971년판 서문에서 “형식을 통해 말하도록” 하는 정교한 서술 구조를 직접 자세하게 설명했다. 우선 큰 줄기는 “‘자유로운 여자들’이라는 제목의 골격 또는 틀 아래 [원어로] 6만 단어 남짓한 통상적인 중편소설”로, 1950년대 후반 런던을 배경으로 전 공산당원이자 싱글맘 들인 애나와 그녀의 친구 몰리의 이야기가 현재 시점에서 진행된다. 이 「자유로운 여자들」을 총 다섯장(章)으로 나누고, 그 사이사이에 주인공인 애나가 작성해나가는 네가지 색 공책, 즉 검은색, 빨간색, 노란색, 파란색 공책이 후렴구처럼 반복된다. 분량 면에서 압도적인 검은색 공책에는 ‘소설 속 소설’인 애나의 데뷔작이자 유일한 발표작 『전쟁의 접경지대』에 관한 내용이 적혀 있다. 소설의 재료가 된, 애나가 2차대전 전과 전쟁 기간 동안 영국의 중앙아프리카 식민지에서 만난 사람들과 경험한 일, 소설을 패러디한 영화 시놉시스 등과 더불어 소설로 벌어들인 수입 내역, 영화나 텔레비전 드라마 각색을 제안한 이들과의 만남 등에 대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빨간색 공책은 애나의 정치적 활동과 관련된 내용을 담고 있다. 레싱과 마찬가지로 영국 공산당원으로 활동했던 애나가 비판적인 내부자의 시선으로 냉전기 영국 공산주의자들의 다양한 초상을 생생하게 그려냄으로써, 레싱이 의도했던 ‘1950년대의 연대기’로서 『금색 공책』의 성격에도 가장 부합하는 부분이다. 노란색 공책은 ‘제삼자의 그림자’라는 제목으로 애나가 쓰는 소설 원고이다. 애나가 레싱의 자전적인 주인공이라면, 노란색 공책의 주인공인 엘라는 애나의 자전적인 주인공이다. 사랑에 ‘빠진’ 애나–엘라가 쉽게 빠져나오지 못하는 속박, 이성애적 욕망과 낭만적인 사랑의 판타지에서 비롯하는 구속은 계급, 정치 성향, 교육 수준 등의 차이들을 가로질러 절대다수의 여성에게 보편적인 굴레로 작용함을 보여준다. 파란색 공책은 애나의 기억과 꿈, 감정 등을 풀어낸 내밀한 일기로, 정신분석 상담가인 마크스 부인과 나눈 상담 내용, 일기 대신 스크랩해 붙여둔 각종 신문 기사 등이 담겨 있다. 마크스 부인과 애나의 대화를 통해 레싱은 정신병리를 전적으로 개인의 차원에서 파악하는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이나 보편적인 신화의 차원에 놓는 융 심리학의 전제를 우회적으로 비판하면서, 세계 도처에서 끊임없이 자행되는 폭력과 살상, 사상적 억압 등을 일종의 ‘텍스트 몽타주’ 형태로 제시함으로써 문제의 근원은 시대의 광기라는 사실이 저절로 드러나도록 한다. 그리고 맨 마지막 금색 공책에서 애나는 이 분열된 자신의 조각들을 하나로 엮어낸다. “애나가 공책을 한권이 아닌 네권이나 갖고 있는 건, 애나 자신이 인정하듯 혼돈이 지배하고 형식을 잃어버린 삶이 완전히 무너질까 두려워 현실의 제반 요소들을 분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책들에 쓰는 일을 끝냈을 때 그 파편들로부터 새로운 어떤 것, 「금색 공책」이 나올 수 있게 된다.”(1971년 서문) 소설 전체의 도입부에서 애나가 하는 말인 “내가 보기엔 모든 게 다 부서지고 있다는 거야”(1권 41면)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작품을 관통하는 ‘부서짐’(cracking up) 혹은 ‘(감정적) 무너져 내림’(breaking down)을 레싱은 “자기치유이자 내면의 자아로 하여금 잘못된 이분법과 분리를 넘어서게 하는” 과정으로 보았다. 여성들은 얼마나 더 자유로워졌는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문제의식 ‘자유로운 여자들’이라는 각 장의 제목은 역설적이다. 소설 안에서 주변인들은 애나와 몰리를 가리켜 입버릇처럼 “당신네 자유로운 여자들”이라고 부르지만, 두 여자는 그 당시 인습에서 벗어난 삶을 산다는 의미에서만 자유로울 뿐 여전히 여성에게 가해지는 무수한 속박에 갇혀 있는 존재로 그려진다. 이를테면 생리 중인 애나가 냄새 걱정에 화장실을 들락거리며 생리혈에 관한 생각을 털어놓을 때, 친구의 전남편 사무실에서 감정적 육체적으로 겁박을 당한 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만원 지하철에서 성추행을 당하고 그 남자가 계속 따라올 때, 자신의 몸에 들러붙었던 남자의 시선을 씻어내기 위해 과일 행상 수레로 가서 예쁜 빛깔의 복숭아를 만져보고 집으로 돌아와 시원하게 흐르는 수돗물을 보면서 마음을 추스를 때, 여성 독자들은 이건 바로 내 이야기야, 하고 느낄 것이다. 두 여자는 모두 자유로운 삶을 갈망하면서도 남성의 욕망과 필요에 언제나 자신을 맞출 준비가 되어 있다. 『금색 공책』은 이처럼 남성과의 관계가 여성에게 내밀한 감정적 정신적 속박으로 작용하는 양상을 거침없고 예리하게 탐색한다. 외형상의 독립이나 제도적 차원의 젠더평등은 그 자체로 중요하지만, 더 내밀한 차원에서 여성은 아직도 구속된 존재임을 드러낸다. 이 책이 출간된 지 50년이 지나서도 ‘살아 있는’ 현재적 소설로 읽히는 이유는 여전히 대다수의 여자들이 진정 자유로운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레싱은 1971년판 서문에서 이렇게 썼다. “약자를 못살게 구는 남자는 자기가 사는 이 세상이나 그 역사에 대해 아무것도 아는 게 없는 자다. 즉 남녀가 과거에 무한히 다양한 역할들을 맡아왔고, 지금도 어떤 사회에서는 그렇게 하고 있다는 사실 말이다. 따라서 그런 남자는 무지하거나 혹은 통념을 따르지 않으면 두려워지는 비겁한 인간이다…… 이 내용을 난 오래된 과거에 부치는 편지를 쓰는 심정으로 적고 있다. 10년만 지나도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모든 것이 다 쓸려나가리라 확신하면서.”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서문이 쓰인 날로부터 40년을 훌쩍 넘은 지금까지도 레싱의 문제의식은 여전히 유효하다. ‘성 대결’의 이분법을 넘어 할머니가 엄마 아빠에게, 엄마 아빠가 딸 아들에게 물려주는 우리 시대 필독서 이 책이 처음 출간되었을 때만 해도 우호적인 평론가나 비판적인 평론가나 양쪽 공히 이 책을 ‘성 대결’에 관한 작품으로 ‘격하’했다. 그러나 레싱은 이 모든 혼란을 겪은 뒤 써 내려간 1971년판 서문에서 자신이 여성해방운동을 지지하는 것과 별개로 “이 소설은 여성해방운동의 응원가가 아니었다”고 분명히 밝힌 바 있다. 분리와 분열을 딛고 넘어선 ‘통합’이야말로 이 책을 관통하는 주제임을 거듭 밝힌 것과 같은 맥락이다. 레싱은 1993년판 서문에서 변화한 시대에 따라 달라진 독자들의 반응을 다음과 같이 들려준다. “저 자신이 이 책으로부터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딸에게 책을 건넸고, 딸도 아주 좋아합니다.” 이런 얘기를 하는 50대 여성을 여럿 만났다. 어떤 젊은 여성에게서는 이런 얘기도 들었다. “엄마가 이 책이 자신에게 영향을 끼쳤다며 읽어보라고 권하셨는데, 지금은 엄마를 훨씬 잘 이해하게 되었어요.” “이 책을 엄마도 읽었고, 지금은 제가 읽고 있어요”라는 말도 자주 듣곤 했다. 이렇게 두 세대에 걸쳐 읽히는 책이 되었는데, 얼마 전에는 어떤 할머니가 이 책을 아들에게 건넸으며, 또 그 아들이 자기 딸에게 책을 읽어보라고 권했다는 얘기까지 들었다. 세 세대. 그렇다, 나로선 우쭐해질 수밖에.(1권 10~11면)



  • 금색 공책 2 
    도리스 레싱 장편소설 / 권영희 옮김 |세계문학, 창비세계문학|2019년 12월 02일|17,000원

    다가올 여성해방운동의 거의 모든 주제를 예견한 페미니즘 문학의 경전을 넘어 ‘성 대결’의 이분법을 극복하고자 하는 우리 모두가 읽어야 할 필독서 ★ 2007년 노벨 문학상 수상 ★ 『타임』 『가디언』 선정 ‘100대 영문학’ ★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딸에게 선물한 책 ★ 『시녀 이야기』 마거릿 애트우드의 인생 책 ★ 김영란 전 대법관 강력 추천! 2007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 도리스 레싱의 대표작 『금색 공책』(전2권)이 작가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창비세계문학 특별판(73-74번)으로 발간되었다. ‘제2의 페미니즘 물결’이 본격적으로 도래하기 전인 1962년에 출간되었지만 레싱 스스로 “여성해방운동에 의해 비로소 탄생한 태도들이 이미 존재하는 것처럼 썼다”고 밝힌 페미니즘 문학의 경전이자 20세기 문학사를 통틀어 가장 중요한 작품 중 하나이다. 거대한 이념의 시대에 균열이 감지되던 1950년대에서 격동의 1960년대로 이행하는 과정을, 자유를 갈구하는 한 여성 작가의 구체적인 일상과 분열된 자아상을 통해 그려냈다. 서구의 제국주의와 인종주의, 반전(反戰), 공산주의의 몰락, 여성해방운동 등 첨예한 주제들이 녹아들어 있으며, 세계에 만연한 분리를 극복하고 통합으로 나아갈 것을 제시한 ‘미래의 소설’이기도 하다. 출간 이후 수십 년간 뜨거운 논쟁을 일으키며 남녀 간 ‘성 대결’의 상징처럼 여겨지기도 했지만, 여성운동의 전유물을 넘어 각각의 시대상과 조응하며 가치를 더해가는 우리 시대 필독서로 자리매김했다.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재임 기간에 읽은 책들이 균형감을 잃지 않도록 도왔다며 그중 하나로 『금색 공책』을 꼽았고, 큰딸 말리아에게 선물한 전자책 단말기에 이 책을 담아주기도 했다. 『시녀 이야기』의 저자이자 2000‧2019년 부커상 수상자인 우리 시대 대표 여성 작가 마거릿 애트우드는 2013년 작고한 레싱을 추모하는 글에서 “20대 초반에 만난 『금색 공책』의 주인공 애나 울프는 내 눈을 뜨게 해주었다”고 밝혔다. 국내 1호 여성 대법관이었던 김영란 전 대법관은 『금색 공책』을 가리켜 “빠르게 변화하는 세계를 담은, 인식의 지평을 넓힐 수 있는 책”이자 “여성운동가에게는 교과서 같은 책”이라며 추천한 바 있다. 최근 몇년 사이 우리 사회는 그간 강력한 가부장제와 경제성장 신화에 뒷전으로 밀려온 여성의 권리에 관한 논의에 일대 전기를 맞이했다. 여성의 사회 참여와 육아, 여성이 대중교통 수단이나 길거리 등 일상에서 느끼는 상시적 위협, 이성 관계에서의 기울어진 권력, 그로 인해 여성이 느끼는 좌절과 무력감 등 그 과정에서 수면 위로 떠오른 이슈들이 『금색 공책』에도 고스란히 담겨 있다. 기시감이 느껴질 만큼 『금색 공책』이 환기하는 강렬한 현재성은, 도리스 레싱 탄생 100주년인 2019년 한국의 독자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클 것이다. 네가지 색 공책으로 분열된 자아상, 그리고 “모든 것이 부서지고” 난 뒤 분리의 극복과 통합으로 나아가는 금색 공책 『금색 공책』의 구조는 각각의 부분이 거대한 전체로 연결되는 태피스트리와 같다. 여러 단편처럼 보이는 이야기들을 퍼즐처럼 엮어나가는 실험적 형식은 포스트모더니즘 글쓰기의 전형을 보여준다. 레싱은 1971년판 서문에서 “형식을 통해 말하도록” 하는 정교한 서술 구조를 직접 자세하게 설명했다. 우선 큰 줄기는 “‘자유로운 여자들’이라는 제목의 골격 또는 틀 아래 [원어로] 6만 단어 남짓한 통상적인 중편소설”로, 1950년대 후반 런던을 배경으로 전 공산당원이자 싱글맘 들인 애나와 그녀의 친구 몰리의 이야기가 현재 시점에서 진행된다. 이 「자유로운 여자들」을 총 다섯장(章)으로 나누고, 그 사이사이에 주인공인 애나가 작성해나가는 네가지 색 공책, 즉 검은색, 빨간색, 노란색, 파란색 공책이 후렴구처럼 반복된다. 분량 면에서 압도적인 검은색 공책에는 ‘소설 속 소설’인 애나의 데뷔작이자 유일한 발표작 『전쟁의 접경지대』에 관한 내용이 적혀 있다. 소설의 재료가 된, 애나가 2차대전 전과 전쟁 기간 동안 영국의 중앙아프리카 식민지에서 만난 사람들과 경험한 일, 소설을 패러디한 영화 시놉시스 등과 더불어 소설로 벌어들인 수입 내역, 영화나 텔레비전 드라마 각색을 제안한 이들과의 만남 등에 대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빨간색 공책은 애나의 정치적 활동과 관련된 내용을 담고 있다. 레싱과 마찬가지로 영국 공산당원으로 활동했던 애나가 비판적인 내부자의 시선으로 냉전기 영국 공산주의자들의 다양한 초상을 생생하게 그려냄으로써, 레싱이 의도했던 ‘1950년대의 연대기’로서 『금색 공책』의 성격에도 가장 부합하는 부분이다. 노란색 공책은 ‘제삼자의 그림자’라는 제목으로 애나가 쓰는 소설 원고이다. 애나가 레싱의 자전적인 주인공이라면, 노란색 공책의 주인공인 엘라는 애나의 자전적인 주인공이다. 사랑에 ‘빠진’ 애나–엘라가 쉽게 빠져나오지 못하는 속박, 이성애적 욕망과 낭만적인 사랑의 판타지에서 비롯하는 구속은 계급, 정치 성향, 교육 수준 등의 차이들을 가로질러 절대다수의 여성에게 보편적인 굴레로 작용함을 보여준다. 파란색 공책은 애나의 기억과 꿈, 감정 등을 풀어낸 내밀한 일기로, 정신분석 상담가인 마크스 부인과 나눈 상담 내용, 일기 대신 스크랩해 붙여둔 각종 신문 기사 등이 담겨 있다. 마크스 부인과 애나의 대화를 통해 레싱은 정신병리를 전적으로 개인의 차원에서 파악하는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이나 보편적인 신화의 차원에 놓는 융 심리학의 전제를 우회적으로 비판하면서, 세계 도처에서 끊임없이 자행되는 폭력과 살상, 사상적 억압 등을 일종의 ‘텍스트 몽타주’ 형태로 제시함으로써 문제의 근원은 시대의 광기라는 사실이 저절로 드러나도록 한다. 그리고 맨 마지막 금색 공책에서 애나는 이 분열된 자신의 조각들을 하나로 엮어낸다. “애나가 공책을 한권이 아닌 네권이나 갖고 있는 건, 애나 자신이 인정하듯 혼돈이 지배하고 형식을 잃어버린 삶이 완전히 무너질까 두려워 현실의 제반 요소들을 분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책들에 쓰는 일을 끝냈을 때 그 파편들로부터 새로운 어떤 것, 「금색 공책」이 나올 수 있게 된다.”(1971년 서문) 소설 전체의 도입부에서 애나가 하는 말인 “내가 보기엔 모든 게 다 부서지고 있다는 거야”(1권 41면)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작품을 관통하는 ‘부서짐’(cracking up) 혹은 ‘(감정적) 무너져 내림’(breaking down)을 레싱은 “자기치유이자 내면의 자아로 하여금 잘못된 이분법과 분리를 넘어서게 하는” 과정으로 보았다. 여성들은 얼마나 더 자유로워졌는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문제의식 ‘자유로운 여자들’이라는 각 장의 제목은 역설적이다. 소설 안에서 주변인들은 애나와 몰리를 가리켜 입버릇처럼 “당신네 자유로운 여자들”이라고 부르지만, 두 여자는 그 당시 인습에서 벗어난 삶을 산다는 의미에서만 자유로울 뿐 여전히 여성에게 가해지는 무수한 속박에 갇혀 있는 존재로 그려진다. 이를테면 생리 중인 애나가 냄새 걱정에 화장실을 들락거리며 생리혈에 관한 생각을 털어놓을 때, 친구의 전남편 사무실에서 감정적 육체적으로 겁박을 당한 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만원 지하철에서 성추행을 당하고 그 남자가 계속 따라올 때, 자신의 몸에 들러붙었던 남자의 시선을 씻어내기 위해 과일 행상 수레로 가서 예쁜 빛깔의 복숭아를 만져보고 집으로 돌아와 시원하게 흐르는 수돗물을 보면서 마음을 추스를 때, 여성 독자들은 이건 바로 내 이야기야, 하고 느낄 것이다. 두 여자는 모두 자유로운 삶을 갈망하면서도 남성의 욕망과 필요에 언제나 자신을 맞출 준비가 되어 있다. 『금색 공책』은 이처럼 남성과의 관계가 여성에게 내밀한 감정적 정신적 속박으로 작용하는 양상을 거침없고 예리하게 탐색한다. 외형상의 독립이나 제도적 차원의 젠더평등은 그 자체로 중요하지만, 더 내밀한 차원에서 여성은 아직도 구속된 존재임을 드러낸다. 이 책이 출간된 지 50년이 지나서도 ‘살아 있는’ 현재적 소설로 읽히는 이유는 여전히 대다수의 여자들이 진정 자유로운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레싱은 1971년판 서문에서 이렇게 썼다. “약자를 못살게 구는 남자는 자기가 사는 이 세상이나 그 역사에 대해 아무것도 아는 게 없는 자다. 즉 남녀가 과거에 무한히 다양한 역할들을 맡아왔고, 지금도 어떤 사회에서는 그렇게 하고 있다는 사실 말이다. 따라서 그런 남자는 무지하거나 혹은 통념을 따르지 않으면 두려워지는 비겁한 인간이다…… 이 내용을 난 오래된 과거에 부치는 편지를 쓰는 심정으로 적고 있다. 10년만 지나도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모든 것이 다 쓸려나가리라 확신하면서.”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서문이 쓰인 날로부터 40년을 훌쩍 넘은 지금까지도 레싱의 문제의식은 여전히 유효하다. ‘성 대결’의 이분법을 넘어 할머니가 엄마 아빠에게, 엄마 아빠가 딸 아들에게 물려주는 우리 시대 필독서 이 책이 처음 출간되었을 때만 해도 우호적인 평론가나 비판적인 평론가나 양쪽 공히 이 책을 ‘성 대결’에 관한 작품으로 ‘격하’했다. 그러나 레싱은 이 모든 혼란을 겪은 뒤 써 내려간 1971년판 서문에서 자신이 여성해방운동을 지지하는 것과 별개로 “이 소설은 여성해방운동의 응원가가 아니었다”고 분명히 밝힌 바 있다. 분리와 분열을 딛고 넘어선 ‘통합’이야말로 이 책을 관통하는 주제임을 거듭 밝힌 것과 같은 맥락이다. 레싱은 1993년판 서문에서 변화한 시대에 따라 달라진 독자들의 반응을 다음과 같이 들려준다. “저 자신이 이 책으로부터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딸에게 책을 건넸고, 딸도 아주 좋아합니다.” 이런 얘기를 하는 50대 여성을 여럿 만났다. 어떤 젊은 여성에게서는 이런 얘기도 들었다. “엄마가 이 책이 자신에게 영향을 끼쳤다며 읽어보라고 권하셨는데, 지금은 엄마를 훨씬 잘 이해하게 되었어요.” “이 책을 엄마도 읽었고, 지금은 제가 읽고 있어요”라는 말도 자주 듣곤 했다. 이렇게 두 세대에 걸쳐 읽히는 책이 되었는데, 얼마 전에는 어떤 할머니가 이 책을 아들에게 건넸으며, 또 그 아들이 자기 딸에게 책을 읽어보라고 권했다는 얘기까지 들었다. 세 세대. 그렇다, 나로선 우쭐해질 수밖에.(1권 10~11면)



  • 창작과비평 186호(2019년 겨울호) 
    정기간행물, 창작과비평|2019년 12월 01일|15,000원

    거론하는 것조차 새삼 피로감을 불러올지 모를 이른바 ‘조국사태’는 우리 사회가 당면한 다양한 과제를 일깨워주었다. 이 사태를 관통하는 핵심이 무엇인지를 두고서 의견이 분분할 수 있겠으나, 주요한 키워드로 ‘진실’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진실은 발견되기보다 모색하고 논하고 구축해야 하는 일이 되었다. 진실이 무중력에 있거나 중립에 있지 않은 만큼 우리는 어떠한 입장과 위치를 가질 것인지 고민해야만 한다. 문학평론가이자 본지 편집위원인 황정아는 각자가 발 디딘 자리를 자각해본 근례로 촛불혁명을 참고하자고 말한다(「책머리에」). 그 어느때보다 집단적이고 열렬하게 우리가 합의했던 과제들을 다시금 굳건히 밀고 나가야 할 때다. 당장 시한이 다가온 선거법 개정안 패스트트랙과,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는 촛불혁명을 통해 ‘국정운영자’로 거듭나게 된 우리가 총체적인 사유로서 다루어야 할 사안일 것이다. 『창작과비평』은 한국사회가 당면한 과제를 직시하며 굳건한 자세로 다가올 2020년을 준비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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