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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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없는 절창, 이 시들이 숨은 무명의 세월이 무자비하다” _고은 시인 가장 아름다운 풍경, 가장 슬픈 것을 건져내는 시선 그늘진 말들에 꽃을 피우려는 처연한 미학의 시 다시는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죽음을 선언한 뒤/중력을 벗어던지고 뛰어내린다/운석들이 충돌한다//머릿속에선 끊이지 않는 빗소리/아플 때마다 하염없이/폭설은 밤바다에 투신한다//돌은 진다 닿을 데 없이 떨어진다/죽음의 인파, 더러운 소음 속에/놓치고 헤어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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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어깨에 기대면 이 세계가 천천히 따뜻해진다 간곡하되 서늘한 눈매로 바라본 불의한 세상의 뒷면 찰나에서 유한한 삶의 속살을 꿰뚫는 천의무봉의 시편들 강변에 나무 두그루가 서 있다/한그루는 스러질 듯 옆 나무를 부둥켜안았고/다른 한그루는 허공을 향해 굳센 가지를 뻗었다/그 위에 까치집 두채가 소슬히 얹혔다/강변에 나무 두그루가 서 있다(「나무」 전문) 끝없는 시적 변모 속에서 간명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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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쓸한 밤에 닿아도 우리는 웃을 수 있다 도처에서 반짝거리는 일상을 한편의 시로 만드는 시인 박성우 메마른 세상에 생명을 불어넣는 찰진 언어와 정겨운 목소리 나이 들어간다는 것은/중심에서 점점 멀어진다는 것//먼 기억을 중심에 두고/둥글둥글 살아간다는 것//무심히 젖는 일에 익숙해진다는 것(「나이」 전문) 한국 서정 시단을 대표하는 박성우 시인의 신작 시집 웃는 연습이 출간되었다. 생동감 넘치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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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가만히 침묵에 물 줄 시간 ‘절벽’이 되어버린 세계에서 삶을 고통을 가누는 고독한 시정신 누에고치 삶은 물 속에선/언제나/나비 날개 냄새가 난다//단 한줄도 없이/시(「흔적」 전문) 1998년 『현대문학』을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한 지 20년을 맞이한 김경후 시인의 세번째 시집 『오르간, 파이프, 선인장』이 출간되었다. 등단 이래 줄곧 뜨겁고 개성있는 시세계를 선보였던 시인은 지난해 현대문학상을 수상함으로써 새롭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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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너’를 아우르는 ‘우리’의 세상은 가능한가 세상의 모든 외로움과 절망을 마주하는 시인의 간절함 부름 검은 사내가 내 목을 잘라 보자기에 담아 간다 낡은 보자기 곳곳에 구멍이 나 있다//나는 구멍으로 먼 마을의 불빛을 내려다보았다//어느날 연인들이 마을에 떨어진 보자기를 주워 구멍으로 검은 사내를 올려다보았다//꼭 한발씩 내 머리를 나눠 딛고서(「밤」 전문) 2000년 『작가세계』 신인상으로 등단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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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면할 수 없는 하나의 자세, 잊을 수 없는 하나의 표정” 슬픔은 어떤 자세로 태어나는가 내밀한 삶의 경험에서 차오른 투명하게 빛나는 시편들 사랑하는 사람아/얼굴을 내밀어보렴/수면 위로/수면 위로//네가//떠오른다면//나는 가끔 눕고 싶은 등대가 된다(「서랍」 전문) 2004년 중앙신인문학상에 당선되어 등단한 이후 젊은 시단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쳐온 박연준 시인의 세번째 시집 『베누스 푸디카』가 출간되었다. 첫 시집 『속눈썹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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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보다 더 단단한 마음을 갖고 싶어” 시로 ‘마음의 온도’를 맞춰주는 싱고의 ‘토닥토닥’ 웹툰 에세이 2014년 첫 시집 『싱고,라고 불렀다』를 펴내고 시인으로서 활발하게 활동하던 신미나 시인이 어느날 ‘싱고’라는 이름으로 독자들에게 스케치북을 건넸다. 스케치북에는 단정하고 사랑스러운 그림들과 시 같은 에세이, 그리고 시 한편이 실려 있었다. 일상의 고민과 어린 시절의 추억이 따뜻하게 그려진 싱고의 시 웹툰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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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을 마친 다음 그 손바닥 위에 몇줄의 詩가 남는다면” 시력(詩歷) 육십여년, 오로지 시의 외길을 걸어온 시인 민영의 견결한 시정신 나 이제, 모든 이웃과 神位를 하직하고, 하나의 지팡이와 마을을 떠난다. 어디로 가는지 묻질랑 말아! 하지만, 눈 내린 벌판 위에 지팡이 홀로 남아 바람에 젖거들랑, 그곳에 날 위해 돌을 묻어다오.(「碑」 전문) ‘문단의 작은 거인’이라 불리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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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밀함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다니!” 없는 것을 만지고 들리지 않는 소리를 듣는 탁월한 감각의 시 타고 남은 너의 얼굴은 잿빛이었다//한번도 불붙은 적이 없는 것은 네 얼굴이었다//머리 한가득 연기를 품고//네가 거닐던 어디에서든 흩날리는 것은 재로 변했다//한때 너의 일부였던 표정들이//도처에 마음을 묻으려고 했다(「호명」 전문) 2013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한 신두호 시인의 첫 시집 『사라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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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가진 언어에서 의미를 건져낼 때까지 “보편과 특수, 추상과 구체의 경계를 의심하는 말들” 그것을 생각하다가 그것은//이것이 되었습니다//나는 이것을 옷장 속에 구겨두고 어항 속에 풀어두고 꽃병 속에 꽂아두고//이것에는 단어가 필요하지 않습니다//이것은 어두운 곳에서 헤엄치다가 가만히 시들어버립니다. 아득한 나라 알 수 없는 숲 속에서 이름 모르는 새가 울고//내 곁에 있어도 그것인 것들//그것은 탁자 위에 가지런히 놓인 손목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