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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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이 오지 못할 만큼 밤이 길지는 않았다” 당신과의 연둣빛 세상을 꿈꾸는 기품 어린 노래 1970년 등단 이래 반세기에 이르는 동안 견결한 시심으로 오롯이 시의 외길을 걸으며 우리 곁을 지켜온 정희성 시인의 신작 시집 『흰 밤을 꿈꾸다』가 출간되었다. 정희성 시인은 단정한 선비의 이미지와 “시 두편이면 일년 농사”(「임진각에서 얻은 시상」, 『돌아다보면 문득』)라는 과작의 시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김수영문학상의 제1회(1981년) 수상자이며, 대표적인 참여시인으로 활동해온 그의 시는 현실의 모순들로부터 눈 돌리지 않는 듬직함과 세상살이에서 길어올린 아름다운 면모를 두루 갖춤으로써 수많은 독자들로부터 사랑받아왔다. 특히 두번째 시집 『저문 강에 삽을 씻고』(창작과비평사 1978)는 1970년대 민중시를 대표하는 문학적 성과로 평가되며, 표제시 「저문 강에 삽을 씻고」는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으로 교과서에도 실려 있다. (이 시 외에 「숲」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 등도 교과서 수록작이다.) 최근에는 1969년에 결성했던 ‘70년대’ 동인(강은교, 김형영, 윤후명 등)이 ‘고래’라는 이름으로 다시 모여(2012년) 활동을 재개하고 합동 시집을 내놓아 시단에 감동을 주기도 했다. 이번 시집 『흰 밤에 꿈꾸다』는 구상문학상(2014년) 수상작 『그리운 나무』(창비 2013) 이후 6년 만에 펴내는 일곱번째 시집이다. 세상을 향한 그윽한 시선과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이 깃든 정갈한 시편들이 묵직한 감동을 선사한다. 한편 시집으로서는 이례적으로 한문학자 정민 교수의 발문을 수록했는데 종종 한시를 연상케 하는 시인의 기품 있는 시세계와 맞닿는 글로서 따스하게 다가온다. 정갈한 언어 안에 굽이굽이 담긴 세상사 표제작 「흰 밤에 꿈꾸다」가 그렇듯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우리에게 희미해진 ‘북방정서’를 환기한다. 그런 작품을 쓰게 된 표면적인 계기는 ‘시베리아 횡단열차’에서 목도한 풍경이되, 그 안에는 당연히 한반도 평화에 대한 간절한 염원이 담겨 있다. 또한 남북관계뿐 아니라 세월호참사와 탄핵 정국 등 근년의 정치적·사회적 국면에 대한 시적 발언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러나 묵직한 소재만 다루는 것은 아니다. 시인은 사소한 일상에서 반짝이는 순간을 발견해내기도 하고, 자연의 크고 작은 풍광과 마주하면서 겸손해지기도 한다. 정민 교수가 발문에서 ‘받아쓰기 시론’이라고 주목했듯이 시인은 어린 손녀에서부터 주변 문우들, 심지어 나무와 새, 강 등으로부터 보고 들은 바를 고요하나 흥미롭게 전해준다. 시인은 ‘좋은 언어로 세상을 채우자’던 신동엽 시인의 말을 새삼 되새긴다. “내게 노래가 없다면/내게 꿈마저 없다면/나는 무엇인가”라고 되물으며 “마지막 한줌의 힘이 빠져나갈 때까지”(「독서일기 2」) ‘시’를 놓지 않으리라 다짐한다. 순진무구한 마음과 온유한 사랑의 언어로 세상을 포용해온 시인은 시대의 어둠 속에 한점 희망의 불빛을 던지며 나직이 속삭인다. “그럼에도 사랑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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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 빛날 우리의 내일을 위하여! 우리 문학의 현재이자 미래, 신동엽문학상 역대 수상자들이 한자리에 모이다 2019년 4월 신동엽(1930~1969) 시인의 50주기를 맞아 역대 신동엽문학상 수상자 31인의 신작 작품집 2종이 출간되었다. 하종오 외 20인이 총 63편의 신작시를 묶은 시집 『밤은 길지라도 우리 내일은』과 공선옥 외 9인이 총 10편의 신작소설을 묶은 소설집 『너의 빛나는 그 눈이 말하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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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어째서 어떻게 무엇이 그토록 너였느냐고 나는 반백년 후에나 중얼거린다” 순간이자 영원, 없는 당신과 무수한 나 세계와 인간을 감싸안는 독창적이고도 깊은 통찰 1989년 작품활동을 시작한 이후 독특한 발상과 이질적인 화법으로 독창적인 시세계를 펼쳐온 이경림 시인의 신작 시집 급! 고독이 출간되었다. 올해로 등단한 지 만 30년, 시인의 생애 여섯번째 시집이다. 8년 만에 펴내는 이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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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몸의 중심을 향해 고요한 기도의 몸매를 지속할 뿐이다” 먼 바다를 향해 나아가는 시인의 강물 혼돈의 시대를 온몸으로 살아 온 시인 강민의 80년 생애를 담은 98편의 시 1962년 『자유문학』에 「노래」를 발표하며 등단한 이래 반세기가 넘는 세월 동안 잔잔한 창작 활동을 해온 시단의 원로 강민 시인의 시선집 『백두에 머리를 두고』가 출간되었다. 이 시선집은 『물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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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무얼 먹고 지내는지 궁금합니다 나는 인사하고 싶습니다 내 이름은 소란입니다” ‘시요일’ 30만 독자가 사랑한 박소란의 신작시집 닫힌 문을 두드리며 건네는 다정한 인사 2009년 등단 이후 자기만의 시세계를 지키며 사회의 보편적인 아픔을 서정적 어조로 그려온 박소란 시인의 두번째 시집 『한 사람의 닫힌 문』이 출간되었다. 시인은 “사회적 약자와 시대의 아픔을 개성적인 어법으로 끌어안았다”는 호평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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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누구야 아무것도 아니야 사라지는 농담이야” 이제 모든 말들은 수수께끼처럼 흩어진다 소외된 사람들의 비극적 삶을 특유의 시각과 기법으로 그려내며 호평받아온 이기인 시인의 세번째 시집 혼자인 걸 못 견디죠가 출간되었다. 어깨 위로 떨어지는 편지(창비 2010) 이후 9년 만에 펴내는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이전의 시세계와는 확연히 구별되는 색다른 화법을 구사하며 단순한 변모를 뛰어넘는 시적 진화의 경지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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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의 무엇의 부제가 아니라 나였어야 했다” 아무것도 아닌 삶, 존재 없는 존재들의 낮은 목소리 다채롭고 찬란한 색들로 채워진 세상을 꿈꾼다 2002년 계간 『시평』을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한 뒤 노동 현장과 소외된 삶의 풍경을 그려온 김사이 시인의 두번째 시집 『나는 아무것도 안하고 있다고 한다』가 출간되었다. 노동시의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는 평가를 받았던 첫 시집 『반성하다 그만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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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랑의 나날 중에 대체 무엇이 불온하단 말인가” 서정시마저 금지되었던 시간을 지나 오늘 우리가 새롭게 만나는 나희덕의 시 198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이래 30년간 투명한 서정과 깊은 삶의 언어로 독자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아온 나희덕 시인의 신작 『파일명 서정시』가 출간되었다. 2014년 임화문학예술상 수상작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문학과지성사 2014) 이후 4년 만에 펴내는 여덟번째 시집이다. 이번 시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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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꽃」의 시인 동천(洞泉) 권태응 탄생 100주년, 사후 70여 년 만에 선보이는 전집 동요 「감자꽃」 등으로 널리 알려진 권태응의 문학 전집이 창비에서 출간되었다. 탄생 100주년, 사후 70년 만의 일이다. 권태응은 해방 직후 4년 남짓 활동하고 34세에 요절한 동시인이다. 생전에는 『감자꽃』(1948) 단 한 권만을 발표하였다. 이후 육필로 남긴 많은 동시와 산문이 유족에 의해 공개되었으나 그간 정리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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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말은 향기로 시작되어 아주 작은 씨앗으로 사라진다” 은은하고도 가파른 사랑, 애잔하고 아름다운 서정의 세계 전라도 사투리의 질박한 언어와 흥겨운 가락이 어우러진 작품으로 남도 서정의 맥을 이어온 이대흠 시인이 긴 침묵 끝에 새 시집 당신은 북천에서 온 사람을 내놓았다. ‘북에 백석이 있다면 남에는 이대흠이 있다’는 찬사를 받았던 시집 귀가 서럽다(창비 2010) 이후 8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