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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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미술을 꿈꾸다 민족예술운동의 선구자 고(故) 김윤수 선생의 저작집 출간 국립현대미술관장, 한국민족예술인총연맹 이사장, 계간 『창작과비평』 발행인 등을 역임한 고 김윤수 선생의 1주기를 맞아 『김윤수 저작집』(전3권)이 출간되었다. 선생은 1960년대 이래로 민족예술과 민중미술운동의 정신적 지주이자 리얼리즘 미학 이론의 대부로 활동하며 예술계를 대표했던 미학자이자 미술평론가이다. 또한 군사독재 시기 예술계의 사회참여를 이끌며 민주화운동에 굵직한 자취를 남기기도 했다. 2018년 향년 82세로 선생이 별세한 뒤 구성된 ‘김윤수 저작집 간행위원회(위원장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는 지난 1년 동안 선생의 생전 저술을 모으고 다듬어 세권의 저작집으로 엮어냈다. 미술비평과 명작해설, 전시회 소개문 등 당대의 예술현장에 몸담았던 고인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글들을 주제별로 묶었고, 후학들의 회고담과 인터뷰를 부록에 담아 선생을 기리는 마음을 남겼다. 이 저작집에 한데 엮인 김윤수 선생의 저술은 예술을 통해 사회를 바꾸려 했던 한 시대의 예술비평이 성취한 빛나는 유산으로 기억되는 동시에 새로운 시대를 여는 또 하나의 현장으로 길이 남을 것이다. 『김윤수 저작집』은 선생의 삶을 세가지 모습으로 조명한다. 제1권 『리얼리즘 미학과 예술론』은 미학자로서, 제2권 『한국 근현대미술사와 작가론』은 미술사가로서, 제3권 『현대미술의 현장에서』는 미술평론가로서 선생이 남긴 글들이다. 미술인들의 영원한 스승이자 민주화운동의 든든한 버팀목이었던 선생은 이처럼 성실한 학자이자 예리한 비평가, 실천하는 지식인으로 치열하게 살며 시대의 부름에 사명을 다했다. 그리고 이 다양한 모습들은 다시 ‘민족의 길, 예술의 길’이라는 큰 줄기에 모여 시대를 밝힌 스승 김윤수의 삶을 단단하게 증언한다. “참된 리얼리즘은 휴머니즘” 예술과 사회를 사랑했던 미학자, 미술사가, 미술평론가의 삶 오늘날 예술의 사회적 역할은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대중은 기득권에 기대는 엘리트주의 예술을 더이상 반기지 않고, 예술가에게 그 존재가치를 증명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기술이 발전하고 사회가 급변하면서 더 나은 민주주의, 더 바람직한 공존, 새로운 인간성을 상상하는 데 예술가가 기여해줄 것을 기대한다. 오늘날 김윤수 선생의 글을 우리가 읽어야 하는 이유를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선생은 일생 동안 누구보다도 예술의 사회적 역할을 강조하면서 예술가와 독자를 설득해왔다. 또한 예술의 창조성이 가장 빛날 때야 비로소 사람을 바꾸고 세상을 바꾸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음을 역설했다. 선생이 화두로 삼았던 리얼리즘은 예술을 통해 인간을 더욱 존중하는 세상을 열기 위한 길이었던 것이다. 이 저작집의 글들이 씌어진 이후 시간이 흐르고 세상도 어느정도 바뀌었지만 김윤수 선생이 남긴 인간과 예술에 대한 깊이있는 성찰은 또다른 변화를 준비하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지침이 될 것이다. 우리 근현대미술과 작가 재조명 진보적이고 날카로운 미술사가의 시각 김윤수 선생이 미술계에 남긴 큰 업적으로 한국 근현대미술사를 정리하고 재조명한 것이 꼽힌다. 제2권 『한국 근현대미술사와 작가론』에는 우리 미술사를 날카롭게 분석‧정리하고 근현대 작가들에 관한 진보적이고 파격적인 작가론을 발표하며 미술사가로서의 면모를 여실히 드러낸 글을 모았다. 선생이 민중미술운동에 이론적 토대를 제공하고 우리 미술계의 정신적 지주로 자리매김해간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선생은 생전에 단 한권의 저서를 펴냈다. 우리 미술계의 뿌리를 정신사‧사회사적 시각에서 조명한 5편의 원고를 엮은 『한국현대회화사』(한국일보사 1975)다. 제2권의 제1부 ‘한국현대회화사’에는 지금은 절판된 이 책을 그대로 실어 독자들에게 다시 소개한다. 한국미술사가 편년 중심에 머무르는 것을 극복하고 발전적인 예술론으로 나아가야 함을 역설한 선생의 목소리가 담겼다. 제2부 ‘한국 근현대미술사 논고’에는 우리 현대미술을 거시적인 시각에서 조명한 평론을 묶었다. 1980년대 들어 생긴 화단의 변화에 주목하며 화단 안팎에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새로운 전망과 과제를 제시한 「한국미술의 새 단계」, 우리 근대화의 한계를 지적하고 전통회화와 서양회화의 갈등 속에서 새로운 동양화 모색을 촉구한 「문인화의 종언과 현대적 변모」 등을 모았다. 1980년대 리얼리즘 미술운동의 태동 과정을 소개하고 ‘한국화’의 진로에 대해 고민하게 하는 중요한 비평문들이다. 1977년 미술 전문지 『계간미술』이 창간됐다. 유신독재와 군사정권에 맞서 투쟁하다 옥고를 치르고 대학에서 강제 해직되며 어려운 시절을 보내던 김윤수 선생에게 『계간미술』은 훌륭한 지면이 되었다. 선생은 이때부터 본격적인 평론활동을 시작했는데, 선생의 비평에 있어서 주요한 주제는 작가론이었다. 『계간미술』을 비롯한 여러 지면에 발표한 선생의 작가론을 제3부 ‘작가론’에 담았다. 선생은 대표적인 근현대 작가는 물론 민중미술 작가들의 작품을 두루 살폈는데, 특히 민중미술계 작가들의 작가론을 게재한 것은 당시로서는 파격적이고 눈에 띄는 기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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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미술을 꿈꾸다 민족예술운동의 선구자 고(故) 김윤수 선생의 저작집 출간 국립현대미술관장, 한국민족예술인총연맹 이사장, 계간 『창작과비평』 발행인 등을 역임한 고 김윤수 선생의 1주기를 맞아 『김윤수 저작집』(전3권)이 출간되었다. 선생은 1960년대 이래로 민족예술과 민중미술운동의 정신적 지주이자 리얼리즘 미학 이론의 대부로 활동하며 예술계를 대표했던 미학자이자 미술평론가이다. 또한 군사독재 시기 예술계의 사회참여를 이끌며 민주화운동에 굵직한 자취를 남기기도 했다. 2018년 향년 82세로 선생이 별세한 뒤 구성된 ‘김윤수 저작집 간행위원회(위원장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는 지난 1년 동안 선생의 생전 저술을 모으고 다듬어 세권의 저작집으로 엮어냈다. 미술비평과 명작해설, 전시회 소개문 등 당대의 예술현장에 몸담았던 고인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글들을 주제별로 묶었고, 후학들의 회고담과 인터뷰를 부록에 담아 선생을 기리는 마음을 남겼다. 이 저작집에 한데 엮인 김윤수 선생의 저술은 예술을 통해 사회를 바꾸려 했던 한 시대의 예술비평이 성취한 빛나는 유산으로 기억되는 동시에 새로운 시대를 여는 또 하나의 현장으로 길이 남을 것이다. 『김윤수 저작집』은 선생의 삶을 세가지 모습으로 조명한다. 제1권 『리얼리즘 미학과 예술론』은 미학자로서, 제2권 『한국 근현대미술사와 작가론』은 미술사가로서, 제3권 『현대미술의 현장에서』는 미술평론가로서 선생이 남긴 글들이다. 미술인들의 영원한 스승이자 민주화운동의 든든한 버팀목이었던 선생은 이처럼 성실한 학자이자 예리한 비평가, 실천하는 지식인으로 치열하게 살며 시대의 부름에 사명을 다했다. 그리고 이 다양한 모습들은 다시 ‘민족의 길, 예술의 길’이라는 큰 줄기에 모여 시대를 밝힌 스승 김윤수의 삶을 단단하게 증언한다. “참된 리얼리즘은 휴머니즘” 예술과 사회를 사랑했던 미학자, 미술사가, 미술평론가의 삶 오늘날 예술의 사회적 역할은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대중은 기득권에 기대는 엘리트주의 예술을 더이상 반기지 않고, 예술가에게 그 존재가치를 증명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기술이 발전하고 사회가 급변하면서 더 나은 민주주의, 더 바람직한 공존, 새로운 인간성을 상상하는 데 예술가가 기여해줄 것을 기대한다. 오늘날 김윤수 선생의 글을 우리가 읽어야 하는 이유를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선생은 일생 동안 누구보다도 예술의 사회적 역할을 강조하면서 예술가와 독자를 설득해왔다. 또한 예술의 창조성이 가장 빛날 때야 비로소 사람을 바꾸고 세상을 바꾸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음을 역설했다. 선생이 화두로 삼았던 리얼리즘은 예술을 통해 인간을 더욱 존중하는 세상을 열기 위한 길이었던 것이다. 이 저작집의 글들이 씌어진 이후 시간이 흐르고 세상도 어느정도 바뀌었지만 김윤수 선생이 남긴 인간과 예술에 대한 깊이있는 성찰은 또다른 변화를 준비하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지침이 될 것이다. 미술계 전반을 아우르는 폭넓은 시야 미술평론가 김윤수의 현장비평 김윤수 선생은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민예총) 이사장과 국립현대미술관장을 역임하며 미술계의 대표적인 지도자로 인정받았고 동료들의 정신적 지주로 존경받았지만, 동시에 미술계 현장의 안팎을 살피는 날카로운 시각을 가진 비평가였다. 이 시기 선생이 미술평론가로서 현장비평에 몰두하며 쓴 글을 제3권 『현대미술의 현장에서』에 수록했다. 1970년대 후반 이래, 한국미술계에 전례 없이 다양한 전람회가 열리며 연일 성황을 이루었다. 특히 전시회 팸플릿에 비평가의 평론을 서문으로 싣기 시작한 것이 지금까지 관행으로 이어지는데, 제1부 ‘작가와 함께―개인전 서문’에는 당시 선생이 쓴 개인전 서문 23건을, 제2부 ‘그룹전시회’에는 그룹전 서문 6건을 실었다. 선생은 민중미술 계열의 작가들을 비롯한 리얼리즘 계열의 작가들의 개인전과 그룹전에 주목하면서 의미 있는 서문을 남겼다. 이 글들을 통해 신진작가의 예술세계를 대중에게 선보이고 그 예술을 대변하는 역할을 했다. 제3부 ‘전시회를 기획하며’는 선생이 서울미술관장(1981~82년), 국립현대미술관장(2003~2008년) 등을 역임하며 직접 기획한 전시회의 뜻을 밝힌 논고들로 구성했다. 선생이 기획부터 평론까지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작성한 것으로 전시회 기획 의도와 의의, 선생의 예술관이 그대로 녹아 있다. 김윤수 선생은 미술계에 큰 논쟁이 있을 때마다 『월간중앙』 『창작과비평』 『계간미술』 『공간』 등 다양한 지면에 입장을 밝히는 비평문을 발표해왔는데, 제4부 ‘미술시평’은 이러한 논쟁적인 비평들을 엮어 구성했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의의와 미술계의 관료성을 꼬집은 「국립현대미술관의 존재 의의」, 서세옥‧문명대 논쟁을 다룬 「화단 풍토의 반성」을 포함해 우리 미술계에 주어진 과제와 전망 등을 제시한 글을 두루 담아 미술계 안팎의 사정을 살펴볼 수 있도록 했다. 제5부 ‘『뿌리깊은 나무』 월평’에는 미술평론가로서 확고한 위치에 올라선 선생이 1977년부터 1979년까지 월간 『뿌리깊은 나무』 고정 지면에 게재한 월평을 모아 미술계의 구조적 모순부터 구체적인 전시회 비평까지 현장활동을 두루 담았다. 마지막으로 제6부 ‘대담’은 『신동아』 1985년 9월호에 실린 오광수와 나눈 대화로, 민중미술운동의 역사, 문제점, 예술과 현실의 관계 등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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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미술을 꿈꾸다 민족예술운동의 선구자 고(故) 김윤수 선생의 저작집 출간 국립현대미술관장, 한국민족예술인총연맹 이사장, 계간 『창작과비평』 발행인 등을 역임한 고 김윤수 선생의 1주기를 맞아 『김윤수 저작집』(전3권)이 출간되었다. 선생은 1960년대 이래로 민족예술과 민중미술운동의 정신적 지주이자 리얼리즘 미학 이론의 대부로 활동하며 예술계를 대표했던 미학자이자 미술평론가이다. 또한 군사독재 시기 예술계의 사회참여를 이끌며 민주화운동에 굵직한 자취를 남기기도 했다. 2018년 향년 82세로 선생이 별세한 뒤 구성된 ‘김윤수 저작집 간행위원회(위원장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는 지난 1년 동안 선생의 생전 저술을 모으고 다듬어 세권의 저작집으로 엮어냈다. 미술비평과 명작해설, 전시회 소개문 등 당대의 예술현장에 몸담았던 고인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글들을 주제별로 묶었고, 후학들의 회고담과 인터뷰를 부록에 담아 선생을 기리는 마음을 남겼다. 이 저작집에 한데 엮인 김윤수 선생의 저술은 예술을 통해 사회를 바꾸려 했던 한 시대의 예술비평이 성취한 빛나는 유산으로 기억되는 동시에 새로운 시대를 여는 또 하나의 현장으로 길이 남을 것이다. 『김윤수 저작집』은 선생의 삶을 세가지 모습으로 조명한다. 제1권 『리얼리즘 미학과 예술론』은 미학자로서, 제2권 『한국 근현대미술사와 작가론』은 미술사가로서, 제3권 『현대미술의 현장에서』는 미술평론가로서 선생이 남긴 글들이다. 미술인들의 영원한 스승이자 민주화운동의 든든한 버팀목이었던 선생은 이처럼 성실한 학자이자 예리한 비평가, 실천하는 지식인으로 치열하게 살며 시대의 부름에 사명을 다했다. 그리고 이 다양한 모습들은 다시 ‘민족의 길, 예술의 길’이라는 큰 줄기에 모여 시대를 밝힌 스승 김윤수의 삶을 단단하게 증언한다. 미학자 김윤수의 예술론이 정립되는 과정 창조적 열정 가득했던 청년 시절 문필활동의 기조 김윤수 선생은 본격적인 미술평론가로 활동하기 전인 1960~70년대에 여러 대학에 출강하며 미학을 가르쳤다. 당시 각 대학의 신문에는 교양강의 수준의 글이 자주 실렸는데, 선생 역시 강사 시절 미학과 예술론을 주제로 다양한 글을 기고했다. 제1권 『리얼리즘 미학과 예술론』은 선생이 30대 시절 미학자로서의 기조를 담은 글을 모아 구성했다. 제1부 ‘리얼리즘론’에는 리얼리즘 예술철학의 토대를 세운 글을 담았다. 특히 「리얼리즘 소고(小考)」(1970)는 진정한 리얼리즘이란 무엇인가를 간결하고 날카롭게 논한 글로, 리얼리즘 예술론을 펼친 선생의 생애에 중요한 이정표가 되었다. 「예술과 소외」는 미학자이자 미술평론가 김윤수의 이름을 본격적으로 알린 글이다. 제2부 ‘문화시론’은 1970년대 초반 현실 참여적인 학자, 지식인으로서 시대적 발언을 아까지 않은 선생의 면모를 드러내는 글로 꾸렸다. 이 글들은 선생이 서재와 전시장뿐 아니라 광장에서도 호흡하며 시대의 현장을 감지했던 진정한 리얼리스트였음을 드러낸다. 제3부 ‘미학 및 미술사 논고’에는 미학이라는 학문을 널리 알리기 위한 선생의 고민이 담긴 예술학‧미학 관련 논문과 기고문을 모았다. 여러 신문과 잡지에 기고한 이 논문들은 현대예술과 미학을 소개하면서 문제점도 함께 지적하고, 독자와 학생에게 예술과 미학을 깊이 있게 소개하려는 선생의 열정을 보여준다. 『효대학보』 연재기사 「미학강좌」(12회)를 그대로 담은 제4부 ‘미학강좌’ 역시 미학의 핵심을 독자들에게 소개한 글이다. 제5부 ‘명작해설’에는 『대학신문』에 14회에 걸쳐 서구 주요 작가의 작품을 해설한 「명작감상」을 작품과 함께 수록했고, 제6부 ‘서평’은 여러 매체에 수록된 서평을 한데 모아 구성했다. 깊이있고 날카로운 해설과 서평을 통해 작품과 책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것은 물론 미와 예술에 대한 선생의 생각도 읽어낼 수 있다. 끝으로 선생이 청년 시절에 쓴 시와 산문, 후학들의 회고담, 생전의 인터뷰 기사를 부록으로 수록해 선생에 대한 그리움과 추모의 마음을 담았다. 우리 근현대미술과 작가 재조명 진보적이고 날카로운 미술사가의 시각 김윤수 선생이 미술계에 남긴 큰 업적으로 한국 근현대미술사를 정리하고 재조명한 것이 꼽힌다. 제2권 『한국 근현대미술사와 작가론』에는 우리 미술사를 날카롭게 분석‧정리하고 근현대 작가들에 관한 진보적이고 파격적인 작가론을 발표하며 미술사가로서의 면모를 여실히 드러낸 글을 모았다. 선생이 민중미술운동에 이론적 토대를 제공하고 우리 미술계의 정신적 지주로 자리매김해간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선생은 생전에 단 한권의 저서를 펴냈다. 우리 미술계의 뿌리를 정신사‧사회사적 시각에서 조명한 5편의 원고를 엮은 『한국현대회화사』(한국일보사 1975)다. 제2권의 제1부 ‘한국현대회화사’에는 지금은 절판된 이 책을 그대로 실어 독자들에게 다시 소개한다. 한국미술사가 편년 중심에 머무르는 것을 극복하고 발전적인 예술론으로 나아가야 함을 역설한 선생의 목소리가 담겼다. 제2부 ‘한국 근현대미술사 논고’에는 우리 현대미술을 거시적인 시각에서 조명한 평론을 묶었다. 1980년대 들어 생긴 화단의 변화에 주목하며 화단 안팎에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새로운 전망과 과제를 제시한 「한국미술의 새 단계」, 우리 근대화의 한계를 지적하고 전통회화와 서양회화의 갈등 속에서 새로운 동양화 모색을 촉구한 「문인화의 종언과 현대적 변모」 등을 모았다. 1980년대 리얼리즘 미술운동의 태동 과정을 소개하고 ‘한국화’의 진로에 대해 고민하게 하는 중요한 비평문들이다. 1977년 미술 전문지 『계간미술』이 창간됐다. 유신독재와 군사정권에 맞서 투쟁하다 옥고를 치르고 대학에서 강제 해직되며 어려운 시절을 보내던 김윤수 선생에게 『계간미술』은 훌륭한 지면이 되었다. 선생은 이때부터 본격적인 평론활동을 시작했는데, 선생의 비평에 있어서 주요한 주제는 작가론이었다. 『계간미술』을 비롯한 여러 지면에 발표한 선생의 작가론을 제3부 ‘작가론’에 담았다. 선생은 대표적인 근현대 작가는 물론 민중미술 작가들의 작품을 두루 살폈는데, 특히 민중미술계 작가들의 작가론을 게재한 것은 당시로서는 파격적이고 눈에 띄는 기획이었다. 미술계 전반을 아우르는 폭넓은 시야 미술평론가 김윤수의 현장비평 김윤수 선생은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민예총) 이사장과 국립현대미술관장을 역임하며 미술계의 대표적인 지도자로 인정받았고 동료들의 정신적 지주로 존경받았지만, 동시에 미술계 현장의 안팎을 살피는 날카로운 시각을 가진 비평가였다. 이 시기 선생이 미술평론가로서 현장비평에 몰두하며 쓴 글을 제3권 『현대미술의 현장에서』에 수록했다. 1970년대 후반 이래, 한국미술계에 전례 없이 다양한 전람회가 열리며 연일 성황을 이루었다. 특히 전시회 팸플릿에 비평가의 평론을 서문으로 싣기 시작한 것이 지금까지 관행으로 이어지는데, 제1부 ‘작가와 함께―개인전 서문’에는 당시 선생이 쓴 개인전 서문 23건을, 제2부 ‘그룹전시회’에는 그룹전 서문 6건을 실었다. 선생은 민중미술 계열의 작가들을 비롯한 리얼리즘 계열의 작가들의 개인전과 그룹전에 주목하면서 의미 있는 서문을 남겼다. 이 글들을 통해 신진작가의 예술세계를 대중에게 선보이고 그 예술을 대변하는 역할을 했다. 제3부 ‘전시회를 기획하며’는 선생이 서울미술관장(1981~82년), 국립현대미술관장(2003~2008년) 등을 역임하며 직접 기획한 전시회의 뜻을 밝힌 논고들로 구성했다. 선생이 기획부터 평론까지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작성한 것으로 전시회 기획 의도와 의의, 선생의 예술관이 그대로 녹아 있다. 김윤수 선생은 미술계에 큰 논쟁이 있을 때마다 『월간중앙』 『창작과비평』 『계간미술』 『공간』 등 다양한 지면에 입장을 밝히는 비평문을 발표해왔는데, 제4부 ‘미술시평’은 이러한 논쟁적인 비평들을 엮어 구성했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의의와 미술계의 관료성을 꼬집은 「국립현대미술관의 존재 의의」, 서세옥‧문명대 논쟁을 다룬 「화단 풍토의 반성」을 포함해 우리 미술계에 주어진 과제와 전망 등을 제시한 글을 두루 담아 미술계 안팎의 사정을 살펴볼 수 있도록 했다. 제5부 ‘『뿌리깊은 나무』 월평’에는 미술평론가로서 확고한 위치에 올라선 선생이 1977년부터 1979년까지 월간 『뿌리깊은 나무』 고정 지면에 게재한 월평을 모아 미술계의 구조적 모순부터 구체적인 전시회 비평까지 현장활동을 두루 담았다. 마지막으로 제6부 ‘대담’은 『신동아』 1985년 9월호에 실린 오광수와 나눈 대화로, 민중미술운동의 역사, 문제점, 예술과 현실의 관계 등이 담겨 있다. “참된 리얼리즘은 휴머니즘” 예술과 사회를 사랑했던 미학자, 미술사가, 미술평론가의 삶 오늘날 예술의 사회적 역할은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대중은 기득권에 기대는 엘리트주의 예술을 더이상 반기지 않고, 예술가에게 그 존재가치를 증명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기술이 발전하고 사회가 급변하면서 더 나은 민주주의, 더 바람직한 공존, 새로운 인간성을 상상하는 데 예술가가 기여해줄 것을 기대한다. 오늘날 김윤수 선생의 글을 우리가 읽어야 하는 이유를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선생은 일생 동안 누구보다도 예술의 사회적 역할을 강조하면서 예술가와 독자를 설득해왔다. 또한 예술의 창조성이 가장 빛날 때야 비로소 사람을 바꾸고 세상을 바꾸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음을 역설했다. 선생이 화두로 삼았던 리얼리즘은 예술을 통해 인간을 더욱 존중하는 세상을 열기 위한 길이었던 것이다. 이 저작집의 글들이 씌어진 이후 시간이 흐르고 세상도 어느정도 바뀌었지만 김윤수 선생이 남긴 인간과 예술에 대한 깊이있는 성찰은 또다른 변화를 준비하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지침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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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세계체제의 이행을 예고한 월러스틴의 마지막 질문 세계체제의 위기, 아프리카는 새로운 가능성이 될 수 있을까 ‘세계체제 분석’의 선구적인 업적으로 잘 알려진 석학 이매뉴얼 월러스틴이 70여년에 걸쳐 아프리카를 연구하고 30여년에 걸쳐 쓴 글을 묶어낸 『세계체제와 아프리카』가 출간되었다. 월러스틴의 세계체제론은 한 국가단위 내부에서 자생적으로 자본주의가 형성되었다고 상정하는 통념에 대한 도전이었으며, 근대 세계사에 대한 인식틀뿐 아니라 이론적 차원에서도 통상적 역사학과 사회과학의 기반을 흔드는 것이었다. 『세계체제와 아프리카』는 이 같은 세계체제 분석의 거시적 시각에서 아프리카에 관한 다양한 문제들을 조명한다. 아프리카는 1955년 무렵부터 십여년 동안 월러스틴의 주요 연구주제였고, 그의 학문 이력의 출발점이었다. 그 자신이 ‘현대 세계의 뜨거운 정치적 문제들과 근대 세계체제의 역사를 분석하는 방법에 대한 학문적 문제들에 대해 주시할 수 있었던 것은 아프리카 연구 덕분이었다’고 말한 바 있다. 월러스틴은 지금 세계는 500여년 동안 근대의 모습을 빚어내온 자본주의체제로부터 그 후속체제로 가는 이행과정에 있다고 진단하며, 그 투쟁을 분석하고 더 나은 미래를 일구는 데 영향을 끼치려 노력하는 실천적 지식인이었다. 이 책에서 그는 근대 세계체제의 위기를 해결하는 데 특히 아프리카가 적절하면서도 의미심장한 역할을 맡으려면, 여기에 어떤 심각한 문제들이 얽혀 있는지, 어떤 도덕적‧정치적 전략을 따라야 하는지 등에 관해 철저한 토론과 사유를 지속해야 함을 강조했다. 냉철한 이론가를 넘어서 윤리적 개인으로, 정치적 인간으로 일평생을 살았던 월러스틴의 마지막 질문과 희망을 확인할 수 있는 책이다. 월러스틴의 저작을 꾸준히 번역하며 그의 이론과 교감해온 성백용(한남대 교수)이 번역을 맡았고, 유재건(부산대 명예교수)이 추모 발문을 실었다. 아프리카는 세계체제의 이행 과정에서 희망적 요인이 될 것이다 1부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구조적 위기’에서는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구조적 위기와 이행, 그리고 이것이 아프리카에 미친 영향에 대해 주로 논의한다. 특히 저자는 1960년을 전후로 정치적 독립을 성취했지만 경제적 발전이라는 약속을 실현할 수 없었던 아프리카 민족해방운동 세력들의 딜레마에 눈길을 돌린다. 아프리카의 신생 독립국에서 집권에 성공한 운동 세력들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근본적인 변혁을 훗날로 미룬 채 부유한 나라 ‘따라잡기’에 매진했고, 그럼으로써 현 세계체제를 침식하는 동시에 강화하기도 했다고 분석한다. 그럼에도 저자는 아프리카의 정치적 투쟁이 현존 세계체제의 안정성을 조금이라도 약화하는 쪽으로 영향을 끼쳤다고 평가하며,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이행에서 아프리카가 관건이 되는 지역이 될 거라는 희망을 내비친다. 아프리카는 근대 세계체제에서 소외되어 현 체제를 지탱하는 서구의 보편주의 이데올로기에 지적으로 덜 포섭되어 있으며, 따라서 아프리카야말로 가장 창조적인 통찰, 조직적 사고의 전환이 가능한 곳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저자는 흔히 절망의 대륙으로 묘사되는 아프리카에서 희망의 실마리를 찾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프리카를 특이하고 예외적인 대상으로 보는 것은 아니다. 아프리카의 변화는 세계체제의 변화를 반영한 것이라는 통찰을 놓치지 않으면서, 아프리카가 직면한 딜레마와 변화들(민족해방운동들의 권위 실추, 국가 기능의 쇠퇴, 사회 인프라의 악화 등)이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세계체제 전반의 문제임을 다시금 확인하고 있다. 이 책은 월러스틴의 방대한 세계체제론을 압축적으로 이해하는 데도 효과적이다. 세계체제론의 핵심 사유가 그가 아프리카와 자본주의체제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현상을 이해하고 분석하는 데 빠짐없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특히 6장 ‘발전주의와 세계화 다음은 무엇인가?’에서는 지금의 세계체제가 지속 가능한지, 그렇지 않다면 어떠한 종류의 대안적 체제들이 우리 앞에 놓여 있는지 가능한 후보안들을 하나씩 열거하며 그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다. 위계제와 양극화를 온존시키는 체제로 갈 것인가, 한층 민주적이고 평등한 대안적 체제로 갈 것인가 하는 혼돈의 분기점에서 월러스틴은 사람들의 집단적 실천이 그 방향을 좌우하는 데 결정적으로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인종, 민족, 종족은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역사적 산물이다 2부 ‘정체성 정치의 등장’에서는 근래에 와서 정치적 투쟁의 큰 쟁점이 된 정체성 정치(identity politics)의 관점에서 아프리카의 딜레마들을 다루고 있다. 특히 흑인, 백인, 인도인, 혼혈인 등 매우 다양한 종족집단이 모여 살고 피부색에 따른 주민등록과 거주구역 제한이 법률로 시행되었던 남아프리카에서 이 문제는 뜨거운 사회적 쟁점이었다. 저자는 5장 ‘민족성의 구성: 인종주의, 민족주의, 종족성’에서 1984년 아프리카민족회의의 공식기관지 지면에서 ‘소위 유색인’(so-called Coloured)이라는 표현을 놓고 벌어진 논쟁을 자세히 소개한다. ‘소위’라는 표현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 유색인의 범주는 무엇이며 그 용어는 정당한 것인지, 이 용어에 따옴표를 치는 것이 정치적으로 올바른 것인지 등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 논쟁은 이 문제가 얼마나 민감한 쟁점인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월러스틴은 민족성 같은 특정한 인구 집단의 범주 자체가 원초적이거나 본질적인 실체가 아니라 하나의 사회적‧제도적 구성물일 뿐이라는 상식에서 한발 더 나아간 논의를 펼친다. 유전적 범주인 인종, 사회정치적 범주인 민족/국민, 문화적 범주인 종족집단(ethnic group)과 같은 주요 범주들이 구조적 불평등과 생산‧노동의 주기적인 재배치를 필요로 하는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역사적 산물이라는 것이다. 7장 ‘집단 이름 붙이기’에서는 오늘날 사회과학계에서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하는 범주인 인종, 계급, 젠더에 대해서도 섬세하게 논의한다. 어떤 집단에 대해 이름을 붙이는 것, 각 집단에 위계질서를 부여하고 무엇에 우선권을 둘지 판단하는 것 자체가 정치적 쟁점이자 도덕적 과제임을 강조한다. 따라서 월러스틴은 우리가 집단을 범주화하고 정체성을 규정할 때 대단히 조심해야 하며, 정체성을 범주화하고 주장하는 과정에서 누가 어떤 이득을 끌어내는지를 예의주시해야 함을 힘주어 말한다. 이러한 통찰은 그 어느 때보다 정체성 정치가 뜨겁게 끓어오르고 있는 오늘날의 한국사회에서도 귀 기울여 들어야 할 대목이다. 냉철한 이론가, 윤리적 개인, 정치적 인간 월러스틴의 실천적 사유 3부 ‘아프리카 사상가들의 시각’에서는 세계체제와 아프리카에 관한 사유와 연구의 두드러진 사례들을 주요 사상가들의 글을 꼼꼼히 분석하며 다루고 있다. 아프리카 연구의 전반적인 발전 과정을 큰 붓으로 그린 10장 ‘아프리카 연구: 아프리카 학자들의 진화하는 역할’은 아프리카에 대한 월러스틴의 깊은 관심과 통찰을 보여준다. 1950년 무렵까지 주로 인류학의 연구 영역이었던 아프리카는 주로 유럽 세계와의 접촉 이후에 나타난 ‘문화 접변’을 중심으로 기술되었으며, 인류학자들은 부족과 식민 당국 사이의 자유주의적 매개자 역할을 했다. 1970년대 이후가 되어서야 학계 내부의 반성과 비판이 제기되고 갈등과 분열이 일어났다고 정리하면서 이 같은 아프리카 학계의 현안들이 세계체제의 변형과 아프리카 내 정치적 투쟁에 의해 결정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이어지는 네편의 글은 아프리카 연구와 세계체제론에 큰 영향을 준 선구자들을 조명한다. 현대 아프리카 연구의 개척자 역할을 한 배즐 데이빗슨(11장), 세계경제의 작동 과정에서 유럽의 식민지 사회들이 겪은 변화를 연구한 가이아나의 역사가 월터 로드니(12장), 세계체제론이 공식적으로 등장하기 10여년 전에 이미 그 이론의 골간을 구축한 올리버 콕스(13장), 제3세계 민족해방운동의 영웅이자 20세기 후반 탈식민주의 이론의 상징적 인물 프란츠 파농(14장), 이 사상가들의 텍스트를 치밀하게 분석하고 그 의미를 거시적이고 비판적인 시각에서 읽어내는 월러스틴의 독해를 따라가다 보면 엄정한 이론가이자 분석가로서의 그의 면모를 발견할 수 있다. 거의 모든 글에서 월러스틴은 현 세계체제의 위기와 이행의 문제를 거론한다. 그는 현 세계체제가 어떤 반체제운동이나 아래로부터의 압력에 의해 끝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현재의 자본주의 세계체제를 막다른 궁지로 내모는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그 자체의 성공으로 말미암아 키워진 모순들이다. 우리 앞에 진정한 토론과 집단적 선택의 가능성이 열리는 것은 바로 이 같은 이행기이며, 바로 지금 우리가 그 이행의 시기를 지나고 있다고 월러스틴은 판단한다. 이 책을 포함하여 저자가 사유와 글쓰기에 쏟은 한평생의 열정은 이 기회의 시간에 열린 진정한 토론의 장에 개입하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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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의 선택은 우리 사회를 더욱 정의롭게 했는가 민주주의의 미래를 위해 김영란이 던지는 화두 사법부에 대한 불신, 끝 모를 정쟁으로 치닫는 정치 지형 속에서 ‘판결’과 ‘정의’가 그 어느 때보다 의심받는 오늘날, 대법원의 판결을 돌이켜봄으로써 한국사회 정의의 현주소를 짚는 신간 『판결과 정의』가 출간되었다. 저자 김영란은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대법관, 우리 사회의 오랜 청탁 관행을 뒤바꾼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입법에 힘쓴 국민권익위원장 등의 경력을 거치며 민주주의의 가치를 지키는 데 앞장서왔다. 전작 『판결을 다시 생각한다』에서 저자 본인이 대법관으로 재임하며 참여했던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돌아보았다면, 이번 책 『판결과 정의』에서는 대법관 퇴임 후에 선고된 전원합의체 판결을 되짚어보며 거시적인 관점에서 현재진행형의 쟁점들을 분석한다. 책에는 법관으로서 항상 가지고 있던 저자의 오랜 고민과 ‘판결이 추구하는 정의’에 대한 날카로운 관점이 오롯이 녹아 있다. 특히 이번 책을 통해 저자는 판사들이 순수한 법리만으로 해석하고 재판할 것이라는 통념을 깨고 ‘대법관들이 자신에게 허용된 자유를 어떻게 사용하는가’를 냉철하게 비평한다. 이 책에서는 ‘성희롱 교수의 해임결정취소 소송’ ‘가습기살균제 사건’ ‘강원랜드 사건’ ‘KIKO 사건’ ‘삼성엑스파일 사건’ 등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사건들을 다시 만날 수 있다. 저자가 이 사건들에서 끄집어낸 주제는 가부장제, 자유방임주의, 과거사 청산, 정치의 사법화 등 한국사회에서 꾸준히 논쟁의 대상이 되는 것들이다. 사법부는 원칙적으로 주어진 법에 따라 판단하지만, 같은 법에 대해서도 사회가 공유하는 통념의 변화, 민주주의의 성숙도 등에 따라 다른 해석이 나타나기도 하고, 그에 따라 판결도 달라지곤 한다. 그 ‘달라지는’ 판결의 방향은 어디를 향하고 있으며, 그 방향을 정하는 주체는 누구여야 하는가. 저자가 이 책에서 던지는 질문이다. 판결은 마침표가 아니다. 판결을 통해 사건에 대한 시비는 일단락되지만, 그 판결 속 쟁점의 이유가 되었던 가치에 대한 고민은 끝나지 않는다. 우리는 쌓여가는 판결을 돌아보며 판결이 우리 사회를 더욱 정의롭게 했는지 살펴보고, 사법부의 판단이 더 옳은 쪽으로 갈 수 있도록 사회 전반의 통념과 공감대를 더 나은 방향으로 바꿔가야 한다. 『판결과 정의』는 민주시민인 우리가 어디서부터 이 일을 시작해야 할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알려주는 ‘정의를 향한 가이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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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자본주의 위기, 그 근원과 해법에 대한 탐색 무엇이 우리 미래를 압류하고 부채노동에 내모는가 이 책은 세계적인 맑스주의 이론가 데이비드 하비의 2017년작으로, 현대 자본주의 위기의 근원과 해법을 탐색하며 특히 자본의 가치 운동과 그 내재적 모순을 집중적으로 분석함으로써 맑스 노동가치론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저작이다. 지난 2010년 나온 『자본이라는 수수께끼: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위기들』(한국어판 이강국 옮김, 창비 2012)의 연장선상에 있으며, 전작과 마찬가지로 현대 자본주의 위기의 근원과 해법에 대한 탐색이 자본주의의 핵심적 장치들에 대한 검토로 이어지고, 그 과정에서 사회기반시설을 포함한 고정자본에 대한 투자, 근현대의 도시화, 부동산투기, 화폐제도와 부채, 이른바 ‘국가-금융 연계’, 기술혁신과 조직변화, 저항운동 등이 다뤄지는 데서 두 책의 연속성이 드러난다. 이번 책에서는 특히 본론을 구성하는 9개 장 중 7개 장의 제목에 ‘가치’나 ‘반가치’가 들어가 있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저자의 관심은 무엇보다 자본주의체제 내의 가치의 운동과 이 운동의 내재적 모순에 있다. 하비는 노동가치론을 비롯한 맑스의 수많은 주장과 통찰을 체계화하고, 이로부터 현실적 함의들을 이끌어내며, 나아가 이 함의들을 곤경에 처한 오늘날의 자본주의와 자본 분파들, 국가, 그리고 대중의 삶과 대면시키는 길을 택한다. 하비는 1장 ‘운동하는 가치로서의 자본의 시각화’에서 물의 순환을 나타내는 수문학적 순환(hydrological cycle)의 표상(representation)과 비교하여 ‘운동하는 가치’로서의 자본을 강조하면서, 책 전체에서 주장하는 자본의 작동방식과 그로 인한 위기의 불가피성을 압축적으로 설명한다. 하비가 시각화한 자본의 전반적 순환과정은 “(1) 자본이 생산에서 잉여가치 형태로 생산되는 가치증식의 과정. (2) 가치가 상품의 시장교환을 통해 화폐 형태로 다시 전화되는 실현의 과정. (3) 다양한 청구자들 사이의 가치와 잉여가치 분배의 과정. (4) 마지막으로, 청구자들 사이에 유통되는 화폐 일부를 포획하여, 이후 가치증식을 통과하는 자신의 길을 계속 가도록 그것을 화폐자본으로 다시 전화시키는 과정.”(46면)이다. 2장 ‘『자본』이라는 책’에서는 이같은 시각화에서 『자본』 1~3권이 어디에 위치하는지 간략히 설명한다. 1권은 절대적 잉여가치와 상대적 잉여가치, 그리고 가치증식의 과정에 집중하고, 2권은 가치실현에 초점을 맞추는 한편 상이한 자본 회전시간과 고정자본의 순환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살피며, 3권은 임금과 세금 등 다양한 청구자들 사이에서 가치와 잉여가치가 분배되는 주요 형태들을 다룬다. 자본가들은 가치와 잉여가치의 일부를 상업자본가에게는 이윤의 형태로, 부동산소유주에게는 지대의 형태로 건네준다. 가장 복잡하고 문제적인 범주는 은행과 금융기관에 주어지는 이자로, 산업자본가들은 투입물과 산출물의 생산에서 나타나는 회전시간의 차이, 고정자본의 순환 등의 이유로 은행업과 금융에 신세를 지게 되는데, 이들이 대량의 고정자본에 더 의존하게 되면서 더 정교한 신용제도와 금융제도에 대한 요구도 커진다. 한데 이들 은행과 금융기관은 화폐수익률이 높은 곳이면 어디에나 자신이 소유한 자산의 몇배라도 대출을 함으로써 맑스가 가공자본(fictitious capital)의 순환이라고 부르는 세계를 가져온다. 이처럼 금융제도는 “가치생산의 확대를 통해 부채를 상환하라는 자신의 명령을 통해 추가적 축적의 가장 집요한 추동력 중 하나가 된다. 광적인 이윤 추구는 부채상환의 광적인 필요로 보충된다.”(80~8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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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시대가 오고 있다, 한반도 체제혁신이 필요하다! 지난 2009년 『새로운 진보의 대안, 한반도경제』를 펴내며 “남북한 각각을 개혁할 뿐 아니라 남북한을 통합하며 세계와 공존하는 새로운 체제”로서 ‘한반도경제’를 주창한 이일영(한신대 교수, 경제학)이 10년 만에 그 후속편을 내놓는다. 저자는 2008년경부터 세계적 차원에서 매우 중대한 변화가 진행되었고 그러한 변화가 한반도 전체에 함께 작용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특히 사드 배치 이후 진행된 미중-남북-국내, 정치·군사-경제의 상호작용을 관찰하면서 그간의 체제적 시각을 좀더 명료하게 다듬어 자신의 한반도경제론의 방법과 과제를 정리했다. 한반도경제론의 특징은 여타의 사회과학적 이론 및 정책과 비교할 때 더욱 도드라진다. 기존 학계나 정책에서는 외국에서 수입된 분과학문별 방법론을 각각의 영역에서 적용하는 데 반해, 한반도경제론은 한반도를 둘러싼 다층의 맥락을 고려하고 개별 분과학문을 넘어선 전체 체제를 보는 시야를 구축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각론적 대응책을 넘어선 체제 전체를 혁신하는 현실적 전략을 모색한다. 또한 한반도경제론은 민족경제론과 분단체제론을 계승하여 토착의 현실에 작동하는 새로운 이론을 구성하려는 현실주의 진보담론이다. 새로운 한반도체제의 길 1부는 동향과 정세에 대해 더 가까이 밀착하면서 한반도경제론의 시각에서 체제혁신의 대안을 제시하고자 했다. 1부를 읽으면 책 전체를 관통하는 한반도경제론의 요지와 접근법을 좀더 쉽게 파악할 수 있다. 특히 제2장 「양국체제인가, 한반도체제인가」에서는 양국체제론과의 논쟁 속에서 그와 대립되는 한반도경제론의 핵심적 논지를 전개한다. 이어서 운동과 정부 차원에서 필요한 체제혁신의 관점을 제시한다. 제3장과 4장은 사회운동에 한반도경제의 총체적 인식과 체제혁신을 위한 리더십 전략이 필요함을 주장하며, 체제변동기에 정책 당국이 리더십을 발휘하려면 체제적 비전의 형성과 실행이 필요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발전모델: 동아시아 발전모델의 혁신 2부에서는 동아시아 발전모델의 대안으로서의 한반도경제 모델을 논의했다. 동아시아 발전모델은 기본적으로 일국적 모델이다. 그간의 한국경제는 동아시아 발전모델의 전형적 사례로 거론되어왔다. 그러나 동아시아 국가들의 발전은 각국 독자적인 경로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상호 연결과 영향 속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보아야 한다. 또한 일국적 접근법으로는 새로운 발전경로를 탐색하는 것이 어렵다고 할 수 있다. 제5장에서는 ‘동아시아 자본주의’라는 개념을 제기한다. 이는 일국 모델이 동아시아 지역 전체의 구조와 분업 속에서 성립된 자본주의체제임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한 용어이다. ‘동아시아-한반도’ 차원에서 문제를 보는 관점을 세우고, 1990년대 이후 형성된 ‘동아시아 자본주의’와 연결된 한국과 한반도 차원에서 자본주의의 핵심 문제를 파악하고자 한다. 제6장에서는 새로운 경제체제 모델로서의 ‘한반도경제’를 논한다. 여기에서는 세계체제-분단체제-국내체제를 일종의 네트워크구조로 파악한다. 한반도경제는 새롭고 다양한 네트워크조직·제도를 가져오는 체제혁신을 통해 형성되는 것이다. 이러한 시각에서 글로벌·동아시아 네트워크의 구조 속에서 남북한의 위치를 분석하고, 기존의 발전모델과 제도·조직 형태를 개선하는 동아시아 및 남북 경제협력 모델을 구상한다. 제7장에서는 ‘뉴노멀’이라는 개념을 통해 한국경제가 당면한 구조적 위기조건을 살펴본다. 동아시아 발전모델은 거시적 성과, 산업·기술체제, 글로벌 분업체제의 조건 등의 결합체다. 뉴노멀은 단순한 순환적 위기를 표현하는 용어가 아니며, 기존 발전모델 전체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게 하는 구조적 조건이다. 이에 대해 회복과 적응의 양면에서 전환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이 본서의 핵심 주장이다. 조직․체제: 네트워크경제․국가로의 전환 3부에서는 한반도경제를 구성하는 조직·체제의 원리를 네트워크를 핵심으로 하는 혼합적 조직 형태로 규정하고 이러한 원리가 확장된 네트워크경제·국가 개념을 제시한다. 한국에서 형성된 동아시아 발전모델은 국가와 재벌체제를 중심으로 하는 위계적 시스템과 이에 연결된 무한경쟁의 시장시스템의 덩어리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네트워크조직·제도의 영역을 확장하는 체제혁신을 통해 좀더 혼합적이고 수평적인 체제로 이행할 수 있다는 제안을 내놓는다. 제8장은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새 정치’에 대한 대중적 열망이 분출하던 시기에 구상된 네트워크국가에 대한 제안이다. 이 글에서는 한반도경제론의 인식 범위를 세계체제-분단체제-국내체제 등 세 개 층위의 차원으로 규정한다. 이에 따라 평화질서-남북연계-혁신국가라는 삼중의 과제를 설정하고, 이 과제를 수행하는 체제적 원리를 네트워크로 상정한다. 제9장은 한반도경제의 성장전략에 관한 것이다. 이 글은 이명박정부, 박근혜정부의 성장전략에 대한 비판적 논점을 담고 있지만, 문재인정부에서 채택한 소득주도형 또는 내수주도형 모델의 일국적 시각과도 차별되는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김대중정부 및 노무현정부의 동북아전략 및 균형발전전략을 비판적으로 재구성하여, 글로벌 지역으로서의 한반도경제와 지중해경제를 형성하는 ‘수평·분권-네트워크’의 성장전략을 제안한다. 제10장은 한반도경제의 시각에서 본 경제민주화 논의이다. 경제민주화 논의는 2012년 대선의 최대 쟁점이었지만, 박근혜정부 출범 이후 유야무야되고 말았다. 문재인정부는 공정경제 의제를 제시했지만, 그에 대한 명료한 정책 방향은 제시되지 못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경제민주화 개념을 발전모델과 경제체제 혁신이라는 차원에서 재정립하면서, ‘87년체제’의 혁신과 네트워크국가로의 전환이라는 과제를 제시한다. 제도․거버넌스: 혼합적 체제와 지역발전 4부에서는 한반도경제의 법적·제도적 체계와 거버넌스 혁신에 관한 논의를 다룬다. 한반도경제는 단순히 남북 경제통합을 지시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체제혁신을 통해 재구성되는 질서를 의미한다. 전통적으로 논의되어온 경제체제의 핵심 문제는 역시 자원 사용을 규율하는 재산권과 분쟁을 조정하는 법·제도와 거버넌스라고 할 수 있다. 한반도경제론이 지향하고 제안하는 질서는 사유와 국유, 개인과 국가 사이에 지역적·공동적·혼합적 소유와 운영이 확대되는 혼합경제체제이다. 제11장에서는 체제혁신의 주요한 요소이자 방편으로 커먼즈(commons)를 논의한다. 커먼즈는 시장과 국가 이외의 제3의 원리와 영역을 의미한다. 혁신된 체제로서의 한반도경제는 시장·국가와 중첩된 영역을 지니는 복합적 의미의 공공성을 지닌 공동체를 포함하며, 공유적 거버넌스와 공유적 재산권으로 구성된 커먼즈가 중시되는 체제이다. 커먼즈는 4차 산업혁명과 글로벌체제의 변동 속에서 산업·지역 발전에도 핵심적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제12장은 지역 차원에서 커먼즈와 생산력을 만들 수 있는 현실적 경로를 모색한다. 한국에서의 중앙과 지방 간 격차의 심각성 때문에 분권체제로의 전환은 시급히 필요한 방향이다. 문제는 대지역주의와 소지역주의 노선 갈등이다. 한반도경제론에서는 영국 사례에서 나타난 대지역주의와 소지역주의의 혼합 실험을 참고하면서, 사회적 공유자산 기반을 구축할 수 있는 효과적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제13장은 지역 차원에서 시도해볼 수 있는 산업·지역혁신 실험에 관하여 논의한다. 한반도 전체 차원에서 볼 때, 남한은 서울로, 북한은 평양으로 인적·물적 자원이 극도로 집중된 조건에 놓여 있다. 남한의 경우 특히 서남권의 조건이 열악하다. 지역 단위의 생존 및 발전이 가능한 정도의 공간 규모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고, 중앙과 지방 정부, 다양한 경제주체가 함께 참여하는 광역경제권 거버넌스의 형성을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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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양심, 끓는점에 다다른 세계를 말하다 촘스키가 진단하는 민주주의의 위기와 희망 20세기 독보적 업적을 남긴 언어학자이자 사회운동가, 미국을 대표하는 비판적 지식인, 반대세력으로부터 “20세기 미국에 닥친 두가지 재앙 중 하나”라 불리는 인물(나머지 하나는 일본의 진주만 공격이다), 쉼 없이 체제와 구조의 혁명적 변화를 구상하며 연대와 조직화만이 희망이라고 역설하는 세계적 지성 놈 촘스키. 올해 말로 만 91세를 맞는 그가 30여년간 그를 인터뷰해온 독립언론인 데이비드 바사미언과 2013년 6월부터 2017년 6월까지 진행한 12번의 인터뷰를 엮은 대담집이다. 12편의 인터뷰는 세계 도처의 현안들을 전방위적으로 다룬다. 점증하는 환경위기와 핵전쟁의 위협, 중동 지역을 넘어 아프리카·동남아까지 달구고 있는 이슬람 무장세력, 시민적 자유를 위협하는 국가의 감시와 통제, 민주주의의 후퇴와 복지국가 해체, 인공지능 군비경쟁에 이르기까지 전지구적인 이슈들을 진단한다. 이 복잡다단한 문제들을 분석하는 촘스키의 언어는 쉽고 정확하며, 시야는 크고 넓다. 일관된 세계관을 통한 그의 통찰은 명쾌하며, 모든 사안에 한결같이 비타협적으로 접근하는 자세는 글의 설득력을 높인다.『세계는 들끓는다: 전지구적으로 위협받는 민주주의를 위하여』는 세계적 석학의 식견을 통해 복잡한 국제적 이슈들을 비판적으로 독해하고 더 나은 세계를 위해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을 고민하는 독자들을 위한 필독서이다. 한편 촘스키와 긴 시간 호흡을 맞춰온 바사미언은 뜨거운 현안들을 군더더기 없이 짚는 것에 곁들여 ‘인간 촘스키’의 단면을 이끌어내는 질문들을 적절하게 배치했다. 모든 권위적인 것에 도전하는 타고난 반골기질, 청소년기부터 시작된 아나키즘에의 경도, 이어지는 청년기의 활동과 지적 여정, 활동가와 지식인으로서 갖고 있는 책무의식 등이 흥미롭게 펼쳐진다. 신자유주의의 시대 들끓는 모순을 폭로하다 후퇴하는 민주주의, 해체되는 복지국가 ‘오늘날 미국에는 하나의 정당밖에 없다. 그것은 기업당이다. 그 당의 한 정파가 민주당이라 불리는 온건 공화당이다. 현재의 공화당은 실은 정상적인 의회주의 정당 흉내도 못 내는 일개 정치조직일 뿐이다.’(21~22면) 촘스키의 이 신랄한 논평을 현실로서 입증한 것이 오바마에 이은 트럼프의 집권이다. “옴짝달싹 못하고 자본과 권력에 복무”하는 ‘정치조직’ 공화당이 대중의 표를 얻기 위해 동원한 것은 가장 극단적이고 비이성적일 것 같은 이들, 기독교 복음주의자와 순혈주의자 들이었다.(22면) 자본의 이익에 복무하면서 대중을 위하는 것처럼 포장하는 폭스TV 같은 거대 미디어기업의 선전활동과 텔레비전 광고가 이들 대중을 기만하는 데 앞장섰다.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되는 가운데 방치되어온 백인 남성 노동자계급의 분노는 트럼프의 당선으로 귀결되었다. 실제로 정책을 결정하고 집행하는 소득수준 상위 0.1%의 사람들은 이들에게 전혀 관심이 없다. 그들은 철저히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정책을 설계하고 집행한다. 이 집중된 사적 자본의 심사를 거치지 않으면 정계에 들어갈 수조차 없고, 수억 달러 기금을 모으지 못하면 퇴출된다. 촘스키는 이런 구조를 사실상의 ‘금권정치’라고 부르며 민주주의의 ‘결핍’이라는 표현으로도 모자라다고 강조한다.(28면) 이들 기득권층은 일상적인 통화감찰과 정보수집으로 감시를 체계화하고, 테러 위협을 과장해 대중이 국가의 통제를 수용하게 만들며, 에너지회사의 이권을 위해 기후변화를 부정하고, 학자금 지원과 의료보장을 폐지하고 식량배급표와 실업수당을 삭감한다. 촘스키가 보기에 이런 민주주의의 후퇴 뒤에는 신자유주의의 득세가 있다. 전후 유럽이 이룩한 최대 성과인 복지국가는 사민주의·중도주의 정당들이 신자유주의의 광풍 앞에서 무리한 요구를 수용하면서 무너지기 시작했다. 이것은 비단 복지혜택의 축소에 그치지 않고 그것을 가능케 한 사회적 합의, 민주주의의 쇠퇴를 가져왔다. 자본의 득세와 우경화, 이는 유럽이나 미국만의 일이 아니며 복지정책이나 민주적 제도 같은 특정 부문에만 걸친 것도 아니다. 신자유주의가 부추기는 우경화, 이는 자본주의를 수용한 세계 어디에서나 목도할 수 있는 현실임을 촘스키는 꼬집는다. 폭력의 굴레를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 중동지역 분쟁의 뿌리는 미국에 있다 촘스키는 오늘날을 미국의 우익세력이 정치적 이익을 취할 목적으로 자국민을 위협하는 ‘공포마케팅’의 시대라고 진단한다. 공포마케팅의 대표격이라 할 수 있는 테러에 대한 공포는 직접적으로 중동의 이슬람세력과 연결된다. 이 갈등의 뿌리는 어디에 있는가? 누가 씨앗을 뿌렸나? 촘스키는 ISIS를 낳은 것은 미국이며, 지하드의 테러를 아프가니스탄의 좁은 부족 범위에서 서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에 이르기까지 사실상 전세계로 확산시킨 것은 미국의 폭력적인 대외정책이라고 말한다. 2차대전 이후 미국을 앞세운 서구 제국주의 세력은 중동 지역에서 자신들의 유불리에 따라 상대를 골라 지원했다 배신하기를 되풀이했다. 미국은 그 최전방에 있었다. 정교한 계획에 따라 이루어진 정책들이 아니었다. “손에 쥔 게 망치밖에 없으면 모든 게 못처럼 보인다.” 미국의 손에 망치가 있었으며, “그걸로 뭔가를 후려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정말 잘하는 일”(179면)이었던 것이다. ‘도저히 정책이라 부르지 못할’ 이런 대외정책의 결과 명분 없는 전쟁, 무차별 폭격과 민간인 대량학살이 이른바 ‘실수로’ 자행되었다. 촘스키는 가장 직접적이고 첨예한 분쟁의 현장인 팔레스타인–이스라엘부터 시리아 지역의 참화, 최근 터키 에르도안 정권의 대대적인 쿠르드족 탄압 등에 이르기까지 중동지역 분쟁의 어제와 오늘을 간단명료하게 설명한다. 이 분쟁의 역사는 곧 미국 개입의 역사이기도 하다. 이것은 부시나 오바마, 트럼프 어느 한 정부나 정당의 입장이 아니다. 테러라는 가면 뒤에 숨어 미국을 움직인 것은 오로지 ‘석유’, 그 이권이었음을 촘스키는 분명히 지적한다. 그럼에도 촘스키는 폭력의 악순환을 멈추고 미국의 대외정책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은 있다고 전망한다. 테러로부터의 방어를 목 놓아 외치는 그 정부야말로 테러의 위협을 극대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안보국가에 반대하는 여론을 형성한다면, 미국의 파행적인 대외정책을 멈출 수 있다는 설명이다. 약탈적 자본주의가 부른 재앙, 환경위기 자기파괴를 향해 질주하는 인류를 향한 일갈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진정한 위기는 기후변화에 따른 환경위기다. 촘스키가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는 대로, 해수면 상승과 국토 침수에 따라 발생할 수천만의 방글라데시 기후난민, 공동 상수원인 히말라야 빙산 붕괴로 발발할 인도–파키스탄 분쟁, 그로 인한 핵전쟁과 전세계적 기아의 가능성은 기후변화가 한 나라나 어느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라 그야말로 인류 전체의 생존이 걸린 문제임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이에 가장 큰 책임을 진 나라 중 하나인 미국의 행태는 어떤가? 에너지회사와 다국적기업은 온갖 대중매체를 동원해 ‘기후변화란 없다, 있다 해도 사람 탓이 아니라 태양의 흑점 등등 때문이다’라는 궤변으로 사람들을 “완전한 비이성과 자기파괴로” 몰아가고 있다.(61~62면) 미국은 이들 기업의 이익을 앞세우기에 급급하다. 트럼프 정부는 더 많은 화석연료, 더 많은 석탄발전소를 요구하며, 환경 규제를 철폐하고,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개발도상국에 대한 지원을 중단하려 한다. 그야말로 다함께 “벼랑으로 질주하자”(221면)라고 말하는 중이다. 이에 맞서 최전선에 서 있는 것은 직접적으로 생존을 위협받는 토착집단들이다. 촘스키는 오로지 이윤만을 추구하는 약탈적 자본을 강도 높게 비판하며 자본주의–제국주의에 의해 무자비하게 수탈당한 현장의 참상과 함께 브라질과 베네수엘라의 야노아뫼족, 캐나다의 퍼스트 네이션즈, 콜롬비아의 깜뻬시노, 호주와 인도의 부족공동체 등이 약탈에 맞서 기울이는 노력 등을 소개한다. 오직 연대와 조직화만이 답이다 촘스키가 한국에서 발견한 희망의 빛 한 줄기 마지막 인터뷰가 이루어진 2017년 6월 20일은 촛불혁명으로 문재인 정부가 탄생한 직후이자 북핵위기가 한창 고조되던 시점이다. 미국이 “서울을 비롯한 남한 대부분을 초토화할”(271면) 수 있는 공격가능성을 시사한 가운데, 촘스키는 미국이 북한의 제안을 수용하면 위기를 해소할 수 있다는 “다른 선택지”(271면)를 제시한다. 북한은 자신들을 겨냥한 대규모 군사훈련을 중지하면 핵과 미사일 프로그램을 동결하겠다고 이미 제안했고, 이를 미국이 수용하면 된다는 것이다. 이런 수용은 더 광범위한 협상의 토대가 될 것이고, 이 협상을 통해 북핵 위기를 극적으로 감소시키고 나아가 종결할 가능성도 있다는 전망이었다. 그러나 미국은 이를 거부했다. 모든 종류의 도전에 대해 평화를 위한 외교적 노력보다는 힘을 선택해 제멋대로 행사해온 습관에 따른 것이다. 촘스키는 “2차대전 이래 곪아터질 지경이 된” 한국 문제에 있어 2017년 대선에서 희망의 빛을 발견하는데, 실제로 문재인 정부가 구사한 외교적 방안과 화해 노력이 이 위기를 극적으로 가라앉히고 협상의 물꼬를 텄음은 모두가 잘 아는 대로다. 세계를 해석하는 촘스키의 일관성과 통찰력은 평생 굽힘 없이 고수해온 진보적 세계관에서 비롯한다. 그 세계관을 통해 그는 세계 곳곳에서 지금 벌어지는 문제를 보다 큰 시야에서 꿰뚫어 조망한다. 그에게 진짜 변화는 그것을 만들려는 사람들로부터, 그들의 연대와 상호지원으로부터 시작된다. 책의 곳곳에서 그는 진짜로 변화를 만들어보려는 사람들의 집단적 참여, 연대와 공동체, 조직화의 중요성을 거듭 말한다. 이는 그에게만 진리가 아니며 과거에만 그랬던 것도 아니다. 우리 모두에게, 앞으로 일굴 진짜 변화는 그것을 만들려는 사람들과 그 사람들 간의 연대로부터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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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홍준의 ‘중국 답사기’ 대(大) 서사가 시작된다 중국 답사 일번지, 돈황과 실크로드 누적 판매부수 400만부를 넘긴 독보적 베스트셀러 시리즈 『나의 문화유산답사기』가 드디어 중국 땅을 밟는다. 넓은 땅과 다양한 사람들이 어우러져 빚어낸 중국의 방대한 문화유산을 찾아 경쾌한 답삿길에 나섰다. 첫발을 뗀 곳은 저자가 오랫동안 답사의 로망으로 간직한 돈황과 하서주랑으로, 이번에 출간되는 1·2권에서 만날 수 있다. 국내편의 ‘해남·강진’이나 일본편의 ‘규슈’가 의외의 답사처였던 것처럼, 이번에도 저자는 예상 밖의 선택으로 독자의 흥미를 끈다. 사막과 오아시스, 그 속에 숨겨진 보물 같은 불교 유적과 역사의 현장을 만나는 돈황·실크로드 여정은 그야말로 ‘명불허전’이다. 그 옛날 중국문명이 태동한 곳일 뿐 아니라 여러 민족들이 서로 투쟁하면서 문명의 교차로 역할을 해온 실크로드의 역사가 ‘답사기’ 중국편에서 생생하게 재현된다. 저자 유홍준 교수는 이미 일본편(전4권)을 통해 유홍준표 해외 문화유산답사의 묘미를 선사한 바 있지만, 이번 중국 답사기에서 특히 그 진가를 드러낸다. 탁월한 안목과 절묘한 입담, 답사를 향한 열정으로 독자의 사랑을 받아온 ‘답사기’가 중국의 남다른 문화유산을 만나 더욱 흥미롭고 풍부한 이야기를 담아냈다. 한반도의 약 40배, 남한의 약 100배에 가까운 면적에 남북한의 약 20배가 되는 인구를 품은 중국의 문화는 우선 그 스케일로 우리를 압도한다. 긴 세월 우리와 밀접하게 영향을 주고받아 우리 문화유산을 보는 큰 거울이 되기도 한다. 볼거리가 많은 만큼 답사 계획도 남다르다. 중국의 8대 고도(古都)를 중심으로 중국문화의 핵심을 살펴보는 경로는 물론이고, 미술사·사상사·문학사의 주요한 명소를 찾는 답사도 계획 중이다. 고대 고구려·발해와 조선시대 연행 사신의 길, 대한민국 임시정부 등 한·중 문화교류사의 현장도 여기서 빠질 수 없다. 돈황·실크로드는 이 모든 대장정의 시작이다. 중국은 켜켜이 쌓인 문화적 자신감으로 오늘날 대국으로 굴기(屈起)하고 있다. 이미 세계 제2의 경제대국으로 부상하였고, 외교에서도 왕년의 그 실력이 나타나고 있다. 최근에는 한류 등을 통해 문화적으로도 우리와 가까워졌고, 국제정치적으로는 한반도 통일의 필수적인 파트너다. 이제 중국을 아는 일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되어가고 있다. ‘답사기’ 중국편과 함께하는 문화유산답사를 통해 우리는 중국의 진면목을 발견하는 동시에 동아시아 문화를 주도해나가는 동반자로서의 중국의 모습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문명의 통로 하서주랑을 따라 돈황까지 중국편 1권 “명사산 명불허전(鳴不虛傳)”은 중국 고대국가들의 본거지이자 『사기』와 『삼국지』의 무대인 관중평원에서 시작해 하서주랑을 따라가며 돈황 명사산에 이르는 2천 킬로미터의 여정을 담았다. 실크로드 전체를 6천 킬로미터 정도로 추정할 때 그 동쪽 3분의 1에 달하는 대장정으로, 그야말로 대륙의 스케일을 느끼는 답삿길이다. 불교가 이 길을 통해 서역에서 중국으로 들어왔고, 한족과 유목민족들의 투쟁이 이 길을 중심으로 벌어졌다. 관중평원(關中平原)은 섬서성 서안(西安)을 중심으로 사방이 험준한 산맥과 네 개의 관문으로 둘러싸인 분지 지형이다. 넓이도 넓고 토양이 비옥할 뿐 아니라 천연의 요새를 이루고 있어 일찍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하여 주나라·진나라·한나라 등 중국을 통일한 나라들을 포함해 여러 나라가 이곳에 도읍을 정하는 등 오랫동안 중국 역사의 중심 역할을 해왔다. 오랜 역사만큼이나 문화유산도 풍부해서 진시황과 한무제, 이릉과 사마천, 이백과 두보가 남긴 유적과 무덤, 문학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중국 4대 석굴사원으로 꼽히는 천수 인근의 맥적산석굴은 그 정교한 모습을 보는 이에게 깊은 감동을 선사한다. 대륙을 연결하는 회랑처럼 길게 뻗어 있는 협곡이 마치 ‘달리는 회랑’ 같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하서주랑(河西走廊)은 감숙성의 성도인 난주(蘭州)에서 무위(武威), 장액(張掖), 주천(酒泉)을 거쳐 돈황에 이르기까지 장장 900킬로미터에 달한다. 이곳은 한나라 무제가 흉노를 몰아내고 하서사군을 설치한 곳으로, 같은 시기 한사군이 설치된 우리 역사를 떠올리게도 하는 곳이다. 기이한 황하석림 속에 화려한 불상들이 어우러져 절경을 이루는 난주의 병령사석굴을 만나고, 유장하게 흐르는 황하의 모습을 그 어디에서보다 실감나게 느낄 수 있다. 오래전 이곳에서 중국과 대립하다 사라진 것으로 알려진 흉노는 곳곳에 세워져 있는 조각상과 잔편으로 남아 있는 유물로만 그 흔적을 추정할 수 있어 비애를 자아낸다. 만리장성의 서쪽 끝 가욕관을 지나면 드디어 돈황에 도착한다. 많은 사람들이 ‘답사의 로망’으로 꼽는 오아시스 도시 돈황은 석굴사원들과 그림 같은 사막 풍광을 보러 오는 답사객들로 붐비는 관광도시가 되었다. 특히 중국 최고의 석굴사원 중 하나인 막고굴은 예부터 돈황이 실크로드 교역의 중심지가 될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을 뿐 아니라, 만리장성 등과 함께 중국에서 최초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지정된 저명한 불교 유적지다. 수준 높은 불상과 불화가 남아 있고 이 지역의 역사와 생활상을 알 수 있는 그림들도 볼 수 있어 귀중한 연구자료가 된다. 한편 명사산과 월아천은 ‘로망’에 어울리는 낭만적인 감정을 일으키는 자연 경관으로 요즘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높은 곳이다. 이곳에 발을 들이면 그 옛날 사막을 가로질러 교역한 대상들이나 구도를 위해 떠난 승려들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듯하다. 화려한 중국 문화유산을 찾아 떠나는 장쾌한 첫걸음! 저자는 중국 답사기를 시작하는 서문에서 “중국은 우리와 함께 동아시아 문화를 주도해나가는 동반자일 뿐 아니라 여전히 우리 민족의 운명에 깊이 관여하고 있는 막강한 이웃이다. 상황이 이럴진대 우리는 중국을 더욱 깊이 알고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나에게 중국은 언제나 즐거운 여행의 놀이터이자 역사와 문화의 학습장이면서 나아가서 오늘날 국제사회 속에서 우리의 좌표를 생각게 하는 세계사의 무대였다”라고 집필의 이유를 밝히고 있다. 중국 문화유산을 즐겁고 깊이있게 감상하는 한편으로 우리 문화의 연관과 비교를 통해 우리 것을 더욱 잘 알게 되는 경험을 하자는 제안이다. 또한 ‘답사기’ 중국편이 출간되면서 우리는 드디어 한·중·일 문화유산을 하나의 큰 테이블에 놓고 비교해볼 수 있게 되었다. 그간 부질없는 열등감이나 단순한 애국적 감정으로 이웃나라의 문화유산을 평가해왔다면, 유홍준의 답사기를 통해 비로소 진정으로 문화유산을 감상하는 탁 트인 안목을 탑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알게 되는 우리 문화의 진정한 가치야말로 세계에 자랑할 만한 것임을 새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가보지 못한 곳은 동경으로 들끓게 하고, 이미 가본 곳은 새로운 관점으로 다시 접하게 만드는 유홍준의 중국 이야기. ‘답사기’ 중국편의 장쾌한 여정은 앞으로도 독자를 찾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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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홍준의 ‘중국 답사기’ 대(大) 서사가 시작된다 중국 답사 일번지, 돈황과 실크로드 누적 판매부수 400만부를 넘긴 독보적 베스트셀러 시리즈 『나의 문화유산답사기』가 드디어 중국 땅을 밟는다. 넓은 땅과 다양한 사람들이 어우러져 빚어낸 중국의 방대한 문화유산을 찾아 경쾌한 답삿길에 나섰다. 첫발을 뗀 곳은 저자가 오랫동안 답사의 로망으로 간직한 돈황과 하서주랑으로, 이번에 출간되는 1·2권에서 만날 수 있다. 국내편의 ‘해남·강진’이나 일본편의 ‘규슈’가 의외의 답사처였던 것처럼, 이번에도 저자는 예상 밖의 선택으로 독자의 흥미를 끈다. 사막과 오아시스, 그 속에 숨겨진 보물 같은 불교 유적과 역사의 현장을 만나는 돈황·실크로드 여정은 그야말로 ‘명불허전’이다. 그 옛날 중국문명이 태동한 곳일 뿐 아니라 여러 민족들이 서로 투쟁하면서 문명의 교차로 역할을 해온 실크로드의 역사가 ‘답사기’ 중국편에서 생생하게 재현된다. 저자 유홍준 교수는 이미 일본편(전4권)을 통해 유홍준표 해외 문화유산답사의 묘미를 선사한 바 있지만, 이번 중국 답사기에서 특히 그 진가를 드러낸다. 탁월한 안목과 절묘한 입담, 답사를 향한 열정으로 독자의 사랑을 받아온 ‘답사기’가 중국의 남다른 문화유산을 만나 더욱 흥미롭고 풍부한 이야기를 담아냈다. 한반도의 약 40배, 남한의 약 100배에 가까운 면적에 남북한의 약 20배가 되는 인구를 품은 중국의 문화는 우선 그 스케일로 우리를 압도한다. 긴 세월 우리와 밀접하게 영향을 주고받아 우리 문화유산을 보는 큰 거울이 되기도 한다. 볼거리가 많은 만큼 답사 계획도 남다르다. 중국의 8대 고도(古都)를 중심으로 중국문화의 핵심을 살펴보는 경로는 물론이고, 미술사·사상사·문학사의 주요한 명소를 찾는 답사도 계획 중이다. 고대 고구려·발해와 조선시대 연행 사신의 길, 대한민국 임시정부 등 한·중 문화교류사의 현장도 여기서 빠질 수 없다. 돈황·실크로드는 이 모든 대장정의 시작이다. 중국은 켜켜이 쌓인 문화적 자신감으로 오늘날 대국으로 굴기(屈起)하고 있다. 이미 세계 제2의 경제대국으로 부상하였고, 외교에서도 왕년의 그 실력이 나타나고 있다. 최근에는 한류 등을 통해 문화적으로도 우리와 가까워졌고, 국제정치적으로는 한반도 통일의 필수적인 파트너다. 이제 중국을 아는 일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되어가고 있다. ‘답사기’ 중국편과 함께하는 문화유산답사를 통해 우리는 중국의 진면목을 발견하는 동시에 동아시아 문화를 주도해나가는 동반자로서의 중국의 모습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막고굴의 역사와 실크로드의 관문들 중국편 2권 “오아시스 도시의 숙명”은 불교미술의 보고(寶庫) 막고굴 곳곳을 살피는 한편, 그곳에서 발견된 돈황문서의 다난했던 역사를 담았다. 이어서 본격적인 실크로드 답사를 기약하며 옥문관과 양관 등 실크로드의 관문들을 탐사한다. 여기서 저자의 오랜 답사 로망이 이루어졌다. 돈황 명사산 자락에 자리잡은 막고굴에는 4세기 이래로 수백년 동안 석굴이 열려 지금까지 492개 굴이 확인되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값하는 세련된 관리 시스템을 통과해 입구에 다다르면 1.6킬로미터에 달하는 절벽에 굴착된 수백개의 석굴이 장관을 이루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중국미술사와 불교미술사에서 중요하게 언급되는 각종 불상·조각상들과 여러 가지 도상을 구현한 벽화들이 바로 이 석굴 속에 들어 있다. 남북조시대 불상의 맑고 앳된 인상(수골청상)과 당나라 불상의 세련되고 사실적인 모습, 부처님의 전생을 포함한 심오하고도 흥미로운 불교 도상들을 재현해놓은 벽화들이 관람객을 사로잡는다. 돈황문서가 발견된 제17굴 장경동과 천상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제45굴의 보살상은 막고굴 답사의 백미다. 막고굴은 한동안 잊혔다가 20세기 들어 다시 크게 주목받았다. 돈황문서 3만여 점이 장경동에서 발견된 것이다. ‘세기의 대발견’이라고 할 만큼 학술적으로 가치 있는 문서들이었다. 그러나 돈황문서가 발견되고 전 세계로 흩어지는 과정에는 학문적 열정과 제국주의적 침략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중국에서는 이 시기에 돈황 유물을 가져간 사람들을 두고 보물을 도둑질해갔다며 도보자(盜寶者)라고 부르고 있다. 영국의 오렐 스타인, 프랑스의 폴 펠리오, 일본의 오타니 고즈이, 미국의 랭던 워너 등 주요한 인물 외에도 여러 ‘도보자’들이 돈황문서와 유물을 가져갔다. 우리로서는 제국주의 침략을 경험한 동병상련을 느끼면서도, 일본을 통해 들어온 돈황문서와 유물이 우리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어 무관하지만은 않은 문제다. 돈황문서와 막고굴의 존재가 국제적으로 알려지면서 ‘도보자’들이 찾아오는 한편에는 ‘수호자’들도 있었다. 막고굴의 예술적 가치에 주목한 저명한 화가 장대천, 유학을 멈추고 귀국해 평생을 막고굴 보호와 연구에 헌신한 상서홍, 막고굴 벽화의 아름다움에 매료된 조선족 화가 한락연 등 중국 국내의 뜻있는 예술가들이 더 이상 막고굴이 훼손되지 않도록 수호해왔고, 오늘날 돈황연구원이 그 뜻을 이어받아 세계적인 ‘돈황학’ 연구에 일조하고 있다. 돈황 인근에는 막고굴 외에도 가볼 만한 답사처가 많다. 과주(안서)에 있는 유림굴은 여타 석굴들 못지않은 수준을 보이면서도 탕구트계의 나라 서하가 남긴 불교예술을 살펴볼 수 있는 곳이다. 돈황 시내에서 각각 서남쪽, 서북쪽에 위치한 양관과 옥문관은 예부터 서역으로 열린 실크로드의 관문이었다. 『서유기』의 주인공들이 불경을 찾기 위해 떠났다는 서역이 바로 이 너머다. 그 옛날 낙타와 대상, 승려들이 걷고 또 걸었던 곳, ‘돌아올 수 없는 곳’이라고 불렸던 타클라마칸사막이 여기서 시작되는 것이다. 화려한 중국 문화유산을 찾아 떠나는 장쾌한 첫걸음! 저자는 중국 답사기를 시작하는 서문에서 “중국은 우리와 함께 동아시아 문화를 주도해나가는 동반자일 뿐 아니라 여전히 우리 민족의 운명에 깊이 관여하고 있는 막강한 이웃이다. 상황이 이럴진대 우리는 중국을 더욱 깊이 알고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나에게 중국은 언제나 즐거운 여행의 놀이터이자 역사와 문화의 학습장이면서 나아가서 오늘날 국제사회 속에서 우리의 좌표를 생각게 하는 세계사의 무대였다”라고 집필의 이유를 밝히고 있다. 중국 문화유산을 즐겁고 깊이있게 감상하는 한편으로 우리 문화의 연관과 비교를 통해 우리 것을 더욱 잘 알게 되는 경험을 하자는 제안이다. 또한 ‘답사기’ 중국편이 출간되면서 우리는 드디어 한·중·일 문화유산을 하나의 큰 테이블에 놓고 비교해볼 수 있게 되었다. 그간 부질없는 열등감이나 단순한 애국적 감정으로 이웃나라의 문화유산을 평가해왔다면, 유홍준의 답사기를 통해 비로소 진정으로 문화유산을 감상하는 탁 트인 안목을 탑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알게 되는 우리 문화의 진정한 가치야말로 세계에 자랑할 만한 것임을 새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가보지 못한 곳은 동경으로 들끓게 하고, 이미 가본 곳은 새로운 관점으로 다시 접하게 만드는 유홍준의 중국 이야기. ‘답사기’ 중국편의 장쾌한 여정은 앞으로도 독자를 찾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