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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과 2019년의 대화를 통해 조명한 3·1 백주년 2019년 올 한해는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정부를 비롯한 다양한 주체의 기념활동이 잇따랐으며, 관련 출판물의 성과도 풍성했다. 그러나 3·1에서 촛불혁명으로 이어지는 긴 시간대를 꿰뚫는 구조적이고 역사적인 안목을 제시하려는 노력은 상대적으로 미흡했던바, 이 책은 일찍이 ‘촛불혁명’론을 제기한 담론의 당사자로서 그 나름으로 3·1을 새롭게 조명한 계간 『창작과비평』의 올해 봄호 특집과 여름호의 3·1 관련 글들을 바탕으로 논의를 더 실차게 갈무리하기 위해 1919년과 2019년의 대화를 본격적으로 시도한 것이다. 이를 위해 역사학을 비롯해 한문학, 정치학, 사회학, 인류학 등 국내외에서 다양한 분야의 학자들이 참여하여 분과학문 횡단적 작업의 결실을 맺었다. 촛불의 눈으로 되돌아본 3·1 백낙청은 서장이라기보다 총론에 가까운 「3·1과 한반도식 나라만들기」에서 3·1 자체보다 3·1이 꿈꾸었던 국가건설의 과제에 초점을 두어 성찰하면서, 한반도 근대의 나라만들기는 단계적으로 진행되어왔고 아직도 미완의 과제로 남아 있다고 본다. 그는 3·1이 한반도에서 주체적 근대적응의 출발점이라고 보는데, 이는 3·1이 근대극복 노력의 본격적 출발이기도 했다는 명제를 동반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개항 이전부터 준비해온 한반도의 이중과제 수행이 이때 드디어 본격화되는바, 근대적응은 근대극복 노력을 포함하는 이중과제의 일부로서만 장기적 성공을 기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특히 새로이 쓴 덧글을 통해,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로 촉발된 최근의 한·일 경제전쟁에 대한 정세 분석까지 시도하며 치열한 현장감각을 보여준다. 그는 촛불혁명에 반대하는 한·일 수구세력의 연대행동이라는 전에 없는 현상이 지금 나타난 것을 남북화해의 진행과 연결시켜 구명하면서, (친일행위를 한 인물들과 그 인적 청산에 초점이 맞춰지는) ‘친일잔재’가 아니라 (‘친일파’의 국한을 넘는) ‘일제잔재’가 분단체제에서 어떻게 진화·온존해왔으며 분단체제의 재생산에 어떻게 기여하고 있는지를 정확히 인식하고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시야를 동아시아 차원으로 넓힌 문제의식에 바탕을 둔 임형택은 「3·1운동, 한국 근현대에서 다시 묻다」에서 3·1의 정치적 지향이 ‘민국혁명’임을 논하는 한편, 3·1 이후 좌우 통합을 위한 사상운동에 각별히 역점을 두었던 사실에 주목해 홍명희와 조소앙의 사상을 조명하면서, 중도주의, 즉 절충론이 아닌 진정한 ‘바른 길’의 흐름을 부각한다. 그는 오늘의 촛불혁명이 21세기를 열어가기 위해서는 “한국 근현대가 3·1에 진 채무를 갚는 데서 출발할 필요가 있다”(72면)고 강조한다. 브루스 커밍스의 「독특한 식민지, 한국」은 세계체제 내에서 식민지 조선을 반주변부로 일본을 중심부로 위치짓고 논의를 전개함으로써 한반도의 문제를 세계사적 맥락에서 인식하게 돕고 있다. 커밍스는 일본이 한국을 식민화해서 과연 무엇을 얻었는가라는 의미심장한 질문을 제기하며 20세기가 진행될수록 “일본은 불을 향해 달려드는 나방처럼 재앙으로 이끌려갔다”고 평가하면서, “세계의 다른 나라들과 원만하게 살 수 있는 능력에 대해 남아 있는 우려를 아직 불식하지” 못한 일본이 “태양을 향해 날아가는 이카로스”(86면)라고 우려한다. 도진순은 「시간(Kairos)과 기억(Memory)」을 통해 정치적 쟁점인 건국론의 역사적 맥락을 짚으면서, 이승만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듯이 1948년 건국론을 주장한 것이 아니라 1919년 건국론을 주장했으며, 그 장막 뒤에는 한성임시정부의 집정관으로 추대된 자신에 대한 선양이 자리하고 있었다고 밝힌다. 도진순은 한반도 전체로 시선을 확대해보면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 대한민국의 건국, 이 세가지는 각각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지적한다. 「연동하는 동아시아와 3·1운동」에서 백영서는 ‘연동하는 동아시아’와 ‘세계사적 동시성’의 관점에서 3·1을 재조명하는데, 이를 위해 중국의 반일 민족운동인 5·4를 발견적 장치로 삼아 반식민지와 식민지라는 차이가 갖는 의미를 염두에 두고 3·1을 재해석한다. 또한 3·1에 나타난 민의 결집 경험을 주체, 매체, 목표라는 측면에서 분석한 백영서는 3·1이 근대성의 지표인 국민국가의 건설이라는 정치제도화의 기준에서 볼 때는 단기적인 성취에 실패한 것을 부인하기는 어렵지만, 사회 전체의 대대적인 전환을 혁명으로 볼 때 그 결과가 ‘점진적·누적적 성취’로 드러난다는 점에서 3·1이 ‘계속 학습되는 혁명’ 또는 ‘현재 진행 중인 혁명’이라는 주목할 만한 주장을 펼친다. 정혜정의 「3·1운동과 국가문명의 ‘교(敎)’」는 동학운동을 추동한 동학 및 (동학을 잇는) 천도교와 3·1의 연결고리를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서양의 종교 개념과 달리 동학이 표명한 교(敎)는 종교와 교육을 아우르는 동시에 정치적 의미를 띠며 또한 국가의 이상을 담지한다고 보는 정혜정은 손병희에 대한 재평가와 조소앙의 종교사상에 대한 분석을 통해 동학과 3·1의 연속성을 환기하면서, 특히 여성의 참정권을 규정한 ‘대한민국임시헌장’의 선진성의 배경에 동학과 증산도의 남녀평등사상이 있음을 보여준다. 이남주는 「3·1운동, 촛불혁명 그리고 ‘진리사건’」에서 ‘민주공화’에 입각한 국민주권이란 측면에서 3·1운동과 촛불혁명의 연관을 고찰하면서, 촛불혁명 이후 진행되고 있는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평화와 협력’의 한반도체제로의 전환을 이끌어낼지를 점검한다. 그는 바디우의 ‘진리사건’ 개념을 참조하여 3·1운동부터 촛불혁명까지의 과정을 분석하면서, 시민항쟁과 같은 저항운동을 통해 민주공화의 해방적 지향을 실현하기 위한 흐름이 지속되었으며, 그 속에서 근대적응과 근대극복이라는 이중과제의 긴장도 유지되어왔다고 파악한다. 또한 촛불혁명으로 전환이 이루어진 남북관계에 시민이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시민참여형’ 통일의 조건을 형성해야 하며, 이를 위해 선거법이 개정되어야 한반도체제로의 전환을 이룰 정치연합을 구축하는 길이 열릴 수 있다고 강조한다. 3·1 이후 누적되어온 운동과 사상 이지원은 「3·1운동, 젠더, 평화」에서 평화와 인권의 관점에서 3·1에 참여한 여성의 주체적 경험을 집중 분석한다. 그는 여성들이 자신들만의 사회적 네트워크를 가동하여 3·1운동을 조직하고 3·1운동 현장의 폭력적 진압과 구금 이후의 성적 폭력에 맞섰으며, 이를 통해 제국주의 지배와 남성 중심의 규범에 저항하는 민족적·젠더적 해방의 통쾌함을 맛봄으로써 사적 경험이 공적 영역으로 전화되는 체험을 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여성이 인권의 주체로서 식민주의 폭력에 대한 저항만이 아니라 가부장적 규범을 넘어서는 다양한 정체성을 발휘함을 밝히는 이지원의 연구는, 우리 근대가 단순히 적응이나 아니면 극복의 시각에서만 파악될 수 없는 복합적 과정임을 명료하게 보여준다. 홍석률은 「4월혁명, 민주항쟁의 가능성과 현실성」에서 한국전쟁 휴전 7년 만에 일어난 4·19의 전개과정을 입체적으로 분석하면서, 4·19를 비롯해 과거 거듭되었던 민주항쟁이, 엄청난 열정과 에너지, 잠재적 가능성을 보여주었음에도 번번이 중간에서 좌절되거나 아주 제한적인 성취만을 거둔 것은 냉전·분단 상황이라는 한국사회의 기본적인 구조가 작용한 결과라고 주장한다. 촛불항쟁의 성과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특히 특정 집단이 항쟁의 성과를 전유하고 자신이 원하는 바를 위해 다른 요구들을 무시하거나 부차화하는 것을 피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신기욱의 「5·18 정신의 보편화를 위하여」는 1980년대와 1990년대 한국의 정치적·사회적 지형이 형성되는 데 가장 중요한 영향을 미친 5·18민주화운동을 개관한다. 신기욱은 5·18민주화운동이 1980년대 미국의 정책을 전세계적으로 제한된 형식의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쪽으로 바뀌게 하는 데 기여했음을 강조하는 한편, 5·18 정신을 현재화하고 보편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함을 일깨운다. 「6월항쟁과 87년체제」에서 김종엽은 87년체제를 사회세력 간의 경쟁의 관점 및 분단체제와의 관련 속에서 해명하고자 한다. 즉 그에 따르면 87년체제와 분단체제의 대립과 갈등은 표면헌법과 이면헌법의 대립으로 나타나며, 양자의 대립은 정치체제에서 표면헌법을 강제하려는 민주파와 이면헌법을 진정한 헌법으로 이해하는 보수파의 대립으로 표현된다는 것이다. 그는 6월항쟁이 수립한 87년체제와 그것의 작동원리를 담은 헌정체제는 30여년간의 ‘점진적이고 누적적인 성취’가 결코 작지 않지만, 헌정체제의 관점에서 보면 촛불혁명의 성과가 선거법 개정으로 집약되는 만큼 당면 과제인 선거법 개정이 이루어진다면 87년체제 극복 작업도 의미있는 성과를 거두며 새로운 단계로 들어설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유재건은 「한반도 분단체제의 독특성과 6·15시대」에서 분단 후 최초로 남북 정상이 화해와 교류를 통한 점진적이고 단계적인 통일에 합의했다는 점에서 획기적 사건인 2000년 6·15남북공동선언 이후의 시기를 현존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국지적 양상인 한반도 분단체제가 서서히 해체되는 과정으로 파악한다. 그는 이러한 분단체제의 극복이 동아시아 질서의 변화와 함께 세계체제 전체에 의미심장한 변화를 가져올 것인바, 촛불혁명으로 마련된 국내 개혁의 동력이 뒷받침된다면 6·15공동선언이 제시한 점진적이고 단계적인 남북연합의 길이 충분히 열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미완의, 혹은 진행 중인 혁명」에서 정헌목은 비폭력 원칙과 도심 광장에서 열린 집회의 가시성을 중심으로 2016~17년의 촛불집회를 고찰하면서, 촛불집회를 통해 부패한 정권을 몰락시킨 집단적 경험과, 수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문제해결에 나서 변화를 끌어냈다는 역사적 사실이 부여하는 자신감에 주목한다. 그는 그래서 촛불집회가 마무리된 후 집회 기간의 동력을 바탕으로 한국사회에서 실질적인 변화를 끌어내기 위한 움직임이 여러 방면에서 나타나는 가운데, “여성들이 몸을 부딪치며 스스로 자신을 지키고 싶은 열망”도 나타날 수 있었다고 본다. 그리고 그는 비폭력 대 폭력/정상 대 비정상이라는 이항대립 구조 아래 선별적으로 결합된 ‘비폭력-정상’의 프레임은 그 바깥의 존재들에 대해 지속적인 차별 기제로 작동할 수 있음을 지적하면서 “촛불을 통해 ‘정상화’된 국민국가 대한민국이 포용 가능한 구성원은 누구이며, 어디까지였을까”(370면)라는 날카로운 질문을 우리에게 던진다. 그리하여 그는 이상적 대의를 위해 모인 사람들의 현실적 조건은 복합적이었던 만큼 극우 포퓰리즘 정치세력이 세계 곳곳에서 부상하는 지금 한국사회에 필요한 것은 대안에 대한 상상력을 제약하는 문제틀을 넘어서는, 새로운 공동성에 대한 모색이라고 제안한다. 점진적이고 누적적인 성취의 변혁 과정 이 책의 논지를 따라 100년의 우리 역사를 다시 볼 때 “점진적이고 누적적인 성취” (incremental achievement)의 변혁 과정이라는 큰 흐름이 확연해지지만, 그 100년의 과정은 단선적 발전이 아니라 때로는 심각한 중단이나 퇴보도 겪는 굴곡의 역사이기도 하다. 이 책은 이런 관점에서 3·1 이래 점진적으로 누적되어 우리 사회가 촛불혁명이라는 중요한 국면에 도달하는 데 작용해왔고 미래사에 영향을 미칠 우리의 주요 사상사적·운동사적 자원을 망라해 차분히 점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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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시대가 오고 있다, 한반도 체제혁신이 필요하다! 지난 2009년 『새로운 진보의 대안, 한반도경제』를 펴내며 “남북한 각각을 개혁할 뿐 아니라 남북한을 통합하며 세계와 공존하는 새로운 체제”로서 ‘한반도경제’를 주창한 이일영(한신대 교수, 경제학)이 10년 만에 그 후속편을 내놓는다. 저자는 2008년경부터 세계적 차원에서 매우 중대한 변화가 진행되었고 그러한 변화가 한반도 전체에 함께 작용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특히 사드 배치 이후 진행된 미중-남북-국내, 정치·군사-경제의 상호작용을 관찰하면서 그간의 체제적 시각을 좀더 명료하게 다듬어 자신의 한반도경제론의 방법과 과제를 정리했다. 한반도경제론의 특징은 여타의 사회과학적 이론 및 정책과 비교할 때 더욱 도드라진다. 기존 학계나 정책에서는 외국에서 수입된 분과학문별 방법론을 각각의 영역에서 적용하는 데 반해, 한반도경제론은 한반도를 둘러싼 다층의 맥락을 고려하고 개별 분과학문을 넘어선 전체 체제를 보는 시야를 구축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각론적 대응책을 넘어선 체제 전체를 혁신하는 현실적 전략을 모색한다. 또한 한반도경제론은 민족경제론과 분단체제론을 계승하여 토착의 현실에 작동하는 새로운 이론을 구성하려는 현실주의 진보담론이다. 새로운 한반도체제의 길 1부는 동향과 정세에 대해 더 가까이 밀착하면서 한반도경제론의 시각에서 체제혁신의 대안을 제시하고자 했다. 1부를 읽으면 책 전체를 관통하는 한반도경제론의 요지와 접근법을 좀더 쉽게 파악할 수 있다. 특히 제2장 「양국체제인가, 한반도체제인가」에서는 양국체제론과의 논쟁 속에서 그와 대립되는 한반도경제론의 핵심적 논지를 전개한다. 이어서 운동과 정부 차원에서 필요한 체제혁신의 관점을 제시한다. 제3장과 4장은 사회운동에 한반도경제의 총체적 인식과 체제혁신을 위한 리더십 전략이 필요함을 주장하며, 체제변동기에 정책 당국이 리더십을 발휘하려면 체제적 비전의 형성과 실행이 필요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발전모델: 동아시아 발전모델의 혁신 2부에서는 동아시아 발전모델의 대안으로서의 한반도경제 모델을 논의했다. 동아시아 발전모델은 기본적으로 일국적 모델이다. 그간의 한국경제는 동아시아 발전모델의 전형적 사례로 거론되어왔다. 그러나 동아시아 국가들의 발전은 각국 독자적인 경로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상호 연결과 영향 속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보아야 한다. 또한 일국적 접근법으로는 새로운 발전경로를 탐색하는 것이 어렵다고 할 수 있다. 제5장에서는 ‘동아시아 자본주의’라는 개념을 제기한다. 이는 일국 모델이 동아시아 지역 전체의 구조와 분업 속에서 성립된 자본주의체제임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한 용어이다. ‘동아시아-한반도’ 차원에서 문제를 보는 관점을 세우고, 1990년대 이후 형성된 ‘동아시아 자본주의’와 연결된 한국과 한반도 차원에서 자본주의의 핵심 문제를 파악하고자 한다. 제6장에서는 새로운 경제체제 모델로서의 ‘한반도경제’를 논한다. 여기에서는 세계체제-분단체제-국내체제를 일종의 네트워크구조로 파악한다. 한반도경제는 새롭고 다양한 네트워크조직·제도를 가져오는 체제혁신을 통해 형성되는 것이다. 이러한 시각에서 글로벌·동아시아 네트워크의 구조 속에서 남북한의 위치를 분석하고, 기존의 발전모델과 제도·조직 형태를 개선하는 동아시아 및 남북 경제협력 모델을 구상한다. 제7장에서는 ‘뉴노멀’이라는 개념을 통해 한국경제가 당면한 구조적 위기조건을 살펴본다. 동아시아 발전모델은 거시적 성과, 산업·기술체제, 글로벌 분업체제의 조건 등의 결합체다. 뉴노멀은 단순한 순환적 위기를 표현하는 용어가 아니며, 기존 발전모델 전체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게 하는 구조적 조건이다. 이에 대해 회복과 적응의 양면에서 전환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이 본서의 핵심 주장이다. 조직․체제: 네트워크경제․국가로의 전환 3부에서는 한반도경제를 구성하는 조직·체제의 원리를 네트워크를 핵심으로 하는 혼합적 조직 형태로 규정하고 이러한 원리가 확장된 네트워크경제·국가 개념을 제시한다. 한국에서 형성된 동아시아 발전모델은 국가와 재벌체제를 중심으로 하는 위계적 시스템과 이에 연결된 무한경쟁의 시장시스템의 덩어리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네트워크조직·제도의 영역을 확장하는 체제혁신을 통해 좀더 혼합적이고 수평적인 체제로 이행할 수 있다는 제안을 내놓는다. 제8장은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새 정치’에 대한 대중적 열망이 분출하던 시기에 구상된 네트워크국가에 대한 제안이다. 이 글에서는 한반도경제론의 인식 범위를 세계체제-분단체제-국내체제 등 세 개 층위의 차원으로 규정한다. 이에 따라 평화질서-남북연계-혁신국가라는 삼중의 과제를 설정하고, 이 과제를 수행하는 체제적 원리를 네트워크로 상정한다. 제9장은 한반도경제의 성장전략에 관한 것이다. 이 글은 이명박정부, 박근혜정부의 성장전략에 대한 비판적 논점을 담고 있지만, 문재인정부에서 채택한 소득주도형 또는 내수주도형 모델의 일국적 시각과도 차별되는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김대중정부 및 노무현정부의 동북아전략 및 균형발전전략을 비판적으로 재구성하여, 글로벌 지역으로서의 한반도경제와 지중해경제를 형성하는 ‘수평·분권-네트워크’의 성장전략을 제안한다. 제10장은 한반도경제의 시각에서 본 경제민주화 논의이다. 경제민주화 논의는 2012년 대선의 최대 쟁점이었지만, 박근혜정부 출범 이후 유야무야되고 말았다. 문재인정부는 공정경제 의제를 제시했지만, 그에 대한 명료한 정책 방향은 제시되지 못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경제민주화 개념을 발전모델과 경제체제 혁신이라는 차원에서 재정립하면서, ‘87년체제’의 혁신과 네트워크국가로의 전환이라는 과제를 제시한다. 제도․거버넌스: 혼합적 체제와 지역발전 4부에서는 한반도경제의 법적·제도적 체계와 거버넌스 혁신에 관한 논의를 다룬다. 한반도경제는 단순히 남북 경제통합을 지시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체제혁신을 통해 재구성되는 질서를 의미한다. 전통적으로 논의되어온 경제체제의 핵심 문제는 역시 자원 사용을 규율하는 재산권과 분쟁을 조정하는 법·제도와 거버넌스라고 할 수 있다. 한반도경제론이 지향하고 제안하는 질서는 사유와 국유, 개인과 국가 사이에 지역적·공동적·혼합적 소유와 운영이 확대되는 혼합경제체제이다. 제11장에서는 체제혁신의 주요한 요소이자 방편으로 커먼즈(commons)를 논의한다. 커먼즈는 시장과 국가 이외의 제3의 원리와 영역을 의미한다. 혁신된 체제로서의 한반도경제는 시장·국가와 중첩된 영역을 지니는 복합적 의미의 공공성을 지닌 공동체를 포함하며, 공유적 거버넌스와 공유적 재산권으로 구성된 커먼즈가 중시되는 체제이다. 커먼즈는 4차 산업혁명과 글로벌체제의 변동 속에서 산업·지역 발전에도 핵심적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제12장은 지역 차원에서 커먼즈와 생산력을 만들 수 있는 현실적 경로를 모색한다. 한국에서의 중앙과 지방 간 격차의 심각성 때문에 분권체제로의 전환은 시급히 필요한 방향이다. 문제는 대지역주의와 소지역주의 노선 갈등이다. 한반도경제론에서는 영국 사례에서 나타난 대지역주의와 소지역주의의 혼합 실험을 참고하면서, 사회적 공유자산 기반을 구축할 수 있는 효과적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제13장은 지역 차원에서 시도해볼 수 있는 산업·지역혁신 실험에 관하여 논의한다. 한반도 전체 차원에서 볼 때, 남한은 서울로, 북한은 평양으로 인적·물적 자원이 극도로 집중된 조건에 놓여 있다. 남한의 경우 특히 서남권의 조건이 열악하다. 지역 단위의 생존 및 발전이 가능한 정도의 공간 규모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고, 중앙과 지방 정부, 다양한 경제주체가 함께 참여하는 광역경제권 거버넌스의 형성을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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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후 시대를 ‘분단시대’로 명명한 역사학자 강만길의 첫 사론집 『분단시대의 역사인식』 은 해방 후 시대를 통일의지가 담긴 ‘분단시대’라는 용어로 최초 명명한 강만길의 첫 사론집이다. 저자에 따르면 역사학이 분단시대의 극복에 이바지하는 길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 분단 시대를 외면할 게 아니라 현실로 직시하고 대결해야 한다. 둘째, 분단시대를 철저히 객관화하고 비판해야 한다. 셋째, 분단시대 극복을 위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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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관계 핵심현안을 최고전문가에 듣는다! 다시 ‘통일’을 말하는 시대의 필수지식 2018년 4월부터 세차례의 남북정상회담과 역사적인 북미정상회담이 진행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70여년 동안 분단의 질곡을 짊어지고 살아온 한반도에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음을 실감하고 있다. 동시에 교착과 진전이 엇갈리면서 기대와 한숨도 반복되는 실정이어서, 변화의 방향에 모두 공감하면서도 어떻게 하면 목적지로 갈 수 있는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러한 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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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의 세계, 희망의 한반도 “희망이 공포를 무찔렀다.” 브라질 노동당의 룰라 후보가 지난 10월 28일 대통령 당선이 확정된 직후에 한 말이다. 다음 달 미국의 중간선거는 부시와 공화당의 승리로 끝났다. 그때 미국의 한 학자는 룰라의 이 말을 받아, “공포가 희망을 무찔렀다”라고 썼다.(Immanuel Wallerstein, “Bush: Fear Conquered Hope”) 세계 전체로 보면 2002년은 희망보다 공포가 득세한 시기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