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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剝製)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 나는 유쾌하오. 이런 때 연애까지가 유쾌하오. 육신이 흐느적흐느적하도록 피로했을 때만 정신이 은화(銀貨)처럼 맑소. 니코틴이 내 횟배 앓는 뱃속으로 스미면 머릿속에 으레 백지가 준비되는 법이오. 그 위에다 나는 위트와 패러독스를 바둑 포석처럼 늘어놓소. 가공할 상식의 병이오. 나는 또 여인과 생활을 설계하오. 연애 기법에마저 서먹서먹해진 지성의 극치를 흘낏 좀 들여다본 일이 있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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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는 이정향 감독의 두번째 작품이다. 그의 데뷔작은 1998년에 만든 「미술관 옆 동물원」이다. 데뷔작의 제작사는 ‘씨네2000′, 두번째 영화의 제작사는 ‘튜브엔터테인먼트’다. 두 제작사는 이른바 충무로의 주류 제작사다. 이것은 이정향 감독이 전투적인 독립영화감독이 아니라는 사실과 충무로의 품이 얼핏 짐작하기보다 훨씬 넓다는 사실을 함축한다. 감독의 데뷔작이 비록 상업적 성공을 거뒀다 해도, 상업적 비전이 전혀 없는 영화를 튜브처럼 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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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권자의 반도 안되는 사람만 투표했다. 그들 중 다수는 김대중 정권을 향해 혹독한 뺨 때리기를 했다. 월드컵 열기가 광기 수준으로 고조되면서 ‘축제의 일탈’ 정도는 용납해줘야 한다는 말이 전혀 이상하게 들리지 않던 시기에, 노정치인인 김대중 대통령이 그럴수록 더 처연하게 보이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6ㆍ13 지방선거에 참여한 정치 세력들 중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여타 정당들과는 다른 공통점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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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 주: 『만다라』『길』『꿈』의 작가 김성동의 「우리말 산책」을 연재합니다. 우리 문학과 문헌 속에 깃들여 있는 우리말의 뜻을 바로 알려주고 그 아름다움을 널리 밝히는 글입니다. ▣ 물끈: 물을 끌어올 수 있는 근터구. 논밭으로 흘러들 수 있는 물줄기. ▣ 천둥지기: 물의 근원이 없고, 물을 닿게 할 시설이 없이 오직 빗물에 의해서 부칠 수 있는 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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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공학과 생식의학이 인간이 최초로 생겨나는 단계에까지 개입하게 됨에 따라 인간 생명의 시작이 언제인가라는 문제가 과학자, 의학자, 철학자, 윤리학자들의 논쟁거리로 등장했다. 생명의 시작에 대한 견해는 꽤 다양하다. 가톨릭 교회에서는 정자와 난자가 결합하는 시점부터 인간 생명이 시작된다고 본다. 반면에 연구자들은 수정란을 세포 덩어리 정도로 보고, 생명의 시작을 가능한 한 늦은 시점으로 잡으려 한다. 인간 생명의 시작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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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외국인투자기업에서 노조활동을 하고 있던 1973년도의 일이다. 회사측의 노조파괴 공작에 맞서서 우리는 노동조합을 지키려고 자주 파업을 벌였다. 파업이 원천적으로 봉쇄되어 있던 때라 파업 때마다 우리는 경찰서에 잡혀갔다. 노조대표 직위에 있는 나야 그렇다 치더라도, 빨간색 티셔츠를 입은 조합원 한두 명이 꼭 주동자로 몰려 곤욕을 치르곤 했다. 그러한 경험이 있었기에 이번 월드컵 대회에서 ‘붉은 악마’들이 붉은색 티셔츠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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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 만화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남들이 말하는 꿈이니 이상이니 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생활고’ 때문이었다. 보수는 작았지만 그래도 CF감독이라는 명함을 갖고 있던 내가 문득 더 늦기 전에 다시 동화책과 일러스트 작업을 하겠다고 회사를 그만둔 것은 IMF라는 한파가 닥치기 불과 3개월 전쯤이었다. 아내에게 호언장담하며 6개월 정도만 손을 풀면 예전의 그림감각을 다시 가질 수 있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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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호 작은 전시회는 『2002 유홍준의 문화유산 달력』에 실린 ‘조선시대의 명화 개인 소장품’으로 엮었습니다. 여기에 실린 개인 소장품들은 조선시대 회화사에서 기념비적 명작으로 손꼽히는 우리의 자랑스런 문화 유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물관문화가 뿌리내리지 못한 우리 실정에서는 개인 소장의 미술품을 접할 기회가 매우 적어 이번 기회에 달력을 통해서라도 가까이 접해보자는 뜻으로 기획한 것이다. ㅡ 사진•글: 유홍준(명지대 교수)[창비 웹매거진/200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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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밝을 임시에 어수선 산란한 꿈을 꾸고 아니 깨어 자리 속에서 뒤치적거리다가 일어나면서부터 머리가 들 수 없이 무거워 무엇이 위에서 내리누르는 것 같아서 심기가 슷치 못한 나는 아무것도 하기가 싫어 서재(즉 침방)에 꾹 들어앉은 채로 멀거니 서안(書案)을 대하고 앉았다. 이즘 애독하던 『虐げられし人(학대받는 사람들)』이라는 소설도 그 앞에 놓여 있건마는 아주 볼 생각도 없어 돌연히 연속하여 오륙본이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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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살의 아이들을 위한, 아니면 이제 열살이 되려는 아이들에게, 그리고 한때 열살이었던 당신에게…… 미야자끼 하야오(宮崎駿)가 이처럼 덧붙이고 있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열살을 기억하는 모든 이들을 위한 영화다. 대상이나 목표를 잡고 시작하는 것은 어쩌면 쉬운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부류의 영화들이 범하는 실수는 종종 상대를 너무 얕잡아보는 데 있다. 그러나 미야자끼 하야오는 상대(열살의 지적 수준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