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의 책꽂이
-
『동화 없는 동화책』에 수록된 단편들의 제목은 자못 희망적입니다. 기철이는 수학왕이고, 장수풍뎅이는 날아오를 것 같고, 누군가는 그림 같은 집에서 살고 있을 것만 같고, 우리는 혼자가 아닌 것만 같습니다. 그러나 책장을 펼치면 비참한 말들이 들립니다. 가계부를 보며 집의 수입과 지출을 계산해보던 초등학생 기철이는 말합니다. “아빠, 나도 일할래.” “계산해 보니까 공부를 안 하는 게 돈을 버는 거야. 공부를 […]
-
우리 집에 고양이 삼순이가 오게 된 것은 바로 이 책, 『훈이와 고양이』 때문이었어요. 훈이와 고양이가 생선 한 마리를 두고 치열한(?) 토론을 벌이고 있습니다. “누가 생선을 먹는 것이 좋을까?” 고양이는 자신이 생선을 먹어야 하는 이유를 조목조목 말합니다. 허풍쟁이 같은 느낌이 상당하지만, 내가 생선이라면 그래도 당연히 고양이에게 먹히고 싶었습니다. 고양이의 그 조그만 입 속에 들어앉아 있는 […]
-
어린이책 편집자로 일하다 보면 많은 편집자들, 작가들이 어렸을 때 책을 많이 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저는 언제나 부러움에 몸을 떱니다. 저로 말할 것 같으면 ‘어렸을 때 책을 안 읽은 벌로 어린이책 편집자가 됐다’고 느끼는 1인입니다. 인생의 필독 어린이책 고전을 지금에라도 읽는 걸 다행이라 여기기도 하고요. 그런 제게도 어린 시절 기억에 남아 있는 책이 있으니, 바로 […]
-
아침에 편의점에 들러 사과주스를 사요. 과즙 47%. 아, 상쾌해. 그리고 100% 사과주스를 마시기 위해 책을 펴요. 김사과 작가의 『나b책』. 나비가 날아다니는 책일까 하지만, 당연히 그렇지는 않네요. 나와 b와 책, 상처 입은 세 영혼의 이야기네요. 줄거리는, 음…… 사실 『나b책』은 어떤 줄거리로 기억되기 보다는 어떤 이미지로 기억이 되네요. 건조하고 습하고, 딱딱하고 달콤하네요. 그래서 김사과 작가의 『나b책』은 겉은 […]
-
혹시 일본 아이돌 그룹 ‘킨키 키즈(KinKi Kids)’라고 들어 보셨나요? 카제오 우시오의 장편소설 『비트 키즈』(창비청소년문학 9)는 작가가 이 그룹의 멤버 둘을 염두에 두고 썼다는 후문이 있는 작품입니다. 일본의 권위 있는 아동청소년 문학상을 3개나 받았고 감각적인 문체에 섬세한 심리 묘사가 탁월하다는 등의 문학 내적 평가도 호기심을 끌기에 충분하지만, 제가 이 작품을 읽게 된 결정적 계기는 킨키 키즈 […]
-
며칠 뒤면 추석입니다. 온 가족의 마음이 보름달처럼 둥글둥글 환해져야 할 명절이건만, 오히려 집안에 불화의 그림자가 짙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평소에는 잘 못 느끼던 시댁과 친정, 친가와 외가의 ‘불공평한’ 관계가 불거지면서, 가족 간에 갈등을 일으키는 것이지요. 유은실 작가의 동화집 『만국기 소년』에 실린 단편 「선아의 쟁반」은 친가와 외가의 ‘공평한’(!) 관계를 그려 보입니다. 선아는 친할머니의 금쪽같은 아들과 외할머니의 […]
-
학교 다닐 때 가장 어려웠던 과목은? 수학이라고 대답하는 분들이 가장 많을 것 같습니다. 저도 그랬고요. 제가 수학을 어려워하게 된 두가지 큰 계기가 있었는데요, 하나는 2.45 곱하기 47.6처럼 자릿수가 다른 수끼리의 곱셈이었어요. 선생님은 이런 경우엔 일단 계산할 때 소수점을 떼 버리고 245랑 476을 곱한 다음에 소수점을 나중에 찍으면 된다고 하셨는데, 저는 ‘그럼 47.6한테 너무 미안하잖아? 서로 […]
-
몇 해 전 KBS스페셜에서 「길택씨의 아이들」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방영한 적이 있습니다. ‘길택씨’는 강원도 산골마을과 탄광마을에서 오랫동안 교사로 일한 임길택 선생님을 말해요. ‘사북사태’가 일어난 1980년 무렵, 임길택 선생님은 동양 최대의 광업소가 있던 사북면의 사북초등학교에 부임합니다. 1980년에는 6학년 7반, 1981년에는 5학년 8반 담임을 맡아 아이들과 함께 여덟 권의 학급문집을 펴내지요. 이 학급문집에서 가려 뽑은 시들로 엮은 책이 「아버지 […]
-
창비에서 출간하는 시리즈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이 ‘신나는 책읽기’다. 초등 저학년을 위한 창작 동화 시리즈인데, 제목만 봐도 절로 웃음이 나는 책들로 가득하다. ‘내 방귀 실컷 먹어라 뿡야’, ‘신기하고 새롭고 멋지고 기막힌’, ‘왕창 세일! 엄마 아빠 팔아요’ 등 고지식한 엄마 아빠가 보면 기겁할 제목들이지만 아이들은 앞다투어 책을 펼쳐 들고 깔깔거린다. 가욱가욱 웃는 까마귀 가욱이와 말썽쟁이 […]
-
구구단 외우기는 아홉 살 저에게는 정말 힘든 일이었습니다. 9단까지 몽땅 외워야 한다니요. 1단, 2단까지는 잘 외웠는데 3단이 너무 어려웠던 기억이 납니다. 그다음 4단과 5단은 벌써 외웠는데, 3단 때문에 넘어갈 수가 없습니다. 짜증이 부글부글 일었습니다. 그림책 『내 동생』은 구구단을 못 외우는 동생과 그것 때문에 망신을 당하면서도 그저 “구구단이 밉다”고 말하는 오빠의 마음이 잘 담긴 책입니다. 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