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의 책꽂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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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때 만나 친해진 친구 중에 ‘얘는 뭔가 달라.’라는 느낌을 주는 아이가 있었다. 공부도 곧잘 했고, 괜스레 어른스러워 보이는 게 조금 질투도 났었다. 친구는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영화 공부를 시작했고, 그때부터 시나리오도 쓰고 작품도 만들고 하는 정말 ‘뭔가 다른’ 인물이 되었다. 대학 초년생이었던 어느 날, 다짜고짜 그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나 책 좀 추천해 줘.”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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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신년은 60년에 한번씩 오지요. 하지만 갑신년이라고 하면 대부분 1884년을, 그리고 갑신정변을 떠올리게 마련입니다. 표준국어대사전은 “조선 고종 21년(1884)에 김옥균, 박영효 등의 개화당이 민씨 일파를 몰아내고 혁신적인 정부를 세우기 위하여 일으킨 정변. 거사 이틀 후에 민씨 등의 수구당과 청나라 군사의 반격을 받아 실패로 돌아갔다.”라고 갑신정변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찌 역사적 사건이 이처럼 간단히 정리될 수 있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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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는 강원도 지역에 폭설이 내렸습니다. 요즘 여러 가지 일들로 정신이 없어서 그저 제 몸 하나 간신히 끌고 다니느라 계절이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르고 있었는데, 강원도에 있는 고향 집에 가서 무릎까지 쌓인 눈을 푹푹 밟으면서야 비로소 ‘겨울이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저는 ‘겨울’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동물이 수리부엉이입니다. 수리부엉이는 텃새이니까 조금 뜬금없지요. 수리부엉이는 따뜻한 봄에 알을 낳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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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여러분께 시를 몇 편 이어서 읽어드리려고 합니다. 새 신을 신고 뛰어 보자 팔짝. 머리가 하늘까지 닿겠네. 아버지는 나귀 타고 장에 가시고 할머니는 건너 마을 아저씨 댁에. 아가야 나오너라 달맞이 가자. 앵두 따다 실에 꿰어 목에다 걸고 검둥개야 너도 가자 냇가로 가자. 날아라 새들아 푸른 하늘을. 달려라 냇물아 푸른 벌판을. 오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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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삼각형의 대열을 이룬 사람들이 무언가에 쫓기듯 밀리고 밀려가고 있다. 뭔가 불안해 보이는 이 상황! ‘이게 뭔가?’ 싶어 책을 뒤집어 보면 커다란 돌덩이가 뒤표지 한가득 그려 있다. 사람들이 커다란 바위를 피해 달아나고 있던 것. 이 책 『해바라기 마을의 거대 바위』의 표지 모습이다. 책의 제목도 그렇고 표지도 그렇고 무언가 낯설기도 하고 신선하기도 하여 궁금증이 일었다. 그래서 책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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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어느 자리에서, 권정생 선생님의 작품들에 대해 이야기 나눈 적이 있습니다. 『몽실 언니』「강아지똥」「무명 저고리와 엄마」 같은 대표작 말고, 선생님의 다양한 면모를 보여주는 몇몇 숨은 작품들이 언급되었는데요. 특히 『하느님이 우리 옆집에 살고 있네요』의 유머와 재미와 의미에 대해 열변을 토한 분이 있었습니다. 엥? 제목마저 낯선 이 작품은 뭐지? 게다가 성자처럼 살다 가신 권정생 선생님의 ‘유머’라니?’ 그날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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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고: 전국의 착한 딸 여러분, 지금 당장 이 책 안 읽으면 커서 후회합니다. 엄마는 만날 저한테 이렇게 말했습니다. “엄마 말 잘 들어야 착한 딸이지?” 하다가도 진짜로 제가 생각하기에 착한 일(예를 들어 이웃 언니한테 벙어리장갑을 벗어주고 온다거나)을 하면, “저렇게 착해 빠지고 물러 터져서 어떡하냐!”며 사람들한테 제 흉을 엄청나게 보는 거예요. 아니 그럴 거면 착한 일이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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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우! 오늘은 수요일! ‘뿌리 깊은 나무’가 하는 날입니다. 한석규의 폭풍 연기에 매 회 정신을 못 차리며 보는데요. 연기자들의 열연과 잘 짜인 구성에도 감탄을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가장 놀라운 것은, 어떻게 세종은 글자를 만들 생각을 했을까, 하는 것입니다. 게다가 신하들이 저토록 격렬히 반대하는 와중에서 ‘백성을 생각하는 마음’만으로 위험천만한 프로젝트를 실행하다니요. 정의로운 데다, 똑똑하고, 연기까지 잘하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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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많고 탈 많던 2011년 프로야구도 막을 내렸다.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삼성 라이온즈의 팬들은 아직 여운이 가시지 않았겠지만 다수의 야구 팬들에겐 내년 봄까지 남은 시간이 길기만 하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이대호 선수를 비롯한 대형 FA의 향방과 김태균, 이승엽과 박찬호 선수의 복귀 관련 소식이 스토브 리그를 한껏 달구리라는 것이다. 그리고 기나긴 겨울밤에는 한결같은 벗, 책이 있지 아니한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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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개인적인 얘기부터 대뜸 꺼내자면, 나의 초경은 무려 4학년때 찾아왔다. 요즘 아이들이 어떤지는 잘 몰라도 그 당시 4학년은 성교육을 단 한 차례도 받아 보지 않은 꼬마아이에 불과했다. 다행히도 엄마는 꽤 오래 전부터 “혹시 어느날 속옷에 뭐가 묻어나면 엄마한테 꼭 말해야 해.”라고 해 왔고, 엄마가 쓰는 생리대로부터 나는 무언의 메시지를 받았던 듯하다. 엄마만 쓰는 물건, 아빠에게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