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의 책꽂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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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드그렌 선생님은 2002년 1월 28일에 돌아가셨습니다. ㅂ은 아직 스웨덴으로 가는 비행기 표를 살만큼 돈을 모으지 못했는데, 아직 린드그렌 선생님에게 한 통의 편지도 보내지 못했는데, 린드그렌 선생님은 하늘나라로 간 것입니다. ㅂ은 린드그렌 선생님께서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은 날 저녁에 편지를 씁니다. 그 편지는 이렇게 끝이 납니다. 선생님, 나의 린드그렌 선생님, 모든 것이 그저 아름답고 아무 근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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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에 입사하고 얼마 되지 않은 어느 날이었습니다. 일본인 할아버지 손님 한 분이 회사로 오셨습니다. ‘후루따 타루히(古田足日)’라는 이름의 작가라고 했어요. 사실 그때는 말 그대로 어리바리한 신입 사원일 때라 그분이 어떤 분인지, 무슨 내용의 책을 썼는지 잘 알지 못한 채 미팅 자리 구석에 앉아 있을 따름이었지요. 후루따 할아버지는 무척 단정한 인상이었습니다. 또 본인이 쓴 『벽장 속의 모험』(창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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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의 여신』이라는 동화책이 출간되고 나서 주변에서 이 책을 칭찬하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누군가는 자기가 읽어 본 가장 재미있는 동화라며 극찬을 했지요. 그래서 잔뜩 기대를 하고 첫 번째 동화를 읽었습니다. 제목부터가 불량한 「오빠 믿지?」. 그런데 이 동화를 읽고 나서 저는 당황스럽기 짝이 없었어요. 마지막에 이르면 이야기가 안드로메다로 확 날아가 버리거든요. 그런 점이 제게는 분방한 쾌감을 느끼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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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바꼭질을 하던 ‘나’는 숲속에서 삐비랑 마주치게 되었고, 늘 혼자 있는 데다가 나뭇가지로 이상한 행동을 하는 그 아이가 궁금해졌어요. 삐비를 따라다녀 보다가 어느 순간 우리는 친구가 되었답니다. 다른 친구들은 삐비와 함께 하는 ‘나’를 멀리했지만 괜찮았어요. 아주 깊은 숲속도 삐비와 함께라면 무섭지 않았어요. 오히려 숲은 우리 둘의 것이었지요.겨울이 끝나고 ‘나’는 학교에 가게 되었고 삐비는 그러지 못했어요. 삐비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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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부모들은 자식이 좋지 않은 일에 휘말렸을 때, “친구를 잘못 만나 그렇다.”라고 말한다. 우리 애는 그럴 애가 아닌데 나쁜 친구를 만나 재수 없게 삐끗했을 뿐이라고. 물론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서로 만나지 않았더라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도 있을 테니까. 나도 나쁜 친구를 가져 본 일이 있다.(동시에 내가 그들에게 나쁜 친구였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리고 지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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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뿐 아니라 전래동요도 많지요. 그 중 “강강수월래”는 보름날 부르는 대표적인 전래동요입니다. 그런데 보름날 불렀다는 또다른 재미난 동요가 있어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가사가 참 기가 막혀요. 황새란 놈은 다리가 기-니 우편배달로 돌려라 얼싸절싸 잘 넘어간다 둥그렁 뎅 둥그렁 뎅 물새란 놈은 빛깔이 고우니 남사당 춤 패로 돌리고 까치란 놈은 집을 잘 지으니 공사판 목수로 돌려라 (중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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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무엇을 그린 그림일까요? 금세 알아채셨나요? 바로 고구마입니다. 『아주 아주 큰 고구마』 라는 그림책에는 이렇게 장장 8장에 걸쳐 거대한 고구마가 그려져 있습니다. 파란하늘유치원 아이들이 고구마를 캐러 가기로 한 날, 아침부터 비가 내려서 아이들은 대 실망입니다. 하지만 고구마가 얼마나 크게 열려 있을까, 우리는 얼마나 큰 고구마를 캘 수 있을까 하고 상상하기 시작하자 곧 즐거워집니다. “이만큼 커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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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갈수록 가을이 짧아지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한 사람으로서, 문득 추남, 추녀가 된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어요. 누군가는 멋진 가을 재킷을 걸치며, 누군가는 예쁜 스카프를 두르며 가을을 타겠지만 조용한 공간에서 혼자 소설책을 읽으며 가을의 시간을 보내는 일도 괜찮지 않을까 하고요. 가을은 어찌 보면 갑작스레 방문한 쓸쓸함을 맞이해야 하는 계절이니까요. 덩그러니 혼자 있는 책 한 권이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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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는 이렇습니다. 느닷없이 도시에서 시골 마을 득산리로 이사한 준영이는 어느 날 ‘득산리의 전설’을 듣게 됩니다. 전설이라기보다는 괴담이지요. 아이들의 간을 노린다는 방앗간 할아버지와 할머니, 아기 잃은 여자의 귀신이 나온다는 뱀산, 지나가는 아이들을 잡아 가둔다는 밤나무밭 돼지할아버지……. 하나같이 등굣길에 지나치는 곳들이 배경이라 준영이는 친구들과 한데 모여서 학교를 오가게 됩니다. 그리고 이런저런 소소한 소동 끝에 괴담의 진실들을 하나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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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한 인터넷 사이트에서 이 글을 읽었을 때 그야말로 육성으로 빵 터졌습니다. “우아! 이거 완전 대박이다! 서울 사람들은 진짜 이걸 구분 못 한다는 거야? 헐~~~~” 알 만한 사람들은 이미 다 아는 유통기한 지난 에피소드일지 모르겠지만, 고향이 부산인 저는 오래간만에 뭔지 모르게 시원한 청량음료 하나를 들이켠 기분이 되었습니다. ‘표준어=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 […]